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7,1-8.14-15.21-23
여러분들은 보통 복음 읽으실 때, 어떤 어조로 읽곤 하십니까? 성지주일이나 성금요일이 되면 사제나 부제만이 아니라 많은 신자들이 함께 수난 복음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곤 하지요. 보통의 미사 참례하러 오신 분들은 군중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만, 미리 잘 준비해온 독서자는 빌라도 역할을 맡기도 하고, 대사제 역할을 맡기도 하고, 또 베드로 사도에게 예수님과 한 무리가 아니냐고 쏘아붙이던 여종의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에는 매년, 신학교 미사에서 이 여종 역할을 누가 맡는지가 초유의 관심사이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앙칼진 목소리로 “당신도 저 예수란 사람의 제자가 아니오?”하고 쏘아붙이느냐가 아주 큰 화제거리가 되었지요. 또 그렇게 앙칼지게 쏘아붙이면 베드로 사도의 역할을 맡은 학사님께서 아주 둔하면서도 당황한 목소리로 “나, 나는, 나는 아니오!”라고 반문하는 장면도 아주 재밌는 부분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목소리는 그날 주례신부님께서 맡곤 하셨는데, 항상 진중하고 근엄한 목소리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그런 진중한 목소리와는 조금 다른, 아주 격앙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더러운 손으로,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지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너희들은 더 심한 율법도 안 지키면서 작은 율법은 왜이리 따지느냐?’라거나 ‘내 제자들은 가난해서 평소에 잘 먹지 못하다보니 그런가보다’라고 우리가 평소의 예수님을 생각할 때 상상할 수 있는 대답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을 던진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위선자, 거짓 효자, 율법을 파괴하는 이로 몰아붙이시면서 아주 격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서 질문을 하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야이 위선자, 거짓 효자, 율법파괴자야!’하면서 몰아붙인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우리가 평소에 상상하듯이 나긋나긋하고 근엄한 예수님의 어조로 오늘 복음 말씀을 읽는다면 어째서 예수님께서, 그냥 물어본 사람들에게 이런 심한 말씀을 하시는가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저는 조금 다른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심한 말씀을, 조용한 목소리로 하셨을 리는 없으니, 아마 아주 격앙된 목소리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를 꾸짖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꾸짖으신 이유는, 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표정과 어투가, 그들이 예수님의 몇몇 제자들이 손을 잘 씻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 이렇게 물어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아주 비꼬고 하찮은 사람을 대하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바라보며 이 질문을 예수님께 던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율법을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꼬박꼬박 지키면서 살아왔을 정도로 성실하지 못한 사람들이라서, 가난한 이들이라 오늘의 먹을 것을 눈앞에 보자 하느님을 기억하며 손을 씻고 기도를 바쳐야할줄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딱 그 정도의 사람들이라서 그런 거룩한 성별 예식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이 바리사이들은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의 모습을 평소부터 하찮게 보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으니, 그들과 함께 다니는 예수님과 또 예수님의 모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물어보았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리 격한 반응을 보이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잘 알고, 잘못 실천하고, 그러한 사실에 기뻐하거나 분노하시는 것이 아니라 율법과 하느님을 핑계로, 하느님의 사람들을 모독하실 때 이렇게 화를 내시고, 진정으로 하느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보라고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에게는 과연 이런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모습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주고, 또 많은 경우 저도 그렇지만 우리 모두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도리에 어긋나고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바라보게 될 때, 그 사람을 나쁜 사람, 악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기 쉽고, 또 그러한 행동을 저지르는 이들을 우리보다 낮은 사람, 부족한 사람이라 단정짓곤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한가지 모습으로만 판단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미물도 그렇게 판단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주 사납고 무시무시한 육식동물이 짐승을 사냥할 때, 깜짝 놀라고 두려워하고 그리고 사냥당한 동물들에 대한 연민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육식동물이 사냥감을 가지고 가 어린 새끼들에게 곱게 씹어 먹이는 모습을 본다면 우리의 그 커다란 육식동물에 대한 평가는 온전히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위의 낮은 이들의 행동을 바라볼 때, 그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함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 제자들은, 이제야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만나뵈옵고 새 하느님의 법인 사랑의 계명과 이스라엘에 오랫동안 베푸신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를 배우기 시작한, 이제 하느님을 알기 시작하고 믿음을 강하게 만들어가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어쩌면 부족한 모습들이 나올 수 밖에 없겠지요.
오늘 이 복음 말씀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칭찬받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물동이와 수건을 가져다주며 ‘우리 조상들은 밖에 나갔다가 음식을 먹으려면 손발을 씻는 전통을 지켜왔습니다. 제자분들께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이었지요. “어디~ 밖에 나갔다왔는데 손발을 안 씻어!”라는 말보다 훨씬 친절하며, 하느님의 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쉽게 지킬 수 있도록 이끄는 말이며, 다른 이들에게 친절과 존중을 보여주는 방법이었지만,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그들은 실천하지 못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복음을 읽은 우리들은, 예수님 앞에서 위선자요, 거짓 효자요, 율법을 파괴하는 이요 하고 불릴 일이 없도록 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지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그리고 그 안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실 때, 짜증과 따지는 말보다는 친절과 따스한 조언으로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들이 배우신 하느님의 법인, 사랑을 실천하시고, 언제나 우리를 사랑으로 이끌어주시는 조상들의 전통을 수행하십시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의 모습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예수님의계명과율법을 다시금 마음깊이 되세겨보게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