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생활할 때 오가며 보았던 대전 근교의 땅들이 개발되어, 지금은 아파트와 빌딩들이 즐비하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엔 그 땅이 이렇게 개발되리라곤 아무도 상상을 못했다. 개발되기 1년 전쯤, 그쪽 땅이 충분히 올라가리라는 것을 알고 나서 아버지께 농담반 진담반으로 여쭈었다. “아부지, 그때 거기 땅 좀 사놓았으면 우리 부자일텐데, 뭐하셨어요?”
돌아가신 아부지의 대답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너희들 가르치느라 돈 모을 틈이 없었다, 요놈아!”
뜨끔했다. 나 역시 은근히 조상 탓을 하고 있는 속내를 들킨 심정이었다. ‘젊으실 때 땅 좀 사놓고 하시지 뭐하셨나? 그러면 내가 맨바닥에서 이렇게 고생 안하고, 훨씬 빨리 뭔가를 이룰텐데….’ 하는.
그 땅이 대전 둔산동 땅이다. 공군부대가 있었고 들판과 산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 당시 그 동네에서 제법 농사를 짓던 집 친구가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자주 놀러가고, 때로는 자고 오고 밥 얻어 먹곤 했다. 부모님도 시골 어른들처럼 넉넉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시던 좋은 분들이셨다.
1985년 즈음일 거다. 그 동네 주변이 개발되며 보상을 받았다. 형제들이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찾아갈 때마다 인심 포근하고 맘씨 고우셨던 형수는 시내에 다방을 차려 입술에 빨간 연지 바른 낯선 모습으로 우리를 대했고, 형님은 빽바지를 즐겨 입는 캬바레 단골 신사로 바뀌어 버렸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누나는 가게를 직접 차려 경영을 했다. 그 다음부터 우의 좋던 형제자매들 간에 서서히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분들이 어떻게 사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모두 고생하며 살고 있다는 말을 언뜻언뜻 풍문에 듣곤 할 뿐이다.
항상 멋져 보이는 의사 형님이 있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후배들의 든든한 후원자였고, 명절 때 고향 내려온 후배들에게 빈손으로 집에 가지 말라며 용돈도 듬뿍 집어주던 형님이다. 환자들에게 이름이 많이 알려져 제법 돈을 벌었다. 한 달에 생활비로 천만원 이상을 쓴다. 갖고 있는 부동산만도 상당하다. 누가 봐도 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사는 것이 불안하다고 이야기한다. 미래가 불안하고,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한다. 골프채만도 엄청나게 많고, 안 입는 양복도 쌓여 있고, 외식비만도 웬만한 사람 월급에 해당된다. 당연히 부인 몰래 슬슬 흘리고 다니는 돈도 만만치 않다. 그러면서 돈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리고 더 벌기 위해 후각을 세우고 부동산 업자들을 찾는다.
선릉 사무실 근처에 있는 김밥집에 갔다. 한 줄에 천원하는 김밥을 먹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젊은 친구들을 본다. 비정규직에 계약직으로 내몰리면서도 알뜰하게 사는 이 땅 젊은이들의 모습과 더 소비하기 위해 더 벌려는 그 양반의 모습이 너무도 비교된다. 벌만큼 번 사람들이 과욕을 부려 저렇게 열심히 사는 젊은 친구들의 희망을 가로채는 것 같다. 틈만 나면 땅이나 기웃거리는 그 선배에 대하여 슬그머니 부아가 치민다. 그렇게 돼지처럼 살면 행복할까? 옛날에는 안 그런 사람이었는데….
대전에서 병원을 하는 젊은 치과의사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이빨 뽑아 번 돈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시간나는대로 이런저런 곳을 찾아다니며 의료봉사를 한다. 얼굴이 항상 환하다. 더 벌려고 욕심내지 않는다. 마음 씀씀이가 항상 넉넉하다. 겸손하고 검소하게 산다.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더 많이 벌려고 하지 않는다. 검소하게 살며 베푸는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 친구다. 자기 어머니에게서 세상을 그렇게 살라고 배웠다. 효성이 지극하며 형제간의 우의도 두텁다. 이 친구 생각하면 항상 기분이 유쾌하다.
욕심이 도를 지나치면 해롭다. 끝없이 소비하고 더 많이 즐기기 위해, 혹은 물려주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면 참 피곤한 일이 아닐까? 더 많이 벌어서 현재 생활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현재 생활을 잘 점검하여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자신의 이기적인 삶만 생각하며 남을 배려하지 않으니 항상 불안하다. 그리고 삶이 공허하다. 그러다보니 잘 쓰지도 않는 고가품에 엄청난 돈을 지출한다. 일 년에 한두 번 입는 옷만 몇 십 벌이다. 이런 소비 형태가 결국은 욕심을 불러일으키고 과욕을 부리게 만든다.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투기를 하지 않는다. 크고 작은 욕심을 잘 다스려야 가정이 행복해 진다. 지금 사는 모습이 힘들다면 욕심을 부리지 않았는지 한번 살펴볼 일이다. 그리고 사는 모습을 바꾸어 보자!
아내 손을 따스히 잡아주며 따뜻한 희망을 얘기해 보자. 남편 등을 두드려 주며 용기를 되찾게 하고, 가계부도 열심히 써보자! 씀씀이를 잘 살펴보면 틈새를 많이 찾을 수 있다. 이리저리 줄줄 새는 돈들을 잘 조정하면 많은 이벤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욕심을 줄이면 행복해질 수 있다.
이렇게만 말하면 어떤 이는 “웬 공자님 말씀이셔!”라고 빈정댈 지도 모른다. 옳은 지적이다.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살면서도, 재무목표를 숫자로 적어보면서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실천해나가면 참 재미있어 진다. 막연한 미래를 눈에 보이는 숫자로! 막연한 미래가 내 손에 보이고 통제 가능할수록 우리는 더 편안해 진다. 그럴 때 내 작은 씀씀이 하나하나에 의미가 부여되고, 잔잔한 삶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나저나 존경받고 칭송받는 부자들이 우리 사회에 많았으면 좋겠다. 부동산 투기 혐의 드러나 줄줄이 물러나는 고위공직자들을 볼 때마다 바르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곤 한다. 아이들에게 행복을 가르쳐 주려면, 아울러 나 자신도 행복해 지려면, 나누고 베푸는 실천을 생활 속에서 보여주며 살자. 투기하는 모습 보여주지 말고!
첫댓글 내도 늙었나 보다 이런 재미 없는 글이 눈이 들어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