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선, 동아는 해방 이후 폐간되었어야 했다

[닷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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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지승호 (triana@freechal.com)
홈페이지: http://www.seoprise.com
2003/9/22(월)

조선, 동아는 해방 이후 폐간되었어야 했다
미디어 비평 제작한 MBC 최용익 부장 인터뷰

작년까지 MBC <미디어 비평>을 통해 우리 사회 보수언론들의 문제점을 심층분석·보도했던 최용익 부장을 2003년 8월 26일 MBC에서 만났다. 다큐멘터리국으로 자리를 옮긴 최용익 부장과 최근 방송된 8.15 특집 다큐멘터리 <참된 보수를 찾아서>에 관한 이야기, <미디어 비평> PD에서 다큐멘터리국으로 옮긴 후의 심경, 언론개혁운동, 조중동의 보도에 대한 생각, 얼마전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발표한 석사논문 <반헤게모니적 담론과 공론장 활성화에 관한 연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최용익 부장은 <반헤게모니적 담론과 공론장 활성화에 관한 연구>를 통해 "'공론장'이란 개념은 아무런 제약 없이 개인의 의사를 발표하고 토론할 수 있는 원칙이 지켜지는 곳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는 권언유착 관계에서 성장해 온 일부 신문들이 독재가 물러간 이후 그 공간을 독과점적으로 지배하게 되면서 하버마스가 우려한 '권력화된 공론장'이 존재해왔다"고 밝혔으며, "시장지배적 신문들이 유포시켜온 독과점적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 위해 반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미디어 비평>이 일정부분 그런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최 부장은 "5공화국 체제를 무너뜨린 1987년 6월항쟁을 분기점으로 민주주의가 일정 부분 진전되면서 정치권력과 언론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민주화과정에서 그 이전 군사독재체제에서 일반화·내면화된 권위주의적 지도력과 장악력은 급속하게 약화되어 왔다. 이렇게 정치권력이 약화된 반면 일부 언론은 오히려 자기 권력을 강화시켜 왔다"고 말하면서 "권위주의 체제에서 정치권력에 의해 일원적으로 지배를 받았던 언론들이 세무조사를 계기로 정치권력, 나아가서는 경쟁언론과 대결하는 헤게모니 투쟁의 장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최 부장은 "2001년 중앙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계기로 오랫동안 권위주의적 정치권력의 종속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언론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던 '침묵의 카르텔' 또는 '동업자 봐주기', '차별성 없는 보도' 같은 오랜 관행이 최초로 균열을 일으키게 되었다"며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 이전 만해도 크게 드러나지 않던 언론사들 사이에 보도방향의 차별성이 드러나면서 언론들 사이에 논쟁을 벌이는 초유의 일이 일어나게 되고, 세무조사에 대한 언론들 사이의 견해차이는 전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지식인 그룹에 속하는 학자들과 문인, 시민단체 그리고 정보기술산업의 발전으로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 언론을 통한 네티즌들에 이르기까지, 개인 또는 집단 사이에 뜨거운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최용익 부장은 <미디어 비평>에 대해 "'언론 상호간의 열린 비평을 통해 <침묵의 카르텔>로 불리는 언론사의 내부문제 거론을 기피하는 행태를 탈피하고 언론의 건전한 발전과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편성취지로 방송이 시작됐다"고 말하면서 '침묵의 카르텔'로 인해 오랜 기간 지속된 권위주의 체제에서 '준(準)국가기구'로 기능했던 한국의 언론들이 수용자들의 요구와는 관계없이 자신들의 생존논리를 앞세워 정치권력과 맺어왔던 유착관계가 폭로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용익 부장은 논문을 통해 "미디어가 시민들의 공론장을 대체하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버마스는 시민들이 중요한 국정(國政)의 토론에서 소외되는 것을 우려한다. 미디어를 모든 시민들이 매일 쉽게 접하면서 메시지 생산과정에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힘있는 소수의 엘리트 그룹만이 미디어를 통해 전사회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사회는 미디어의 공론기능 포기→ 시민적 공론장의 무력화→ 여론의 부재(不在)→ 국가와 엘리트들의 횡포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구조를 지속시키는 결과를 빚게 된다"고 한다. 결국 많은 국민들은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보수신문들을 읽으면서 자신이 국정의 토론에서 소외되지 않고 있다고 착각을 하지만, 그들이 유포하는 의제설정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스스로 결정했다고 착각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일 게다. 최용익 부장은 연구를 통해 "한국사회가 영향력이 큰 시장지배적 신문들이 한 쪽의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양산해내고 있어 바람직한 공론장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고 밝히면서 "현재는 언론들 사이의 갈등양상이 두드러지는 불안정한 과도기적 상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서구세계의 사례에서 보듯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갖가지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맞서 이를 압도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 다양한 통로를 통한 반헤게모니적 의미생산을 위한 노력이 그만큼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민희 민언론 총장은 최용익 부장에 대해 "뚝심과 고집이 대단한 사람이다. 사내외의 여러 의견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금껏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은 그 뿐일 것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언론의 불공정보도나 편파보도·오보, 더욱이 언론계의 내부비리 등에 대해 알 길이 없는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제4부'로 불리는 언론에 대한 견제·감시도 결국 언론이 맡아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의 반영이 미디어 비평을 탄생시킨 배경이었는데, 그것을 견인하던 최용익 부장의 다큐멘터리국으로의 이동으로 MBC의 보수언론 감시기능이 후퇴하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미디어 비평'은 그의 뚝심이 없었으면 방송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다음은 그런 최용익 부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지승호(이하 지) - 최용익 PD께서...

