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 빗길을 달려 산청을 떠나 서울로 향한다
가장 먼저 들리게 된곳이
남편의 치과치료를 받기 위해 도시에 살때부타 다니던
성남의 예원치과
우리 회원이기도 하지만 별반 활동하지 않는
여름 휴가때나 한번쯤 안부를 전하는 회원이 운영하는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저녁을 아주 근사한 일식집 가서 소주와 함께 회와 회초밥
역시나 도시답게 회에 금가루까지 뿌려 준다
입과 눈이 호사한 날이다
덕분에 그 날엔 그만 아들집이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남 야탑동에서 거한 외박을 하게 되였다
그 다음날
아침 일어나 서울로 향한다
지리산 산청으로 귀농하게 되면서
늘 목말라 했던 책구입을 하기 위해
예전부터 다니던 종로 영풍문고 본점을 찾았다
참 많이 변했다
가는 길
광화문 사거리
역시나 인파들이 상당하다 여기저기 우리나라의 유산을 카메라에 담는 외국인들도 사뭇 많다
높은 빌딩들을 보니
지리산 촌부부 눈이 휘둥레해지며 현기증이 인다
우야둥 예전에야 뭐 무지기수로 다니던 인사동거리
종로거리이건만 지금은 모든것이 낯설기만 하다
덕분에 세종대왕 동상과 겉핥기식 세종예술의전당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가는 차량들
끼는 차량들 홍수속을 헤엄쳐 다닌다는것이 이제는 곤혹이다
남편의 지갑에서 거금이 출금된 날이다
사실 산청에서 떠날때는 50만원어치 사줄께 당당했다
그러나 서점이 지하인관계로 한 두어시간 지나더니
남편은 그만 멀미가 나는가보다
교외로 나갔으면 한다
하는수 없이 골라놓은 책들만 주섬주섬 챙기니 그래도 35만원처나 되는것이라
하여 그제 어젯밤 결국 한 권을 모두 읽어내리는 그야말로 오랜만에
책속에 코를 박을 수 있는 행운의 밤을 누렸다
남편의 성화
교외로 나가는 하는수 없이 고향 마석을 가기로 한다
우선 너무 배가 고프긴 한데
서울에서는 주차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상태 아니 주차요금 내며
먹을곳 찾아다닌다는 것 자체가 지옥이다
하여 마석에서 족발집 운영하는 동생에게로 연락도 없이 처들어가
족발과 막국수 내놓으라고 으름장이다
덕분에 배 두둑
퉁퉁 두들겨가며 막국수와 족발 먹는
추석날 성묘하러 가려면 많은 차량들로 힘겨울거 같아
미리 성묘하자 합의하여
증조부님 조부모님 그리고 나의 부무님 산소가 모두 모여 있는 고향
술잔을 따르고 절을 올리고
오랜만에 나 어릴적 철없이 놀던 고향의 마을을 둘러볼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다시
동생이 운영하는 족발집으로 가서는
지리산 산청까지 와서 고생해준 남편의 작업팀 즉 목공팀들과 함께 한잔 하게 되므로
아들과 며느리와 놀아주겠노라 했던 약속을 펑크내고야 말았다
마석에서 또 일박을 하고는 아침은 차려드릴테니 일찍 오세요 하는 며느리의 말을 거부하고
용인에 사는 아들집 도착하니 벌써 12시가 다 된것
하여도 점심조차 아들네와 못 먹고는 또 나간다
아들집 근처에 사는 친구와 점심약속을 해버린 것
하여 친구와 아들집 근처에서 또 회에다가 소주 각 일병씩 3병을 해치웠으니
내 속이 그만 와글와글 개구리 울음소리다
술에 취해 들어온 시에미와 시에비
좀 쉬시라고 하더니 둘이 외출을 한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몇 시간을 자고는 일어나
며느리와 시아버지는 마주앉아 전을 지지고
나와 아들은 식탁을 차린다
제법 잘 차려진 식탁
갖가지 흉내는 다 낸 아들과 며느리의 정성이 담긴 식탁
그러나 낮술이 너무 거했는가 나는 그만 물에 밥을 말아 겨우 속을 달래는 저녁을 먹게 되였으니
