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지난 7,80년대가 과연 무신 정권 초기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요?"(추모왕님)
운영자 생각: 추모왕님의 말씀대로 무신 정권과 군부 독재의 차이는 그다지 없어 보이기는 합니다.
시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무신 정권이나 군부 독재의 포악함 그 자체는 아무래도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수많은 고위관료들의 죽음. 수도 지역 군대들의 봉기. 그렇다고
정치가 개혁이 되었나요?
오히려 백성들은 더 수탈을 당했지요."(추모왕님)
운영자 생각: 뭐 추모왕님의 말씀이 사실이라고 봅니다.
다만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문민 정부와 이미지가 엮어져서 문신 정권을 좋게 보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적어도 역사 기록을 보면 '유식한' 문신 정권이라고 더 정치를 잘 하며 백성을 위한다는 증거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닌 줄 압니다.
단적인 예로 문신을 거의 일방적으로 우대하였던 조선 왕조가 정말 백성들을 위한 정사를 편 것이 과연 얼마나 되었던가요?
"우리나라 역시 정치개혁이 되긴 커녕 지역주의가 생겨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정치가 더 썩어버렸지요.
5.16쿠데타 이후 다시 십몇년만에 12.12쿠데타가 일어나버렸지요.
그리고 80년에 5.18민주항쟁이 일어납니다.
저 역시 광주에서 살아봐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오면 정말....
쩝... 여자 가슴을 도려내고 임산부의 배에 총을 쐈다고 합니다.
국민을 지켜야할 군인이 국민을 죽인다.
국민을 위한 혁명이라고 떠들던 그들이 한 행위가 과연 혁명입니까?
쿠데타지요.
우리나라는 90년대까진 먼미래의 역사책엔 "7,80대는 2번의 쿠데타등으로 정치적으로...
이렇게 나오겠지요.
그리고 어쩌면 무신정권을 그린 것처럼 우리나라의 2번의 쿠데타 역시 드라마로 할수도 있겠지요."(추모왕 님)
운영자 생각: 현대의 군부정권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무신 정권의 경우에도 쿠데타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만 적어도 그네들은 고식적인 변명 따위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오히려 무신 정권이 그 포악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는 '혁명'적인 요소가 있음도 간과되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우리가 상기해야 할 것은 무신 정권은 무신(즉 무반)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군인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유지되었다 하는 점입니다.
군인들의 다수는 민에서 배출되었으니 보기에 따라서는 무신 정권은 적어도 문신 정권에 비한다면 민과 연결된 측면이 있었다하겠지요.
문신 정권 특히 광종 개혁 이후 최 승로 같은 사람들의 시무 28조 같은 것을 보면 당시 국왕이었던 성종에게 유교정치를 구현하여 나라를 번영하게 한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문신정권이라고 민중이 봉기하면 말로써 해결하는 존재들은 결코 아닙니다.
결국 백성을 수탈하고 죽이고 한다는 점에서는 무신 정권이나 문신 정권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수탈하는 방식에 있어서 문신 쪽이 훨씬 '교묘하다'는 차이가 있을 따름이지요.
특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문신들이 지배하는 한 사회 변화를 바라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에 있습니다.
문신들의 '유식'이란 글을 잘 짓고 유교경전을 잘 외운다는 것인데 이것이 민의 이익과 부합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봅니다.
문신이 공부한 유교경전이란, 아니면 적어도 그들의 주 관심사는 '공맹의 말씀' 그 자체보다도 어떻게 하면 민을 잘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고려 사회가 무신 정권으로 혼란에 빠지고 쇠퇴했다는 인식은 결코 옳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유학이 침체에 빠지고 왕권이 훼손되었으나 이는 다분히 왕과 문신의 입장에서 판단한 내용이라 할 것입니다.
문화적으로 보아도 (귀족적) 유학의 일방적 독주에 반발하여 무신 정권 중 후기 쯤 가면 이 규보 같은 문인이 대두하는 등 문학에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주체성과 발전성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무신정권의 긍정적인 부분을 다시 정리한다면 우선 첫째로 광종이 과거를 도입하고 성종이 유교 의례를 도입한 이래 진행되어온 문치 경향의 '독주'가 무신의 집권으로 '억제'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런 현상을 무신들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그 바탕을 마련해준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이 점만큼은 새로이 평가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둘째로 이전 문신 정권에 비해 신분의 벽을 상당히 허물어 그 이동이 활발하도록 만든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무신 정권이라고 무조건적으로 문신이라고 생긴 것을 다 판 쓸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계를 만들어 무신들도 가입시켜 그 조직의 문무겸전을 주장했던 유 자량 같은 문신의 경우도 그렇고 기본적으로는 문신인 윤 관 장군의 손자도 멀쩡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즉 문신들 중에서도 실무직에 있는 말단이었거나 무신들에 호의적인 유 자량 같은 사람이나 윤 관 장군의 후손들 같은 문신들은 생각 외로 별 해를 입지 아니하고 살아났다는 말이지요.
물론 고위관직을 대체로 무신들이 독직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말단 문신 입장에서 본다면, 또 제3자인 민이나 후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새로운 인물들을 무신 정권이 등용하여 관료들의 '물갈이'가 이루어졌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조선 왕조의 경우 제가 보는 가장 큰 병폐 중 하나가 '물갈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라고 봅니다.
그랬기에 초기에는 훈구파가 지속적으로 세력을 잡았고 중기 이후 사색 당파 중 가장 세력이 강했던 노론이 대체로 보아 정권 독주를 했던 것도 부인하기는 어려운 사실입니다.
설령 정권을 잡고 있지 않은 시대였다해도 그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왕권에 큰 위협이 되었고 그네들의 기득권이 백성들을 훨씬 교묘한 방법으로 수탈해 온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 싶습니다.
혹여 제 반론에 모자람 있거나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으면 리플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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