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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날(The Lord's Day)에 대한 연구 리차드 보캄 | 영국 세인트 앤드류대학교 신약학 교수 "주의 날"(Lord's Day, kuriake hemera)이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는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단 한번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기독교의 일요일 예배의 기원과 그 의미에 대해 고려할 때 반드시 다룰 수밖에 없는 중요한 표현이다. 이 글의 처음 두 장에서 우리는 이 표현 그 자체의 의미를 분명히 밝힐 것이다. 세 번째 장에서는 요한계시록 1장 10절 이전의 시기에 드려졌던 일요일 예배에 대한 몇 가지 이론들과 그 증거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장에서는 요한계시록 1장 10절의 문맥이 우리가 기독교의 일요일에 대해 이해하는 데 어떤 빛을 던져 주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1. 퀴리아코스(kuriakos, '주께 속한')의 용법 그 동안 퀴리아케 헤메라(kuriake hemera)에 대한 연구들이 수없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오해를 피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kuriakos라는 단어의 용법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단어는 칠십인경에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유대교 문헌에서도 이 표현에 대한 어떤 힌트나 암시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세속 헬라 문헌들과 신약성경, 2세기 기독교 문헌들, 그리고 이 말을 가장 먼저 폭넓게 사용하기 시작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의 글들에서 이 말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1 세속 헬라 문헌이 말은 파피루스와 비명(inscriptions)에서만 발견된다. 그래서 한 때 학자들은 바울이나 초대 교회가 이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비록 고린도전서 11장 20절이 이 단어가 언급된 가장 최초의 본문이기는 하지만, AD 68년에 처음으로 발견되는 세속적인 용법이 기독교에서 유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집트와 소아시아에서 발견되는 거의 모든 용례들은 황제의 통치, 특별히 재정과 연관된 것들이다. kuriakos는 phiskos나 psephos, logos, chrema, hupersia 등의 명사들과 함께 '황제의'(imperial)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리델과 스코트(Liddell and Scott)는 ho kuriakos가 '마술을 통해 불러내진 혼'(spirit invoked in magic)을 의미하는 경우와 kuriakos가 황제보다는 통상적인 의미의 주인을 가리키는 경우(AD 137년) 또한 언급한다. 그러나 세속 헬라 문헌에서 이 단어가 황제를 가리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흔하게 사용되지는 않았다는 점은 명백하다. 신약 성경kuriakos는 고린도전서 11장 20절과 요한계시록 1장 10절, 이 두 구절에서만 사용된다. 2세기 기독교 문헌kuriake hemera나 kuriake라는 표현은 2세기 기독교 문헌중에서 Didache 14:1; Ignatius, Magn. 9:1 ; Gospel of Peter 35, 50 등 총 열 세 구절에서 '주의 날'(The Lord's Day)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라틴어 번역만 남아 있는 이레니우스(Irenaeus), Haer.의 몇몇 구절에서 dominicus는 scripturae, scriptura, ministeria, argentum, bona, passio와 같은 명사들과 함께 사용되었다.2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kuriake hemera가 두 번 사용된다: Str. 5:14; 7:12 (PG 9:161A, 504C). 클레멘트는 또한 kuriakos라는 말을 24가지 명사들과 함께 28번 사용한다. 이와 같은 다양한 용법들로 미루어 볼 때, kuriakos는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사용되는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구로 사용되는 (tou) kuriou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kuriakos는 어떤 한 가지 용법에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레니우스와 클레멘트는 분명 kuriakos와 (tou) kuriou라는 말을 상호교환가능한 방식으로(interchangeably), 거의 그 차이를 말하기가 어려울 만큼 유사한 의미로3 사용하고 있다. 이레니우스와 클레멘트 때에 와서 kuriake (hemera), '주의 날'과 kuriakai graphai, '주의 성경', 이 두 표현만이 전문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 같다. 후자는 이레니우스와 클레멘트에게서 각각 세 번씩 발견되고,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에게서도 발견된다. 이레니우스나 클레멘트 모두 graphai (tou) kuriou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한편, kuriakon deipnon('주의 성찬')은 널리 사용되는 보편적인 용어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교부들에게서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데, 고린도전서 11장 20절을 인용하거나 암시하는 정도로 그친다. kuriakos가 언급되는 또 다른 문헌인 파피아스의 kuriaka logia('주님의 말씀들')의 경우에서도 이 말은 전문적인 용어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증거들로 볼 때 우리는, 포어스터(W. Foerster)처럼 kuriakos는 (tou) kuriou와는 그 의미가 다르며, 이 말이 deipnon이나 hemera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에는 "예컨대 logos tou kuriou나 parousia tou kuriou에 비해 주님과의 연관성이 보다 간접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바울은 (tou) kuriou를 간접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말로 사용하지만(예, poterion, 고전 11:27), 파피아스는 kuriakos를 주님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표현하는 말(kuriaka logia)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레니우스 이전 문헌에서는 이 말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우리가 설명해야 할 중요한 것은 그 의미가 어떻게 확대되었느냐가 아니라 이 말이 어떻게 폭넓게 사용되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기 기독교 문헌에서 이 말이 그토록 늦게 기독교의 전문적인 용어로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말이 1, 2세기의 세속 헬라 문헌에서도 널리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 말은 오로지 두 영역, 곧 황제의 통치와 기독교 교회에 대해서만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각각의 경우에 이 말은 단수로서의 kurios('주')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kuriakos라는 형용사 형태는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kuriakos는, 초대 교회 저자들이 칠십인경에 이 말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고, 신약 성경에서도 이 말이 아주 드물게 사용된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던 탓에 언어학적 보수주의(linguistic conservatism)가 허용하는 한에서만 이 말의 사용을 확대해 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레니우스 이전에 kuriakos가 단 한 번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이와 같은 설명은 더 나아가 왜 이 말이 많은 구절들에서 kuriake hemera라는 문구 형태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설명해 준다. 이런 의미에서 이 용어는 그저 단순하게 hemera (tou) kuriou라는 말과 상호교환가능하게 사용되는 표현정도로만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에 걸쳐 확정된 용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후자는 종말론적인 주의 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사 초대교회 성도들이 매주의 첫 날(혹은 안식후 첫 날)을 그들의 주(kurios)의 이름을 본 따서 hemera (tou) kuriou라고 부르기를 원했다 하더라도, 종말론적인 주의 날로 오해될 소지가 많은 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일찍부터 kuriake hemera가 기독교의 일요일을 가리키는 전문적인 용어가 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kuriakos라는 말이 tou kuriou에 대한 동의어로 널리 사용되게 된 것은 아주 나중인 것에 반해, kuriake hemera는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hemera (tou) kuriou라는 표현에 대한 대안으로 보다 일찍부터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사실 나중에 kuriake라는 형용사만 가지고도 이 날을 명명할 수 있었던 것은 kuriake hemera라는 표현이 그만큼 오래 전부터 널리 사용된 때문이다. 