최용익(이하 최) = 전 PD가 아니고 기자 출신이에요. 보통 마이크를 들고 리포트를 하는 사람을 기자라고 하는데, 보도국의 경우는 기자를 하고 나서 그 위에 차장-부장으로 올라가고, 그 위에 국장으로 올라갑니다. PD는 하나 하나가 사실 개개의 제작자기 때문에 하는 하나의 기준에서 보자면 보도제작국에서 리포트를 하지 않는 기자들도 PD라고 부를 수가 있어요. 역할이 그렇다는 얘기죠.

지 - 최근 8.15 특집으로 '참된 보수를 찾아서 2편 : 드골 그리고 똘레랑스'를 제작하셨는데요. 그 소재를 택하신 특별한 이유는 있으십니까?

최 = 그것은 제가 혼자서 한 게 아니고, 우리 보도제작국에 다큐멘터리 팀이 오래간만에 생겼는데, 8.15 광복절 특집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생각을 하다가, 이 사회의 소위 진보와 보수간의 논쟁이 치열하고, 사실 보수라고 불리는 사람들 또는 스스로 보수라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참 보수인가?'하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서구적인 기준으로 볼 때 진보나 보수로 뚜렷한 정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 또는 집단들이 보수주의라고 자칭하고 있지만, '실제 내용이 어떤 것인가? 과연 옳은가? 그러면서 진짜 보수는 가려지 있지 않은가? 오히려 이것을 편가르기용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문에서 제작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도 진보주의자, 좌익 정도로 몰아붙이고 있는데,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에서 만들었어요. '참 보수를 찾아서'가 시리즈를 통괄하는 제목이고, 그 중의 한편을 제가 만든 것인데, 1·3편이 국내편이고, 2년이 해외편이거든요. 제가 프랑스에 특파원으로 있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맡아서 하라고 해서 한 거예요.(웃음)

지 - 홍세화 선생의 책하고 많이 비슷한 것 같던데요.

최 = 예. 우선 홍세화 선배한테 자문을 받았어요. 한번 만나서 자문을 받았고, 전반적으로 그 양반 책을 많이 읽었죠. 그동안 나온 세 권의 책에서 크게 도움을 받았어요. '파리의 택시 운전사', '세느강은 좌우를 가르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하고, 주섭일씨의 2차 대전 끝나고 나서 드골의 나치부역자 청산에 관련된 서적들, 거기서 1차적인 소재를 얻고, 어느 정도 작품의 틀을 그것으로 잡았어요.

