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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이 늘어나면서, 이들 정착민이 관련된 사고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스라엘 군이 폭력을 예방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방관하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잔혹한 상황에 노출되었다.
헤브론 서안지구에 거주하는 야세르 아부 마르키예(Yasser Abu Markhiyeh)의 딸 자나(Jana)는 2살 반 무렵 얼굴과 다리에 돌을 맞았다. 집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던 부친의 무릎에 앉아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인근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거리에 모여 51세 팔레스타인 주민 야세르의 집에 돌을 던졌다.
유아 시절 돌에 맞은 딸의 눈에 생긴 상처를 보여주는 야세르 아부 마르키예, 2023년 5월. ©Samar Hazboun
원래 집 현관에서 외부까지 시야가 탁 트여 있는데, 이스라엘 군인들이 방어벽을 친 바람에 정착민들이 거기 있었던 걸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_야세르 /서안지구 주민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들은 이스라엘 정착민 지역 근방에 거주하는 탓에 집에서도 반복적인 공격과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야세르와 자나를 지원 중이다. 자나는 이제 7살이 되었고, 사시(양쪽 눈의 시선이 동시에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증상)를 앓고 있어 그동안 여러 차례 수술이 필요했으며, 수년 내로 재수술 예정이다.
야세르와 자나가 사는 텔 루메이다(Tel Rumeida)는 헤브론 안에서도 이스라엘 정착민이 유난히 많은 H2라는 지역으로 이스라엘 당국의 통제를 받으며, 약 700명의 이스라엘 정착민이 팔레스타인 주민 거주지 근처에서 산다.
헤브론은 과거 소수의 유대인이 거주하던 곳이었지만, 1967년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점령한 이후부터 이스라엘 주민들의 정착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1997년 협정으로 팔레스타인 당국은 도시의 80%에 대한 통제권을 보장받았지만, 20%의 H2는 정착민 시설을 늘리고 보호하기 위한 명목으로 이스라엘이 통제권을 가졌다.
구시가지(Old City) 근처의 슈하다(Shuhada) 거리는 H2 정착의 여파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때는 활기찼던 상업 중심지에 검문소가 들어가면서 슈하다 거리는 서서히 유령 마을처럼 변했다. 이곳을 통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검문소에 들러 허가를 받아야만 했고, 상점들은 하나둘 폐업하기 시작했다. 야세르의 부친이 운영하던 아이스크림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 군이 점령한 뒤, 강제로 문을 닫고 다시는 돌아가지 못해 텅 빈 가게에는 비싼 설비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집을 감시하는 이스라엘 CCTV. 텔 루메이다, 헤브론, 2023년 5월. ©Samar Hazboun
H2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서안지구 전체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잘 드러낸다. 1999년 183,000여 명이었던 이스라엘 정착민의 수가 오늘날 465,000명까지 치솟으면서 (동예루살렘 지역 정착민 220,000명 제외) 이들을 보호하라는 임무를 가진 이스라엘 군인의 수와 더불어 팔레스타인 주민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암묵적 제약도 증가하고 있다.
정착민과 군인의 존재는 종종 폭력적인 사고로 이어졌으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재산 손실부터 사망까지 다양한 피해를 입는다. 서안지구에 이스라엘 정착민이 많아지면서 소위 정착민 폭력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UN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정착민 폭력으로 발생한 부상자 수는 2008년 195명에서 2022년에는 304명까지 늘었다. 프랑스 비정부기구 PUI(Première Urgence Internationale)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9월까지 정착민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공격한 사례는 2017년 대비 무려 170% 높은 1,049건에 달한다. 올해는 그 건수가 그것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착민들은 2023년 4월에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여러 차례 공격했는데 일례로 라말라(Ramallah) 인근에서 양치기들에게 돌을 던졌고, 나블루스(Nablus)에서는 올리브 나무 50그루를 베었으며, 사우스 헤브론 힐즈(South Hebron Hills)에서는 가축을 방목중이던 소년 두 명을 추격했다.
