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高高한 사람, 아니고 그냥 사람
팔은 저때가 더 굵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때의 반정도의 힘으로도 더 잘 움직일 수 있다.
근무하던 영상프러덕션이 홍대쪽에 있는 관계로 처음에는 홍대에서 체육관을 알아보게 되었다.
주짓수를 했던 경험으로 알게된 나의 저질 운동센스 때문에 복싱이나 MMA 같은 서양식 격투스포츠는
아예 엄두를 못내서 동양무술을 검색해보니 대략 극진가라데, 영춘권, 아이키도 등이 나왔다.
극진가라데나 영춘권은 중국 남파권법(외가권)의 영향권에 있는 무술이라 나같은 허약체질에는 아무래도
무리고, 아이키도는 중국 팔괘장 스타일의 중국 북파권법(내가권)에 가까워서 태극권을 배웠던 나에게
적합한 듯 보였으나 제대로 하는건 하나도 없으면서 무술목록만 늘려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운동 안하는 시간은 늘어만 갔다.
나는 몸짱이나 힘짱이나 쌈짱이나 (물론 여전히 로망은 있다 ^^;;) 이런것 보단 그저 잘 움직이고 싶었다.
특히 프랑스의 현대무용가들을 촬영하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작업은 우리나라 현대무용가들을 위한
워크샵의 사진촬영이었는데, 내 형편없는 영어실력으로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태극권을 배우던
가락으로 보니 지적하는 것이 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나라 무용수들의 손끝의 움직임을 지적하면서
팔만 움직이지 말고 골반에서 등으로 어깨로 팔로 손끝으로 몸 전체가 움직여야 한다고 끊임없이 지적했다.
그리고 몇가지 동작의 시범을 보였는데 내가 그토록 설명하고 싶었던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움직임이 마치 공중에서 실로 매어 들어 올리는 것 같았다. 중력과 싸우지 않는 움직임.
아~ 나도 저렇게 움직이고 싶다. 이렇게 생각했던거 같다.
중력, 전신운동 이런 키워드로 찾아낸 운동이 스포츠 클라이밍이었다. 이쯤에서 웃는 분 나오실 거다.
빡센 운동은 못하겠다며 영춘권도 도리도리하는 주제에 스포츠 클라이밍이라니. 하지만 신문기사에
"초보자도 수업만 충실히 따라하면 어느새 강인한 클라이머가 되어 있다"고 해서 난 믿었을 뿐이다.
하지만 초보자도 초보자 나름이고 스포츠클라이밍은 체력을 키워주는 운동이 아니라 체력이 있어야
하는 운동이라는 걸 한참이나 뒤에 알게 되었다.
하여간 온갖 조사 끝에 찾아간 곳은 구로 매드짐(http://cafe.naver.com/sportclimbing/) 이었다.
혹시 스포츠 클라이밍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 추천하는 체육관이다. 노스페이스 선수 출신이신
여자 선생님이 가르치시는데 실력이 좋으시고, 체육관이 지상에 있어서 채광과 통풍이 정말 괜찮다.
(대부분의 스포츠 클라이밍 체육관은 지하에 있어서 좀 답답하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정말 재밌었다. 일단 사지를 공중에 강제로 띄어놓기 때문에 어느 정도
코어 사용을 강제하는 측면이 있어서 운동효과가 좋고, 루트라고 불리는 바른 길을 찾는 게 꼭
퍼즐을 푸는 것 같아서 지루하지도 않다. 게다가 난이도라는 것이 있어서 실력에 맞춰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었다.
너무 재밌어서 난 정말 스포츠 클라이밍을 평생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에 재밌기만 한 것은
없다는게 진리라... 초보레벨을 서서히 벗어나면서 저질운동센스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나보다 힘이 약한 여자들도 가는 코스를 전혀 갈 수가 없었다. 못가는건 둘째고 너무 빨리 지쳐서
중급수업은 수업 중간이 되면 거의 움직이지 못 할 정도였다.
여자들은 근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초보때부터 몸 전체의 밸런스를 유지하며 움직이는데 익숙하다.
