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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하)-
칼 마르크스 l 김수행 역 l 비봉출판사
제8편 이른바 시초축적
김은진
제31장 산업 자본가의 발생
산업 자본가의 발생은 길드의 장인들과 그보다 더 많은 자립적 소규모 수공업자들 또는 임금노동자들까지도 소자본가로 전환하고, 임금노동의 착취를 더욱 확대해 자본의 축적을 강화함으로써 본격적인 ‘자본가’로 전환되었다. 중세 도시의 유년기에는 도주한 농노 중 누가 주인으로 되며 누가 하인으로 되는가 하는 문제는 대개 그들 중 누가 먼저 도주했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는데, 자본주의적 유년기에도 흔히 그러했다.
(1)약탈
중세의 두 개의 독특한 자본형태를 물려주었는데 고리대자본과 상인자본이다. 자본가는 이제는 사회의 모든 부의 최초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다. 소유 상의 변화는 자본에 대해 이자를 받게 되었고 자본가의 권력은 소유권에 의해, 어떤 법령 또는 일련이 법령에 의해 수행되었다.
혁명은 법률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상업에 의해 조성된 화폐자본이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것을 방해였던 봉건제도와 도시의 길드제도는 고리대금업과 이러한 속박들은 가신단의 해체와 농촌 주민의 수탈 및 추방과 함께 제거되었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공업배양지(구도시와 그 길드의 통제 밖에 있는 해안의 항구, 농촌지역들에 건설된 새로운 매뉴팩처 도시)들을 반대하는 자치도시의 치열한 투쟁이 일어났다.
아메리카에서 금은이 발견,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의 섬멸과 노예화 및 광산에서 생매장, 동인도의 정복과 약탕의 개시, 아프리카가 상업적 흑인 수렵장으로 전환-이러한 것들이 생산의 자본주의적 시대를 알리는 특징들이다. 이러한 목가적인 과정들은 시초축정의 주요한 계기들이다. 그 뒤를 이어 지구를 무대로 하는 유럽 국민들의 무역전쟁이었다.
영국에서는 시초축적이 상이한 요소들이 17세기 말 식민제도(잔인한 폭력에 의해)⦁국채제도⦁근대적 조세제도⦁보호무역제도 등으로 체계적으로 통합되었다. 이 모든 방법들은 봉건적 생산양식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의 전환과정을 촉진해 과도기를 단축시키기 위해 국가권력[즉 사회의 집중되고 조직된 힘]을 이용한다. 폭력은 낡은 사회가 새로운 사회를 잉태하고 있을 때에는 언제나 조산사가 된다. 폭력 자체가 하나의 경제적 잠재력이다.
약탈의 대표적 자인한 행위: 17세기의 전형적인 자본주의국이었던 네덜란드의 식민지 경영사는 ‘배신⦁매수⦁학살⦁비열의 유래없는 광경’을 보여준다. 네덜란드인이 자바 섬에서 사용할 노예를 얻기 위해 셀레베스 섬에서 실시한 인간 약탈제도처럼 특징적인 것은 없다. 이 목적을 위해 특별한 인간도둑이 훈련되었다. 도둑⦁통역⦁판매인은 이 거래의 주된 담당자였으며, 토착 왕자가 주된 판매인이었다. 훔처온 젊은이들은 노예선박으로 운반될 수 있을 만큼 성장할 때까지 셀레베스 섬의 비밀감옥에 숨겼다.
1641년 말라카(1511년 아시아에 진출한 포르투칼이 왕국을 멸망시키고 아시아 최초의 유럽식민지로 만들고 향료무역의 독점과 그리스도교의 선교 기지로 삼았다. 1641년 네덜란드가 빼앗아 해협을 지배하였고 1824년 영국의 소유가 되었다.)를 손에 넣기 위해 네덜란드인들이 시내에 들어오는 것을 허가한 총독을 매수금액을 ‘절제’하기 위해서 학살했다. 그들의 발이 자바 섬이 한 지방인 바뉴완기는 1750년 주민 수가 80,000명 이상이었는데, 1811년에는 8,000명에 불과했다. 이것이 바로 평화로운 상업인 것이다.
