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수(邊光秀)는 공민왕(恭愍王) 때 병마사(兵馬使)가 되었다. 나라에서 전라도(全羅道)의 군수와 조운이 왜적에 막혀 통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동북면의 무사들을 선발하여 교동(喬桐)·강화(江華)·동강(東江)·서강(西江)의 전함 80여 척을 모두 모아 변광수와 병마사 이선(李善)에게 명하여 군사를 나누어 가서 막게 하였다.
대도(代島)에 이르자 내포(內浦)의 민으로서 포로가 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도망하여 와서 고하기를, “적의 복병이 이작도(伊作島)에 있으니 가벼이 나아가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선이 듣지 않고 북을 울리며 시끄럽게 가장 먼저 나아갔다. 적이 2척으로 아군을 맞이하여 싸우다가 거짓으로 퇴각하였다. 변광수 등이 〈적을〉 추격하였는데 별안간 적선 50여척에게 포위되었다. 병마판관(兵馬判官) 이분손(李芬孫)·중랑장(中郞將) 이화상(李和尙) 등이 먼저 적과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적에게 죽음을 당하였으며, 여러 선군(船軍)들이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바다에 뛰어들어 죽은 자가 10명에 8~9명이었다. 변광수와 이선 등이 바라보다가 싸우지도 않고 퇴각하니 군졸들이 크게 부르기를, “병마사가 어찌하여 사졸들을 버리고 도망하시는 것이옵니까? 원컨대 조금이라도 머무르고 있다가 나라를 위하여 적을 물리치소서.”라고 하였다. 변광수 등이 끝내 구하러 오지 않자 사졸들은 기대할 바가 없어 사기가 더욱 떨어져 이로 인하여 대패하였다. 오로지 부사 박성룡이 힘써 싸워서 몸에는 여러 개의 화살을 맞았지만 탄 배는 겨우 보전하였다. 병마판관 전승원(全承遠)과 판관 김현(金鉉)·산원(散員) 이천생(李天生)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적이 〈그들을〉 추격하기는 하였지만 감히 가까이 오지는 못하였다. 적선 2척이 갑자기 서쪽으로부터 가로질러 공격하자 사졸들이 버틸 수가 없어서 모두 물에 뛰어들었으나 오직 전승원만이 힘써 싸웠다. 〈그는〉 창을 여러 번 맞고 물에 뛰어들었으나 헤엄을 잘 쳤기 때문에 죽지 않고 배에 올라탈 수 있었다. 어떤 사졸 하나가 화살을 맞고 물에 떨어졌는데 뱃전에 매달린 채 올라오지 못하자 전승원이 끌어당겨서 배에 올라올 수 있었으며 밤낮으로 손수 노를 젓기를 3일 동안 하여 남양부(南陽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함 중 돌아온 것은 오직 변광수와 이선 등 20척 뿐이었으며, 교동·강화·동강·서강에는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변광수 등이 끝내 이 일로 좌천되지 않으니 나라 사람들이 한스럽게 여겼다. 후에 신돈(辛旽)이 변광수를 참소하여 삼척(三陟)으로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