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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훈 스포츠부장
"남자로 태어나서 해볼 만한 게 3개 있다. 그것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연합함대 사령관, 그리고 프로야구 감독이다." 1960년대 일본 사회를 주름잡고 프로야구 구단까지 갖고 있던 미즈노 시게오(水野成夫·1899~1972) 산케이신문 회장이 남긴 말이다. 재계사천왕(財界四天王)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그의 눈에도 외부의 간섭을 별로 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팀을 이끌어갈 수 있는 프로야구 감독이란 자리가 멋지게 보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프로야구 감독들의 빛나는 아우라 뒤에는 가슴 짠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국내 프로야구 9개 구단 감독들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며 올 한 해를 버텨왔다.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면서 매일 피 말리는 승부를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눈이 저절로 떠지기 때문에 아침 알람을 듣고 깬 적이 없다"거나 "한 번 경기를 치르면 체중이 2~3㎏씩 빠진다"는 하소연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한국에 딱 9개 있는 극한(極限)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만성 두통, 불면증, 위장병, 요통, 고혈압 등을 달고 사는 까닭에 '걸어 다니는 병동(病棟)'이라고도 불린다. 예전 감독들 가운데는 뇌경색으로 쓰러지거나 세상을 먼저 떠난 경우도 있었다.
감독이란 자리가 공(功)보다는 과(過)의 흔적이 더 크게 남는 법이다. 올해 가을 야구 마지막을 장식한 삼성과 두산의 사령탑들도 마찬가지다. 두산이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 잇따라 패하자 인터넷에는 '커피 감독을 다방으로 보내자' '커피 처먹느라 작전도 없느냐'는 식의 댓글들이 넘쳐났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루 30잔씩 커피를 마셨던 김진욱 감독을 비아냥거리는 내용들이었다. '관중일(감독이 아니라 관중 같다는 뜻)' '돌(石)중일'이라는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류중일 삼성 감독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매일 밤 '소폭(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 10잔을 수면제 삼아 잠을 청했다고 털어놓았다.
감독은 외로운 보스다. 뜨겁게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낸다. "선수가 안타를 치지 못했다면 그건 그 선수를 기용한 내 잘못"이라는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의 말처럼 모든 책임이 감독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물론 그 어깨에 실리는 무게가 무거울수록 영광의 순간에 감독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서른두 살 한국 프로야구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야구인들, 특히 감독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이다. '파리 목숨'이라고 불릴 정도로 불안한 입지 속에서도 야구에 대한 열정, 자신이 맡은 팀과 선수에 대한 책임감으로 버텨왔다. 그들을 보면서 많은 이가 감동을 받았고, 때론 삶의 지혜를 얻기도 했다.
올해 프로야구 시즌이 끝났다. 개막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672만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각 팀 감독들이 펼쳐내는 명승부를 만끽했다. 이들은 벌써부터 내년 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새봄이 되기 전에 몇몇 얼굴은 바뀔 수도 있지만 내년에도 9명의 사령탑이 펼쳐내는 '2014년판 야구 드라마'가 팬들에게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온 힘과 정성을 다해 프로야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굴려온 프로야구 감독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