의료 및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공격하는 사태를 많이 목격합니다. 특히 H2 등 정착지 근처에서요. 이러한 여건으로 인해 정신건강이 악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PTSD, 불안, 우울에 시달리고 또 아이들도 학교에 가길 무서워합니다.”_마리암 카바스(Mariam Qabas) / 국경없는의사회 헤브론 보건증진 책임자
56세인 마리암은 다른 국경없는의사회 직원과 함께 H2지역에 거주하는 환자의 집 앞에서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도중 정착민의 공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마리암은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꼈다. 심지어 이스라엘 군도 팔레스타인 주민을 공격하며, 검문소 사이에서 언어 및 신체 폭력, 감금, 재산 피해 및 이동 제한 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국경없는의사회 조끼를 입고 있는데도 공격을 받다니요. 우리 자신도 보호할 수 없는데 어떻게 사람들을 지원하겠어요?”_마리암 카바스 / 국경없는의사회 헤브론 보건증진 책임자
이스라엘 군은 충돌 발생시 원인을 따지기보다 정착민의 편을 들면서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 마리암은 헤브론에서 이스라엘 정착민 여럿이 국경없는의사회 차량에서 번호판을 떼는 것을 보고 돌려달라 요구하면서 시작된 말싸움을 기억한다. 근처에 서 있던 군인이 마리암과 국경없는의사회 팀에 총을 겨누자 그곳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정착민과 군인이 함께 다니고, 군인들은 항상 정착민을 보호한다는 게 문제예요.”_마리암 카바스 / 국경없는의사회 헤브론 보건증진 책임자
야세르는 딸이 공격을 받았을 당시 이스라엘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무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돌을 던지던 남성 무리를 H2 지역에서 종종 마주친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그중 일부는 군인이고, 일부는 이스라엘 국가 구급차 서비스인 메간 데이비드 아돔(Megan David Adom) 에서 근무 중이다. 현재 위생병이 된 한 청년이 야세르의 딸이 당한 일을 단순히 젊은 시절 치기 어린 행동으로 치부해 야세르와 대치를 한 적도 있었다.
택시 운전기사였던 야세르는 집 앞에 주차하곤 했지만, 집 근처에 검문소가 생긴 이후부터는 거리에 주차하고 있다. 야세르는 처음 거리가 개방되고 정착민이 들어오기 시작했던 때를 기억한다. 모래가 담긴 주머니와 나무로 만든 교통 바리케이드를 든 군인이 나타났고, 지금은 그 거리에는 큰 금속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다. 차로는 통행이 불가능하고 보행자들도 회전문을 지나야만 통행할 수 있다.
자나와 자매들은 매일 등굣길에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가족들은 사회와 단절되어 있다. 친구와 친척도 정착민과 이스라엘 군인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자칫 폭력에 휘말릴까 방문을 꺼린다. 정착민과 군인의 폭력에 더해 사회적 고립의 부담까지 가중되는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후와라의 한 뒷마당에 정착민들이 불태운 차들의 잔해가 남아있다. 2023년 4월. ©Samar Hazboun
서안지구 북부 긴장 고조
서안지구 북부 도시 나블루스를 둘러싼 지역, 특히 교외 지역의 언덕 꼭대기에는 국제법상 불법인 정착촌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2022년 사고 건수가 최고치에 달했으며, 2023년에는 가장 극단적인 정착민 침입이 발생했다. 팔레스타인 총기범이 정착민 두 명에게 치명상을 입힌 사건 발생 후, 2023년 2월 수백 명의 정착민들은 나블루스 근처의 후와라(Huwara) 마을을 공격했다. 일부는 칼과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무차별 공격에 민간인 한 명이 사망했고, 100여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집의 창문이 깨지고 차가 불타는 등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큰 재산 피해를 입었다.
후삼 오데(Hussam Odeh)는 정착민이 없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후삼은 후와라 중심 거리 근처에 거주하는데 몇 달 전 이스라엘 군이 마을 접근을 더 잘 통제하기 위해 이곳에 큰 시멘트 바리케이드를 설치한 후부터 교통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군인이 후와라로 통하는 길에 설치한 바리케이드에 앉아 있는 후삼. 2023년 4월. ©Samar Hazboun
후삼은 이제 15살이 되었지만, 서안지구 힘의 역학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 후삼의 집에서는 건너편 거리의 빌딩 옥상이 보이는데, 이스라엘 군인들이 거기 올라가 마을 전체를 감시한다. 후삼은 이모와 어린 조카에게 정신건강 지원을 해주기 위해 집을 방문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에게 군인들이 누군지 알고 구분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후삼이 다니는 후와라 남자 중학교는 특히나 정착지와 가깝다. 2022년 10월 어느 날, 1교시 수업 전에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던 후삼은 누군가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정착민이 학교를 공격한다는 얘기였어요. 그들은 총과 화염병으로 무장한 상태였죠.”_후삼 오데 / 후와라 주민
결국 군인들이 나서서 정착민 무리를 해산시키고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두 명의 학생이 돌에 맞아 병원에 실려갔다.