영국이 동인도회사는 인도의 정치적 지배 이외에 차 무역과 중국과의 무역 전반에 대한 배타적인 독점권, 유럽 왕래 화물수송 독점권, 인도 연안 항해와 섬들 사이의 항해, 그리고 소금⦁아편⦁후추 및 기타 상품에 대한 독점은 부의 무진장한 원천이었다.
회사 직원들은 가격을 설정하고 불행한 인도인들을 마음대로 약탈했다. 총독도 이러한 사적 거래에 참가했다. 그의 총애를 받는 사람은 연금술보다 더 교묘하게 무로부터 금을 만들어낼 수 있게끔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거액의 재산이 우후죽순처럼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으며, 시초축적은 한 푼의 투자도 없이 진행되었다. 1769년부터 1770년까지 영국인들은 쌀을 전부 매점하고 그것을 엄청난 가격이 아니면 다시 팔지 않음으로써 인위적인 기근을 조성했다.
(2) 시초축적의 기독교적 성격
청교도들은 1703년에 그들이 의회의 결의에 의해 인디언의 머리 가중 1장이나 포로 1명에 대해 £ 40이 상금을 걸었고, 1720년에는 머리 가죽 1상에 상금이 £ 100로 되었으며, 1744년에 매사추세츠만 지역이 어떤 종족의 반란자라고 선언한 뒤 다음과 같은 가격을 붙였다. 즉 12세 이상의 남자의 머리가죽은 새 통화 £ 100, 남자 포로는 £ 105, 여자나 아동 포로는 £ 55, 여자난 아동의 머리가죽은 £ 50이다. 즉 영국의 매수와 사주 하에 그들은 인디언들의 도끼에 찍혀 죽었다. 영국 의회는 살육과 머리가죽 벗기기를 ‘신과 자연이 자기들에게 부여한 수단’이라고 선언했다.
이 시장의 독점은 축적을 더 한충 강화했다 재물은 본국으로 흘러 들어와 거기에서 자본으로 전화되었다. 식민제도를 제일 먼저 완전히 발전시킨 네덜란드는 1648년에 이미 상업적 위력의 절정(동인도 무역, 유럽의 동남부와 서북부 교역, 어업, 항해 및 매뉴팩처)에 달했다. 즉 네덜란드의 국민은 1648년에 이미 유럽의 다른 모든 국민보다 더 과도한 노동을 하고 있었으며, 더 빈곤했으며, 더 참혹한 억압을 당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산업적 패권이 상업적 패권을 가져온다. 진정한 매뉴팩처 시기에는 상업적 패권이 산업상의 우세를 보장해 주었다. 때문에 당시 식민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식민제도는 ‘낯설은 신’인데, 유럽의 옛 신들과 나란히 제단에 앉아 있다가 어느 날 그 신들을 모두 한꺼번에 때려 엎어버리고 치부가 인류의 궁극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3)국채
중세에 이미 제노바와 베네치아에서 그 기원을 보게 되는 공공신용제도 즉 국채제도는 매뉴팩처시기에 유럽 전체에 전파되었다.
식민제도는 그에 따르는 해상무역 및 무역전쟁과 더블어 이 국채제도를 성장시킨 온실이다.
이 제도는 우선 네덜란드에서 확립되어 전제국가, 입헌국가, 공화제국 등의 국채[즉 국가의 양]는 자본주의 시대를 특징짓는다. 이른바 국부 중 현실적으로 근대적 국민 전체가 소유하게 되는 유일한 부분이 바로 국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국민이 많은 부채를 지면 질수록 그 국민은 부유하게 된다는 근대적 학설이 나온 것이다. 공공신용은 자본의 신조로 된다. 그리하여 국채의 성립과 함께 결코 용서할 수 없는 큰 죄로 되는 것은 성령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 국채에 대한 불신이다.
