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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선비의 기품을 느낄 수 있는 곳.
경주 양동민속마을
경주 옥산서원 일대 답사기
월성중학교 3학년 3반 김민욱
일본여행이 어느새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사진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북부지방 답사가 이뤄지지 않아서 사진이 없었다. 웬만하면 직접 찍은 사진을 준비하고 싶어서 결국, 가을에 가기로 했던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을 오늘 가기로 했다. 오전 보충수업을 마치고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양동마을로 달린다.
정류장에 내렸지만, 양동마을까지 가려면 2km 정도 더 걸어야 한다. 양동민속마을을 알리는 비석과 함께 무궁화 길이 이어진다. 덥기는 했지만, 간간이 구름이 햇빛을 가려줘서 살 것 같았다.
(양동마을 입구.)
어느 정도 걷자 유네스코 문양이 그려진 광장이 나온다. 전에는 없던 양동마을문화관이다. 더위도 식힐 겸 안으로 들어가 본다. 안에는 양동마을의 역사와 여러 고택의 모형,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거기서 지도를 보며 오늘 갈 곳을 정해본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주요한 곳만 들르기로 한다.
(양동마을문화관.)
양동마을문화관 안에는 양동마을로 갈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가자 매표소가 나왔다. 역시 경주 시민 혜택을 받고 무료로 입장한다. 그리고 곧 양동초등학교가 나타난다. 100년이나 된 유서깊은 학교다. 학교는 단층구조지만, 기와집으로 이루어져 고풍스러우면서 세련돼 보인다. 우리 중학교보다 더 좋은 것 같다. 들리는 말로는 양동마을이 말 물(勿)자 형세라 길지라 일본이 일부러 마을 입구에 학교를 지어 마을 지형을 피 혈(血)자 형세로 바꿨다고도 한다.
(양동초등학교.)
(희귀한 컬러판 세종대왕상.)
이제 본격적으로 양동마을에 들어간다. 먼저 양동민속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의 마을이다. 경주 손씨는 주앙 관리를 두루 역임한 손중돈이 자랑이고 여주 이씨는 동방오현 중 한 명인 회재 이언적이 자랑이다. 두 가문은 이 마을에서 협력과 대립의 관계였다고 한다. 이 두 가문 덕분에 양동마을은 조선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마을로 성장했고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안동 하회마을에 비하면 덜 유명한 것 같다. 안동은 하회마을이 거의 도시의 주된 관광지라 투자가 상당한데 양동마을은 비교적 경주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원래는 투자가 적었다. 요즘은 부쩍 늘어서 저번보다 길도 많이 정비되고 행사도 늘었다. 언젠가는 하회마을도 두려워하는 우리나라 대표 민속 마을이 될 거라 생각한다.
(양동마을 하촌 전경.)
(마을 어귀에 있는 소박한 카페.)
마을 입구인 하촌이 한눈에 보인다. 특히 왼쪽에 보이는 향단과 관가정이 가장 눈에 띈다. 잠시 버드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말을 거신다. 연세대 나오신 분이라고 하시길래 속으로 엄청 놀랐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고는 일행과 함께 가신다. 이런 분들을 답사 때마다 뵈어서 정말 좋다.
제일 먼저 간 곳은 이향정이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이향정은 온양 군수를 지낸 '이향정 이범종'의 고택이라 한다. 안은 누군가 살고 잇어서 사람냄새가 나는 고택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향정을 풀이하면 '향이 둘인 정'이란 뜻인데 뜻이 참 알쏭달쏭하다.
(이향정.)
이향정을 나와 옆에 있는 심수정과 강학당으로 향한다. 먼저 나오는 것은 심수정이다. 심수정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곳으로 회재 이언적의 동생인 능재 이언필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심수정은 또한 여주 이씨 가문의 대표 고택인 향단과 무첨당을 바라보도록 설계되었다. 심수정은 또한 안락정과 강학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이 마을의 서당 역할도 같이 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심수정 뒤로 올라가자 안이 훤히 보였다. 길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한 번 담 뒤로 올라가 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심수정.)