종종 어떤 이들은 신약성경에서 kuriakos가 고린도전서 11장 20절과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만 나온다는 사실을 근거로 kuriakon deipnon과 kuriake hemera, 이 두 용어의 상관성에 대한 이론을 펼친다. 특별히 전자로부터 후자가 파생되었다고 보는 견해는 주의 날의 기원에 관한 로도프(W. Rordorf)의 논증에서 매우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역사적 증거의 측면에서 볼 때 이와 같은 견해는 신빙성이 별로 없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고려해야 한다: (1) 위에서 살펴본 kuriakos의 2세기 용법에 비추어 볼 때, 그 이전 시기 문헌에서 이 말이 그다지 자주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1세기 크리스천들이 이 말을 단지 위의 두 문구로만 제한하여 사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약 성경에서 kuriakos를 언급하는 두 구절은 이 용어의 매우 제한된 용법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여러 용법들 중에 우연히 성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2) 바울이 구약 성경을 인용하거나 (tou) kuriou를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말을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구로 사용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전서 11장 20절에서 kuriakos를 사용하는 것보다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3) 그렇다면 바울이 deipnon tou kuriou나 to kuriakon ergon이 아니라 kuriakon deipnon(고전 11:20)이나 to ergon tou kuriou(15:58; 16:10)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야말로 우연한 일이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0장 21절에서는 문체적인 이유, 곧 kuriou과 diamonion을 분명히 대비시키기 위해, 바울이 kuriakon poterion이나 kuriake trapeza라는 표현을 피했을 수 있다. (4) kuriakon deipnon이나 deipnon tou kuriou 모두 고린도전서 11장 20절의 경우를 제외하면 히폴리투스(Hippolytus, Apost. Trad. 26:5; cf. 27:1)4 이전의 기독교 문헌에는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이 말이 어떤 전문적인 표현으로 쓰이고 있는지(아마도 고린도인들은 단순히 to depnon이라고만 말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울 자신의 용어인지 아니면 고린도인들의 용어인지를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 말이 그 당시에 얼마나 폭넓게 사용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기가 어렵다. (5) 이교의 제사 음식과 주의 성찬을 의도적인 대조하고 있는 그 문맥을 살펴 볼 때, 신비 종교들에서 제의의 여러 요소들, 곧 성전이나 제사, 제사장, 예배자 등을 표현하고자 신의 이름에서 따온 형용사들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바울이나 고린도인들이 kuriakos를 그런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했을 수 있다. 비록 이와 같은 가능성은 하나의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만일 고린도인들이 기독교의 제의적 제사를 이를테면 Dionusiaskon deipnon과 구별시키려고 의도적으로 kuriakon deipnon이라는 말을 선택했다고 한다면, 고린도전서 11장 20절의 의미가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관성은 후대의 저자들이 특별히 기독교의 제의적인 성찬에 대한 이교도들의 비방으로 인해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을 때 왜 이 표현을 포기하거나 피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줄 수 있다. (6)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kuriakon deipnon의 사용과 요한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kuriake hemera를 사용한 때 사이에는 40년이라는 시간적인 간격이 있다. 어떤 날의 이름이 성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을 펼 수 있기 위해서는 kuriakon deipnon이라는 용어가 그 40년의 기간 동안 계속해서 사용되었고, 지리적으로 볼 때 소아시아와 시 리아에 있는 교회들에서도 keruake hemera라는 용어가 바로 이 말에서 유래할 수 있을 만큼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증거를 찾아야만 한다. 고린도전서 11장 20절의 kuriake hemera라는 드문 표현보다는 주의 성찬에 대한 다른 용어들(eucharistia과 agape)이 시기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볼 때 도미티안 치하의 소아시아 교회들에 훨씬 더 가깝다. 그러므로 로도프의 이론은, 전적으로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입증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kuriake hemera를 단순히 '주의 성찬의 날'의 축약형으로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그 어떤 증거도 찾아볼 수 없다. 정확하게 어떤 의미에서 1세기 후반의 크리스천들이 '주의 날'(the Lord's Day)이라는 말을 '주의'(the Lord's)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는지가 그 이름 자체만 가지고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이 어느 정도는 이 말들을 그런 식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2. 퀴리아케 헤메라(kuriake hemera, '주의 날')라는 용어 요한계시록 1장 10절의 kuriake hemera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4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 종말론적인 주의 날; (2) 안식일(토요일); (3) 부활절; (4) 일요일. 처음의 두 해석은 kuriake라는 말이 위에서 인용한 2세기 문헌에서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가정한다. 세 번째 해석은 kuriake라는 말이 2세기 문헌들에서 어떤 때는 부활절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고, 또 어떤 때는 일요일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고 가정한다. 2세기 문헌들이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나오는 kuriake의 의미를 확정짓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2세기의 문헌들의 증거는 분명 우리의 논의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증거들을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Didache 14:1 'Kata kuriaken de kuriou'종종 "주님의 날에"라고 번역되는 이 표현에 대해 배치오치(Bacchiocchi)는 여기서 암시된 명사는 hemera('날')가 아니라 didache('가르침')이며 따라서 이 구절은 "주님의 주권적인 가르침을 따라"(according to the sovereign doctrine of the Lord)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티바웃(J. B. Thibaut)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디다케의 독자들이 didachen을 넣어서 읽었을 것인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kuriake('주의')의 수식을 받는 명사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또 다른 경우에 그 암시된 명사가 다름 아닌 hemera('날')이기 때문이다. Apostolic Constitutions(7:30:1)도 이와 같은 식으로 해석한다. 더욱이 티바웃의 제안은 그 뒤에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kuriou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오데(J.-P. Audet)는 kuriaken이 원래 본문에 있던 hemeran대신 나중에 설명구로 삽입되었다고 보고, 이 구절을 kath' hemeran de kuriou로 수정한다. 이 제안은, hemera kuriou가 다른 모든 곳에서 종말론적인 주의 날보다 예배의 날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면 매력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만일 kuriou라는 중복적인 표현이, 로도프가 제안하듯 그 날의 장엄함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라고 한다면, 이 구절에서 kuriake가 이미 주 예수를 지칭하는 의미가 퇴색된 하나의 상투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주님이 친히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비록 그 문맥으로 볼 때 교회에서 매주 일정한 날에 규칙적으로 예배가 드려졌음을 알 수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로도프처럼 kuriake는 "부활의 일요일을 가리키고 있음에 분명하다"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그나티우스(Ignatius), Magnesians 9:1"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따라 산다(meketi sabbatizontes alla kata kuriaken zontes). 