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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색의 화려한 간판이 시선을 붙잡는 도쿄 아키아바라 시내모습) ⓒ 맛객
만화와 음식. 일본 문화 중에서 우리가 그 우수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야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하고 싶다. 바로 색(色)! 좀 과장해서 말하면 도쿄는 색의 도시다. 적어도 나의 눈에 비친 도쿄는 색이 넘쳐흘렀다. 10년도 전에 개봉했던 마돈나 주연의 영화 <딕 트레이시>에 나왔던 강렬한 원색의 도시를 기억하는가? 바로 도쿄가 그렇다.
도쿄의 택시는 주황, 노랑, 녹색 등의 화려한 색상으로 도로에 색을 입힌다. 형형색색의 간판들은 색상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게 아닐까? 색상의 조화가 절묘해 눈을 피곤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감각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에 질세라 가로수도 색을 뽑낸다.
절정의 순간을 맞고 있는 노란 은행잎은 노랗다 못해 선명하기까지 하다. 도시의 은행잎이 이처럼 순수하게 노란색으로 물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부러운 일이다.
짬날 때마다 만화책을 펴드는 일본인
(아름답고 조화로운 색감은 구매욕을 불러일으키고 음식에 있어서는 미각을 자극한다)
(일본의 미래라고 불리는 오다이바 에 있는 한 쇼핑몰에서 대장금 캐릭터를 만났다. 다양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색상의 다양성과 색감이 아쉽기만 하다)
맛객은 지난 15~17일까지 도쿄를 방문했다. 하네다 공항에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이 일본임을 실감나게 해 준 것들은 그곳의 사람과 언어가 아니었다.
(일본의 만화 잡지는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되어 있다. 이렇듯 만화는 양지문화의 위치에 있는 게 일본이다)
가판대에 쌓여있는 만화잡지였고, 벽에 붙어있는 음식관련 사진들 그리고 곳곳에서 눈에 띄는 다양한 색이었다. 이 후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만화와 음식과 색은 머릿속을 지배하기에 이르렀고 자연스레 취재의 방향도 그쪽으로 잡혀갔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일본이기에 가능한 장면을 보았다. 우연히 창밖으로 돌린 시선. 신호를 기다리느라 멈춰있는 택시안의 기사는 대략 봐도 50은 넘긴 나이다. 잠시나마 만화를 펼쳐보는 게 아닌가? 놀라는 글쓴이.
(중년의 택시 기사가 신호를 기다리면서 만화 잡지를 보고 있다) ⓒ 맛객
한국에서 들은 얘기가 있다. 일본은 만화천국답게 지하철이나 공공장소 어디에서든 만화를 즐긴다고. 그런 얘기를 들어 만화가 일본인 삶과 어느 정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를 보는 택시기사는 매우 흥미롭고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유럽인이 노천카페에서 차와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낭만과 여유를 떠올렸듯, 만화를 보는 일본인에게서 여유와 낭만을 떠 올렸다. 갑자기 도시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만화는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생활에서도 만화를 이용한다. 각종 안내문과 홍보물 등에 거의 빠지지 않고 그림이 들어간다)
한. 일 시민 친구만들기 행사에 일본 측 시민기자로 참석한 한 주부에게 물었다.
만화보다 컴퓨터게임에 관대한 한국의 부모들이 새겨 들을만한 답변이다. 일본에는 다양한 종류의 만화잡지가 나온다. 소년지, 샐러리맨을 위한 만화, 주부를 위한 만화지도 나온다고 한다. 주부를 위한 만화 잡지라고 해서 육아와, 가정, 요리 같은 소재를 다룬 만화가 주 내용이겠구나 생각했더니 정 반대다. 더욱 야하다고 한다.
음식은 만드는 게 아니라 디자인하는 것
(아름답게 꾸민 음식은 가치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맛을 더 느끼게 해 줘 맛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일본은 우리음식인 ‘김치’를 ‘기무치’라는 이름으로 세계시장을 뚫고 있다. 또 생선회에 사시미라는 이름을 붙여 세계 공용어로 만들고 있다. 사시미는 일본음식이니까 하고 자위하면서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할까? 일본은 김치와 경쟁하는데 우리 생선회는 사시미와 경쟁할 수는 없을까? 사진은 한국의 생선회다. 위에 있는 사시미 사진과 비교하면 우리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조금은 답이 나온다)
일본음식의 특징이라면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일본음식은 눈으로 먹는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음식뿐만 아니라 그릇의 디자인과 문양에서까지 나타난다. 마치 예술적 작품이 함께 한 듯 한껏 멋을 부리는 식기. 아마도 그들의 음식이 원 재료의 특성을 살려 내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음식은 재료의 배합으로 음식 자체에 이미 화려함이 담겨져 있다. 담백한 그릇을 사용해야 음식이 산다. 일본의 음식은 한두 가지 재료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인다. 그렇기에 온갖 다른 것들을 이용해 음식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들은 음식을 만든 다기 보다 음식을 디자인한다는 말이 더 맞겠다.
(단조로운 두부에 멋을 부리니 더욱 맛있게 보인다) ⓒ 맛객
(음식을 시각적으로 맛있게 보이게 하는 데는 큰 기술만 있는 게 아니다. 세심한 감각도 필요하다. 김으로 밥 전체를 말아 보이지 않게 하지 않고 아래는 밥이 보이게 한 센스. 흰색과 검정, 붉은색이 만들어 낸 색상의 대비가 돋보이는 연어알 초밥)
만화, 음식, 색. 알고 보면 이 3가지 요소는 서로 동떨어져 있다기 보다는 서로 필수적인 관계에 있다. 절대적인 창의성과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만화. 음식을 만드는 데도 창의성과 오리지널리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음식과 만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색이다. 색이 있기에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일본인들은 만화를 보면서 창의성을 기르고 다양한 색상의 음식을 먹으면서 미적 감각을 익힌다. 그러한 능력과 감각은 다시 창작물로 재생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