(담장 밖에서 바라본 심수정.)
심수정 위에는 강학당이라는 나온다. 역시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곳으로 여주 이씨 가문의 서당이었다고 한다. 경주 손씨 가문의 서당인 안락정과 쌍벽을 이룬다. 여주 이시 가문은 강학당 말고도 경산서당이란 다른 서당을 가지고 있지만, 역사는 여기가 더 깊다고 한다. 강학당의 자랑은 양동마을 일대가 훤히 보이는 전망이다. 힘들더라도 꼭 강학당까지 올라갔으면 한다.
(강학당. 비교적 소박한 건물이지만, 시원해 보이는 마루가 있어서 작게 느껴지지는 않다.)
(강학당에서 바라본 양동마을 전경. 양동마을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 중 하나다.)
강학당에서 나와서 어디 갈지를 잠시 고민한다. 상당수가 양동마을의 입구 쪽인 하촌만 보고 가서 양동마을을 작다고 여긴다. 하지만 양동마을은 거림, 물봉골, 안골, 갈구덕같은 여러 작은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위에서 보면 양동마을 전체가 말 물(勿)처럼 생겼다고 한다. 시간이 있다면 덥더라도 다른 고택을 둘러보고 가겠지만, 시간에 묶인지라 안골에 있는 서백당과 물봉골 쪽에 있는 무첨당을 거쳐 나오기로 했다. 그리하여 먼저 서백당으로 향한다. 가는 길은 한가해서 간간이 할머니 몇 분이 지나가셨다. 한 분은 어디서 왔는지 하고 나이를 묻고 가셨다. 한 15분 정도 걸어서 작은 언덕 위에 있는 서백당에 도착했다.
입구를 나서자 넓은 마당이 나타나고 옆에 '서백당'이란 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여기서 서백당이란 '참을 인(忍)을 백번 쓴다'는 뜻이다. 서백당은 역시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곳으로 경주 손씨의 대종택이다. 역시서 손중돈의 외손자인 회재 이언적이 태어났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동방오현 중 한 분이 태어났으니 축복받은 곳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참고. 동방오현: '한훤당 김굉필',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일두 정여창', '퇴계 이황'. 원래 퇴계가 자신을 나머지 네 분을 '동방사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퇴계가 돌아가신 후 그를 추가해 동방오현이라 부르며 문묘에 모셔졌다.)
(서백당. 오른쪽 500년 된 향나무는 이 집의 내력을 보여주고 있다.)
안골을 따라 걷는다. 정말 조용하고 평화로운, 조선시대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왜 유네스코가 감탄하고 지정한 지 알게 해준다. 길을 따라 무첨당으로 가는 길목에 잠시 너른 안강평야가 펼쳐진다. 옛날부터 지대가 낮아서 홍수가 자주 나던 곳이라고 한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예전에 안강 사실 때 크게 홍수가 나서 경주와 포항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안강을 잠기게 했다는데 그때 2층까지 잠겼다고 한다. 게다가 여기 일대가 거의 바다처럼 되어 있어서 배도 드나들고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평화로운 안골 전경.)
(안강평야. 수운정에서 보면 가장 멋지다는데 가지 못해 아쉽다.)
언덕을 내려가자 무첨당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작은 문을 나서면 사당과 건물이 보인다. 양동마을에서도 관가정, 향단과 더불어 드물게 보물로 지정된 고택으로 서백당과 쌍벽을 이루는 여주 이씨의 대종택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현재 남아있는 양동마을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기도 하다. 무첨당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양동마을 입구로 돌아간다.
(무첨당. 단아한 건물이 인상적이다.)