그리고 우리의 생명 역시 바로 이 날에(en he) 그를 통해, 그의 죽음을 통해 온다(aneteilen)."그 동안 이 구절의 텍스트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헬라어 사본에서 이 구절은 kata kuriaken zoen zontes로 되어 있는데, 이는 "주님의 생명을 따라 산다"라고 번역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라틴어 텍스트(secundum dominicam)를 따라 zoen을 생략하고 "주의 날을 따라 산다"로 번역한다. zoen을 텍스트에 포함시키려 할 때 직면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그 다음 구절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구절은, 그 의미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크리스천들이 일요일에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직역: 올라오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여기서 죽은 자가 일어나는 것보다는 천체들이 올라가는 것을 가리키는 aneteilen이라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이미 이그나티우스가 이교도들이 일요일을 명명하는 이름, 곧 "해의 날"을 염두에 두고서 일요일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해가 올라오는 것과 비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그나티우스가 주의 날을 직접 보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희박한 구약의 선지자들을 이 문장의 주어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떤 주석가들은 이 문장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유대인 개종자들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이 문장이 선지자들을 가리킨다고 해도, 이그나티우스가 구약의 선지자들이 안식일을 지킨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들이 유대교의 전통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에 얻을 수 있게 된 새 생명의 소망가운데 살았다는 것을 의미했는지도 모른다. 이그나티우스는 안식일과 일요일, 이 두 날을 서로 대조하기보다 두 가지 생활 방식, 곧 "안식일을 지키는 것"(다시 말해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따라 사는 것)과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따라 사는 것"을 대조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이그나티우스가 유대교를 특징지우는 안식일과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누리는 새 생명을 상징하는 부활의 날을 기념하는 새 날, 이 두 날 사이의 대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가장 쉽게 설명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kuriake가 부활의 일요일이 아니라 매주의 일요일을 의미한다는 것을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 강조점이 생활 방식에 있으므로 이그나티우스가 매주의 안식일을 폐하기 위해 기독교가 매주 모여서 예배하는 날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5 동시에 우리는 마치 이그나티우스가 매주의 기념보다는 매년의 기념을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처럼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언급만 가지고 부활절을 말해서도 안된다. Gospel of Peter 35, 50여기서 he kuriake는 복음서의 부활 기사에서 사용되던 mia (ton) sabbaton('안식 후 첫 날')이라는 표현 대신에 사용된 것이다. 우리는 kuriake가 어떤 날을 가리키는 전문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구절만 가지고는 이 말이 일요일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부활절을 가리키는지에 대해 최종적인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2세기 후반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 주교가 로마의 소테르(Soter) 주교에서 보내는 서신에서(약 170년 경) 매주 드리는 일요일 예배에 대한 언급이 발견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분명하지는 않다: "오늘 우리는 주의 거룩한 날(kuriake hagia hemera)을 지키면서 당신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그러나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Acts of Peter(Act. Verc. 29)의 한 구절에서 dies dominica('주의 날')는 분명 '안식일 후 첫 날'과 동일시된다. 그리고 Acts of Paul은 사도들이 "주의 날을 바로 목전에 둔 날, 곧 안식일"에 기도했다고 묘사한다. 이 구절들 가운데 우리가 주의 날을 1년에 한번 있는 모임으로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Epistula Apostolorum 18(콥트어)은 그리스도께서 "나는 옥도아드(Ogdoad), 곧 주의 날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영지주의적 옥도아드를 주의 날과 동일시하는 예가 클레멘트에서 인용되는 발렌티니안의 글에서도 발견된다(Exc. ex. Theod. 63; "주의 날이라 불리는 옥도아드"). 반영지주의적인 색채가 두드러지는 Ep. App.는 그리스도께서 옥도아드에 존재하게 되셨다는 보다 명백한 영지주의적 개념에 대해 언급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제8일'에 부활하셨다는 것 또한 이차적으로 언급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옥도아드와 주의 날을 연계시키는 영지주의적인 개념은 기독교에서 kuriake가 일요일, 곧 '제8일'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로 사용했다는 것을 가정하지 않고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영지주의 저자들은 기독교가 제8일을 종말론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이 용법을 받아들여 이것을 옥도아드의 우주적 역할과 융화시켰음이 분명하다. 이 두 영지주의적인 용법의 예들은 2세기 후반에 kuriake가 일요일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으며, 더 나아가 kuriake의 이러한 용법이 심지어 이집트로까지 확산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보조 증거가 된다. kuriake hemera가 소아시아와 시리아에서 가장 먼저 사용된 것이 사실이지만, 2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이 표현(과 그 라틴어 동의어인 dies dominica)이 보다 기독교 세계 전역을 통해 매주 마다 예배하는 날에 대한 통상적인 명칭이 되었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일요일인가 부활절인가?그러므로 2세기 후반의 증거는 일관성을 띄고 있으며 전혀 애매모호하지 않다. 이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결론은 이 후대의 용법이 디다케(Dicache)나 이그나티우스, Gospel of Peter에서 발견되는 초기 용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기 문헌들에서도 kuriake는 일요일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초기 문헌들이 일요일이 아니라 부활절을 가리킨다는 견해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이들은 기독교가 매년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부활절은 지킨 것이 매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일요일을 지킨 것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며, 따라서 매주 모여 예배하는 일요일은 부활절을 지키던 것이 발전된 형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kuriake라는 이름도 원래는 부활절에만 적용되던 것인데 나중에는 일요일에까지 확대 적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몇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다. (1) 일요일을 kuriake로 불렀다는 분명한 증거들이 주로 2세기 후반 이후의 문헌들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부활절을 단순히 kuriake라고 불렀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2) 기독교의 일요일과 그 이름인 kuriake가 부활절 일요일(Easter Sunday)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만 있다면, 이 견해는 매우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2세기 크리스천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로마의 관습을 따라 일요일에 부활절을 기념했지만, 콰르토데시만이라고 불리는 이들(Quartodecimans; 라틴어 quartus deciman [14번째]에서 온 말)은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 니산월 14일에 부활절을 기념했다. 2세기 초반에 소아시아 지방에 있었던 교회들은 분명 콰르토데시만이었으며, 시리아에 있던 교회들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Didache와 Gospel of Peter, 이그나티우스의 마그네시아인들(Magnesians)에게 보내는 서신(계 1:10 또한)이 기록된 것은 바로 이 지역들에서다. (3) 