공채는 시초축적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의 하나다. 왜냐하면, 그들이 대부한 금액은 쉽게 양도할 수 있는 공채증서로 전환되며, 현금과 마찬가지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국채는 주식회사, 온갖 종류이 유가증권거래⦁투기업, 한마디로 증권투기와 근대적 은행지배를 발생시켰다.
(4)무거운 조세
-국채와 더불어 국제신용제도가 발생했는데, 이것은 이러저러한 국민의 시초축적의 은폐된 원천의 하나였다. 오늘날 미국에 나타나고 있는 출처불명의 많은 자본은 어제 영국에서 아동들의 피가 자본으로 전환한 것이다.
-국채는 국가 세입에 근거하고 있으며 세입으로 해마다의 이자 지불 등에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대적 조세제도는 구채제도의 필수적인 보완물이였다.
-국채는 정부의 임시지출을 납세자가 당장 그 부담을 느끼지 않는 방법으로 조달할 수 있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세금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한편, 차례차례로 계약된 국채의 누적 때문에 야기된 세금의 증가로 말미암아 정부는 새로운 임시지출을 할 때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국채를 발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가장 필수적인 생활수단에 대한 과세(따라서 그 가격등귀)를 그 축으로 하는 근대적 조세제도는 그 자체 안에 조세의 자동적인 점진적 증대의 맹아를 내포하고 있다.
-과중한 과세란 우연한 것이 아니라 과세의 원칙이다.
근대적 재정이 임금노동자의 상태에 준 파괴적 영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 제도에 의한 농민⦁수공업자 등 하층 중간계급의 모든 구성부분의 폭력적 수탈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의 차이가 없다.
-수탈작용은 보호무역제도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공채와 그에 대응하는 재정제도가 부의 자본화오 대중의 수탈에서 수행한 거대한 역할로 말미암아, 근대적 빈곤의 주요원인을 여기에서 찾게 되었다.
(5)보호무역제도는 제조업자들을 만들어 내고, 독립적 노동자를 수탈하며 국민의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을 자본화하고 낡은 생산방식으로부터 근대적 생산방식으로의 이행을 폭력적으로 단축시키기 위한 인위적 수단이었다.
간접적으로 보호관세에 의해, 직접적으로는 수출장려금 등등에 의해 자국 국민을 약탈했다. 주변 종속국의 모든 산업을 폭력적으로 전멸시켰는데, 잉글랜드는 아일랜드의 양모 매뉴팩처를 전멸시켰다.
제32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
자본의 시초축적, 즉 자본의 역사적 발생은 결국 무엇으로 귀착되는가? 그것은 오직 직접적 생산자의 수탈 [즉 자기 자신이 노동에 입각한 사적 소유의 해체]을 의미할 따름이다.
생산수단에 대한 노동자의 사적 소유 소경영의 토대이며, 소경영은 사회적 생산의 발전과 노동자 자신의 자유로운 개성의 발전에 필요한 조건이디. 이 생산방식이 노예제, 농노제 및 기타의 예속관계 아래에서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번영하며 자기의 모든 정력을 발휘하고 자기의 적절한 전형적 형태를 취하는 것은, 오직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사용하는 노동조건의 자유로운 사적 소유자인 경우[즉 농민이라면 자기가 경작하는 토지를, 수공예인이라면 자기가 능숙하게 다루는 도구를 소유하는 경우] 뿐이다.
이 생산방식은 토지의 분할과 기타 생산수단의 분산을 전제한다.
이 생산방식은 생산수단의 집중을 배제하기 때문에, 각 생산과정 안의 협업과 분업, 자연력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규제, 사회의 생산력의 자유로운 발전도 배제한다.
이 생산방식은 생산 및 사회가 자연발생적인 좁은 범위 안에서 운동할 때에만 적합하다.
