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4 내란가담 전 국군정보사령관 노상원 영상
12·3 비상계엄의 ‘비선 핵심’으로 급부상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 국군정보사령관인 노상원은 육사 41기로 정보사 요원들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입 등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육사 38기) 육사3년후배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계엄을 사전 모의·기획한 혐의 등으로 전 국군정보사령관 노상원이 내란사범으로 구속되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정보사에서 선관위 직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케이블타이와 포승줄, 안대, 야구방망이, 송곳과 망치 등을 사전에 미리 준비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비상계엄 2주 전인 지난해 11월 20일 인터넷으로 작두를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작두가 뭐여.
작두는 곡물과 견과류를 탈곡, 절단하는 농업용 농기구이다. 칼날이 몸통에 붙어있는 형태이다.
작두란 두꺼운 짚더미나 한약재처럼 일반적인 가위나 칼로는 자르기 힘든 물건을 쉽게 자르기 위한 도구이다.
작두는 사형수의 사형을 집행하던 기구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고대 중국의 당, 송나라의 작두이며, 포증의 손잡이 끝에 용, 봉황, 호랑이, 개 머리 모양으로 장식한 작두가 유명했다.
작두를 어디에 쓰려고 구입했는지 소름이 끼치는구먼.
내란이 성공했다면 체포된 사람들은 어찌되얐을까?
JTBC 1/4 뉴스룸 동영상을 보고 현실을 직시하며 내란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염원하나이다.
☞노상원의 약력
-나이 : 1962년생 (만 62세)
-학력 : 육군사관학교 41기
-계급 : 예비역 소장(2성 장군으로 전역)
국군정보사령관
육군정보학교장
-출생:충청남도 서천군
☞노상원의 생애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출생하여 서천초등학교 서천중학교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81년 육군사관학교(41기)에 수석입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서천의 수재로 이름을 날렸고, 형제들은 모두 대기업 중역, 변호사 같이 성공한 가정 출신이라고 한다. 부모님은 여관업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령 때 정보 병과로 전환했으며 국가정보원과 청와대로 파견 근무를 거쳤다. 2012년 준장으로 진급하였고 준장 시절 1년간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경호실에서 군사관리관으로 1년간 파견 근무이후, 정보사령관에 취임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어떠한 공직도 맡은 적이 없고 언론에도 나온 적이 없으나,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이후 그의 영향력이 드러나면서 비선실세가 아니었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정보사령부의 OB에 해당하며,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의 최측근으로서 계엄령 초안 작성 등 예비역 민간인 신분임에도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의 핵심 수뇌부 역할을 수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노상원 여군 성추행 사건으로 전역
1. 식당 안에서의 추행
피고인은 2018. 10. 1. F시 G읍 H대로 8809번길에 있는 ‘I참치’에서 피해자와 술을 마시던 중, 피해자를 강제추행하기로 마음먹고,
가. 같은 날 20:25경 왼편에 앉아 있는 피해자에게 자신의 무릎 위에 앉으라고 말하여 피해자가 거절하자, 갑자기 피해자의 허리부분을 양손으로 잡고 피해자를 들어 자신의 왼쪽 무릎 위에 앉히고, 피해자의 상체를 오른쪽으로 돌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상태에서, 양팔로 피해자를 감싸 안은 뒤, 피해자의 양팔, 머리, 어깨를 만지는 등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군인인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고,
나. 같은 날 20:40경 화장실에 다녀온 피해자가 서서 ‘부대에 일이 생겨 가야할 것 같다’고 말하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하며 갑자기 피해자를 끌어 당겨 왼손으로 피해자의 어깨와 팔을 더듬고, 오른손으로 피해자의 가슴을 옷 위로 만지는 동시에 피해자의 입속에 혀를 넣어 키스하는 등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군인인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고,
다. 같은 날 20:55경 화장실에 갔다 온 피해자를 다시 제1의 가항과 같이 무릎 위에 앉힌 뒤, 피해자의 가슴을 옷 위로 만지다가 피해자의 목 부분을 통해 상의와 속옷 안으로 손을 넣어 피해자의 왼쪽 가슴을 움켜쥐고 엄지와 검지 사이에 피해자의 유두를 끼고 만지작거리는 동시에 피해자의 입속에 혀를 넣어 키스하는 등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군인인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였다.
