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柳 潤善 [ 落南始祖 ]
公의 諱 潤善 字는 善之 西溪 [軾]의 4 男이다. 完山伯 濕[全州柳氏
始祖]의 7世 孫이며 檜軒[柳義孫]의 曾孫이다.燕山君 庚申[1500년] 8月 12日에 誕生.
明宗 丁巳[1557년]4月3日에 逝去[58세]했다.
官職은 通禮院 引儀[종6품]로 國家의 儀式을 主管하는 부서에 勤務하면서 漢陽 墨寺
洞에 살다가 不樂仕進 (벼슬을 싫어함)으로 當時 榮川 [지금영주] 郡守에 在職중인
伯氏[潤德]를 따라 落南하여 司直 朴承張[羅州朴氏 (潘南朴)]의 사위[婿]가
되어 오천(汚川)(지금의 원천 남양사 부근)에 寓居 했다.
初配는 陽川 許氏인데 墓는 失傳했고 後配는 羅州 朴氏로 膝下에 三男 을 두
었으니 城. 垣. 褓 .모두 朴氏의 所生이다.
墓所는 榮州市 文殊面 縄門里 鍾陵先山 [永興公] 右岡에 卯坐이고 短碣이 있
었으나 歲久年深으로 判讀키 어려워 後孫들이 誠金을 모아 1996 年度에 齋
舍를 修理 하면서 함께 改碣 하였다.
□ 參考 事項
1] 引儀 柳 潤善 [ 1500 - 1557 ] - 58 歲
配位 : 陽川 許氏 [ 生卒 年代 未詳 ] - 墓 失傳
後配 : 羅州 朴氏 [ 1509 - 1585 ] - 墓 同域異封
2] 아들 : [長男] 柳 城 [ 1533 - 1560 ]-28歲
配位 : 義城金氏[ 金玉貞][ 1536 - 1563 ]
3] 아들 : [次男] 柳 垣 [ 1540 - 1567 ]-28歲
配位 : 安東權氏) [ 1543 - 1564 ]
4] 아들 : [三男] 柳 褓 [ 生卒年代 未詳 ]
[ 子 : 季男 . 孫子: 下潛 以後는 無後 ]
[參考 事項 ]
1] 神道尙右 以西爲上 : 墓는 右側이 考位다[靈座에서본 右側].
2] 生左死右 :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儀式일 때는 그 當事者를 中心해
左側이 上位이고 죽은 사람을 위한 儀式[祭祀. 墓所등]일 때는 靈座를
中心하여 右側이 上位가 된다.
3] 通禮院 : 朝鮮時代에 國家의 儀式을 맡아보던 官廳이다. 職員은 목청 좋
은 사람을 뽑아 笏記나 式順을 부르도록 했다.
官員은 左右通禮[정3품].翊禮[종3품].奉禮 [정4품]. 贊禮 [정 5품]
각 1명. 引儀 [종6품]8 명. 兼 引儀 [정 9품] 6 명.假引儀 [종9품] 6 명. 書吏 8명이다.
1.. 墓祀 祝式
維 歲次 某年 某月 干支 [몇] 代孫 [누구] 敢昭告于
顯 몇 代 祖考 秉節校尉 通禮院 引儀 府君
顯 몇 代 祖妣 宜人 陽川許氏
顯 몇 代 祖妣 宜人 羅州朴氏之墓 氣序流易 霜露旣降
瞻掃封塋 不勝感慕 謹以 淸酌庶羞 紙薦歲事 尙
饗
[代數表: 東字 14代. 熙字 15代. 基字 16代. 鍾字 17代]
5. 分定 書式
[戊寅] 十 月 十六 日
引儀位 墓祀時 執事
初獻 :
亞獻 :
終獻 :
贊者 :
祝
陳設 :[2名]
奉香 :
奉爐 :
奉爵 :
奠爵 :
司尊 :
際 :
2. 墓祀時 笏記文 [解釋]
[15代孫 柳 龍勳 改書]
[ 原文] 諸子孫 序立于 墓前
[해석]: 제(참제자) 자손은 모두 차례로 묘소 앞에 서십시오
■ 陳設
執事者 設蔬果盤盞
ㅇ. 蔬(푸성귀 소; 艸-총15획; shū). 䭏(떡 편; 食-총18획; piꐀ
ㅇ. 盤(소반 반; 皿-총15획; pꐁn). 盞(잔 잔; 皿-총13획; zhꐂn)
◈ 집사자는 채소 과실 반잔 과 떡을 진설 하시오
■ 參神
初獻以下再拜 參神.