부활절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매주의 일요일을 지키는 것보다 시기적으로 앞선다는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비록 학자들 사이에 콰르토데시만의 부활절 전통이 보다 오래된 것인지, 아니면 로마의 관습이 보다 오래된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유세비우스의 증거만 가지고는 부활의 일요일의 유래를 2세기 초반 그 이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매주 드리던 일요일 예배 역시 최소한 부활절 일요일보다 시기적으로 뒤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20장 7절의 증거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Barn. 15:9이 늦어도 2세기 초반의 증거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스틴이 First Apology(약 152년 경)에서 이제 막 시작된 관습을 기록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4) 이 견해는 어떻게 매주 지키는 절기가 매년 지키던 절기에서 유래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2세기 후반부터는 일요일이 각처에 있는 크리스천들이 매주 모여 예배하는 날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예배를 일요일에 드려야 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것과 모든 기독교권이 일요일을 예배의 날로 지켰다는 보편성 자체가 이와 같은 관습이 기독교의 초창기에 유래한 것임을 강력하게 지지해 준다. 이그나티우스와 저스틴 사이의 어떤 때에 시작된 관습이 그렇게 빨리, 그리고 에비온파의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일요일에 예배하지 않았던 기독교 그룹이 존재했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을 만큼 통일성을 띤 채 확산될 수 있었겠는가? 사실 부활절을 니산월 14일이 아니라 일요일에 지키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이미 교회의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던 일요일 예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개연성이 높다. 이제 우리는 Didache와 이그나티우스, Gospel of Peter에서 언급되는 kuriake가 적어도 시리아와 소아시아에서 상당히 널리 사용되고 있던, 기독교가 정기적으로 모여 예배하는 안식 후 첫 날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였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장 10절의 kuriake hemera 역시 일요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개연성이 훨씬 커졌다. 요한은, 그 당시 니산월 14일에 부활절을 지키는 콰르토데시만이었을 수도 있는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교회들에게, 그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편지를 썼다. 만일 요한이 도미티안 치하에서 그 교회들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면, 그는 이그나티우스가 똑같은 지방의 마그네시아인들(Magnesians)들에게 보내는 편지보다 약 20년 앞서 쓰고 있는 셈이다. 요한이 보다 일찍 편지를 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날을 지칭하는 똑같은 이름이 하나의 종교적 축제에서 다른 축제를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었다고 보기는 지극히 어렵다. 2세기 저자들은 하나같이 kuriake를 일요일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일요일인가 종말론적인 주의 날인가?아직 우리가 다루지 않은 한 가지 견해는 요한계시록의 kuriake hemera가 종말론적인 주의 날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요한은 환상을 받는 가운데 그 자신이 종말의 때로 인도되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배치오치(Bacchiocchi)가 이 견해를 지지하는 논증을 펼쳤지만,6 이와 같은 견해는 다음의 관찰들을 통해 반박될 수 있다. (1) 왜 요한은 여기서 다른 신약 성경 저자들처럼 hemera (tou) kuriou라는 칠십인경에도 언급되는 보다 보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가?7 이것은 요한이 kuriake hemera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이 말은 아직 안식 후 첫 날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결정적인 논증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요한의 용법이 독특하다는 것 자체가 이 말을 종말론적인 주의 날과 연관시키는 위의 견해에 대한 반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kuriakos는 통상적인 혹은 전문적인 문구들로만 제한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며, 위에서 살펴본 예들 중 다수가 사실은 독특한 경우들이기 때문이다. 요한이 kuriakos hemera라는 다소 생소한 문구를 사용한 것은, 아마도 요한 당시에 kuriakos라는 말이 "황제의"(imperial)라는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을 주목하고 워드플레이를 하려는 동기에서였을 수 있다. (2) 그러나 만일 kuriake hemera가 이미 일요일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면, 요한이 스스로 혼동하지 않은 다음에야 이 말을 종말론적인 의미로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Didache나 이그나티우스, Gospel of Peter에 나오는 kuriake의 용법은 이미 확정된 어떤 용법을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kuriake hemera라는 말이 도미티안 치하에서 이미 일요일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었을 개연성은 훨씬 커진다. 그리고 만일 요한이 훨씬 더 이른 시기에 요한계시록을 썼다고 한다면 위의 견해는 그다지 큰 설득력을 얻기 힘들 것이다. (3) 요한계시록의 문맥 역시 위의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 "주의 날"은 요한의 모든 예언들의 내용을 기술하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6장 17절과 16장 14절에는 요한이 "하나님의 큰 날"을 매우 제한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날은 세상에 대한 마지막 심판의 때를 가리키지, 그 날에 이르는 어떤 예비적인 심판을 가리키지 않는다. 일곱 교회가 처해 있던 그 당시 상황이나 21∼22장에 나오는 새 창조 그 어느 것도 이 용어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최후의 심판이라는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기록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분명하다. 오히려 그의 예언은 이 최후의 때를 지시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넘어가는 것 같다. 요한 자신이 환상이 바뀔 때마다 시간적인 관점의 전환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kuriake hemera가 가지는 종말론적이고도 반제국적인 함축을 무시할 필요는 없지만, 이 말이 일요일을 의미한다는 보는 것이 문맥적으로도 보다 설득력이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3. 주의 날과 부활 이제 매 주의 첫 날이 1세기에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정기적으로 공예배를 드리던 날이었음이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기독교의 일요일 준수의 기원을 찾기 위해 요한계시록 1장 10절보다 더 이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사도행전 20장 7절과 고린도전서 16장 2절은 아마도 바울의 교회들에서 일요일을 지켰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적으로 명백한 증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후기의 증거에 비추어 볼 때 이 구절들도 일요일 준수의 증거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요일에 모여 예배하는 이 관습의 기원은 어느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인가? 부활 기사 종교 개혁으로부터 수많은 저자들은 일요일에 모여 예배하는 관습이 시작된 유래를 예수님이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보이셨던 그 기간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 어떤 초기 문헌들도 이것을 명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kuriakos의 의미와 용법에 대해 논하면서 우리는 kuriake hemera가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주님이 정해 주신 날"을 의미했을 가능성은 배제한 바 있다. 우리의 역사적인 탐구가 초대 교회도 주장하지 않았던 일요일 예배의 권위를 세워 줄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이다.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기간에 주일을 지키는 관습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제시된다. 