아들의 심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음부터 엄마 오면 물과 밥만 줄거야 제사때도 물과 밥만 얹어놓을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내 속이 우선 반란을 일으키는데 어쩌겠어
식탁을 물리고 남편은 또 들어가 한숨 자고
나와 아들과 며느리 셋이 앉아 영화를 보다가 잠들고는 새벽
지리산 귀농 그 이후 처음으로 시댁에 차례를 모시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우선 오류동에 사시는 큰댁에 들려
조부모님 차례를 모시고는 또 다시 인천으로
얼마전 세상을 떠나신 시어머님과 시아버님 차례를 인천 형님댁에서 모신다
그리고 남편의 고향 파주 금촌
들려 시아버님 산소 성묘하고는
연천으로 전곡으로 포천으로 현리로 청평으로 홍천으로 돌고 돌아
강원도 한계령 도착
이 얼마만인가
예전에는 참 자주 찾던 설악산 한계령
역시나 묵묵히 그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한계령의 바위들이 사뭇 웅장하다
지리산은 어머니 산이요 설악산은 아버지 산이란 말이 실감난다
한계령 휴게소에는 많은 행락인파들로 북적거리고
주차할공간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예전에는 표지석에 한계령이라고 쓰여 있었던것 같은데
이제보니 오색령이다
설악산 아래 오색약수의 이름을 땄는가 나름의 생각이다
설악산에는 벌써 조금씩 단풍 들기 시작한다
한계령을 내려와
화진포로 갈까 아니면 7번국도 따라 남으로 갈까 의견분분하다가
산청으로 갈것을 생각해 남으로 가자 합의
주문진에 가서 킹크렙으로 저녁을 먹고
숙소를 잡으려 하는데 이른 시간임에도 숙소가 없다
요즘 명절엔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고스톱 치며 노는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가보다
주문진항 가득 메운 인파들
엉켜버렸다
모텔은 이미 만원사례 하느수 없이 오늘밤 잠자리를 호사를 누리게 되였다
결국 호텔에서 하룻밤 잠자리값으로 거한 투자를 하게 된것이다
해안도로 따라 남으로 가는데
집집마다 곰치국 간판이다
곰치가 당체 무어람 호기심에 우리도 아침으로 곰치해장국을 주문하여 맛 본다
에이 이게 뭔 맛이람
이빨 없는 노인분들 먹기 좋겠다
살을 젖가락을 발려먹는것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떠서 입안에 넣으면 씹을 필요없이 그대로 목구멍행이다
그래도 국물은 시원하다 아마도 콩나물덕분인것 같다
사람들 차량들 북적거리는것이 싫어
경포대 패스 정동진 패스
그리고 바닷길 따라 가니 통일공원이 보인다
함대를 인양하여 육지에 올려놓고
실내는 해군들의 역사와 해군들의 배생활들을 각 방마다 전시해놓았다
나의 제부 신서방과 나의 아들이 해군출신이라 그러한가
더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우리나라 6.25동란에도 참여했다는 미국에서 1924년도 건조 1999년까지 전투함으로 사용하였으며
1972년 한국에 인수된것이라 한다
2009년 9월 27일 북한주민 11명이 타고
동해상 공해를 경유하여 나흘 동안 황해끝에 10월 1일 강능시 주문진 인근해상으로
귀순하였다는 목선
한때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기억이 가물거리듯 피여오른다
북한의 무장잠수함
우리나라에 침투하기 위하여 바닷속을 숨어 왔다란것
잠수함의 내부를 공개하여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들어가 볼 수 있었던 북한의 잠수함
당시 파손된 흔적
그리고 기밀문서를 없애기 위해 내부를 불 태워버린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잠수함의 내부를 한 바퀴 돌아나오며
그 언제인가 강원도 갔을 때