◈ 초헌 이하 참신으로 재배하시오
初獻詣 神位前. 北向跪. 三上香. 再拜
ㅇ.詣(이를 예; 言-총13획; yì). 跪(꿇어앉을 궤; 足-총13획; guì)
◈ 초헌은 나아가서 신위 앞에 꿇어앉아 향을 세 번 올리고
절을 하시오
■ 降神
執事者 斟酒 授初獻官 初獻官 受爵酹地. 少退再拜. 復位.
進羹飯庶品.
ㅇ. 酹(부을 뢰{뇌}; 酉-총14획; lèi)술을 땅에 붓고 신에 제사함.
ㅇ.羹(국 갱; 羊-총19획; gēng). 授(줄 수; 手-총11획; shòu)
◈ 집사자는 술을 부어 초헌관을 주면 초헌관은 이를 받아 술을
땅에다 세 번 갈라 붓고 조금 물러서서 재배를 하고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밥과 국 그리고 찬을 올려놓으시오
■ 行 初獻禮
初獻詣 香案前. 執事者奉 考位前 盞盤立于 初獻之左右
◈ 초헌은 향안전으로 나가시오. 집사 자는 고위전의 잔반을 들고
초헌의 좌우에 서시오
初獻跪.執事者亦跪.斟酒于盞.初獻受 盞盤 祭于地 以盞盤 授執事者奠于
考位 前
◈ 초헌은 꿇어앉으면 집사자 역시 꿇어앉아 잔에 술을 붓고
초헌은 잔을 받아 조금 땅에 부은 다음 집사자를 주면 고위 전
에 올린다.
[祭于地 : 토지 신에게 제사한다는 말]
俛. 伏. 興. 少退. 跪. 執事者奉 妣位前 盞盤立于 初獻之左右.
斟酒于盞. 初獻受盞盤祭于地. 以盞盤授 執事者 奠于 妣位前
◈ 구부려 엎드렸다가 일어나 조금 물러나서 꿇어앉으시오. 집사
자는 비위전의 잔반을 들고 와 초헌의 좌우에서 잔에 술을 치면
초헌이 받아서 집사자를 주면 비위 전에 올린다.
[이때 비위는 양천 허씨를 말한다 ]
俛伏興 少退 跪. 執事者奉 妣位盞盤立于 初獻之左右. 斟酒于盞.
初獻授盞盤祭
于地. 以盞盤授執事者 奠于妣位前. 俛伏 興 少退 跪.
◈ 구부려 엎드렸다가 조금 물러 나와 꿇어앉으면 집사자는
잔반을 들고 헌관 좌우에서 술을 치면 초헌은 이를 받아 땅에
조금 붓고 잔을 집사레게 주면 집사자는 비위 전에 올린다.
[ 이때 비위는 나주 박씨 다]
구부려 엎드렸다가 조금 물러나 꿇어앉는다.
執事者 啓飯盖置其南. 祝取板跪于 初獻之左. 讀祝. 初獻再拜 復位
◈ 집사자는 밥뚜껑을 열어서 남쪽에 놓는다. 축은 축판을 가지
고 초헌의 왼쪽에서 축을 읽으시오. 초헌은 두 번 절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시오.
■ 行 亞獻禮
亞獻詣 神位前 . 執事者 奉 考位前盞 盤立于亞獻之左右. 亞獻跪
執事者亦跪. 斟酒于盞. 亞獻受 盞盤祭于地. 以盞盤 授執事 者 奠于考位前.俛伏興 少退跪.
◈ 아헌은 신위 전으로 나오시오. 집사자는 고위전의 잔반을 들고
아헌 좌우에 서시오. 아헌은 꿇어앉으시오.
집사자도 역시 꿇어 앉으시오 그리고 술잔을 치면 아헌은 술잔을 받아 땅에
조금 붓 고 집사자를 주면 고위 전에 올린다. 구부려 엎드렸다가 조금
물러나 꿇어앉는다.
次奉. 妣位盞盤 亦如之 [ 양천허씨]
◈ 다음에도 받들어 비위 잔반을 역시 앞에서 한 것처럼 한다.
次奉. 妣位盞盤 亦如之 [ 나주박씨]
.
◈ [ 같이한다 ]
俛.伏.興. 少退 再拜. 復位.
◈ 조금 구부려 엎드렸다가 물러나 두 번 절하고 제자리로 돌아
가시오.
