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8월 18일에는 나는 휴가장병으로써 구로동 우리집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네 전체에 알리는 동사무소 스피크에서 휴가장병은 지금즉시 귀대하라는 소리가 울
러 퍼졌다 막바로 서부전선 나의 부대를 향해 버스를 타고 달렸다. 무슨일인지는 모르
겠으나 거리는 살벌하였고 리비교 다리는 이미 봉쇄되었다. 그 다리를 넘어야 나의 근
무지이다. 헌병이 나의 소속과 이름을 적고는 돌아가라고 한다. 할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주변의 집들은 그 난리통 속에서도 손빠르게 벽에다가 집판다고 써 붙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북놈들이 미류나무 전지작업하는 미군병사를 도끼로 찍어 죽인사건
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는 매우 긴박했고 전쟁이 터질듯 했다. 그리고 10월에 나는 사단
장 표창을 받고 다시 포상휴가가 나왔지만 포기해버렸다. 웅변해서 상타고 포스터 그려
상타고 상이 넘쳐나서 포상휴가도 넘쳐났었기 때문이다.🙏
첫댓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그냥 꽉~~~해버려야 속이 풀리겠죠
저는 대들면,반드시 보복으로 되갚아주는 타입이라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날의 비극 북한놈들은
참으로 잔인 합니다
미군병사도 부모형제가 있는
집에서는 귀한 아들일 텐데 저렇게
뜻하지 않는 사고로 죽었으니 얼마나
애통했을까요 어~~휴~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하하하하하하
그러셨군요 저는 그무렵에 제대를
얼마 두지 않았었지요
당시 상황은 정말 대단 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플렛 하하하하하하
초병 때는 다들
겁을 먹지요
그러나 좀 지나면
간뎅이가 부어 올라
안 무서워요
감사합니다^^
차 화백님 대단하십니다
재능이 좋으시니 상은 모조리 ...
그때 큰 사건이었지요
3년동안 받아 놓은 크고 적은 상들이
지겹게 많았어요
그당시 의 심각한 상황은 정말 이북
놈들이 미웠어요 어찌 그런 야만인
행동을 하는지 당장 쳐들어가 버리
고 싶었지요
감사합니다^^
1976년 8월 18일, 북괴군의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히고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었지요.
저는 1978년도에 입대하였기에
1976년 사건 당시에는 군인이 아니었지요.
모범 군인으로 표창장까지 받은 차마두 선배님!
늦게나마 추카 드립니다.
아하 그 당시에는 민간이
였네요 그래도 많이 분하고
억울한 감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도끼.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장작패라고 만들어진 연장을 어찌 사람에게
사용할 수가.
훌륭한 표창장입니다.
정말이지 너무
나쁜 이북놈들입니다
인간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십니다.
아이구 뭐 다들 똑 같지요
당시에는 귀대를 속히 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그 사건 때문에 남한에 많은 변화가 있어요
감사합니다^^
여기 울동네 1사단 근무하셨군요 ㅎ
오잉?
그러면 문산이신가요?
시방 그기서 생활하시나
봅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차마두 파주 광탄에 사단이 있지요 그근처에요
@지 존 아......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그해 8월23일 1사단 11연대에서 전역했습니다. 생생합니다.
아! 그러셨군요
반갑습니다.
저보다 조금 일찍 전역
하셨네요
저는 가을에 나온 것 같아요
호적이 늦어서 군대도 한 해 늦게
들어가고 그랬습니다
감사합니다^^
생생하게 기억 합니다
818 도끼 만행
그때는 흑백 tv였는데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아
무서웠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습니다
흑백 티브 였었지요
그때의 상황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지요
감사합니다^^
정말 그때는 저도 전쟁이 발발 하는줄 알았습니다
군 생활도 모범적으로 하신 애국자 시네요~~
온국민을 분노케 했던 그사건...... 그들은 사람이 아닌것 같았습니다
차화백(畵伯)님은 두루두 정확한 기억력과 견문(見聞)이 넓으셔서
독자(讀者)들이 편하게 화백님 작품(作品)을 감상할듯요.
수고(受苦)하심에 3번째로 추천(推薦)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