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정도전이 이숭인, 권근과 더불어 각자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얘기했다. 먼저
이숭인은 조용한 산방에서 시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으로 권근은 따뜻한 온돌방에서 화로를 끼고 앉아 미인 곁에서 책을 읽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정도전이 삶에서 가장 즐거운 것을 말한다.
“첫눈 내리는 겨울날 가죽옷에 준마를 타고, 누런 개와 푸른 매를 데리고 평원에서 사냥하는 일이 나는 가장
즐겁소.”
삼봉 정도전에 관한 책 두 권을 읽었다. 하나는 『정도전을 위한 변명』(조유식 저)이다. 다른 하나는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인데, 이는 도올 김용옥의 저작으로서 예전에 읽었던 것을 재독했다. 이 책에는 「조선경국전」과 「불씨잡변」이 압축되어 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먼저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권하고 싶다. 저자 조유식은 정치학을 전공한 저널리스트인데, 저자
나름 심혈을 들인 흔적이 책장마다 묻어나는 책이다.
정도전은 탁월한 사상가이자 정치가이자 혁명가였으며 자주적인 진보주의자였다. 조선왕조 500년의 민본주의는 정도전에
의해서 창발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혁명가답게 불굴의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자기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천재성과 실천 능력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정도전의 업적을 한 마디로 말하면 ‘조선을 만든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정치와 군사, 도덕과 종교
등에 관한 저작물들이 망라된다. 정도전은 조선뿐 아니라 오늘의 ‘서울’을 처음 설계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사인물인지도 모른다.
정도전과 태조 이성계의 아름다운 관계, 정도전과 태종 이방원의 살벌한 관계는 역사 드라마 등을 통해 대중적으로도
어지간히 알려진 것으로 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도전과 정몽주의 관계, 정도전과 주원장(명 태조)의 관계가 단연 더 의미가 있고 흥미롭기까지
하다.
유가의 좌파 맹자의 영향을 받은 그의 ‘사군(事君)’은 사실은 전부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충(忠)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가 좋아한 말은 정(正)이었는데, 그는 충성만 하는 신하를 거부했고, 충성을 하더라도 임금 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 공동체를 위한 충성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임금에게 충성만 할 게 아니라 임금을 바로잡는 것 즉
‘정군(正君)’이 신하의 본분이라고 생각했다.
10년의 유배 외에 두 번의 실각에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자기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때는 사대의
입장을 취했지만 그것 역시 철저히 자주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이 글 맨 앞에 소개된 ‘인생의 즐거운 일’만으로도 우리는 정도전의 캐릭터를
능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정도전은 조선 역사에서 철저히 은폐되었다. 그가 왕권을 해친 역적 비슷하게 기록된 것은 태종 이방원의 후대 영향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왕 중에서 영조와 정조 그리고 대원군 등은 정도전을 높이 평가했다. 정도전을 가장 싫어한 사람은 보수적 주자학자 우암
송시열이었다. 그는 정도전을 말할 때마다 ‘간신’이라고 칭했는데 물론 이런 칭호에는 논리 대신 일말의 저의만 배어 있다.
정도전을 은폐시켜 온 우리 사학자들이 새삼 나태하고 졸렬해 보인다. 이제껏 나는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인물을
세종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앞으로는 세종보다 정도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새로이 하게 되었다. 삼봉 정도전은 이순(耳順)의 나이에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실로 매력적인 인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