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의 하지혜’라고 불릴 정도로 성격도 좋고 명랑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12년 내내 반장을 도맡았습니다. 교내에 왕따 사건이 벌어지면 주동자를 쫓아가 호통을 칠 정도로 정의감이 남달랐다고 합니다.
평소 꿈꾸던 대로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헌신하는 법관’이 되고자 1999년 이화여대 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어디서든 ‘착하고 성실하다’는 칭찬을 받는 딸이었지만 아버지는 대학생이 된 후에도 하루 용돈을 만원 이상 주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서 “여대생들은 용돈을 넉넉하게 주면 사치스럽게 쓴다”고 충고해 일부러 딸이 빠듯하게 지내도록 했습니다.
교통비와 식비 해결하고 나면 머리핀 하나 마음대로 사기 힘든데 지혜양은 아버지의 생신날 고급 넥타이를 선물해 가족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어떻게 돈을 모았느냐고 물으니 싱긋 웃고만 말았다고 합니다.
- 故 하지혜 양/ 조선일보DB
친구들도 세심하게 챙겼습니다. 지혜 양의 다이어리에는 빽빽하게 들어찬 사법고시 공부 일정 못지 않게 친구들의 근황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었습니다. ‘A, 어제 남자친구와 헤어져 많이 속상해 함. 위로 필요’ ‘B, 1차시험 무난히 합격한 듯. 내가 점심 쏜다’ 등의 메시지를 남기며 친구의 일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친구의 생일 케이크도 지혜 양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 입학 후 3년여 동안 시달린 지독한 미행은 주위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신입생 때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친구들끼리 매일 얼굴을 맞댔지만 언제나 미소 띤 얼굴이어서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수업에 지각하는 법이 없었고,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이나 기숙사로 바로 달려가 사법고시 준비에 열중했습니다. 식당에서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빵을 들고다니며 공부에 몰입해 친구들이 ‘빵지혜’로 놀릴 정도였습니다.
다만 휴대폰 번호가 한 두달 간격으로 자주 바뀌었던 것이 약간 이상했다고 친구들은 기억합니다. 그리고 2002년 3월 6일, 체력단련을 위해 새벽녘 수영장으로 향하던 지혜 양은 미행 일당에게 납치돼 머리에 공기총 6발을 맞고 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