마27:9의 기록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정답인 이유
구약성경을 실제로 찾아보면 이 은 서른 개와 토기장이 이야기는 예레미야서가 아니라 스가랴서 11장 12~13절에 더 똑같이 나옵니다.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왜 마태가 '예레미야'라고 적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성경학적 이유(가설)들이 제시됩니다.
1. 복합 인용과 대표 선지자 표기
마태는 한 구절만 인용한 것이 아니라, 스가랴의 예언(은 30개와 토기장이의 밭)과 예레미야의 예언(토기장이의 옹기를 깨뜨리며 힌놈의 아들을 피의 골짜기라 부른 일 - 예레미야 19장)을 마음속에서 하나로 묶어서 인용했습니다. 이때 두 선지자 중 더 크고 대표적인 선지자였던 예레미야의 이름만 대표로 언급했다는 견해입니다.
2. 구약 성경 배열 순서에 따른 이유
고대 유대교의 바빌로니아 탈무드 기록에 따르면, 당시 선지서(Prophets) 타나크 scroll의 분류 순서에서 예레미야서가 선지서 전체의 맨 첫 번째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선지서 전체를 총칭하여 부를 때, 맨 앞에 있는 책의 이름인 '예레미야'를 대표 명칭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3. '토기장이'와 '밭'이라는 핵심 모티브
예레미야서에는 토기장이 집으로 내려간 이야기(예레미야 18장), 토기장이의 오줌병을 깨뜨리는 이야기(19장), 그리고 아나돗에 있는 사촌의 밭을 사는 이야기(32장)가 등장합니다. 마태는 유다가 은을 버리고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결국 '피밭'이 된 이 비극적인 사건의 영적 배경이 예레미야의 심판 예언과 가장 잘 통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약하자면, 복음서 말씀 자체(마 27:9)가 이 구절을 '예레미야의 예언'이라고 직접 명시했기 때문에 문맥상 예레미야를 가리키는 것이 맞으며, 실제 내용이 스가랴서와 섞여 있는 것은 고대 유대인들의 독특한 예언 인용 방식(복합 인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27:9의 기록에서 선지자를 누구라고 기록하였는지
1. 헬라어 (그리스어) 성경 원문
모든 주요 그리스어 사본(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 등)은 예외 없이 '예레미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문 : τότε ἐπληρώθη τὸ ῥηθὲν διὰ Ἰερεμίουτοῦ προφήτου λέγοντος...[1]
증거 : 가장 원형에 가까운 대다수의 헬라어 성경이 Ἰερεμίου(예레미야)를 지지합니다. (※ 극소수의 후대 사본인 Codex Beratinus등에서 '스가랴'나 '선지자'로 고쳐 쓴 흔적이 있으나 주류 학계에서는 가치를 낮게 봅니다.)[1]
2. 콥트어 (Coptic) 성경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이 사용한 고대 콥트어 성경(보하이라, 사히드 방언 사본 모두) 역시 헬라어 원문을 따라 '예레미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1]
구절 표현 : 콥트어 텍스트에서도 Ⲓⲉⲣⲉⲩⲓⲁⲥ (Ieremias, 예레미야)라는 이름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성경의 권위를 뒷받침합니다.[1]
3. 에티오피아 (Ethiopic / Ge'ez) 성경
고대 에티오피아의 게에즈(Ge'ez)어로 번역된 성경 또한 '예레미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1]
구절 표현 : 현대 암하라어 성경의 모태가 된 게에즈 성경 사본들에도 ኤርምያስ (Érmyas, 예레미야)선지자의 이름을 그대로 보존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1]
4. 아랍어 (Arabic) 성경
고대 이슬람 문화권 및 아랍 기독교인들이 사용한 아랍어 성경 역시 예레미야를 따릅니다.[1]
원문 : حينئذ تم ما قيل بارمياالنبي القائل
해석 : "그때에 선지자 이르미야(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바가 성취되었으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1]
5. 히브리어 (Hebrew) 복음서
신약 성경을 고대 히브리어로 역번역한 역사적인 주석(딜리치 히브리어 신약성경 등)이나 유대 기독교인들이 보던 복음서입니다.[1]
원문 : אָז נִתְמַלֵּא דְּבַר יִרְמְיָהוּהַנָּבִיא לֵאמֹר
해석 :확실하게 יִרְמְיָהוּ (예레미야후 / 예레미야)선지자의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1]
6. 고대 라틴어 사본과 불가타(Vulgata)의 기록
서방 교회(로마 가톨릭)의 표준이 된 라틴어 성경 사본들도 사본의 계보에 따라 흥미로운 차이를 보입니다.