지 - 방송을 제작하시면서 느낀 우리 사회의 참된 보수란 어떤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최 = 그게 1·3 편에서 얘기된 건데, 사실 참 보수가 별로 없죠. 지금. 우린 이렇게 봤어요. 3편의 결말 부분에 그 얘기를 했는데, 참 보수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에, 보수주의라는 것 자체가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린다, 그 다음에 민주주의적 이념, 그 다음에 노블리스 오블리제, 가진 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 등이 말하자면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의 공통분모일 텐데요. 우리나라에 과연 '그런 보수주의자 또는 보수주의 세력이라고 불릴만한 개인 또는 집단이 거기에 값하는, 거기에 상응하는 행동을 보여주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말이죠. 그래서 3편 결말 부분에 그렇게 나와 있어요. 일제 이후에 백범 김구 선생이 참 보수주의자의 한 원형이었고, 그 이후에 박정희 때 의문의 실족사를 한 장준하 선생이 대표적인 참 보수주의자라고 보는 거죠. 그러나 그 분들이 한 분은 암살 당하고, 한 분은 의문의 실족사를 함으로써 '이 땅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의 맥은 끊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사실 나라가 제대로 됐다면 보수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었던 분들이 워낙 오랜 세월 이승만부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 이르기까지 반독재투쟁, 민주화운동 하는 과정에서 빨갱이로 색칠을 당했고, 그러면서 이분들이 완전히 진보주의자인 것처럼 언어상, 담론상으로 그렇게 분류되어 왔단 말이거든요. '과연 그런가, 왜 그랬을까?' 그 원인을 찾아보기로 한 거죠. 김구 선생 같이 진짜 보수주의자라고 하면 당연히 남북분단 이런 걸 앞장서서 막아야 될텐데, 그런 분들이 거의 김구 선생을 끝으로 맥이 끊겼다 이거죠. 그와 함께 '해방 이후 반민특위의 좌절로 일제 청산이 안되면서 일제의 부역자들이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행세해오면서 진정한 의미의 좌우구분, 보수와 진보의 양립구도는 무너진 것이 아니냐' 그렇게 보는 거죠.

제가 만든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얘기를 더하면 반대로 프랑스는 우리의 백범 김구에 해당하는 분이 드골이라는 말이에요. 드골은 뻬땅이라는 사람이 대독일 유화책을 주장하면서 유화적으로 희생을 최소화하고, 나라에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독일과 관계를 유지해보자고 했던 것에 반대해서 결사항전론을 주장하고, 영국에 망명했던 사람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김구 선생과 비슷해요. 상해임시정부를 만들었던 것과 같이. 그래서 드골이 대독항전을 지휘하다가 1944년 6월에 파리가 해방되고 나서 프랑스에 돌아와서 가장 역점을 뒀던 것이 나치 부역자 숙청작업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이전에 주섭일씨 책이라든가, 한겨레신문의 언론개혁 시리즈라든가에 다 나왔지만, 언론인들·지식인들·문인·예술가 등 이른바 먹물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일반 대중들을 지도하고, 계몽시키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야말로 가차없는 응징을 하거든요. 대표적인 사례로 나치 치하에서 15일 이상 간행된 일간지들은 다 폐간시켰어요. 그래서 살아 남은 신문이 3개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우파 신문인 르 피가로 등 3개라고요. 우리나라의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같은 경우는 프랑스적 기준으로 치면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폐간되었을 신문이죠. 드골의 엄청난 나치 부역자 숙청작업, 그러니까 99만명을 잡아다가 6~7,000명씩 사형을 시키고, 수만 명씩 유기징역·무기징역을 때리거든요. 그렇게 해서 그야말로 2차대전 이후 프랑스의 지배세력에서 나치부역자는 거의 완전히 뿌리가 뽑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반대죠. 친일파 청산작업은 김구 선생 같은 분들이 했어야 될 작업인데,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와해시키고, 대표적인 친일파 관료들, 경찰, 군인들을 기용하면서 한국 현대사는 한마디로 배반의 역사가 된 거죠. 그것을 8.15 광복절 특집이니까 프랑스 보수주의의 뿌리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광복절을 계기로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될 점이 무엇인가 해서 드골을 부각시켰고, 부수적으로 프랑스의 똘레랑스와 솔리다리떼, 즉 관용과 연대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겼나 하는 것을 다뤘어요.

지 - 그 프로그램에서 언론에 대해서도 다뤘는데, 프랑스 언론과 한국 언론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방금 프랑스 기준으로 보면 조선, 동아는 해방 이후 폐간되었어야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민족지였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최 = 그게 거짓이라는 건 거의 백일하에 드러난 것 아닌가요? 처음에는 자기네들은 친일행위를 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했다가 말이 안된다는 게 서서히 드러나니까 '그때 안한 사람이나 신문이 어디 있냐? 그땐 어쩔 수 없었다'는 불가피론으로 말을 바꾸고 있거든요.