후삼은 나블루스 축구팀 우측 수비수로 뛰며 대중교통을 타고 10km 떨어진 곳에서 훈련받곤 했다. 하지만 긴장이 고조되면서 후삼과 동료 선수들은 검문소에서 혹시나 일이 틀어질까 하는 두려움에 수개월째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신이 뜻하신다면 다시 축구를 할 수 있겠죠.”_후삼 오데 / 후와라 주민
50세 베두인 양치기인 무스타파 밀리캇(Mustafa Mlikat)은 정착민의 괴롭힘을 피해 예리코(Jericho)에서 두마(Douma)라는 마을로 최근 이사를 했다. 상황이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외곽 지역 출신 정착민들은 마을로 가는 길에 만나는 그와 다른 베두인을 태워주기도 했다. 그러더니 그의 집 옆에 정착민들이 집을 지었다.
그리고는 항상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제 집 바로 옆에 집을 짓고, 양들을 괴롭히고, 우리가 양떼를 풀어놓고 목초를 먹이던 땅을 사용하는 걸 금지했어요.”_ 무스타파 밀리캇 / 두마 주민
아들이 사달라고 부탁한 약을 살펴보는 무스타파 밀리캇. 2023년 4월. ©Samar Hazboun
무아라하트(Muarrajat)에 거주하던 베두인들은 하나둘 소를 팔고 떠나기 시작했고, 무스타파도 대열에 동참했다. 뒤편에 특수 기계를 탑재한 트럭에 양 50마리와 소지품을 싣고 몇 번의 여정 끝에 정착민 무리와 거리가 떨어진 곳을 선택해 자리를 잡았다. 무아라하트 외에도 다른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2023년 5월 22일, 라말라와 인 사미야(Ein Samiya) 근처에서 지내던 양치기 공동체 구성원 178명 모두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이스라엘 군이 집을 철거하고, 정착민들에게 목초지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군이 철거한 집 잔해 근처에 서있는 무스타파와 자녀들, 2023년 4월. ©Samar Hazboun
베두인 공동체들은 특히나 정착민 폭력에 취약한데, 가축을 키우는 외곽 땅을 정착민 농부들이 탐내기 때문이다. 무스타파는 정착민들이 베두인이 지내는 모든 땅을 가지길 원하는 탓에 베두인이 표적이 된다고 전한다.
2023년 2월, 이스라엘 군인들은 건축 허가를 받지 않았다며 무스타파가 두마에 새로 지은 집을 부쉈다. 잔해만 남은 집을 두고, 여름을 나기에 지나치게 열악한 텐트에서 지내야만 하는 무스타파는 희망을 잃었다. 비가 내리던 4월 어느 날, 텐트가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크게 울리던 가운데,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쉬린(Shireen)과 미렐라(Mirella)는 집이 파괴되면서 충격을 받은 무스타파의 딸 지난(Jinan)이 그림 카드를 이용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직접적으로 트라우마를 야기하는 사건뿐 아니라, 이스라엘 점령으로 인해 지속되는 긴장감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팔레스타인 주민의 정신건강에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_ 미렐라 /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활동 매니저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이 무스타파의 딸 지난과 정신건강 지원 세션을 진행중인 모습 ©Samar Hazboun
이스라엘 정착지가 확대되면서 압박을 받는 가운데 50세의 나블루스 출신 팔레스타인 주민 유세프(Youssef, 가명)는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정착민보다 군인이 차라리 더 편하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로서 그의 일은 정착민 지역이 확대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접근 가능한 도로가 축소되는 사태에 영향을 받는다.
최소한 대부분의 이스라엘 군인들은 어느 정도 규칙을 지킵니다. 하지만 정착민들은 이런 규칙에 매이지 않으니, 화가 나면 어떻게 행동할지 누구도 알 수 없어요.”_유세프 / 팔레스타인 주민
국경없는의사회는 1988년부터 서안지구에서 활동을 전개했다. 나블루스에서는 정신건강을 중점에 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칼킬야(Qalqilya), 투바스(Tubas)로도 활동을 나간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헤브론에서도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H2에서 의료지원을 제공 중이고, 마사페르 야타(Masafer Yatta)에서는 이동진료소를 통해 기초 진료를 실시하고 있다. 제닌(Jenin)에서는 최근 긴급 대응과 환자 분류 관련 훈련 제공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첫댓글 아이들이 다시 자유롭게 축구를 할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