2. 차량 안에서의 추행
피고인은 같은 날 21:00경, 위 ‘I참치’에서 나와 자신의 전속부관(G)이 운전하는 차량 을 타고 피해자와 같이 피해자의 부대로 복귀하던 중, 피해자를 강제추행하기로 마음 먹고, 갑자기 자신의 왼편에 앉아있는 피해자의 오른손을 왼손으로 포갠 뒤, 부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잡고 있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군인인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였다.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 2018. 12. 06. 선고 [군인등강제추행]
2018년 10월 1일에 육군정보학교장 시절 교육생 부하 여군을 식당에서 성추행한 혐의로 보직해임되었다. 이후 구속되었으며 2018년 12월 6일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 3년,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심 선고 이후 항소했으며, 2019년 3월 19일 고등군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피해자 측에서 제출한 처벌불원서가 감형의 이유로 추정된다.
장성급 장교 사이에서도 그가 부대 내 여군 교육생들에게 자꾸 집적댄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며, 결국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정식으로 기사화된 바 없으나 단순 성추행이 아니라 성폭행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며 이러한 주장을 트위터에서 폭로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만 공공장소인 식당에서 강간을 저질렀다가는 바로 제지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해당 주장의 신빙성이 높지않다
성폭력 전과가 없고 직업에 따른 불이익이 크다는 이유로 성범죄자 공개 및 고지 명령은 면제되었다. '좌파정권의 찍어내기 때문에 군에서 쫓겨났다'고 본인이 말하고 다녔다는 주장이 있다. 다만, 당시 미투 운동으로 안희정, 오거돈 등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더 많이 처벌받거나 낙마했다. 오히려 초급간부 시절부터 사고 친 것을 육사 출신의 윗선에서 여러번 무마해준 것에 익숙해져서 자신이 "좌파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았다고 인지하고 있다.
☛무속인행보
노상원은 대위 시절부터 육사 후배들에게 손금을 봐주겠다고 한 적이 있고, 소령 시절에는 대대 지통실에 수암선생실이라는 밀실을 만들어 그곳에서 무언가를 공부했다는 행적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무속에 심취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추행 사건으로 불명예 전역을 당했기 때문에 군인연금 등 전역군인이 받을 수 있는 각종 혜택도 박탈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로 인한 생활고 탓인지 전역 후에는 아기보살이라는 안산의 점집에서 일했다고 한다. 심지어 동료 무속인은 노상원을 영적인 기운이 있는 보살님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구더기를 먹여 키운 닭인 "뱀닭"을 팔았다는 보도도 있다. 군인맥을 이용해 군관련 부업도 했고,중국제 군용 드론 중계상 노릇도 했다고 한다.
롯데리아 안산 상록수점에서 계엄모의를 한 이유가 노상원 자택에서 가깝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불명예전역 후 무속인을 만나 동거, 동업하며 무속인의 바라지로 살아왔다고 한다. 제보에 따르면 무속인 아기보살의 당집에 부속되어 일하는 역술인으로 사주를 봐주거나 시골 지역에 출장 사주 활동을 다니기도 하며, 점집의 주인인 무속인이 굿이나 무속 활동을 할 때 뒤에서 보조하거나 평소에 도와주는 바라지일까지 겸한 것으로 해석된다.
자택으로 등록된 거주지가 바로 이 무속인의 점집으로 계엄이 선포된 12월 3일에도 노상원이 자택에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노상원은 정보사에 재직 중일 때도 10여년간 사주 명리학을 공부하였으며 그러한 인연으로 무속인과 함께하게 된 것이라 한다. 이웃 주민들은 노상원도 남성무속인으로 여겨왔으며 "유난히 고급 차량이 노상원의 자택을 찾아오기도 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다"고 제보하였다.
