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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미신
함석헌
1.
제 마음을 흙으로 삼고 하늘로 삼으며, 제 마음을 거기 씨로 뿌리고, 또 그 제 마음으로 호미질을 하고 낫질을 하여 생명의 동산에 농부 노릇을 하는 씨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7월이 왔습니다. 유럽의 낡은 정치의 시달림에서 쫓겨난 씨알들이 북미의 새 대륙에 새로 씨알의 나라를 세웠던 달이요, 프랑스 낡은 왕조의 마차 바퀴에 깔렸던 노한 씨알에 이 일어나 바스티유의 감옥을 깨치고 그 속에서 새 시대의 역사의 아들을 불러냈던 달입니다. 또 한번 자유에 대해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그 미국과 프랑스는 지금 어찌하고 있습니까? 인권의 도둑을 맞은 씨알의 비난이 깨진 수문의 물결소리처럼 아우성을 치는데도 닉슨은 귀를 막고 백악관 문설주를 붙들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중공이 엊그제 핵실험을 하고 세계 양심으로부터 공격의 화살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자기네도 또 그것을 한다고 뽐내고 있습니다. 마치 그 옛날 혁명 도중에 야심의 사내가 부딪치는 바위같이 일어서는 것을 보고 “황제 만세”를 외치며 미쳤던 것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미국 프랑스만이 아니라 지금 세계를 휩쓰는 국가주의 정치의 한 상징적 표현들입니다. 마치 살인마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형벌의 선언을 받으면서도 태연을 가장해보려는 것같이 하나의 발악하는 만용뿐입니다.
그러니 자유가 무엇입니까?
미국 독립운동의 앞장을 서던 젊은 혼은 “내게 자유를 다오, 아니거든 내게 죽음을 다오!” 했지요.
그러나 하룻밤 새에 중세기의 낡은 제도를 도리깨로 부수듯이 다 부숴버렸던 그 혁명의 지도자의 하나였던 로란 부인은 “오, 자유야, 자유야, 얼마나 많은 죄악이 네 이름 밑에 지어졌느냐?” 하고 탄식을 하고 죽었습니다.
자유란 뭣이기에 그렇습니까?
2.
생명은 싸움입니다. 몸에서는 병과의 싸움이요, 정신에서는 악마와의 싸움이요, 그리고 생활의 역사에서는 정치와의 싸움입니다.
어느 몸도 병 없는 몸은 없고, 병을 완전히 이긴 몸도 없으며, 아무리 건강하다가도 나중엔 병으로 죽는 것이 몸이지만, 그래도 병과 싸우는 데 생명이 있습니다.
어느 혼도 악마의 유혹이 끼지 않은 혼은 없고 유혹을 완전히 물리친 혼도 없으며, 이기면 이길수록, 마치 올라간 낭떠러지같이, 그 이김이 곧 보다 더 큰 유혹이 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악마와 싸우는데 정신의 생명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민족의 역사도 정치 없는 역사는 없고, 정치를 완전히 초월해버린 문화도 없으며, 아무리 훌륭한 문화를 낳아 놓았다가도 결국은 정치적 혼란으로 망해버리는 것이 역사지만, 그래도 정치와 싸우는 것을 내놓고는 역사의 생명은 없습니다.
싸우는 것이 곧 생명이요, 싸우는 것이 곧 자유입니다.
날로는 밑지고 해로는 이 남는 것이 생명입니다. 시간으로는 지고, 영원으로는 이기는 것이 역사입니다.
병은 쓴 것이지만 병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아름다움과 힘을 가지는 사람의 몸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진화시킨 것은 병입니다. 병과 싸우는데 건강이 있습니다.
악마는 미운 것입니다. 그러나 악마의 끊임없는 유혹이 아니었더라면 인간의, 정신은 닦이어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생명을 영원에 향한 운동으로 발달시킨 것은 악마입니다.
정치는 사납습니다. 그러나 그 사나운 정치의 못살게 굶이 아니었더라면 인간은 자기의 의무를 모르고 자기 인격의 귀함을 모르고 말았을 것입니다. 역사에 방향을 주고 인간을 하나의 전체로 자각시킨 것은 정치입니다.
이 세 가지 싸움 속에 삶이 있고, 그 사는 모습이 곧 자유입니다.