종종 어떤 이들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매주 일요일마다 모임을 가지도록 명령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약 성경의 부활 기사가 그러한 추측을 지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약성경에는 부활과 오순절 사이의 기간 동안 예수님이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혹은 개인적으로 열두 번 나타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부활하신 날에 네 번 내지 다섯 번 정도, 그 다음 날인 월요일에 한 번 나타나셨다(요 20:26). 특히 요한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어떤 날에 나타나셨는지에 대해 관심을 보인 유일한 신약 성경 저자로서 사도들이 부활하신 주님과 매주 일요일마다 모였던 그 모임과 주님이 그의 성령으로 임재해 계시는 후대의 교회에서 매주 일요일 모임 사이의 병행관계를 부각시키려고 의도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특별히 요한복음 21장이 그의 복음서의 원래 부분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을 근거로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단정적인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로도프(W. Rordorf)는 일요일을 지키는 관습의 기원을 예수님이 부활하여 자기를 나타내신 기간으로 돌리는 또 다른 형태의 논증을 제시한다. 그의 견해는 후대의 일요일에 있었던 사건들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바로 그 일요일에 있었던 사건들에 보다 많이 호소한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선대 해석자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8 일요일을 지키는 관습이 주의 성찬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확신은 그의 논증의 핵심을 형성한다. 로도프에 의하면, 초기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떡을 뗀다는 것은 "[제자들이] 실제로 부활하신 주님과 식탁 교제를 계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하신 일요일 저녁에 제자들과 "부활절 만찬"을 함께 하신 데서 이 관습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이러한 식탁 교제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9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이미 kuriake hemera와 kuriakon deipnon이라는 표현들이 일요일과 주의 성찬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는 로도프의 주장을 비판한 바 있다. 로도프는 "부활 만찬 기사"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에 처음으로 나타나신 기사를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떡을 떼는 장면과 나란히 놓으면 명백한 병행 관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확언한다. 그러나 부활하신 날 저녁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24장 36절 이하와 요한복음 20장 19∼23절, 마가복음 16장 14절 등의 구절들을 "부활 만찬 기사"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누가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식탁 교제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의 부활하신 몸을 입증하기 위해서 떡을 한 조각 드신 것을 근거로 제자들이(마가복음의 16장 9절 이하가 말하는 것처럼) 저녁 식사를 했다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신 후 자기를 나타내신 기사가 일요일 예배가 그 때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부활 기사에 대한 논의를 접기에 앞서, 우리는 좀더 겸손하게 이런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복음서의 기사들을 통해 우리는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에 일요일이 크리스천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날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지켜지고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는가? 공관복음이 빈 무덤을 발견한 시점을 안식 후 첫 날 아침으로 못박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종종 일요일을 지키는 관습이 여기에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공관복음서가 특별히 이 날을 주목하는 것은 단지 주님이 '제 삼일에'(전승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포인트) 살아나신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확언하려는 것일 수 있다. 특별히 마태복음의 표현은 단지 여인들이 안식일이 지난 후 가능한 한 빨리 무덤을 방문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요한복음의 경우에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안식 후 첫 날"은 20장 19절에서도 반복된다. 그리고 예수님은 일주일 후에 제자들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신다(20:26). 그러나 다시금 우리는 이러한 정확한 날의 의미에 대해 분명하게 확신할 수 없다. 이처럼 정확하게 날을 표기하는 것은 이 복음서의 특성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쉽게 답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복음서의 부활 기사가 그 당시의 교회들에서 일요일이 지켜지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는 주장은, 비록 특별히 요한복음이 이 주장을 지지하는 몇 가지 근거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입증되기가 어렵다. 일요일 예배의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일요일 예배가 관습이 되고 난 이후에 복음서 전승에 밝은 크리스천들이 곧 그 날을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보게 되었음은 분명하다. 이것은 기존의 복음서의 부활 기사 전승과 일요일 예배를 연관짓는 거창한 주장들에 비해 너무나 미약해 보이는 결론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살피겠지만, 이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결론이다. 이 결론은 일요일이 매주 주님의 부활하신 일요일에 모여 부활하신 주님을 예배하는 날로 이해되었던 때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기독교가 일요일을 지키게 된 유래를 찾는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팔레스타인 기원만일 일요일을 지키게 된 것이 부활하여 자기를 나타내신 때에 유래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적어도 팔레스타인의 유대 기독교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는 있을 것인가? 다음의 몇 가지 고려들을 통해 일요일 예배가 초기의 팔레스타인 교회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2세기 증거들이 기록되었을 무렵에는 일요일 예배가 팔레스타인 바깥의 기독교권에서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크리스천들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하느냐에 대한 어떤 형태의 논쟁도 발견되지 않으며, 일요일에 예배하지 않았던 기독교 그룹에 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편성은 일요일 예배가 이방인 선교 이전에 이미 기독교의 관습이 되었고, 이방인 선교와 함께 이방인 교회로 확산되었을 때에만이 가장 쉽게 설명될 수 있다. 팔레스타인 그 자체에 대한 증거를 놓고 말한다면, 우리는 유세비우스의 증거를 고려할 수 있다. 당시에는 두 부류의 '에비온파'가 있었는데, 한 부류는 '안식일과 유대인들의 나머지 계율들'을 지켰을 뿐 아니라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서의 주의 날'도 지켰다. 그러나 두 번째 부류는 '주의 날'을 지키지 않았다. 이러한 구분의 기원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따름이지만, 적어도 첫 번째 부류는 팔레스타인 유대 기독교의 원래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이 부류는 이방인 기독교의 관습을 수용하려고 한 흔적을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증거가 후대의 것이고, 또 에비온파와 1세기 유대 기독교와의 역사적인 관계가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엄격하게 율법에 집착하고 사도 바울을 배척하면서도 동시에 주의 날을 지키는 기독교 그룹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일요일을 지키는 관습이 팔레스타인 유대 기독교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견해를 반대하는 가장 강력한 논증인 배치오치의 반론은 예루살렘 교회가 "안식일준수와 같은 유대교의 종교적 관습을 그대로 간직했으며," 따라서 그들이 일요일을 안식일을 대신하는 날로 삼았을 리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이와 같은 논증은 타당성이 있기는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분명히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 기독교인들(과 아마도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 기독교인들도)은 계속해서 안식일을 지켰으며, 그 날 성전 예배나 회당 예배에 참석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배치오치 자신이 지적하는 것처럼) 크리스천으로서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함께 떡을 떼기 위해 개인의 집에서 모였다. 