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가을의 첫날.
하루살이 인생이라 매일을 인생의 마자막 날인 것처럼 살려고 하지만
가을의 첫날은 특별한 날이다.
하늘만 보아도 행복한데 더위가 끝나고 바람조차 서늘하니 이런 날
집 안에 있는 것은 자연을 모독하는 일이다.
자연 속에서 인생의 축제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길선생님, 활연, 임흥모님과 봄봄 국시집에서 콩국수 먹고
배에 차를 싣고 석모도 자연휴양림에 갔다.
거기 소장님으로 계신 이웃사촌 왕민애님께 잠시 들려 차 대접 받고
환담. 너무 반가와 하셔 기분이 좋았다.
보문사로 올라가는 자연휴양림 숲길은 원시림 그대로다.
계곡에서 물소리가 들려오고 온갖 나비들이 꽃들 위를 날아다니며 춤을 춘다.
햇살에 흔들리는 나뭇잎들도 대자연의 무도회에 참석해 공연 중이다.
나도 마음도 몸도 마구 흔들려 걷는 것 자체가 춤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겨울이 오기 전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목숨의 불꽃을 피운다.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무슨 어려운 일이 있든
살아 있는 오늘은 축제의 날이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가 최고의 순간이고 천국이다.
지옥은 오늘을 괴로워 하고 내일을 염려하는 것이다.
무엇이 특히 좋아서가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
감사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숲길을 걸는 우리 일행의 웃음 소리가 숲에 가득하다.
기쁨이 지나쳤는지 나는 숲길을 걷다 말벌에 쏘였다.
머리통만한 말벌집이 바로 길 옆에 있어 지나는 길에 그걸 건드렸는지
수십마리의 말벌들이 달려들어 한방 쏘이고 죄인처럼 납작 엎드려 있으니
다행히 곧 사라진다.
그래도 통증이 심해 산행을 멈추고 보건소에 들르니 종종 벌에 쏘인 사람들이 온다며 보건소장이 약을 준다. 사일분 약값이 900원이다.
나 때문에 여러 사람 걱정을 끼쳤다.
친구가 헤어지기 섭섭하다 해 저녁 식사.
벌에 쏘여 술도 못마시고 통증이 심해 참고 있는데 친구가 나의 정체성을 거론한다. 여기 저기 빨빨거리고 다니는데 강화를 위해서나 이웃을 위해서나 뭐 하나 제대로 하는게 있느냐는 질책이었다.
여기저기(산마을고, 심도학사, 강화나들길) 이사라고 감투만 쓰고 밥이나 얻어 먹고 거수기 노릇만 하니 한심하다는 것이다. 다 맞는 말이다. 이런 친구가 있으니 나는 잘난척 할 수가 없다. 부끄럽지만 목숨을 걸고 헌신적으로 살 수도 없으니 나는 늘 어정쩡하다.
평생 무슨 직위가 싫어 자유인으로 살았는데 강화에 와서 이 무슨 재앙이란 말인가.
2일
강화공설운동장에서 프로야구 2부 리그 마지막 경기가 있다해 산지기님 주도로 구자환 김승길님과 야구 구경.
온수리 강화만사성이라는 중국집에서 짜장면 먹고 고량주 한잔 하고 맥주 몇병 사들고 경기 관람. SK와 KT의 경기. 관중석이 백석쯤 되는데 30여명이 오셨다.
햇빛을 피할 수 있도록 파라솔도 있고 바람도 서늘해 우리들은 선수 이름을 환호하며 두어 시간 맘껏 응원을 했다. KT가 세방의 홈런을 날리고도 6;7로 졌다. SK를 응원한 우리는 우리 아들들이 선수로 뛴양 기뻐했다.
함께 간 김승길님이 고등학생 때 경동고 야구선수였다고 해 놀랐다.
구자환님은 야구 상식이 풍부해 경기 내내 해설사겸 감독이었다.
마침 강화 백북스 회원인 인성병원 김미엘님이 동생과 동생 딸과 오셔 반가왔다.
밤엔 도스토에프스키의 까라마죠프의 형제들을 읽었다.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다. 전에도 말한 것처럼 사실 나는 종이로 된 책 보다는
자연 책이나 사람 책이 더 좋다. 온 세상이 하느님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