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자기 죄 때문.
인생이 전장터와 같음을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부터 사람들에게 미리 예고해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1:28) 명하신 이 말씀 속에서는 이미 인간이 정복해 다스려야 할 대상이 땅과 생물들 중에 있음을 아시고 그것들 중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못한 이견(異見)을 갖고 문재인처럼 하나님을 반역해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는 가차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해 그런 반역자들을 정복해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처음 사람들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이러한 축복성 직임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즉 들짐승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잣대로 임의로 재단한 것에 대해 아담과 하와가 그것을 단호히 배격해 정복해 단죄하지 않고 도리어 사단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따라 그의 노예로 전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인간들의 타락 때문에 노아의 홍수로 전멸 당하게 되었고, 간신히 노아의 후손들에 의해 인간 사회가 또다시 형성되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시고 그 후손을 통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시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갖고 세상 만민을 가르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온 인류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 중 하나를 선택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즉 들짐승 사단의 행태에 길들어진 상태의 사람들, 곧 외모는 하나님(사람)의 형상을 닮았으나 속 마음은 들짐승 뱀과 같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사람들로서 이들은 주로 약육강식의 습성을 갖고 이웃 사람들과 피터지게 싸워 이기려는 맹수의 후손들이 되었으며 ,또 다른 방향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을 본받아 자신들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확신해 믿고 따르는 자녀들로 새롭게 거듭 태어나 태초에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왕직을 회복하여 목숨바쳐 수행할 수 있는 충효의 자녀들이 되려 합니다.
땅과 생물들이 먼저 하나님께로 태어나 삶의 터전을 마련한 후에 아담과 하와가 지음을 받고 저들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왕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들짐승 뱀의 거짓말에 정복당하여 죽어야 할 죄인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죄인들에게 예수님이 나아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18~20) 하셨으나, 땅의 풍토와 짐승들의 습성에 인이 박힌 기존의 기득권자들이 엊그제 태어나 예수님을 믿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존의 기득권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심히 분노해 짓밟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상 먼저 태어난 자로 장자의 명분을 주어 그 후에 태어나는 자들을 지배해 가르쳐 이끌도록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거룩하게 된 사람은 아무리 뒤늦게 태어나더라도 기존의 앞선 사람들을 지배해 가르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으뜸으로써 기존의 기존이 되시고 기득권자들의 기득권자들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밥그릇을 먼저 사갖고 와 밥을 뒤늦게 퍼 담습니다. 얼핏 보면 밥그릇이 밥에게 기득권을 행세하여야 할 것 같으나 사실은 밥그릇을 만든 사람의 심중에는 밥이라는 것을 먼저 의식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밥더러 밥그릇을 정복해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즉 밥의 시각으로 더렵혀진 그릇들을 판단합니다. 깨끗한 밥은 항상 깨끗한 밥그릇이 되도록 명합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최초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복해 다스려할 생물이 바로 들짐승 뱀이었습니다. 그러나 뱀(사단)의 반역성을 단죄해 다스리지 못하고 도리어 그의 추악한 반역 사상에 정복당하였습니다. 사단의 반역 사상은 피조물 자체의 생각을 근거로해 모든 것을 새롭게 판별하는 습성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악과의 효능을 믿지 않고, 선악과이든 그 무엇이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규정한 것은 믿을 수 없고, 오직 피조물 스스로가 지닌 육적인 안목을 근거로해 만물을 새롭게 정의(定義)하고 규정하여야 한다는 반역 사상을 사람들에게 주입시켜 사람들의 육감(六感)으로 선악과의 실체를 규명하도록 한 것이 바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열매"로 비쳐졌습니다.
정의로운 인간, 곧 사람다운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과 이웃 사람들과 세상 만물들을 만들어 제작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또 자신의 오늘날이 있게 한 선열들이 피와 땀으로 세운 나라와 또 선열들이 제정한 국법을 근거로해 세상의 일들을 판단합니다. 이때문에 예수님이 세상에서 왕노릇하는 마귀와 그를 추종하는 천하만민을 정복해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근본 원인이 바로,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요한복음8:26) 하신 이 한마디 말씀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들이 기존의 짐승 같은 자들을 정복해 다스릴려면, 반드시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먼저 품고 세상 사람들을 대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위와 같은 말씀은 자신의 허물과 티를 잡으려고 나선 사단의 자식들, 곧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에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풀이하면,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은 인간의 주적, 곧 사단과의 모든 싸움, 곧 무력으로나 논쟁으로 싸워 이기는 것만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지키고 순종하여 그의 자녀된 본분부터 먼저 갖추고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말로서는 사단의 시비를 이길 지혜와 지식이 없다 하여 모세처럼 이적기사라라는 무력을 사용해 응징하려 하지 않았고, 또 정직하지 못한 사단은 문재인처럼 이치적인 논쟁에 승복할 위인이 못되기 때문에 아예 논쟁으로 그를 제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라는 이 말씀의 뜻은, "그들 불신자들의 거짓된 괴변에 대하여 반박하고 판단하여야 할 말들이 많으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라는 이 말씀은, "자신이 세상에 온 참된 목적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뜻(말씀)을 지키고 실행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상관은 악인들과 싸워 이기는 게 주된 목적이 아니라, 자신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게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사람의 근본 죄가 자신의 상전(아버지)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며, 이 죄로 인해 땅과 생물들을 정복해 다스릴 권세를 잃게 되었습니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예레미야 5:25) 하심 같이, 사람의 불행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해 거역한 허물(죄) 때문일 뿐, 악하고 거짓된 자들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이 같은 지적은, 사람이 천태만상의 대적들로부터 당하는 모든 고통과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와 같은 길과 진리와 생명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지 않았더라면, 불의한 일들에 대해서 지기 싫어하는 저 같은 성격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실행하려는 자녀된 본분보다, 나를 까닭없이 미워하고 대적하는 원수들에 대한 보복감이 앞서서 제게 있는 지혜와 능력을 다 동원해 악인들의 악행만 진멸하려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나도 마귀(악인들)처럼 남들의 이러저러한 행악 때문에 도저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었노라고 하는 핑계꾼이 되고 맙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반역한 마귀 같은 자들의 악행에 분노하여 저들을 대적하는 일에 치중하다 보면, 결국 마귀와 같은 자들이 되고 맙니다. 마치 가인이 아벨의 제물 때문에 자기의 제물이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였다 하여 그를 죽이려는 짓과 같습니다. 남들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게 되었다고 하는 자들이 바로 가인 같고 사단 같고 김일성이 같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사단이 훼방하든, 김일성이가 위협하든, 세상 사람들의 죄악이 만연하였던, 그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자신부터 먼저 하나님께 대한 자녀된 분수와 도리를 지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된 본분을 다 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행위입니다.