배치오치가 말하는 것처럼, 이러한 모임은 "성전 예배나 회당 예배와 모순되기보다 그 예배들을 보충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보충적인 행동이 일요일에 행해졌다는 견해를 반박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예루살렘 교회가 성전 예배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것말고도 기독교예배를 별도로 드렸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유대 기독교의 안식일 준수는 유대 기독교가 주일날 모여 예배하는 것과 상호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은 어느 날이든지 크리스천으로서의 모임을 별도로 가져야만 했다. 그런데 그들은 안식일에 성전 예배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데 충실했기 때문에 기독교 예배를 위한 다른 날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쿰란의 언약공동체처럼 순결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성전의 제의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지 않았다. 오로지 스데반의 경우에게서만 성전에 대한 보다 부정적인 태도가 보인다. 팔레스타인의 유대 기독교인들이 추방되는 그 순간까지 회당을 떠났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예루살렘교회가 오순절 이후에 스스로를 단순히 이스라엘의 한 부분이 아니라 종말의 새 이스라엘의 핵심으로, 종말론적인 성령이 역사하시는 종말론적 공동체로 이해했다는 점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성취에 대한 이와 같은 자의식이 그들로 하여금 안식일 예배를 폐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서로 모여 교제하고, 성령의 은사를 나누고, 예수의 이름으로 예배하고, 기도하기 위한 기독교적인 모임을 별도로 가지도록 만들었다. 예수님의 부활이 이와 같은 종말론적인 성취의 때를 결정적으로여는 분기점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예수님이 부활하신 일요일은 초대 교회가 정기적으로 모여 예배하는 날로 택하기에 적절했을 것이다. 왜 일요일인가?일요일 예배가 초기 팔레스타인 교회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충분한 이유들을 앞서 살펴보았다. 이 중 가장 주된 이유는 크리스천들이 기독교적인 예배를 드리는 시간을 따로 정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모여서 예배하는 때에 대한 필요와 다른 날이 아니고 하필이면 왜 일요일을 선택했는가 하는 이유는 분명 구별되어야 한다. 한 주에서 한 날을 택하는 것은 유대인의 상황으로 볼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주에서 특별히 한 날을 택하게 된 것은 정기적으로 그리고 자주 기독교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었다. 부활을 기념하는 것은, 비록 이러한 예배 모임의 동기가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다른 날보다 일요일을 택하게 하는 만든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만일 일요일 예배가 팔레스타인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교의 '해의 날'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견해는 반박될 수 있다. 최근 어떤 이들은 일요일을 지키는 관습이 Jubilees와 다른 유대교 종파들의 문헌에서 사용되는 달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헌들에서 발견되는 선례들은 매우 주변적인 것들이며, 따라서 크리스천들이 기독교적인 어떤 제도를 마련하도록 심리적으로 자극하는 그 이상의 기여를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유대교 문헌에서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도록 자극했을 만한 그런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크리스천들이 처음부터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 저녁이나 밤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다는 리이센펠드(Riesenfeld)의 제안은 다소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사도행전 20장 7절이 바로 토요일 저녁에 모이는 그러한 모임을 말하고 있다는 근거가 불확실한 주장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한다. 더욱이 그는 기독교의 예배가 어떻게 토요일 저녁에서 일요일 아침과 저녁으로 옮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한다. 플리니의 서신(Epistle) 10:96에 따르면, 1세기 말경에 적어도 비두니아에 크리스천들은 동이 트기 전에 모였다가 같은 날 저녁에(아마도 일을 마치고) 다시 모였다. 그러므로 만일 리이센펠드의 제안을 따르고자 한다면, 우리는 1세기 후반에 기독교의 모임이 토요일 저녁에서 일요일 아침으로 바뀌고, 그 다음에 일요일 저녁 예배가 추가되는 두단계의 발전이 있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제안은 애찬(agape; a love feast)과 성만찬이 토요일 저녁(행 20:7)에서 일요일 저녁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저스틴 때에(1 Apol. 65) 일요일 아침으로 옮겨갔을 것이라고 하면서 과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결국 이와 같은 발전을 상정하는 것은 초대 교회의 전통에 너무 지나친 통일성을 강요하게 되어 버린다. 오히려 우리는 박해와 같은 초대 교회가 당면한 실제적인 상황에 대한 고려가 예배의 때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설명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크리스천들이 일요일을 기독교의 예배의 날로 간주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은 안식일을 규정할 때 유대교가 아닌 로마의 방법을 택하거나 일요일에 저마다 다양한 시간에 예배를 드렸는 지도 모른다. 설사 초기 크리스천들이 안식일에 회당 예배를 드린 후에 그저 가장 편리하고 이른 시간에 모이기 시작했다 해도 그들은 그날, 곧 일요일을 기독교적인 예배를 드려야 하는 날로 간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발전은, 그날이 특별히 '주의 날'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될 때,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실 리이센펠드 스스로도 이와 같은 발전을 인정하고 일요일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과 동일시하게 된 데서 이러한 발전의 원인을 찾는다.10 따라서 우리는 주의 날의 기원에 대한 이와 같은 설명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이미 복음서의 부활 기사에서 강조되고 있는 "안식 후 첫 날"이 일요일 예배를 곧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간주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그와 같은 해석을 확증해 주는 역할을 했다는 점을 살펴본 바 있다. 일요일을 택한 것이 원래는 단순한 편의상의 문제였든, 아니면 중요한 신학적 의미가 있었건 간에 일요일이 곧 부활과 연관되게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와 같은 해석만이 어떻게 일요일 예배가 기독교권 전체를 통틀어 규범적인 지위를 얻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4. 요한계시록의 주의 날 이 장에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문학적으로나 주제적으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요한계시록 1장 10절의 en te kuriake hemera라는 표현의 의미를 요한계시록 전체의 문맥 속에서 찾아볼 것이다. 근접 문맥 속에서 이 표현은 1장 9절의 진술을 보다 완전하게 만든다. 거기서 요한은 그의 독자들에게 자신이 요한계시록 전체의 메시지가 보여주는 바 박해 아래 있는 증인들의 상황을 그들과 공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1장 10절에서 그는 시간적으로도 자신을 그들과 연결시킨다. 그는 교회가 공예배를 위해 모이는 그 날에 환상을 받았고, 그의 예언은 바로 그 동일한 날에 교회들에서 큰 소리로 읽혀지게 될 것이다(1:3). 요한과 그의 교회들에게 1장 9절의 상황과 매주 정기적으로 예배하는 특정한 날(1:10)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라는 그들의 고백이 가지는 함축을 매개로 하여 상호 연관된다. 이러한 상호연관성은 요한계시록의 다른 부분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주권(Sovereignty)은 아마도 요한계시록의 중심 주제일 것이다. 요한의 예언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전능하신 섭리를 그 배경에 깔고 있다(심지어 사탄의 권세들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범위 안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다스림은 아직 역사 안에서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다. 요한과 그의 교회들은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여 얻으신 결정적인 승리(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주권이 확립되는 것은 바로 이 승리에 기초한다)의 때와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아직도 그의 주권에 저항하는 권세들을 파하고 승리를 얻으시게 될 최후 승리의 때 사이에 살고 있다. 주권간의 갈등은 이 중간기(interim)의 특징이다.