■ 行 終獻禮
終獻詣 神位前. 執事者奉 考位前 盞盤 立于 終獻之左右. 終獻跪. 執者亦
跪. 斟酒于 盞. 終獻受盞盤祭于地. 以盞盤 授執事者 奠于 考位前.
◈ 종헌은 신위 전으로 나오시오. 집사자는 고위전의 잔반을 들고
종헌의 좌우에 서시오. 종헌은 꿇어앉고 집사자도 역시 꿇어앉
아 술잔을 치면 종헌은 술잔을 받아 땅에 조금 붓고 집사자를
주면 고위 전에 올린다.
俛 伏 興 少退 跪. 次奉. 妣位盞盤 亦如之
◈ 조금 구부려 엎드렸다가 물러나 꿇어앉는다. 다음 비위전의 잔반도
역시 같게 한다.[양천허씨]
俛 伏 興 少退 跪. 次奉. 妣位盞盤 亦如之
◈ 조금 구부려 엎드렸다가 물러나 꿇어앉는다. 다음 비위전의 잔반
도 역시 같게 한다.[나주박씨]
俛伏興少退 再拜. 復位. 執事者 扱匙飯中 西柄. 正箸. 初獻 以下皆 俯伏.
祝進 神 位前 噫歆三聲.
ㅇ. 扱(미칠 급; 手-총7획; chꐁ, jí, xī)꼽다. 거두어 모으다.
ㅇ. 柄(자루 병; 木-총9획; bǐng) [숫깔자루가 서쪽으로 가게 함]
ㅇ. 噫(트림할. 탄식할 희; 口-총16획; yī) 歆(받을 흠; 欠-총13획;]
ㅇ. 희흠: 기척소리를 낸다. 에흠. 에흠. 에흠.
◈ 엎드렸다가 물러나 두 번 절하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집사자는 숟가락을 밥 가운데에 자루가 서쪽으로 가도록 꽂고 절가
락을 바로 놓는다. 초헌이하 모두 엎드린다. 축이 나아가 신위 전에
기침을 세 번 한다.
執事者 進茶. ☐初獻以下 肅竢少頃. ☐ 平身
ㅇ.茶(차 다; 艸-총10획; chꐁ). 肅(엄숙할 숙; 聿-총12획; sù)
◈ 집사자는 다를 오린다. 초헌이하 고개를 숙이고 엄숙히 기다린다.
몸을 바로 한다.
■ 辭神
執事者下匙箸闔飯盖. 初獻以下 再拜 辭神. 執事者 撤籩豆. 祝 焚祝
◈ 집사자는 시저를 내리고 밥뚜껑을 덮는다. 초헌이하 두 번 절하며
신을 작별한다. 집사자는 변과 두를 내리고 축관은 축을 불사른다.
[參考]
闔(문짝 합; 門-총18획; hé). 焚(불사를 분; 火-총12획; fén)
庶羞[서수]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
盥洗[관세]대야에 손을 씻고 수건으로 딲는다[盥手
洗手의준말].
蔬果[소과] 채소와 과실
3. 묘비문(墓碑文) 해석(解釋)
[전면] 通禮院引儀 柳公 潤善之墓
夫人 陽川許氏
羅州朴氏 祔左
公姓 柳氏 諱 潤善 字 善之. 其先文化人 六世祖 贈掌令 諱 濕
始籍 全州 妣崔氏 封 三韓國 大夫人 生 諱 克恕 麗朝 寶文閣
直提學 生 諱 濱 文科 永興府使 贈參判 生 四男 仲 諱 義孫以
文章節行名 文科重試 選入 集賢殿 贈 吏曹判書. 季 諱 末孫
司憲府執義 贈 吏曹參判. 有 三男 季諱 季潼 繼判書公後 贈都
承旨寔爲 公祖考 諱 軾以 江陵判官 中丁卯 文科 弘文館 典翰
贈 禮曺參判.
공의 성은 류씨로 이름은 윤선이며 자는 선지다. 그의 선조는
문화인으로 육세 조에는 증 장령 이름 습은 전주로 처음 적을
두었으며 배위는 전주 최씨로 삼한국 대부인에 봉해졌다.
아들에는 극서가 있는데 려조때 보문각 직제학을 지냈고 둘째
의 이름은 빈으로 문과 급제하여 영흥부사를 역임했고 증직은
참판이다.