이 생산방식을 영구화하려는 것은 페쾨르가 옳게 지적하고 있듯이 '만인의 범인화를 명령'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정한 발전수준에 도달하면 이 생산방식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물질적 수단을 만들어낸다. 이 생산방식은 철페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철폐된다. 즉 개인적이며 분산적인 생산수단이 사회적으로 집중된 생산수단으로 전환되는 것, 따라서 다수인의 영세한 소유가 소수인의 거대한 소유로 전환되는 것, 그리고 광범한 국민대중으로부터 토지와 생활수단 노동도구를 수탈하는 것, 이러한 처참하고 가혹한 국민대중의 수탈이 자본의 전사를 이룬다. 거기에는 일련의 폭력적 방법이 포함되어 있는데 시초축적의 방법으로 직접적 생산자의 수탈은 가장 무자비한 만행에 의해, 그리고 가장 비열하고 가장 추악하고 가장 야비하고 가장 가증스러운 정열의 충동 아래에서 수행되었다. 자신이 노동으로 획득한 사적 소유, 말하자면 개개의 독립적 노동자와 그의 노동조건과의 융합에 입각한 사적 소유는, 타인노동[그러나 형식상으로는 자유로운 노동]의 착취에 입각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 의해 축출된다.
이 변환이 낡은 사회를 깊이와 넓이에서 충분히 분해시키자마자, 또 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알 전한되고 그들의 노동조건이 자본으로 전환되자마자, 그리고 또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자기 발로 서게 되자마자 노동이 더욱더 사회화되는 것, 따라서 사적 소유자를 더욱더 수탈하는 것-이러한 것들은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된다. 이제 수탈의 대상이 자영의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이다.
이 수탈은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의 내재적 법칙인 자본의 집중을 통해 수행된다. 항상 한 자본가가 많은 자본가를 파멸시킨다. 집중과 병행해 기타의 발전도 더욱더 대규모로 일어난다. 예컨대 노동과정의 협업적 형태의 성장, 과학의 의식적 기술적 적용, 토지의 계획적 이용, 노동수단이 공동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되는 것,
자본주의 체제의 국제적 성격의 증대 등등이 더욱더 대규모로 일어난다. 이전환과정의 모든 이익을 가로채 독점하는 대자본가의 수는 끊임없이 줄어들지만 , 빈곤⦁억압⦁예속⦁타락⦁착취의 정도는 더욱더 증대한다. 그와 동시에 노동자 계급의 반항도 또한 증대한다.
자본의 독점(생산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은 파열되면서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의 조종을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으로부터 생기는 자본주의적 취득방식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낳는다. 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윤ㄴ 소유자 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개인적 사적 소유의 첫 번째 부정이다. 그러난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과정의 필연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부정을 낳는 다. 이것은 부정의 부정이다. 이 부정의 부정은 사적 소유를 부활시키지 않지만,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협업 및 토지와 생산수단[노동 그것에 의해 생산된 것]의 공동 점유-에 입각한 개인적 소유를 확립한다.
물론, 개인들 자신의 자기 노동에 입각한 분산된 사적 소유가 자본주의적 사적 송로 전환되는 것은 훨씬 더 오래 걸리고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전자의 경우 소수의 횡령자가 국민대중을 수탈하지만, 후자의 경우 국민 대중이 소수의 횡령자를 수탈하기 때문이다.
제33장 근대적 식민이론
정치경제학은 두 종류의 사적 소유를 혼동하고 있는데 하나는 생산자 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타인노동의 착취에 입각한 것이다. 후자는 전자의 직접적 대립물일 뿐 아니라 전자의 무덤 위에서만 성장한다는 것을 정치경제학은 망각하고 있다. 정치경제학은 그럴싸한 감언이설로 전자본주의 세계의 법률관념과 소유관념을 자본의 세계에 적용하고 있다.
