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묻곤 한다. 어떻게 자연에 대한 것들을 알게 되었느냐고. 그럴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리더십의 본질을 알려고 하다 보니 조직의 속성을 알아야겠다 싶었고, 그걸 알려다 보니 인간이 궁금해졌다. 조직은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니 이번에는 자연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자연에서 왔으니 말이다. 그렇게 가다 보니 이전에 몰랐던 흥미로운 세계가 있었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오고 살아가는 세상이 있었다. 보면 볼수록 의미심장한 이들의 생존전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성공이 정상이고 실패는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연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가 자연의 제왕이라고 하는 사자와 호랑이들의 사냥 성공률이 얼마나 될까? 으레 뛰기만 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의 성공률은 10∼20%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만 그런 게 아니다. 독수리를 비롯한 거의 모든 사냥꾼들이 다 그렇다. 인간 세상이라고 다를까. 뛰어난 인재들이 모인 세계적인 기업들도 수익률 10%면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실패가 흔하고 성공이 드물다는 뜻이다. 열에 아홉 번 실패하는 게 일반적이고 성공이 예외다.
36억 년이라는 생명의 역사에서도 우리가 정상이라고 하는 좋은 환경은 흔치 않았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고 문명을 이룬 최근 1만여 년만 예외적으로, 그러니까 비정상적으로 평온했을 뿐이다. 이마저도 끝나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자나 호랑이 같은 자연의 능력자들은 계획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바람처럼 사라져버리는 타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살 수 있어서일 것이다.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듯 보여도 사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계획을 버린다. 아닌 걸 붙잡고 쓸데없는 힘을 쓰지 않는다. 계획을 고집하기보다 목표에 초점을 맞춘 뒤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한다.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어도 항상 용의주도하게 움직이고, 또 신속하게 그걸 버리는 일관성이 있다. 이런 능력이 있으니 제왕으로 살아가는 것일 게다. 그럼에도 성공률이 10∼20%에 불과하다. 성공이란 정말이지 쉬운 게 아닌 것이다.
사물들의 세상인 물리학에서는 정답이 있어도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정답이 없다는 것도 배웠다. 남들도 다 가지고 있는 정답보다는 나만의 답을 가져야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하나의 답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살아 있다는 건 이 답이 유효하다는 뜻이라는 말이다. 언제나 감탄스러운 건, 뇌가 없거나 없다시피 한 미물들도 자신만의 답,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잠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노안도(蘆雁圖), 수당 김종국(首堂 金鍾國, 1940-), 종이에 수묵담채, 69×131.5cm, 1978
萬里江湖一葉身 만리강호에 한 잎 낙엽 같은 몸
來時逢雪又逢春 올때 눈을 만났는데 다시 봄을 맞네.
天南地北年年客 천지에 남북으로 해마다 길손인데,
只有蘆花如故人 다만 갈대 꽃만이 옛친구 같구나.
戊午仲夏 首堂 寫 무오년(1978) 5월 수당 그리다
늦가을 달밤의 정취가 가득한 갈대밭으로 날아드는 기러기의 모습을 담은 노안도이다. 노안도는 조선말기 오원 장승업의 영향으로 근대기에 이르기까지 크게 유행하였던 화목으로, 노안(蘆雁)과 노안(老安)의 발음이 같아 노후의 평안을 염원하는 의미로 많이 그려졌다. 우측 상단에 커다란 보름달을 푸른빛 담채로 은은하게 표현하였고, 좌측 하단에는 갈대숲에 기러기들이 달빛을 받으며 평화롭게 노닐고 있는 모습을 담는 등 전통적 노안도의 화풍을 따르고 있다. 먹의 농담을 이용해 기러기의 양감과 깃털 등의 세부 묘사를 했으며, 주황색 부리와 발은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몰골(沒骨)의 색선으로 표현하였다. 늦가을 달밤의 서정적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키는 작품이다.
김종국(金鍾國)은 서울 출신으로 호는 수당(首堂)이다. 국악사양성소(현 국립국악고교)에서 대금을 공부하던 17세 때 우연히 만난 이당 김은호의 권유로 처음 붓을 들었다. 서라벌예술대 동양화과에서 소정 변관식에게 산수와 어해 등을 배웠고,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에 편입하여 제당 배렴에게 지도를받았다. 이외에도 심원 조중현에게 영모화와 동물화를 익혔고, 금추 이남호에게 개성 강한 풍속화를 사사하는 등 다양한 화목을 두루 섭렵 하였다. 국전과 백양회공모전 등에서 수 차례 입선과 특선을 수상하였고, 인물화와 신선도로 이름을 날렸다. 군산교육대학, 부산여자대학 강사 등을 지냈고, 인사동에 ‘수당화실’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풍악추명(風岳秋明),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 1892-1979), 비단에 채색, 103×205cm, 1958
楓岳秋明(금강산의 가을이 밝다.) 戊戌 仲春 以堂 寫(무술년(1958) 2월 이당 그리다) -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 금강산인 풍악(楓岳)의 경관을 화려한 색의 대비로 묘사한 작품이다. 병풍처럼 넓게 펼쳐진 만물상의 기암괴석과 계곡을 근경과 중경으로 화면의 중심에 배치하였고, 만물상 너머로 원산 연봉들을 푸른색으로 묘사하여 청량한 공간감과 함께 금강산의 웅장하고 무한함을 느끼게 하였다. 뾰족뾰족 솟은 기암숲 사이로 황색과 녹황색, 붉은 색의 단풍들이 찬란하게 전개되어 있어 가을 풍악의 절경이 한 층 화사하게 다가온다. 단풍 든 나무들은 북종화의 대가답게 잎새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묘사했으며, 그사이로 쭉쭉 뻗은 초록빛의 상록수들은 기암들의 수직적 동세(動勢)와 조응하며 수평적 구도와 조화를 이룬다.