마귀가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게 만들어 죽게 한 동기는 잘 모르겠으나, 그가 만일 가장 늦게 태어난 생명체, 곧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왕권을 주신 일에 대한 시기심으로 그리하였더라면? 그는 천지창조 이후 최초로 기존의 왕, 사람들을 음모로 제거하고 자신이 왕이 되려 한 최초의 모반자입니다. 그가 정식으로 왕직을 물려 받으려면, 예수님처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뜻을 그 어느 누구보다 준행하려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오직 자신을 지배해 다스릴 왕으로 지명된 자들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범법자들로 타락시켜 죽이게 되면, 그 왕직이 자기에게 돌아 올 줄 알았든 모양입니다. 이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있을까요?
오늘날 이 같은 마귀의 생각이 불신자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신자들에게도 적잖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저 여자가 없었더라면 그 남자는 나와 결혼할 수 있었을 터인 데, 저 사람만 없었더라면 내가 장로가 될 터인 데, 저 교파가 없었더라면 우리교파가 정통교파가 될 수 있었을 터인 데, 세상이 악하고 음란하지 않았더라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을 터인 데, 김일성 일가들만 없었더라면 금수강상 한반도는 벌써 지상 낙원이 되었을 터인 데, 하나님이 사단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범죄하지 않았을 터인 데, 이 같은 망상은 마치 세상에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왕이 될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소리와 같으며, 마라톤 경주에 아무도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편안하게 우승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생각과 똑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너무도 악하고 음란하여 자신이 죄악의 길을 치닫게 되었다고 하거나, 또 학교에서 배우는 진화론 때문에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을 수 없었다고 하거나, 명절날 친인척들의 압력 때문에 제사상 앞에 엎드려 절하게 되었다고 하거나, 학교에서 학우들의 왕따 때문에 술과 담배와 각종 악행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하거나, 안티들의 끈질긴 훼방 때문에 하나님을 불신하게 되었다고 하는 핑계를 하지 마십시오. 한반도에 김일성 같은 망나니가 없었더라면 자신이 행복하였을 것이라는 망상은 하지 말고, 그런 악인들 때문에 더욱 더 어느 민족들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십시오. 그런 마음가짐이 바로 인류의 주적 붉은악마의 틀(생각)을 깨뜨릴 수 있는 정복자의 정신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를 제거하려 온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여하한 이유와 상황 속에서도 순종할 수 있는 참아들이 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러한 사명감에 충실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마귀를 정복해 이긴 승자가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자기를 멸하려고 하는 마귀와의 사적인 원한관계에 얽매여 마귀와 싸워 이기려고 하는 일에 모든 능력을 쏟아붓고 하나님의 뜻, 곧 천하만민들의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참혹한 십자가의 형틀에 매달려 죽어야 하는 본분을 저버렸더라면? 예수님 또한 마귀처럼 이러저러한 일들 때문에 피조물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부 지킬 수 없었다는, 즉 마귀가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거역하게 된 이유를 지지하고 찬동하는 일이 됩니다.
"인간 세상에 마귀의 만행과 횡포가 없었더라면?" 하는 기대감은 사실은 마귀와 같은 강적을 기피하는 패배자의 생각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뜻이 이러하셨구나"라는 깨달음은 사람의 본분을 다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어떤 불의의 세력이든 정복하려고 하는 자들마다 하나님의 지시 사항부터 먼저 준수하여야 합니다. 생명이란 죽음과 싸워 이기는 능력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교훈을 전혀 듣기 싫어하는 패잔병들이 주로 세상에 악마가 없었더라면, 또는 흉악범들이 없었더라면 하는 안인한 생각만 합니다. 이것은 마치 막강한 적들 때문에 사령관의 명령을 지킬 수 없었다고 하는 패잔병들의 넋두리입니다. 제가 이토록 진리에 관한 글들을 여러 사이트에 띄우는 것은 세속에 빠져 죽은 교회의 교인들이 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생명)의 자녀된 본분에 충실하여 어떤 형태의 반역자이든 목숨 걸고 정복해 다스리는 참된 신앙 용사들이 되게 함입니다. '실세자 예수'에 실린 이 시대의 하나님의 공격명령을 사랑해 지키는 의의 용사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