3.
예수는 말하기를 네 원수를 사랑해라 했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핀 꽃입니다.
누가 우리 원수입니까?
누가 제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는 가장 먼 사람을 끌어다가 거기 대한 대답으로 주었습니다. 그 정신으로 한다면, 가장 먼 사람이 내 이웃이라면, 내 원수는 내게 가장 가까운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구복(口腹)이 원수라 하지 않습니까?
몸에서는 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나를 떠나지 않는 내 몸속에 들어 있는 병이요, 마음에서는 자나 깨나 의식리(意識裡)에 무의식리(無意識裡)에 내 혼 속에 언제나 박혀 있는 유혹이요, 역사에서는 나기 전에 벌써 나를 구속하고 있고 내 죽은 후에 내 이름에 대해서까지 간섭을 하는 정치입니다. 삼위일체의 원수입니다.
이것들을 사랑하란 말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순간도 잊지 않고, 물체가 중력과 싸우듯이, 끊임없이 싸우는 것이 사랑입니다.
얼핏 보기에 반대인 듯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구의 중력은 거기 대해 싸워야만 내가 지구를 참 아는 일이요, 고맙고 아름답게 여기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구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내가 중력과 싸우기를 그만두고 그 하자는 대로 순종해버릴 때 지구는 내 무덤밖에 되는 것이 없습니다. 지구는 내게 대해 죽었고 나는 지구에 대해 죽었습니다. 생명이 생명인 한은 버팁니다, 싸웁니다. 한 알의 씨가 지구와 결러댈 때 흙속에 숨어 있던 아름다움과 힘을 잎과 꽃과 열매로 드러냅니다. 한 마리 작은 새가 가지 끝에 앉을 때 지구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음악이 나옵니다. 그것은 바람 속과 새 속에 잠자고 있던 것입니다.
다만 미워하는 마음으로 싸워서는 아니됩니다. 미움은 죽여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네 원수를 사랑해라, 다른 말로 한다면 서로 사랑함으로 싸워라 하는 것입니다.
병은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미워해서는 아니됩니다.
악마도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미운 마음으로 해서는 못 이깁니다.
정치도 싸워야 합니다. 정치와 싸우지 않으면 나도 망하고 정치도 없어집니다. 답답한 것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으로 하여금 싸우지 못하게 하고, 국민이 또 죽는 것이 무서워 정치에 무조건 복종해버리는 일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아닌 짐승을 데리고 정치를 하겠단 말입니까? 또 사람은 아닌 짐승 밑에 살겠단 말입니까?
싸우는 것은 큰마음을 가지고야 할 수 있습니다. 하늘마음입니다.
살고 죽음을 초월한 마음만이 병과 싸울 수 있습니다. 거기서 전체를 살리는 건강이 나옵니다.
선과 악을 초월한 마음만이 악마와 싸울 수 있습니다. 거기서 우주를 건질 수 있는 정신이 나옵니다.
이기고 짐을 초월한 마음만이 정치와 싸울 수 있습니다. 거기서 인간 사회를 이루어갈 수 있는 질서가 나옵니다.
모든 세포가 저 하나만을 생각하고 침입하는 병균과 싸울 생각을 아니 할 때 몸은 죽습니다.
순간 순간의 생각인 유혹과 싸우는 것이 거북해 잠을 자버리고 말면 온 우주가 허무에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다 싸우는 것이 무서워 무사주의에 빠져버릴 때 사회는 사람의 사는 곳이 아니고 짐승의 무리가 돼버립니다. 기억하십시오, 쥐 무리와 고양이 무리 사이에 싸움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도 없고 문화도 없습니다.
사람으로 살았으면 마땅히 생사를 잊고 선악을 초월한 자리에서 권력 관계를 떠나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야 살았습니다.
싸우기만 한다면 곧 누구를 죽이고 누구에게 죽는 일인 것만 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비겁해지지 않으면 사나와집니다. 사납다는 것은 보다 더 심한 비겁뿐입니다. 그런데 비겁하면 자유 없고 자유 없으면 사람 아닙니다.
4.
비겁이 무엇입니까?
미신입니다. 없는 것을 참으로 있는 것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비겁해집니다.