지 - 그 프로그램에서 철저한 나치잔재 청산이 지금의 프랑스가 있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설명하셨는데, 우리의 경우는 해방된 지 너무 오래되어서 직접 친일을 했던 당사자들은 대부분 죽거나 이제 거의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 되었는데요. 그렇지만 또 그것이 세대를 넘어 전통이 되거나 하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일본 순사 나까무라가 한 고문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독재자들이 우리 국민들에게 가했던 똑같은 행동은 '구국을 위한 고뇌. 어쩔 수 없는 일. 더 큰 일을 위한 희생' 정도로 미화된 측면도 있지 않을까요? 그건 비교적 뚜렷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우리 것과 일재 잔재에 혼재됨으로써 친일 잔재의 청산이 어려워지고 있고, 또 이중적인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경우 지금 와서는 친일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정하면서도 '조국 근대화나 경제발전에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 아니냐'고 옹호를 하는 부분도 있거든요. 그래서 점점 청산하기 어려워질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한다고 보십니까?

최 = 한홍구 교수 같은 분은 상대적으로 숙청작업이 한국보다 프랑스가 쉬울 수 있었던 것이 '기간이 상당히 짧았다'는 거거든요. 프랑스는 독일 치하에 들어갔던 시기가 4년 정도였기 때문에 그 시기의 부역자들의 행각이 낱낱이 드러날 수 있었고, 또 하나는 상대적으로 물들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죠. 예를 들어 소극적 친일이라는 게 있잖아요. 생계형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모든 사람들까지 단죄할 수는 없잖아요. 프랑스와 달리 우리의 경우 36년이 되니까 갑남을녀 모두 독립투쟁을 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것이고,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우리는 진실규명이 안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희선 의원이 국회를 중심으로 해서 친일파 명단을 발표했을 때도 난리가 났었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친일파 인명사전을 작성하는데도 심포지엄을 하기로 했다가 국사편찬위원장 등이 그걸 반대하고 나선 모양이더라고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곳곳에 친일잔재 청산에 대해 '그 시절에 어쩔 수 없지 않았느냐'라는 동정론 이런 것들이 너무 깊이 박혀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기득권 층에서 그러는데, 그 사람들이 친일파, 친일잔재들과 직간접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굉장히 잘못된 시각이고, 결국은 단죄 이전에 진상규명부터 먼저 해야한다는 겁니다. 일제 치하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친일 행동을 했고, 어떻게 반역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경중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작업부터 해야한다는 것이고, 진상규명이 이루어진 뒤에야 그에 대한 처벌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겠죠. 사면을 하던지, 국민적 합의로 그에 대한 처벌의 강도를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시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친일파, 일제 치하에서의 부역자들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거죠.

지 - 미디어 비평'을 제작하시면서 조중동 비판을 주로 하셨는데요. 프로그램을 제작하시면서 조중동의 가장 큰 문제점을 무엇이라고 느끼셨습니까?

최 = 잘 봐서 아실텐 데요.(웃음) 제가 논문에서 그것을 정리해보는 기회를 가졌는데, <미디어 비평>을 할 당시에 <미디어 비평>과 관련된 세미나나 토론회에 가보면 마치 작심하고,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조중동만 찍어서 비판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요. 실제로 시청자들 중에도 그런 의견을 올린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의도적으로 그런 적이 단 한번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죠. 조중동을 왜 찍어서 조집니까? 하다보니까 계속 걸리는 건데, 조금 지나서 미디어 비평 팀장을 물러나서 논문을 쓰면서 정리를 해보니까 (평가위원을 맡았던 동국대 조흡 교수의 지도를 받았는데) 이게 결국은 헤게모니 싸움이더라는 거예요. 헤게모니는 우리말로 기득권 정도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주도권·기대권 정도의 말도 될텐데, 조중동이 바로 이 사회의 담론을 좌지우지 해왔던 언론이거든요. 그 중에서 특히 최근 20년 동안은 조선일보에서 아젠다를 만들어 내서 1면 톱으로 치고 나가면 다른 신문, 방송들이 그것을 받아서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대로. 그 아젠다 세팅에 거의 맹목적으로 끌려 다니는 거죠. 그래서 다른 해석이라든가 시각은 일반 시청자나 독자들 입장에서 가질 수가 없는 거예요. 원천적으로.