라틴어 불가타(Vulgata) 성경:4세기 성 제롬(Jerome)이 헬라어 표준 사본들을 바탕으로 번역한 불가타 성경은 헬라어 다수 사본과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원문 : Tunc impletum est quod dictum est per Jeremiamprophetam dicentem...
고대 라틴어(Itala / Old Latin) 사본들의 변이 : 제롬의 불가타 이전의 고대 라틴어 사본들 중 일부(예: 4~5세기 사본인 Codex Vercellensis, Codex Veronensis)는 예레미야 대신 이름을 아예 생략하고 "선지자"로만 기록하거나, 후대 사본 중 일부는 이를 아예 '스가랴(Zachariam)'로 고쳐 쓰기도 했습니다.
즉, 서방 사본 전통에서도 헬라어 원문을 철저히 따른 주류 성경(불가타)은 '예레미야'를 유지했으나, 필사자들의 사적인 판단에 의해 이름이 빠지거나 수정된 사본들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7. 아람어(시리아어) 성경만 선지자 이름을 생략했을까?
시리아어 페시타(Peshitta)와 그 이전의 고대 시리아어 사본(Curetonian, Sinaitic Syriac)에서 '예레미야'가 빠지고 그냥 "선지자(ܢܒܺܝܳܐ, nḇīyā)"라고만 기록된 배경에는 몇 가지 결정적인 사본학적·지리적 이유가 있습니다.
① 텍스트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필사자의 '의도적 수정' (Conjectural Emendation)
고대 사본학에서 필사자들은 성경을 베껴 쓰면서 내용상 명백한 모순이나 오류처럼 보이는 부분을 마주했을 때, 이를 "이전 필사자의 실수(오기)"라고 판단하여 스스로 교정하려는 유혹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시리아 지역의 번역가들과 필사자들은 구약 성경(특히 아람어 타르굼이나 페시타 구약)에 능통했습니다.
마태복음의 인용구(은 30개, 토기장이의 밭)가 예레미야가 아닌 스가랴 11장에서 온 것임을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이에 따라 "원래 마태가 '스가랴'라고 썼거나 그냥 '선지자'라고만 썼는데, 누군가 잘못 베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복음서의 신뢰성을 지키기 위해 이름을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안전하게 "선지자"로만 남겨두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② 타티아누스의 '디아테사론(Diatessaron)'의 영향
2세기 중엽, 시리아 출신의 신학자 타티아누스는 사복음서를 하나로 합친 '디아테사론(사복음서 합본)'을 저술했습니다. 이 책은 시리아 교회에서 수백 년 동안 표준 복음서처럼 읽혔습니다.
타티아누스는 복음서 간의 모순을 없애고 조화를 이루는 데 집중했기 때문에, 마태복음 27장 9절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합 인용된 구절에서 선지자의 이름을 삭제하고 합쳤습니다.
이후 5세기에 시리아 교회가 사복음서 체제인 '페시타'를 정립할 때, 오랫동안 손에 익었던 디아테사론의 전통(이름 생략)이 그대로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③ 극소수 헬라어 사본 전승의 반영
비록 현재 남아있는 대다수의 주류 헬라어 사본(시내, 바티칸 등)에는 '예레미야'가 있지만, 2~3세기 당시 시리아 번역가들이 저본(번역의 바탕이 된 텍스트)으로 삼았던 일부 고대 헬라어 사본들 중에는 이미 이름이 생략된 형태(per tou prophētou)가 존재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헬라어 사본 중 Codex Bezae(D)의 라틴어 대조문이나 일부 미니스큘(소문자) 사본(예: 33번 사본)에서도 이름이 생략된 흔적이 발견됩니다.
짚어볼 만한 학계의 결론
성경 비평학(사본학)에는 "더 어려운 제문이 원본일 가능성이 높다(Lectio difficilior potior)"는 유명한 원칙이 있습니다.
만약 마태가 처음부터 '스가랴'라고 썼거나 그냥 '선지자'라고만 썼다면, 후대의 필사자들이 굳이 모순을 일으킬 만한 '예레미야'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내서 집어넣었을 리가 없습니다. 반대로 처음 원본에 '예레미야'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에, 후대 필사자들이 당황하여 이를 '스가랴'로 고치거나(일부 라틴어 사본), 아예 이름을 지워버린 것(아람어 페시타, 고대 라틴어 일부)
으로 보는 것이 사본학적으로 가장 자연스럽고 타당한 해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