무장간첩 잡는다고 검문이 사뭇 심했던 기억이 난다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또 출출해지는 배
바닷길 따라 회를 포장한다
매운탕거리도 달라고 하여
대형마트에 들려서 즉석으로 냄비와 휴대용가스렌지를 구입
한적한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저녁식사준비를 한다
매운탕이 끓는 사이
떠온 회와 함께 아뿔싸 두병이 족할 소주를 바닷바람을 안주 삼아 마시게 되니
그만 세병이다
기분 짱이다
식사를 마치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사이 어둠이 두꺼워진다
밤이다
바다와 함께 마신 술잔의 기운이 차고 넘치는 나는 담요위에 누워
조용조용 다가오는 파도소리에 귀를 닦는다
가슴을 적신다
남편은 곁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슬몃 지은 미소에 무엇을 담았을까
눈은 지긋이 수평선 끝간데를 바라보면서
어둠이 차고 넘칠때까지
몇몇 모래사장을 산책하던 이들 모두 떠날때까지
남편과 나는 행여 잠든 바다가 깨여날까
조용히 바다의 숨소리를 듣는다
산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여름 장맛비처럼 퍼붓는다
밋밋하고 재미 없는 고속도로를 피하여
남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다운 길 찾아
불영계곡을 지나 두타산을 지나 봉화까지 가는데
시골길이라 그러한가 비가 내려 그러한가
밥집마다 영업하지 않는다
하느수 없다
배는 고프고 비는 내리고
차의 시트를 모두 눞혀놓고
형한테 선물로 받은 햅쌀로 밥을 짓고
시누이한테 선물로 받은 김과 동네 작은 가게에서 구입한 고추참치로 반찬을 하여
아점을 먹게 되는 차 안
밖 비는 사정없이 퍼붓고
차안은 음악과 남편의 먹다 남은 닭 뜯는 소리만 들려오는 울진과 봉화의 경계선이 있는
어느 산길의 숲속
낭만의 여행
이 또한 추억이려니
내 늘 강조하는 말 중 하나 "추억이 없는 삶은 영혼이 없는거와 같다"라는 말을
남편에게 건네며 우린 참 영혼이 너무 많을거 같아
그럼 그럼 키득키득 웃는 남편
주섬주섬 밥 먹은 차안을 정리하고 또 다시 빗길을 달려
봉화를 지나 영주를 지나 거창을 지나 합천을 지나 산청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저녁
이렇게 하여 지리산 산청으로 귀농 그 이후
길고도 긴 추석연휴의 덕분으로 가장 긴 여행을 하게 된 2016년 추석명절
추억의 탑 한층 더 올렸으니
나이 먹어 추억의 탑을 한계단 두계단 밟아가는 낙으로 살아가겠지
첫댓글 드라마 한편 잘봤습니다~~
너무 길죠 ...한꺼번에 모든것을 보여주려니...
해군 내가 탄 군함은 915 인데
와우 한끝밭 차이네
그래도 제부와 내 아들이 해군출신인지라 섬세하게 봤지만
사진은 다 올릴 수 없음이 ....내 가슴에 내 눈에만 담아왔아요
다~ 잘 봤는데...
우리 나이에 "불륜" 이런 공부는 왜 필요할까나?
크으 우째 제목만 보고는..
그 안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야지요 그만한 연륜이 된것은 아닐까 싶은데
얼마전 산청 갔다왔지요
마석이 친정이군요
구리에 살고 있습니다
귀농귀촌 용기내어 산청까지
박수 보냅니다
아울러 두분이 오봇한 여행에
박수 보냅니다~
귀농한 모습 언제 답사가고 싶네요~
네 그러셨군요
마석 이제는 친정 여동생만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이미 타계하시고...
귀농이라기보다는 아직 농사 특별하게 짓는거 없습니다
남편은 집 짓고 아내는 약초 뜯으며 살고 있습니다
약초 뜯는거 참 재미있죠
흙냄새 맡으면서..
저희도 더 나이 먹기전에 시골에 안착을 해야하는데
쉽지는 않네요
모처럼만의 일탈에 즐거우셨겠어요~~그립고 보고픈 이들과의 시간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