입구로 나오자 다시 향단과 관가정이 나온다. 둘 역시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 가문의 대표 고택이다. 먼저 향단은 여주 이씨 가문의 것으로 원래는 흥할 흥(興)자 모양의 99칸 저택이었으나 6.25 이후 소실되어 56칸정도만 남았다고 한다. 겉에서 보기엔 큰 저택으로 보이지만, 안 구조는 무척 복잡하고 답답하여 며느리가 상당히 고생했을 거라는 말이 있다. 이제 옆에 있는 관가정으로 눈을 돌린다. 여기는 경주 손씨 가문의 것으로 향단보다 비교적 개방적인 느낌이 많이 든다. 양동마을 전체 건물의 반 이상이 이 두 가문의 것이니 영향력이 엄청 컷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두 가문은 협력의 관계였지만, 비교되는 여러 고택이 있어서 동시에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양동마을은 그래서 더 유서깊은 마을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향단. 멀리서 봐도 큰 저택이란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관가정. 향단과 쌍벽을 이루는 저택이다.)
양동마을을 마치고 한 40분간 버스를 기다린다. 더운데 빨리 오길 바랐지만, 버스가 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내가 바란다 해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참을 기다려 버스가 도착했고 옥산서원으로 향했다.
달리고 달려 정류장에 내렸다. 정류장에서 조금 걸어가자 박물관 비스름한 건물이 나온다.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잠겨 있었다. 그 건물에서 조금 더 걸어가자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경산 쪽에서 온 학생들로 옥산서원이 꽉 찼다. 마치 일행인 양 같이 들어간다.
(박물관 같은 건물.)
(옥산서원 입구인 역락문. 내 또래로 보이는 애들이 단체로 우루루 들어간다.)
역락문을 나서면 큰 건물에 나 있는 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다. 그리고 입구 앞에는 작은 도랑이 흐른다. 물이 흘러서 그런지 공간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물의 시작점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담장을 굴처럼 파서 설치해 놓은 게 꽤 인상적이었다. 그 옆에는 오래된 나무구멍에 벌집이 있어 수백 마리의 벌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경산에서 온 어떤 애가 심심해서 돌은 던져서 위험할 뻔했다. 다음에 올 때도 조심해야겠다.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을 모시기 위한 서원으로 흥선대원군 때 행해진 서원철폐령에도 사라지지 않은 47개소 서원 중 하나이자 조선 오대서원 중 하나일 정도로 규모와 권위 면에서 남달랐던 서원이다. (참고. 조선 오대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옥산서원', '소수서원', '도동서원'.)
문을 나서면 강당건물인 구인당이 나타난다. 옥산서원의 주요건물 중 하나로 중간에 있는 '옥산서원' 현판은 조선 최고의 명필가 중 한 명인 추사 김정희가 쓴 것이라 한다.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사람이 없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10여 분간 서서 가기를 기다렸다. 서원이 한가해지자 사진을 찍고 마루에 올라가 마당을 본다. 당시 서원이 지금의 대학처럼 너무 많아 골칫거리였다고 하나 여기는 지금으로 치면 명문대 중에서도 명문대로 꼽히던 곳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나중에 '대학철폐령'을 내려 대학 좀 정리했으면 좋겠다.
(옥산서원 앞 도랑. 공부하다가 탁족을 하며 피로를 풀기에 딱 좋다.)
(옥산서원 구인당. 중간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쓴 것이라고 한다.)
옥산서원 뒤에는 이언적 신도비 및 여기 살림을 관장하는 여러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대부분 문이 잠겨져 있어서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지도를 보니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옥산서원 옆에는 용추계곡이라는 유명한 계곡이 있다. 계곡은 피서객들로 붐빈다. 용추폭포라는 작은 폭포가 흐르고 있고 외나무다리가 계곡 중간에 놓여있다. 원래는 더 좁았으나 실수로 떨어지는 사람이 많아서(?) 최근에 폭을 넓혔다고 한다. 이 외나무다리는 정신이 혼미한, 즉 술 마신 것 같은 부정한 사람은 들어오지 말고 떨어지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조심해서 다리 위에 올라서 계곡을 본다. 작지만, 경치가 꽤 좋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리를 건너 독락당으로 향한다.
(용추계곡. 폭포치고는 작지만, 나름 용추폭포라는 당당한 이름을 가진 폭포가 보인다.)
