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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나들이
통영에 다녀왔다. 사순절 기간 ‘세계의 십자가 展’을 열기로 해, 전시 준비를 위해서였다. 이미 그제 십자가를 실은 트럭이 부평에서 달려와 위험한 짐을 잔뜩 부려두고 갔다. 아주 짧은 시간 통영에 머무르다 왔지만, 전시 기간은 고난주간을 포함해 3주 이상이니, 미련은 없다. 전시 작업을 돕는 이 화백과 대전역에서 만나 동행하였다. 그는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작품 납품을 서둘러 끝내고 나를 기다렸다. 15년째 함께 하니 이젠 손발이 척척 맞는다.
조선시대 해군본부인 삼도수군통제영이 1604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해서 이름을 통영(統營)이라고 부른다. 선조 37년의 일이다. 몇 해 전,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들은 적이 있다. 신학교 입학 40주년을 맞아 60대를 기웃거리던 친구들과 통영 여행을 하던 자리였다. 미륵산 전망대에서 남해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산도대첩의 학익진 이야기를 들으니 아주 실감이 났다. 전투의 무대인 그 섬들이 마치 현장 증인처럼 가까이 있었다.
통영은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이기도 하다. 여전히 불순한 이름 취급을 받는 바람에, 현재의 통영 국제음악당은 온전히 그의 유명세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으로 누명을 쓴 까닭에 결국 고향을 등진 망명객이 되었으나, 그는 자신의 음악 속에 고향의 자연과 문화를 품었고, 또 우려냈다. 윤이상을 ‘동양과 서양을 잇는 다리’로 평가하는 배경에는 통영의 아름다움과 날개를 잃은 부자유가 존재한다. 아내 이수자 선생을 독일 5월 민중제에서 뵌 일이 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을 자유롭게 오가는 나를 몹시 부러워하셨다.
1995년 도농지역 통합으로 충무시와 통영군이 합해 현재의 통영시가 되었다. 여기에 충무감리교회가 있다. 한국전쟁 때 피난 온 감리교인들이 모여 세운 곳인데, 어느새 역사가 72년이다. 1952년, 해군군목의 헌신 덕분이다. 서피랑에 위치한 교회의 길 건너에는 서호시장이 있다. 충열사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김약국의 딸들>(박경리)의 배경이 여기다. 놀랍게도 산과 바다, 자연과 인문(人文)이 어울려 울긋불긋 한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사실 십자가 전시는 피차 고생스러운 일이다. 빈 공간을 전시장으로 꾸미자면, 초대한 교회나 부름받은 입장에서나 몸과 함께 신경이 많이 쓰인다. 비용도 솔찬히 든다. 김래성 목사는 “십자가 은혜를 나누려니 교인들을 고생 시킨다”고 웃었다. 기실 고생 없이 되는 일은 없다. 어쩌다 강화 오가는 길에 김포 고촌교회 크로스갤러리에 두 차례 들른 것이 계기가 되어, 전시회 엄두를 냈다고 한다. 통영이 가깝게 느껴진 이유다.
밤 9시부터 시작한 설치 작업은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교인들이 사정상 돌아가면서, 일단 자정 너머 중단하였다. 요즘 교회마다 대부분 교우들이 일하는 입장이어서, 봉사자를 찾기 힘들다. 그래도 다음 날 용케 점심 전에 전시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1층 예배실이 어엿한 전시장 부럽지 않게 변모하였다. 일일이 십자가와 설명문을 대조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십자가 정보를 전수하고 나니 한시름을 덜었다. ‘세계의 십자가 展’이 남해안 통영에서 문을 연 사연이다.
올해 사순절부터 십자가 전시 품을 넓혔다. 예를 들어 서울과 통영, 두 군데서 동시에 문을 열듯, 전시이원화(展示二元化)를 의미한다. 충무교회와 서초 주님의몸된교회에서 진행 중인 전시회는 규모는 다르지만, 본질상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쨋든 전파되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일 것이라 여겨 욕심을 부린다. 앞으로 전시회를 열 생각조차 못하는 교회라도 작은 엄두를 낸다면 찾아가려고 한다. 따로 ‘십자가 포스터 전’, ‘십자가의 길(Kreuzweg) 14처(處) 전’ 그리고 ‘십자고상(十字苦像) 특별전’도 기획 중이다.
충무교회 전시 십자가 중 ‘남북합작 십자가’가 있다. “남한 소에게 사용한 둥근 코뚜레와 북한 평양봉수교회 신학원 마당에서 자란 산죽(山竹)을 결합해 만든 십자가. 남북이 하나 되어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룰 것을 표현하였다. 십자가 아래 받침은 땅을 뜻하는데 동그라미는 화해, 일치, 연합을 의미한다. 바탕의 베보자기는 찢어진 가슴을, 십자가 사방의 붉은 실은 그리스도의 피와 상처로 꿰매어야 할 분단 현실이다. 십자가의 마음으로 화해와 평화를 이루기를 소망하고 있다(김향렬 작).”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십자가로 한반도를 꼽는데 공감할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십자가 전시의 지경을 북쪽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생전에 엄두를 못 낼 일만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