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쓰는 것은 교회들에게 이러한 갈등의 성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 중간기 동안 충성된 제자로 살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이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해 승리를 거두셨고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다스리신다는 신약 성경의 보편적인 가르침을 확증한다(3:21; 5:9∼10). 1장 5a절에서 요한은 그리스도의 주권의 근거를 그가 충성된 증인으로 죽기까지 충성하셨으며,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 그의 증거를 정당하다고 인정해 주셨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요한이 1장 10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첫 번째 환상은 책의 나머지 부분들을 이해하는 밑그림이 된다. 가장 근본적인 악의 세력인 사망과 음부에 대해(1:18) 이미 승리를 거둔 이는 다름 아닌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시다(2:8).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가 되시며, 온 땅의 임금들의 주로 오실 것이다. 교회는 주권들간의 갈등이 있는 이 때 그리스도의 주권이 현존하면서 역사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크리스천들은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잠재적으로) "이기는 자"(conquer)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고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충성하셨던 그리스도처럼 고난을 통해 충성해야 하는 증인들로 묘사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던 방법을 따를 때에만 그들에게 약속된 바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주권에 함께 참여하는 자들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승리를 거두셨지만, 그 승리는 아직 온 세상에 대한 승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으시고 이제는 하늘 보좌에 높이 들리우신 주가 되셨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 스스로가 죽기까지 충성된 증인이 되는 것을 '승리'로 여길 수 있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은 심지어 그리스도의 주권이 현존하고 역사하시는 교회조차 그의 정당한 주권과 사탄의 불법적인 주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영역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 준다. 요한계시록의 처음 세 장은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들이 21∼22장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성취되고 그리스도의 주권이 우주적으로 인정되기까지는 해소될 수 없는 그런 주권들간의 갈등을 강조한다. 요한계시록의 중간 부분들은 주로 이와 같은 갈등이 결국에는 해소되게 되는 그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크리스천들은 이 역사의 한가운데서 이기는 자들로서의 그들의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요청을 받고 있는 것이다. 12∼13장은 사탄이 그리스도의 승리를 통해 하늘에서 내던졌음에도 불구하고 땅에서 속임수를 통해 그의 거짓 주권을 세우는 데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의 주권에 대한 주장은 거짓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심으로 그는 이미 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성도들의 관점에서 볼 때만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십자가에서 시작된 갈등은 아직도 이 세상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성도들과 짐승들이 이 전쟁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사탄은 이 짐승들을 통해 성도들이 속한 하늘 나라를 모조한 그 자신의 나라의 권력 구조를 만든다. 요한은 이와 같은 주권들간의 갈등의 중심부에서 스스로 신적인 주권을 주장하는 황제들에게 저항하다가 순교를 당하는 것에 대해 특별히 언급한다. 요한이 이와 같이 순교라는 주제에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순교가 그 당시 교회들이 직면한 현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권들간의 갈등이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패러다임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에 대한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충성된 증인으로 겪어야 했던 그 모든 결과들을 크리스천들 역시 동일하게 겪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11장에 나오는 증인에 대한 언급들은 예수님과 순교한 증인들 사이에 이와 같은 완벽한 병행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십자가와 재림 사이의 기간 동안 주권의 갈등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바로 박해와 순교의 때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인내하고"(13:10) "분별하라"(13:18)고 요청을 받는다.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순교는 성도들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12:11; 15:2). 그러나 이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순교는 짐승들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11:7; 13:7). 그러나 순교를 통해 교회는 이미 하늘에서 다스리고 계시고 장차 이 땅을 다스리러 오실 주께 속한 자들로서의 독특성을 인증을 받게 된다. 크리스천들이 짐승들을 숭배하는 이 세상과 구별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하늘에 오르사 다시 오실 주로 분명히 믿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순교는 이와 같은 믿음의 진위를 보여주는 궁극적인 실험대가 된다. 요한이 그의 환상을 주의 날에 받았다고 명시하는 것-그리고 그의 환상이 교회의 공예배 때 크게 읽혀져야 한다고 분명히 암시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은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풍부하게 나타나는 예배 자료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초기 기독교의 예배에 대한 실제적인 흔적을 추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한은 구약 성경의 언어를 자기의 목적에 맞게 이용했던 것처럼, 기독교의 예배 찬송의 언어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찬송들은 각각의 문맥의 틀 속에서 이용되고 있으며, 그 문맥들은 언제나 천상적이거나 종말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기도나 찬양의 언어들이 실제로 이 세상에 있는 교회의 입술에 놓인 예는 없다. 그러나 5장 8절; 8장 3∼4절에는 이 땅위에서의 성도들의 기도가 언급된다. 그리고 1장 5b∼6절에는 요한 자신의 송영이 언급되어 있으며, 22장 20b절에는 요한이 그리스도께 드리는 기도가 기록되어 있다. 요한은 분명 그의 독자들이 이와 같은 송영이나 기도에 동참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예배와 주권은 사실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통한다. 예배는 공동체가 그 주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축복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힘과 권세를 "x"에게 드릴 때, 그 "x"는 우리의 주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주권들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양편 모두에서 예배가 행해진다. 심지어 짐승들의 나라조차도, 만일 잔혹한 힘만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왕국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짐승들의 나라는, 사람들이 미혹을 당해 용과 짐승의 주권에 기꺼이 즉각적으로 복종하는 행위로 묘사되는(13:34), 그들에 대한 예배에 의해 유지된다. 짐승에게 복종하는 이들은 짐승의 예배자들이다. 크리스천들이 짐승에게 예배하기를 거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예배는 주권의 한계 곧 주권이 미치는 범위를 잘 나타낸다. 4장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두 개의 찬송은 하늘에서의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나타낸다. 그리고 5장에 나오는 양과 하나님과 양에게 각각 드려지는 세 개의 찬송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기초하여 모든 피조물들에게 미치는 것을 본다. 13장 8절의 우주적인 예배를 통해 짐승의 우주적인 권세가 인정된다. 반대로 이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한다: "모든 나라들이 와서 당신을 경배할 것입니다"(15:4). 이것은 21장 24∼26절에서 그대로 성취된다. 