식민지들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본국의 배경을 등에 업은 자본가는 개인노동에 입각한 생산방식과 취득방식을 폭력적으로 제거하려고 노력한다.(사리사욕) 즉, 정치경제학자는 사회적 생산성의 발전(협업 분업 대규모의 기계사용)등은 노동자들의 수탈과 그들이 생산수단의 자본으로의 전환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보호무역제도는 인위적으로 자본가를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웨이크필드의 식민이론에서 임금노동자를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직적 식민' 입금 노동자가 없다면 생산수단을 소유하더라도 임금노동자가 없다면 자본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자본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라는 것을 발견했다.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이 직접적 생산자의 소유인 경우 그것들은 자본이 아니다. 노동자의 착취수단이자 지배수단을 봉사하는 조건 아래서만 자본으로 된다.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축적하는 동안은 자본주의적 축적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있을 수 없다. 필요불가결한 임금노동자가 없기 때문이다. 웨이크필드는 사회계약에 의해 자본과 임금노동자가 생겨났다고 한다. 인간은 스스로 자본의 소유자와 노동의 소유자로 분할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본축적'의 영광을 위해 스스로 수탈당하는 것이다. 사회계약의 꿈을 현실로 옮겨놓을 수 있는 인간과 조건들은 오직 식민지에만 존재한다. 노동자가 없이는 자본은 소멸했든가 또는 적어도 각 개인이 자기 자신의 손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동의 적은 규모로 축쇠었을 것이다.
국민대중으로부터 토지의 수탈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토대를 이룬다. 반대로 자유식민지의 본질은 대량의 토지가 아직 공공의 소유이며, 이주자마다 일부를 사적 소유와 자기 개인의 개인적 생산수단으로 전환시킬 수 있으며, 뒤에 오는 이주자들이 자기와 통일하게 행동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여기에서 식민지 번영이 비밀이 있는 동시에 식민ㅌ지의 암적 고민거리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식민지에서는 노동조건과 그것의 근원인 토지로부터 노동자가 이직 분리되어 있지 않거나 들믈게 제한된 범위에서만 분리되어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큰 장점은 그것이 임금노동자를 임금노동자로 끊임없이 재생산할 뿐 아니라, 자본축적에 비례해 임금노동자의 상대적 과잉인구를 항상 생산한다는 점에 있다. 임금의 변동은자본주의적 착취에 적합한 한계 안에 제한되고, 또 노동자의 사회적 종속이 보장된다. 종속관계는 절대적 관계인데, 본국에서는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 대등하게 독립적인 상품소유자들 사이의 자유로운 계약관계인 것처럼 교묘하게 기만하고 있다. 식민지에서는 노동자가 이미 성인으로 들어오기 때문에ㅐ이구의 절대적 증가는 훨씬 빠르지만 노동시장은 항상 공급부족이다. 한편 착취와 '절제'를 열망하는 자본을 끊임없이 투입하는데, 임금노동자의 재생산에 차질이 생긴다. 오늘의 임금 노동자도 내일의 독립적인 농민 또는 수공업자가 된다. 임금노동자의 공급이 연속적이지 않으며 충분하지 않다고 개탄한다. 식민지에서 이 종속관계가 인위적 수단에 의해 조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부는 원래 그 본질상 국민의 빈곤과 동일한 것이다.} 묘책은 정부로 하여금 처녀지의 인위적 가격(매우 높은 가격(농민이 되는 것을 막을 만큼))을 붙여 장기가 임금노동을 하게끔 한다. 또 유럽으로부터 빈민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자본가를 위해 임금노동시장을 충만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조직적 식민'의 큰 비밀이다. 웨이크필드는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웨이크필드가 제시한 '시초축적'의 방법을 영국 정부가 여러 해 동안 실시했다. 그 결과 이민은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미국으로 쏠렸다는 것(잉여노동인구 증가) 뿐. 한편, 미국의 남북전쟁은 방대한 국채, 무거운 세금, 비열하기 짝이 없는 금융귀족의 창출, 철도⦁광산 등등의 개발을 목적으로 투기회사등에 대한 방대한 공유지 증여을 야기했다. 이제 미국은 이주노동자들의 희망의 땅이 아니게 되었다. 임금 저하와 노동자들의 종속, 영국 정부가 자본가들에게 식민지의 미개간지를 마구 팔아버림 등등.
구세계의 정치경제학이 발견해 신세계에서 소리 높여 선언한 비밀은 발견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축적방식, 개인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사적 소유의 철폐, 즉 노동자의 수탈ㅇ을 기본조거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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