따라서 중급이 되도 특별히 움직임의 체계를 바꿀 필요가 없고 초보시절을 보내며 어느 정도
근력도 생겨서 오히려 중급레벨에 쉽게 적응한다.
하지만 나처럼 어중간한 근력의 남자는 초보때 힘으로 처리하던 버릇이 있어서 중급이 되면
바로 벽에 부딪힌다. 힘으로 해결이 안되는 홀드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움직임의 체계를
싹바꿔야 되는데 여기서 운동센스가 필요하게 된다. 운동센스가!!!
힘이 무지막지하게 좋은 남자들은 상급 정도 되야 몸 전체를 쓰기 시작하고, 일반적인
남자들은 중급때부터 몸 전체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같은 사람은 중급부터 진퇴양난에
빠진다. 힘으로 해결하자니 타고난 힘이 없고 몸 전체를 이용하자니 센스가 없다.
게다가 힘으로 해결하는 경우 발생하는 문제는 부상이다. 손가락에 많은 하중이 걸리기
때문에 손가락 관절이 안아픈 날이 없다. 건강하자고 시작한 운동인데 병원 다니며
운동하러 온다. 고급자도 마찬가지다. 타고난 센스가 있으니 몸 전체를 사용한다는 개념이
자연적으로 자리잡고는 있지만 의식적 단련을 하지 않는 경우 몇몇 난코스에서는 결국 힘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결국 한두개의 부상은 늘 달고 있게 된다.
이쯤되자 태극권, 요가 수업에서 배웠던 것들은 머리에서 어느새 떠나버리고 다시 일반적인
체력훈련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당시 체육관에서 요가와 체력훈련하는 날이 따로 있었는데
요가는 스트레칭 개념으로 접근하는 스타일이었고, 체력훈련은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턱걸이 같은 걸 지칠 때까지 많이 하는 워크아웃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었다.
앞의 글에서도 누누이 얘기 했지만 어느 정도 타고난 사람들은 이런 막무가내 운동을 통해서도
계속 강해진다. 하지만 나처럼 몸의 수직과 수평이 이미 맞지 않는 상태에 타고난 센스도 없는
경우 이런 운동을 하면 팔 조금 굵어지고 몸은 백만배쯤 피곤해질 뿐이다.
사실 체육관의 선생님들은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보통 날때부터 잘하는 사람들이 체육관이란걸 한다.
그리고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이 체육관에 온다. 처음에는 못해도 계속 하면 서툴게나마 따라한다.
어느 정도 따라할 수 있으니 계속 시키면 된다. 100번 해도 안되면 200번 시키고 200번 해도 안되면
400번 시키고 그렇게 계속 시킨다. 계속 해보다 안되는 곳이 나오면 그게 재능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직업으로 할 것도 아닌데 운동 안하는 일반인보다 잘하면 되는 거고 즐거우면 된다.
처음에도 못하고 계속해도 못하는 나같은 사람은 결국 그냥 조용히 체육관에서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체육관에는 근본적 문제를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움직임을 천재처럼 움직이고 싶은게 아니었다. 그리고 무조건 많이 해보면 좋아질거라는
대답을 듣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단 하나의 움직임이라도 천재처럼 움직이고 싶었고, 내가
그렇게 움직이지 못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듣고 싶었다.
스포츠 클라이밍의 진도를 계속 나가기 위해서는 해결책이 필요했다. 일단 손가락도 계속 아팠고
발레화 같은 클라이밍화 때문에 (클라이밍화는 평소 사이즈보다 한 사이즈 작게 신어야 한다)
발가락도 좋지 않았다.
이때부터 운동관련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케틀벨 퀵 리절트"를 만나게 된다.
첫댓글 앗! 드디어...
빠른연재 좋아요bb
오 적절한 타이밍에 끊어주시네요..ㅠㅠ
아 좋습니다!!^^
40대로써 응원합니다.
저도 클라이밍에 무척 관심이 많습니다. 저는 케틀벨을 배우면서 반대로 클라이밍쪽으로 가고 있는데, 이 글 덕분에 더 흥미를 갖게 됐습니다. ㅎㅎㅎ
편집 구성 별다섯개 드립니다~
글 정말 재밌고 잘쓰시네요. 강추 연재네요... 끝난게 아쉬운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