그리고 22장 2∼4절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고 예배하는 것이 교회의 종말론적인 목표로 묘사가 된다요한은 또한 독자들에게 천상적인 예배에 대한 언급을 통해 순교자들이 이미 하늘 성소에서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7:9ff.; 14:2∼3; 15:2∼4), 그들이 순교를 통해 이미 승리를 선취적으로 누리고 있다는 것과 온 세상에 미치게 될 하나님의 주권을 그들이 예배해야 한다는 것(11:15∼18; 19:1∼8)을 역설한다. 그러나 이 두 경우에 있어 그 예배의 내용은 4∼5장에서 처음으로 언급되는 천상적인 예배에서 발전된 것일 수 있다. "새 노래"를 언급하는 5장 9절은 이 예배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새 노래는 하나님의 주권이 온 우주에 미치게 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송축하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충성하는 증인이 되신 것이 바로 승리를 얻는 비결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이 새 노래의 언어들을 배울 수 있다(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새 노래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순교자들은 자신들의 이김을 통해 이것을 배운다(14:3∼4; cf. 7:9∼14). 5장 9절 이후에 나오는 모든 찬송들은 이 새 노래를 변형시킨 것들이다. 이전에 다스리러 "임하시는" 하나님은(4:8) 재림 때에 이미 오신 하나님으로 예배를 받으신다(11:17; 19:6). 그리고 죽임당한 어린 양은 모든 피조물들의 경배를 받는다(5:13). 이 새 노래를 천사들과 순교자들의 입술에만 둘 때, 요한은 이 땅에 있는 교회는 이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1장 5b∼6절에서 요한 자신이 그리스도께 드리는 송영에 이 새 노래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주로 예배하지 않는 교회라고 한다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이 현존하여 역사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요한은 오직 이기는 이들만이 이 새 노래를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가(14:3)? 분명한 것은 요한은 그의 교회들이 그들이 드리는 예배의 의미를 이해하게 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배는 크리스천들을 주권들간의 갈등에서 구해 내어 천상적이고 미래적인 새 예루살렘으로 취해 가는 그런 종말론적인 도피가 아니다. 만일 우리가 매 일요일마다 예수를 주로 예배한다면 우리는 주중에도 짐승의 표를 받을 수 없다. 어린양을 예배하는 자들은 십자가를 그의 승리로 인정하고 어린양을 따르는 자들로서 주권들간의 갈등에서도 예수께서 승리하신 방식을 그대로 따를 것이다. 순교는 이 새 노래의 진정성을 입증해 준다. 그리고 잠재적인 순교자들은 지금도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제대로 부르는 이들에게 이 새 노래는 갈등 저 너머에 있는 승리를 교회가 기쁨으로 고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승리는 주께서 재림하실 때 지체지 않고 곧 성취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것은 교회가 고통 당하는 증인이 됨으로써, 참고 인내함으로써, 신실하게 십자가의 길을 가는 제자가 됨으로써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오직 주권들간의 갈등이라는 상황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와 같은 것들은 현재의 하늘에 속한 일이 아닐 뿐 더러 미래의 완성의 때에 이 땅에서 있을 그런 일들도 아니다. 그러나 예배 때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의 주권이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져 있으며, 장차 올 나라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주권을 표현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예배를 드릴 때 가장 종말론적인 공동체가 된다. 우리는 요한이 그의 예언에서 언급하는 교회의 부름과 목적이라는 문맥 안에서 주의 날에 드리는 예배의 의미를 이해했을 법한 몇 가지 방식들을 하나로 통합시킴으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우리는 요한이 부활을 그리스도의 주권을 세운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과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최초의 환상이 요한계시록 전체를 이해하는 밑그림이 된다는 점을 살펴본 바 있다. 크리스천들은 그들이 주의 날에 바로 이 주님을 예배하고 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요한은 특별히 이 날을 한 주의 첫날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과 연관시키는 것 같다. 만일 요한이 주권간의 갈등이 특별히 황제 숭배 문제에 의해 야기된 박해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본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가 '주의 날'과 매달 있었던 '황제의 날'(Sebaste)를 의도적으로 대조시키려고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황제의 날에 짐승(곧 황제)을 숭배하는 자들은 짐승의 주권을 인정한다. 그러나 주의 날에 크리스천들은 "온 세상의 임금들의(심지어 도미티안의) 주"로 오시는 주님을 예배한다. 물론 주의 날이 요한의 교회가 예배하기 위해 매주 모였던 일요일 하루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날이 정기적이면서도 예배를 위해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는 것은 그 이름을 통해서도 명백한 것 같다. 박해의 때에 그 날은 더욱 정기적으로 모이는 그런 날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 날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공동체인 교회가 이 세상에서 그의 주권이 현존하고 역사하는 영역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이 실제로 실현되는 것은 바로 교회의 공예배를 통해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이 크리스천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날을 "주의 날"이라고 부른 것은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이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이것은 분명 일요일의 예배 모임에서야 말할 것도 없고 시장이나 법정이나 투기장에서도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해야 한다는 말이다. 주권과 예배를 너무 편협한 예배적 용어로만 이해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의 의도에 전적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각 교회들은 매주 예배를 위해 모이는 모임을 통해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를 받아야 한다. 요한은 자신이 주님께로부터 받아 전하는 예언의 메시지에 그들이 순종하기를 기대한다. 그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에게 충성하는 것인지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 전부가 공예배를 통해 주님과 함께 만나는 시간에 뿌리를 두고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요한계시록의 주의 날은 주님이 그날로부터 시작해서 주중의 모든 날들 동안 다스리시도록 하는 그런 날이다. 주의 날에 드리는 예배는 그 성격에 있어 종말론적이다. 주권들간의 갈등의 때에 교회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는 기도가 없이는, 모든 입술이 예수를 주시라 고백하는 종말론적인 주의 날을 고대하는 마음이 없이는 주님과 만날 수 없다. 보캄 주석 1) 후기의 헬라 교부들에게서 이 단어는 매우 흔하게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무려 50회 이상 이 단어를 사용한다. 2) 헬라어 텍스트가 존재하는 문헌들에서 우리는 번역자들이 일관되게 kuriou에 대해서는 Domini를 사용하고, kuriakos에 대해서는 dominicus를 사용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3) 거의 모든 경우들에서 kuriakos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나 클레멘트, Str. 6:3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레니우스, Haer. 4:8:3 참조. 4) 이 구절들에서 언급되는 것은 이 때쯤 성찬(eucharist)과 구별되게 되는 애찬(agape)이다. 5) Rordorf, Sunday, 211: "이 (강조점으로 인해) '일요일'이라는 번역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Stott, "KYRIAKH," 72: "매주 지키는 것과 매년 지키는 것을 비교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6) Bacchiocchi, From Sabbath to Sunday, 123∼131. 7) 살전 5:2; 살후 2:2; 벧후 3:10. 8) Rordorf, Sunday, 236는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과 부활의 일요일 저녁뿐만 아니라 다른 일요일 저녁에도 한 두 번 더 식사를 함께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이 나중의 일요일들에 대해 제시하는 증거들(234∼236)은 불충분하다. 9) Ibid., 232∼233. 10) The Gospel Tradtion, 128∼129. 리차드 보캄(R. J. Bauckham)/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MA, PhD)에서 공부하고 지금은 영국의 세인트 앤드류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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