그런 미신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서도 심한 것은 권력과 부(富)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의 감각을 타고 우연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치 기압 관계로 회리바람이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어나지만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곧 풀어져 없어집니다.
회리바람이 일면 돌아가고 돌아가기를 빨리하면 그 중심에 진공이 생깁니다. 진공이 한번 생기면 땅에 있던 것이 빨려 올라가고 그 주변에 있던 모든 마른 잎새가 그 돌아감에 휘말려 들어가 저를 잃고 떠들다가 어디론지 모르게 사라져버립니다.
정치적 권력관계도 그런 것입니다. 6,7월에 일어나는 태풍 같은 것이 정치입니다. 정치가란 그 회리바람의 중심 가까이 있던 고기 같은 것입니다. 미꾸라지가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니요, 날씨를 내다보는 지혜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쩌다가 그 반대되는 두 바람의 마주치는 그 중앙에 있게 되면 그 진공작용에 의해 공중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면 혹시 잘하면 산을 넘어 구름에까지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제 힘이나 재주나 공덕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우연한 회리바람의 장난으로 인해서입니다. 그것을 땅 위의 무식한 눈들이 보면 신화 중에서 들은 휘황찬란 용(龍)으로 보이고, 그것이 꿈틀꿈틀하면 땅에서는 풍운조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도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이 비를 주는 줄 알지만 비는 비대로 하늘법칙에 의해 온 것이지 그 미꾸라지가 변해서 된 가짜 용이 준 것은 아닙니다. 잠깐 후 폭풍이 지나가기만하면 그 미꾸라지는 어디가 어떻게 떨어졌는지 알길 조차 없습니다. 역사에서 용이라던 모든 정치적 인물은 다 잡아놓고 보면 미꾸라지입니다. 진시황도 미꾸라지였고 나폴레옹도 미꾸라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지나간 후 그것들의 말로를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아마 어느 모래밭이나 풀 속에 떨어져 개미의 밥이 되고 말았고, 공연히 어리석은 인간 저자의 골목에만 가짜 비석이 섰다가 그것도 비바람에 녹아버리고 말 것입니다.
6,7월 장마철의 태풍이 그렇듯이 역사적 계절의 정치적 태풍도 이담 가서는 과학적으로 그 정체가 밝혀지는 날이 오고 말 것입니다. 아직도 미꾸라지 용들이 서슬을 부리고 무식한 씨알의 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무지가 채 벗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배는 무지에서 나오고 무지는 미신에서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미신을 물리치고 참을 믿는 씨알을 어떤 폭군도 지배할 수가 없습니다.
용오름이 참이 아니고 회리바람의 장난이라면 그것이 일어날 때는 될수록 그것을 멀리하고 가만히 땅에 엎디어 그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진 일일 것입니다.
지금은 바로 세계 곳곳에서 뭇 용이 오르고 있습니다. 모택동도 용이요, 닉슨도 용이요, 김일성도 장개석도 누구도 누구도 다 용입니다. 다 풍운남아(風雲男兒)라고 하고 다 하늘에 올라간다고 꼬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태풍은 다 잠깐이고 말았고, 모든 용은 다 개창의 미꾸라지였던 것이 알려졌습니다. 지금은 장관이람 장관입니다. 가까이 가기만 하면 회리바람에 밀려들어가는 검불같이 한때 그 연극에 참여할 수 있지만 그 마지막이 너무도 빤합니다. 구경조차 할 필요 없습니다. 눈을 감고 땅에 엎디어 어서 이때가 지나갑시사, 기도하고 있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아무도 회리바람을 멈추려 하리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있을 수 없는 것같이 여기도 가까이 아니하고 겸손히 있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철학을 하고 과학을 하고 신학을 했다는 사람들까지도 등용문을 하겠다고 정치 회리바람을 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찌 그리 많은지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그 바람이 더 심합니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미신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을 것을 믿는단 말입니다. 믿지 않을 것을 믿는 것은 믿을 것을 믿지 않는 일입니다. 마땅히 믿을 것을 믿으면 믿지 않을 것은 저절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믿지 않을 거짓 것을 믿기 때문에 마땅히 믿어야 할 참이 뵈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차피 믿게 마련입니다. 