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오는 반곡지, 노인네들의 무릉도원
이원근
올해도 4월 초순의 반곡지는 변함없이 고요했다.
봄비가 한 차례 지나간 뒤라 복사꽃 빛은 더 촉촉하고 선명했다. 연분홍 꽃잎은 가지마다 가득 매달려 있었고, 반곡지 물 위에는 왕버들 그림자가 잔잔하게 내려앉았다.
작년에 그 자리에 앉았던 노인네들이 올해도 다시 정자에 모였다.
작년보다 몇이 더 늘었다. 월령, 월송, 석헌, 갑기
어젯밤부터 오던 비가 아침까지 계속 이어진다.
주변에 하나뿐인 정자도 우리 차지가 된다는 보장도 없는 터라 모든 준비물을 생략하고 모였다.
때마침 날도 개고 하나뿐인 정자도 우리 차지가 되고 보니 막걸리 생각이 절로 난다.
다행히 늦게 나온 갑기 친구가 막걸리를 준비해 왔다.
막걸릿병을 꺼내는 손은 여전히 서툴렀지만, 얼굴에는 익숙한 반가움이 먼저 번졌다. 닭강정 봉지를 펼쳐 놓으며 누군가 말했다.
“작년에도 여기서 한잔했지. 그때보다 우리가 더 건강해 보인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맥주만 찾던 남계는 올해도 막걸릿잔을 먼저 내밀었고,
도양이는 “반곡도원 막걸리는 일 년을 기다려야 제맛이지” 하며 능청을 떨었다.
작년엔 나를 빼고 자네들만 모였다 이거지? 월송이 아쉬워했다.
이야기도 작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지난해 복사꽃 아래서 꺼냈던 젊은 날의 추억에 더해, 올해는 병원 다녀온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봄을 함께 맞은 이야기가 조용히 이어졌다.
“내년에는 비가 와도 막걸리 준비는 반드시 하자.”
누군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복사꽃은 올해도 흐드러졌고 왕버들은 바람 따라 천천히 흔들렸다.
달라진 건 세월뿐인데, 함께 웃는 마음은 작년 그대로였다.
반곡지의 봄은 다시 왔고,
노인네들의 봄날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첫댓글 ㅡ 정은수
이화에 월백하다는
꿈같은 그계절이
지금인가,
돌에새긴 반곡지의
도원결의는 한층
봄기운을 돋우는듯
벌써부터 노련한
도인들의 발자욱이
예사롭지 않다
원효의 탄생지
삼성현 골짜기는
오늘도 촉촉한
봄비에 귀인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네
ㅡ 김종철
해마다 더 그리워질 봄맞이 반곡지 정자의 막걸리 파티는 봄날이 다 가도 여운이 길게 남으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