김은호(金殷鎬)는 인천 출신으로 호는 이당(以堂), 초명은 양은(良殷)이며, 근대 한국화 6대가 중 한 명이다.사립 인흥학교 측량과를 졸업하였고, 서화미술회강습소에서 안중식, 조석진에게 사사하였다. 1925년 소정 변관식과 함께 일본 동경미술학교에 청강생으로 유학하였고, 조선미술전람회(鮮展), 제국미술전람회(帝展) 등에 출품하여 수차례 입상하였다.
고려미술원과 조선미술원에서 후진을 양성하였고, 1936년 후소회(後素會)를 설립하여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며 도제(徒弟)교육의 전통을 살렸다. 조선미술전람회 초대작가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서울시문화상, 3・1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받았고, 1966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 김기철 화백의 고혹적인 빛깔과 질감을 가진 석채화의 작품 세계
석채화(石彩畵)는 400년 전 인도에서 처음 시작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혹적인 빛깔과 질감 때문에 ‘보석화’ 또는 변하지 않는 돌가루의 특성으로 ‘만년화’로 불리고 있다.
김기철 화백은 손으로 오직 미세한 돌가루를 캔버스에 뿌려 독창적인 예술 가치를 창조, 개척해온 화가이다. 김기백 화백은“ 석채화는 돌가루에 채색을 한 것이 아니라 돌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색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라며“ 원료는 주로 영동, 금산, 무주 인근의 돌을 쇠절구에 찧어 고운가루를 내서 사용한다”고 밝혔다.
한편, 김기철 화백은 충북 영동 출신으로 한국서화작가협회와 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국작가 100인 展”을 비롯해 호주와 하와이, 필리핀, 오스트리아 등 국내·외에서 초대전을 개최한 바 있다.
* 석채화(石彩畵): 색깔 있는 돌을 바숴 그 가루를 색으로 사용하여, 606본드를 물에 타서 거기에 돌가루를 섞어 그린 그림-불투명한 원색으로 진하고 강하게 그린 그림
▲ 모란[牧丹] 사진 ⓒ 이영일 채널A 스마트리포터
▲ 작약(芍藥) 사진 ⓒ 고앵자 채널A 스마트리포터
▲ 목련(木蓮) 사진 ⓒ 이영일 채널A 스마트리포터
▲ 자목련(紫木蓮) 사진 고앵자 채널A 스마트리포터
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름을 알고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이 시의 제목이자 제재인 ‘풀꽃’은 작고 사소해서 사람들이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일상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화자는 이러한 ‘풀꽃’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세심하고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대상의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애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3연에서는 ‘너도 그렇다’ 라는 표현을 통해 이러한 자세가 독자를 비롯한 세상 모든 존재에게 적용될 수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새롭게 도전하는 것을 망설이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걱정 많은 우리에게 짧지만 뜨거운 격려를 보내는 나태주 시인다운 시다. 산다는 것이 제 뜻대로 되지 않아도, 그래도 기죽지 말고 꿈을 피워보라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간결한 표현 속에 따스한 격려와 지지, 용기를 함축하고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싶은 시라는 생각이 든다.
⁕ 나태주(羅泰柱, 1945~) 시인은 충남 서천 출생.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력과 사색, 천진하고 참신한 착상, 전통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자연의 아름다움 등을 노래하였다.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2009년부터 2017년까지 공주문화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공주풀꽃문학관 시인이다. 시집으로 “대숲 아래서”(1973), “막동리 소묘”(1980) 등이 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동아일보 2021년 2월 15일(월),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 생태사진: 고앵자 채널A 스마터리포터, 이영일 전) 생명과학 신지식인/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
첫댓글 좋은 굴로 설명과 그림, 사진둘...고상한 식견이 멋지네요 ☆
고봉산님
자연속에서 태어난 생명체들의 그 존재 이유와 그 능력의 한계 등에 대한 심오한 분석이 과연 전문 연구가 다워 고개를 끄떡일수밖에 없네요
전설적인 화백들의 그림 잘 감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