믿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것은 영원 무한을 찾는 것이 사람의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믿지 않고는 못 견디느냐 하는 것은 모든 독재정치를 보면 압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이치에 어긋나는 잘못을 억지로 하고 있는 줄을 알기 때문에 강제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믿게 하려고 갖은 수단 방법을 다 쓰고 있습니다. 선전과 구호와 개인숭배가 많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럼 무엇이 참 믿을 것이요, 무엇이 믿지 못할 것입니까? 사람은 믿을 것이요, 물건은 못 믿을 것입니다. 양심은 믿을 것이요, 감관(感官)은 못 믿을 것입니다. 전체는 믿을 것이요, 다수는 못 믿을 것입니다. 사랑은 믿을 것이요, 힘은 못 믿을 것입니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대항하여 싸우는 것은 혈(血)이나 육(肉)이나 인간이 아니고 공중에 권세 잡은 자라고 했습니다. 공중에 권세 잡았다는 것은 참이 아닌데 거짓 권세를 부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참 권세냐 거짓 권세냐의 가장 알기 쉬운 차이는 돈과 폭력을 쓰느냐 아니 쓰느냐를 보면 압니다. 회리바람의 진공은 모든 물체를 끌어올리듯이 모든 거짓 권세는 폭력과 돈을 많이 끌어 제게 붙이고 그것을 때때로 제 종들께 소나기처럼 내립니다. 그러나 어떤 힘도 어떤 돈도 오래 간 법은 없고 그것을 믿었던 권력교도(權力敎徒) 황금교도(黄金敎徒)들은 예외 없이 다 망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정의와 자유만이 가을하늘 의 별처럼 남았습니다.
논어에 “이적지유군(夷狄之有君)이 불여제하지무야(不如諸夏之無也)”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적(夷狄)은 문화가 열리지 못한 야만 민족입니다. 제하(諸夏)란 문화가 발달한 중국의 여러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만 민족에게 임금 있는 것 중국 민족에게 임금 없는 것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공자는 어떤 때는 자기도 차라리 이적(夷狄)에게로 가고 싶다고 하리만큼 인간 차별을 아니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적에게 임금 있는 것이 중국 사람에게 없는 것만 못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정치보다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임금 곧 정치는 야만 민족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것은 중국에 한 때 정치적 혼란이나 공백기가 있다 하더라도 그만도 못하다 하는 말입니다. 왜냐? 사람이 사람 되는 것은 문화에 있지, 정치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참사람 될 수 있는 것은 정치로 되는 것은 아니라 하는 뜻입니다. 그럼 무엇으로 되나? 인간성을 토대로 하는 인간교통으로 됩니다. 이것을 위에서 한 말에 견주어서 한다면 믿을 것은 인간교통이고 믿지 못할 것은 정치란 말이 됩니다.
권력에 복종하여 양심을 속이는 모든 사람의 하는 말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우선 먹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맹자가 2천 년 전에 한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하의 넓은 집에 살고,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한길을 걸어서. 뜻을 얻거든 씨알로 더불어 함께 말미암고. 뜻을 얻지 못하거든 홀로 그 길을 걸어, 부귀를 가지고도 변하게 할 수 없고 빈천을 가지고도 옮기게 할 수 없으며 무력을 가지고도 굽히게 할 수 없는 사람. 이것이 정말 대장부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이 우뢰같이 호통을 치고 땅을 깨치고 하늘을 무너뜨릴 듯 뒤흔들며 횡행천하(橫行天下)할 것 같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곧 역사가 되고, 그들의 말이 곧 법이 되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회리바람이요, 그것을 탄 미꾸라지인 줄을 알고 속지 말며, 겁내지 말고, 사람답게 죽을 각오를 하고 이를 윽물고 울음을 목젖에서 삼키고 손톱 발톱으로 악착같이 대지에 달라붙어 하늘로 사뭇 오르는 기도를 드려 이 사나운 바람이 지나가고 저 미꾸라지 용이 떨어지기를 참음으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씨알 여러분, 여러분의 속알(仁)을 녹여 뿌리를 내어 땅에 박으십시오.
그럼 하늘 땅의 평화가 여러분께 있기를!
씨알의소리 1973년 7월 24호
저작집30; 8- 121
전집20; 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