넷 아들을 두었으니 그 중자는 이름이 의손 인데 문장 절행으로
이름이 났다. 문과에 중시하여 집현전에 뽑혀 들어갔으며 증직은
이조판서이다. 세 아들이 있으니 이름이 계동은 판서공 후로갔고
증직은 도승지였으니 공의 조부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식으로써
강릉 판관으로 정묘 문과 하였다. 홍문관 전한을 지냈고 증직은
예조 참판이다.
妣貞夫人 南陽洪氏 都正 顯廷女 公生以 弘治庚申年 八月 十
二日. 歿以嘉靖 丁巳 四月 三日. 享年五十八歲. 公雅度恬簡
不樂仕進 自京寔居榮州 秉節校尉 盖蔭資也. 及卒葬于郡南鐘
陵墓 左之原乃 公高祖參判公墳山右麓也. 配 陽川 許氏 內禁
璫 女.失其墓所. 後配 羅州朴氏 司直 承張 女. 平度公訔
六世孫也.生以 正德 己巳 歿以 萬曆乙酉 十一月十八日 享年
七十七歲 祔葬于公墓左 同域異封. 生二男 長 城. 次 垣. 城
早卒 贈 司僕寺正 取 聞韶金氏 贈判書 璡 女. 以柴毁繼歿事
ㅇ. 柴(섶 시; 木-총9획; chꐁi, cī, zhꐃi, zì)
旌閭閣. 有二子 長復起 號 岐峰 贈左承旨居安東水谷 次復立
爲伯祖參判 潤德 子摒後居 陽智 壬辰亂 從舅 金鶴峰 守晉州
城殉節. 贈 吏曹參判. 承旨 六子 友潛.號 陶軒. 得潛. 知潛.
守潛.宜潛. 希潛贈參判.友潛五子. 橚 護軍. 㮨進仕 號 百拙
庵. 郁. 學. 格生員. 得潛二子. 栽. 棶. 知潛二子. 幹.檼. 守
潛子 槮.宜潛四子.强.樟.樑.枋. 希潛二子.韋.榰文科府尹. 橚
四子.振輝進仕.挺輝文科牧使.增輝護軍.益輝. 稷子.世輝. 郁
二子.昌輝.重輝.學子.東輝.格四子 鳳輝護軍. 經輝護軍.萬輝.
啓輝出.裁三子. 仁輝.殷輝.均輝.棶三子 榮輝.亨輝.明輝. 幹
五子 完輝. 敦輝. 文輝. 新輝. 春輝. 檼二子 徵輝.能輝. 槮
ㅇ. 檼(대마루 은; 木-총18획; yǐn, yìn)
二子 長輝. 楊輝. 强子昇輝. 章四子 全輝. 宣輝.天輝 延輝.
枋四子 祥輝.燦輝.匡輝.端輝. 韋子 斗輝.榰四子. 孟輝.慶輝
生員.永輝.明輝.振輝二子.宗時生員.奉時. 宗時子 元鉉生員.
奉時二子 升鉉文科參議. 觀鉉文科監察. 益輝曾孫正源文科
持平. 東輝子敬時文科掌令.垣二子 達文.解文.達文子 景潛
贈執義 二子 桓 贈承旨. 檀 武科. 桓繼子 啓輝 進士 贈大
ㅇ. 桓(푯말 환; 木-총10획; huꐁn)
司憲 子顯時 同樞參判. 復立子 昊 武科 贈參判 昊子 栝.
梲.樴同知 의 同知.摘 栝子 宗燧. 梲四子.相燧.震燧.德燧.
ㅇ. 梲(벗을 탈{쪼구미 절}; 栝{노송나무 괄]
以燧 樴五子光燧.興燧東燧.熙燧.汝燧.의 四子.春燧.昌燧僉
ㅇ. 樴(말뚝 직; 木-총16획; yì, zhí)
知.斗燧.文燧防禦使.摘四子.享燧.宣燧.英燧僉正.貞燧.弘燧.
其餘內外子孫蕃衍不能盡錄 [八代孫 正源 謹記.]
ㅇ.衍(넘칠 연; 行-총9획; yꐂn)
배에는 정부인 남양 홍씨인데 도정을 지낸 현정의 딸이다. 공[인의]은
홍치 경신년(1500) 8 월 12 일에 나서 가정 정사년(1557) 4 월 3
일에 작고 하니 향년 58 세이다.
공은 아도염간 하여 벼슬에 나가기를 싫어했다. 서울에서 영주로 옮겨
살았다. 병절교위를 하게된 것은 모두 음자 때문이다. 서거하자 장
지는 군남쪽 종능묘 좌측 원인데 고조 참판공의 무덤이 있는 산 우측
기슭이다.