주변의 시선과는 별개로 신내림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진 것이 없기에 무속인이 아니라 '자칭 역술가'로 보아야 할 듯하다. 사주 명리학에도 전문교육기관의 학위가 있어서 함부로 독학했다고 사칭하는 것을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 공식 인증기관이 아닌 산발적인 민간단체이긴 하나, 상황에 따라선 특정 기관의 수료 여부가 활동의 명분을 부여하는 데에 일부 영향을 줄 수 있다. 교육기관이 없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역술을 보아온 베테랑 역술인들의 경우 오랜 경력과 역량으로 오히려 학위 없이도 교육기관에 초빙되어 강의를 맡기도 하여 이러한 조건들로부터 자유롭지만 군 정보사에 재직하며 알음알음 독학했다, 특히 본인이 부정한 행위들로 파면당한 자다, 이러한 조건들까지 겹쳐 노상원이 역술가로서의 경력과 역량에 권위를 지녔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위치의 노상원이 무속인들의 주변에 머물며 그 주변 일을 돌봐주어온 것 또한 그가 정식 역술가나 무속인이 아니더라도 무속적인 삶의 행보를 살아온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주변에 여러 무속인들을 가까이 두어 주술로 신성한 민주주의 정치를 농단하고 무당의 신점 사주로 인사권 전횡까지 일삼았다던 윤석열, 김건희 부부가 위헌적 계엄을 시도하며 활용한 블랙요원이 또 무속인이라는 데에 많은 국민들이 충격과 허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2년 전 노상원의 점집을 방문했던 한 손님은 "저를 꿰뚫는 느낌이었다. 제 친구도 같이 봤는데 곧잘 맞히시더라. 말하지 않아도 거의 맞히셔서 용하긴 했다"라면서도 "뭔가 기분이 찜찜하고 신점이라는 것을 다신 보고 싶지 않아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노 전 사령관에게 신점을 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방송 직후 자택 겸 점집의 간판 및 주소판을 제거했다.
계엄 두세 달 전쯤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운이 트이니까 이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고, 김 장관이 이를 듣고 기뻐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에 운이 있다는 이유로 계엄을 일으킬 날을 12월 3일로 택한 게 노상원의 말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고 한다.
노상원은 경찰 조사에서 "윤 대통령 사주팔자, 관상을 근거로 조언했다"고 진술했으며, 경찰 수사관들에게 "관상이 좋다", "당신 이름이 뭐냐"고 물어 수사관의 관상ㆍ사주를 파악하려 했다고 한다.
노상원이 자신의 연고지인 충청남도 서천군에 사주 강의를 다녔다거나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에 거주하는 무속인을 30여차례 만나 신점 사주나 추진 중인 계획(계엄 및 군사내란)의 성사를 물어보았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해당 무속인은 노상원이 김용현의 사진과 사주를 가지고 "나를 배신하지는 않겠느냐"고 물어보았다고 하며, "대통령실로 발령받을 기회가 생겼는데 성사되겠느냐, 대통령과 함께 일을 준비하고 있는데 길흉과 성사가 어떻게 되느냐"를 물어보았다고 한다. 무속인은 "대통령이 임기를 1년 앞두고 탄핵될 것"이라 답했는데 노상원은 "우리들이 준비하고 있는 (계엄) 계획이 탄탄하게 추진되고 있어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JTBC SBS MBC 이때 "윤석열의 실제 생년월일은 알려진 날과 다르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정보사령부에 재직 중일 당시에도 자신의 운전병에게까지 생년월일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운전병의 사주, 관상을 맞추어 보고 자신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다른 운전병으로 교체하였다고.
롯데리아에서 반복적인 계엄 모의 회동을 가지고 무속적 행보를 밟아 온 까닭에 누리꾼들과 언론으로부터 버거보살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나무위키===
내란수괴 윤석열
고무호스로 맞아가며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어린시절, 9수까지 하며 소중한 젊은 시간을 10년 넘게 낭비하며 사회와 격리돼 보낸 청년시절, 그 시대 검사까지 되고서도 정상적인 집안의, 정상적인 여성과 결혼조차 하지 못한 윤석열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뽑아 결국 쿠테타의 사고를 쳐 살패하였다.
조선시대에 내란에 실패하면 삼족이 멸문을 당하였지.
내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목숨을 내놓고 하는것이여.
내란에 실패한 윤석열은 내란수괴로 목숨을 내 놓아야지요.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 윤석열 인생 끝났다.
1/4 쌀살한 날씨에 전주수목원에 다녀왔다.
많은 수목과 꽃은 낙엽이 되어 구경꺼리는 없고 을씨년 스러웠도다.
차거운 날씨에 간간이 가족과 수목원에 구경나온 사람들이 눈에 띠었으며, 엄동설한에 수목원 생태계가 볼꺼리는 없어도 집에 가만히 있는것보다 바깥나들이는 기분이 좋았지요.
춥다고 집에 쳐 박혀 있으면 우울증 생길라 활동합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