(용추계곡의 명물, 외나무다리.)
다리를 건너 1km 정도 걸으면 독락당 입구가 나온다. 독락당 역시 회재 이언적 선생과 관련된 곳으로 이언적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살 때 지은 집이라 한다. 여기는 올 때마다 공사 중이라 아쉽다. 공사가 끝나면 제대로 둘러보고 싶다. 입구로 들어가 봐야 별거 없어서 오른쪽 계곡을 따라 나 있는 길로 들어간다. 멋진 담장과 시원한 계곡을 조화를 이루며 이어진다. 그러다가 갑자기 담장에서 햇빛이 새어 들어온다. 담장에 있는 살창이란 곳에서 새어나온 것이었는데 담장 안 대청에서도 밖을 볼 수 있도록 담장 일부를 창처럼 고친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시원한 정자인 계정과 더불어 독락당의 자연 친화적인 건축을 알 수 있게 한다. 계정까지 보고 잠시 담 사이에 나 있는 길로 들어가 본다. 연륜이 느껴지는 나무가 담에서 자라나 햇빛을 가려준다. 짧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독락당에서 마음에 들어 하는 곳이다. 공사 중임에도 불구하고 안락하고 평화롭다는 인사이 드는 아름다운 고택이다.
(독락당 솟을대문. 공사 중이라 안으로 들어가 봐야 크게 볼 건 없다.)
(독락당 앞 계곡.)
(계곡 쪽 담장의 살창. 햇빛이 살에 부딪혀 여덟 갈래로 나뉜다.)
(계정. 여름에 책을 읽으며 쉬기에 딱 좋다.)
(독락당 담장 길. 연륜이 있어 보이는 나무는 담장 길의 아늑함과 신비함을 더해준다.)
독락당을 나와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으로 향한다. 해가 점점 지고 있어 발걸음을 서둘러야겠다. 가는 길에 독락당 안에 있는 천연기념물 조각자나무가 보인다. 이언적 선생 친구가 중국에서 돌아오면서 가져와 심은 주엽나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보수가 끝나면 자세히 보러 가야겠다.
(독락당 조각자나무.)
길을 따라 쭉 걷는다. 가게 주인아저씨가 코앞이라 하셨는데 조금 걸어야했다. 얼마 정도 걷자 정혜사지 심삼층석탑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오고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세워진 특이한 모양의 석탑이 노을빛을 받으며 서 있다. 국보로 지정된 귀한 석탑으로 '다보탑', '석굴암 삼층석탑'과 더불어 경주의 대표적인 이형탑이다. 일 층은 넓은데 2층부터는 급격히 좁아진다. 왜 이렇게 만든 지는 잘 모르겠다. 지층에는 감실이 있어서 안에 불상을 안치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몸돌에 뭔가 쓰여 있는데 읽지는 못하겠다. 마지막 답사처라 한 번 탑을 돌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독락당이 종착역이라 또 한참 동안 버스를 기다렸다. 곧이어 버스가 도착했고 기사님이 20분 정도 쉬셨다가 집이 있는 황성동으로 출발했다. 갈 때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경주 사진여행도 오늘로 마지막이라 아쉬움과 끝냈다는 해방감이 공존한다. 여기는 가을 때 기회가 된다면 다시 와서 제대로 보고 가고 싶다.
선비의 고장인 양동마을, 조선 오대서원 중 하나인 옥산서원. 신라 속의 단아한 조선으로 영원히 남았으면 좋겠다.
-여정- (2013. 7. 24. 水)
양동마을 입구→ 양동문화관→ 양동초등학교→ 양동마을(이향정→ 심수정→ 강학당→ 서백당→ 무첨당→ 향단, 관가정)→ 옥산서원→ 용추계곡→ 독락당→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버스정류장
새롭게 펼쳐라!
羅新
첫댓글 조선을 대표하는 마을인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을 다녀왔구나.
거기에다 대표적인 이형탑인 정혜사지 십삼층석탑까지 돌아보았네.
민욱이는 갈수록 답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구나.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