배는 양천 허씨로 내금을 지낸 당의 딸이며 묘소는 잃어 버렸다.
후배에는 나주 박씨로 사직 승장의 딸이며 평도공의 6세 손이다.
정덕 기사년(1509)에 나서 만력 을류년(1585) 11월 18일에 졸 하
니 수가 77세이다.
무덤은 부군의 묘 좌측이며 동역이봉이다. 두 아들을 낳았으니 맏은
성. 차는 원 이다.
성은 조졸 했고 증직이 사복시정이며 부인은 문소김씨로써 증 판서 진
의 딸이다. 정려각이 있다.
두 아들을 두었으니 복기와 복립이다. 복기는 호를 기봉 이라 하고 증
좌승지다. 안동 수곡에 살며 둘째 복립은 백조 참판 윤덕의 후로 양자
들어 양지에 산다. 임난시 외삼촌 김 학봉과 같이 진주성을 지키다가
순절했다. 증직은 이조참판이다.
승지[복기]는 6자를 낳았으니 우잠[도헌]. 득잠. 지잠. 수잠. 의잠. 희
잠[증참판]. 이다
우잠은 5 자를 낳았으니 숙[호군]. 직[진사] 호 백졸암. 욱. 학. 격[생
원]이다.
득잠은 2 자로 재. 래.이며 지잠은 2 자로 간. 은. 수잠의 아들은 삼
이다. 의잠은 4 자로 강. 장. 양. 방 이고 희잠의 아들은 위. 지
[문과 부윤]이다.
숙의 넷 아들은 진휘[진사]. 정휘[문과 목사]. 증휘[호군]. 익휘.이며
직의 아들은 세휘. 욱의 아들은 창휘. 증휘.이고 학의 아들은 동휘.격
의 아들은 넷으로 봉휘[호군]. 경휘[호군]. 만휘. 계휘는 양자갔다.
재의 세 아들은 인휘. 은휘. 균휘. 대의 셋아들은 영휘. 형휘. 명휘다.
간은 5 형제를 두었으니 완휘. 돈휘. 문휘. 신휘. 춘휘 이며 은의 두
아들은 징휘. 능휘. 이고 삼의 두 아들은 장휘. 양휘. 강의 아들은
승휘다.
장은 네아들을 두었으니 전휘. 선휘. 천휘. 정휘. 방도 네 아들을 두
었으니 곧 상휘. 찬휘. 광휘. 단휘다.
위의 아들은 두휘 이고. 지의 넷 아들은 맹휘.경휘[생원]. 영휘. 명휘
이며. 진휘는 두 아들인데 종시[생원]. 봉시다.
종시의 아들은 원현[생원]. 봉시의 아들은 승현[문과 참의].관현[문과
감찰]이고 익휘 증손 정원[문과 지평]. 동휘의 아들 경시[문과 장령]
이다.
원의 두 아들은 달문. 해문 인데 달문의 아들은 경잠[증집의]과 환[증
승지] 이며 단은 문과. 환의 계자로 익휘[진사. 증 대사헌]. 아들에
현시[동추. 참판]. 복립의 아들 호[문과 증참판]. 호의 아들은 괄. 탈.
직[동지]. 의[동지]. 적. 이다.
괄의 아들 종수. 탈의 아들은 넷인데 상수. 진수. 덕수. 이수이고 적
의 5 자는 광수. 흥수. 동수. 희수. 여수.이며 의 의아들은 춘수.창수
[첨지]. 두수. 문수[방어사]. 적의 아들은 향수. 선수. 영수[첨지].정
수. 홍수. 그 외는 자손수가 너무 많아 모두 기록을 하지 못한다.
[ 8 대손 정원 삼가 기록하다.]
◎ 류정원(柳正源) : 호는 삼산(三山). 관은 대사간(大司諫).(1701 - 1761).
통천군수와 자인군수당시 밝은 치적이 목민심서(牧民心書)(정약용)에
수록되어있다.
4. 墓道改碣 告由文
[ 16代孫: 柳 建基 識]
維歲次 丙子 十月 壬子朔 十六日丁卯 十五代孫 東熙
敢昭告于
顯 十五代 祖考 秉節校尉 府君
顯 十五代 祖妣 宜人 陽川許氏
顯 十五代 祖妣 宜人 羅州朴氏之墓 伏以府君 檜爺曾祖
落翁從父 穆公再姪 南公篪壎 早承家訓 庭趨詩禮
才藝夙就 除授引儀 僧家權威 解任修德 守分謹愼
乾乾夕惕 隨行伯氏 榮州蒐裘 暇日循郊 僧餓載路.
親饋飯飮 上人蘇生 積善有蔭 後裔繁昌 羡道短碣
歲久剝落 廣議宗中 謨工伐石 竪碑改築 山龍增輝
時維小春 諸族咸會 謹具庶品 敬薦微抌 在天先靈
洋洋降歆 尙 饗
◈ 회헌 할배가 증조이요 낙봉 할아버지의 당숙이라 문목공의 종질
이요 남천공과 형제로다.
일찍이 가훈을 익히시고 조상에게 시경과 주례를 배웠도다. 재능과
기예가 남달리 깨이시어 통례원 인의의 벼슬을 받으셨다.
집안권력과 세도함을 미워하고 마다하여 벼슬을 사양하시고 오로지
덕만을 닦았는데 분수를 지키고 근신하시며 쉬지 않고 언제나 정진
하였도다.
백씨를 따라 영남으로 오시니 영천땅 남양에 은거하시었다. 어느 날
들 구경을 나갔을 때 굶주린 중하나가 길에 누워 있는걸 보시고 직접
손수로 음식을 먹였더니 그 중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다.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음덕을 끼치시니 후손이 번창 하였도다.
묘소에 세워둔 작은 비석은 세월이 오래되어 돌이 깎이어 글씨를
볼 수가 없어 종중에 널리 의논하고 합의하여 석공에게 돌을 다시
다듬게 하였다.
비석을 세우고 축대를 고치고 나니 산세가 더욱 빛나는 것 같도다.
10월에 친족이 함께 모여 여러 가지 음식을 정갈하게 차려 공경 스
럽게 이 작은 정성을 올리오니 하늘에 계시는 할아버지의 영혼이
시여 즐겁게 나리시어 흠향 하이옵소서
병자년 10월 16 일 15대손 동희가 감히 고하나이다.
5. 改碣 後記
嘉靖 丁巳 距今四百四十年矣 舊有表石 無陰記 其後閱 三百年以
諸孫合 謀改竪用. 我七代祖 三山 先生 所撰幽誌然 歲久剝 殆
不能讀 短石無螭首 龜趺. 今諸孫 合謀 改築齋舍 仍改葛.公之墓
因用舊碣文 所以漫漶者 鮮然矮短者 屹然千古玆原倍增 輝光 正
休之陰煥 然傳百歲而 不替矣
幹其役者 十六代孫 基洙 基穆也.
光復 五十年 月 日
十五代孫 東 熙 謹識
◈ 가정 기사년은 지금부터 440년이다. 옛날의 표석이 있었으나 글씨
가없어져서 그 후 300 년이 지나 제 자손들이 의논 개갈 키로 합의
하였다.
나의 7 대조 삼산 선생이 비음을 지은 것인데 세월이 오래되어서
글씨를 읽어볼 수 없으며 비석도 작은데다가 깎기고 떨어지고 이수
와 귀부가 없으므로 이번에 각처 자손들이 뜻을 모아 재사를 개수
하면서 묘전비도 고쳐 세웠다.
비문은 옛것 그대로 쓰니 보이지 않
던 것이 이제는 선명하게 드러나나 비록 적은 비석이나마 천년토록
이두들에 우뚝 솟아 광채는 더욱 빛날 것이다.
바르고 아름다운 유풍의 빛은 만세를 전하여 질 것이고 쇠퇴하지 않
을 지어다. 이번 일을 앞에서 수고한 사람은 16대손 기수와 기목이다.
광복 50 년 월 일
15 대손 동희 삼가 기록함
6.傳受祭器物目
1. 鍮器 平接匙 ................ 15 介
2. 飯盖 具盖 ................. 3 座
3. 盞 ................... 3 坮
4. 著 ................... 1 雙
5. 匙 .................... 2 柄
6. 香爐 ..................... 1 座
7. 香盒 ...................... 1 座
8. 大鼎 ...................... 2 座
9. 大餠 ...................... 1 座
10. 木䭏坮 ...................... 3 座
11. 文書机 ..................... 1 座
12. 祭器机 ..................... 1 座
13. 笏記[新.舊] .................. 2 帖
14. 大木接匙 ................... 6 介
15. 中木接匙 ................... 10 介
[ 以上은 辛丑年 都錄에서 根據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