저는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면 미디어 비평이 2001년 4월 28일날 첫 방송을 시작했는데, 그때 결정적으로 한국 언론사에 남을만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게 바로 세무조사입니다. 전면적이면서 공개적인 최초의 언론사 세무조사였거든요. 김대중 정권은 그 당시에 정치적 의도론 등등해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조중동을 순화시키기 위해서 세무조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그랬든 어쨌든 결과적으로 한국 역사에 남는 작업을 한 겁니다. 그것을 계기로 지금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됐지만, 노무현씨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정치 권력이 언론하고 유착되어 가지고 기획성 정책을 집행한다거나 국민들이 알아야될 사실을 은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어요. 그것이 세무조사의 언론사적 의미고, 세무조사를 계기로 그 이전에는 한겨레신문이 조중동과 다른 담론을 생산해낸 대표적인 신문이었다면 재벌소유로부터 벗어난 경향신문, 정부소유에서 사원지주제로 바뀐 대한매일신문 등등해서 이른바 독립신문들이 나타나면서 조중동이 만들어낸 담론하고 반대되는, 또는 적어도 다른 담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방송의 경우는 잘 아시다시피 MBC에 김중배 사장이 오면서 보도가 달라졌죠. 아주 대표적으로는 작년에 서해교전 때 남한 어선들의 월선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보도한 것, 촛불 시위에서의 정확한 보도 이런 것은 이전의 방송 보도에서 보기가 힘들었단 말이에요.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을 통해 그 전에 볼 수 없었던 내용들이 속속 방송됩니다. 일반 대중들은 어쨌든 언론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까지는 하나의 색깔, 하나의 시각으로만 보여주던 것을 그런 시각, 그런 해석, 그런 분석틀 만이 아닌 다른 시각, 다른 해석, 다른 분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거죠. 그러면 조중동의 시각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거 아니에요? 여기서 새로운 우군이면서 유력한 세력으로서 떠오른 것이 인터넷 매체에요. 대표적으로 오마이뉴스가 되겠죠. 이들을 통해서 드러난 일군의 젊은 세력, 인터넷 매체 자체가 젊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이용하는 대중들도 젊거든요. 사실 40∼50세 이상 되면 인터넷을 거의 활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마인드, 새로운 시각, 기존의 기존 질서에 대한 회의·의심 그리고 비판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한다는 것이 맞물리면서 아주 치열한 담론대결이 벌어집니다. 세무조사 때부터. 그야말로 '조중동을 때려잡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하는 거냐? 아니면 정당한 법집행이냐'는 논란이 있었죠.

그것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것이 지난해 대선과정입니다. 경선과정에서부터 동아일보 폐간론, 국유화론에서부터 조중동이 거의 제 기억으로 3일인가, 4일인가를 1면 톱으로 쌍따옴표(인용부호)를 붙여서 조져대는데, 그래도 지지율에 거의 변화가 없더라고요. 이제는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할 줄 알게된 거예요. '조중동 얘기가 다 맞는 게 아니구나. 틀린 것도 있구나'하는 걸 알게 된 거죠. 더 많은 젊은 세력들이 '조중동은 지속적으로 보니까 진실보다는 거짓 보도를 많이 하더라'는 것에 대한 일종의 각성이 생기게 된 거죠. 우리가 기억하다시피 작년 1년의 대선과정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드라마도 그런 드라마가 없잖아요.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다가 단일화가 되면서 치솟고, 정몽준씨가 투표 바로 전날 지지철회를 선언해서 난리가 났었잖아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해서. 조선일보는 '정몽준, 노무현을 버렸다'는 기상천외한 사설 바꿔쓰기를 하면서 노무현을 공격했잖아요. 작년에 그야말로 노무현씨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경의 진수를 보여줬는데, 그 과정에서 나타난 걸 보면 결국은 담론대결이더라고요.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흑이라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백이라고 하는 또 다른 집단과 세력이 나타났다는 거죠. 결과적으로 보면 단기적으로 작년 1년을 해부해볼 때 조중동의 담론생산은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죽이려고 했던 후보는 당선됐고, 당선시키려고 한 후보는 패배했는데, 그건 한국 현대사에 시사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 - 노 대통령의 대언론관은 어떻게 보십니까? 퇴임 후로 미루긴 했지만, '부동산 투기 의혹 보도'와 관련해서 몇 개의 신문과 야당의원을 고소한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최 = 그것까지 제가 얘기해나 하나요?(웃음) 글쎄요. 워낙 말도 안되는 것을 가지고 흠집내기식으로 일관하니까. 노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그랬잖아요. 옛날에 야인시절에도 '조중동 특히 조선일보에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얘기를 누차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경선 때 아주 인상적인 게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경선에서 손떼십시오' 어쩌고 했잖아요. 그런 식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니까 조중동으로서는 난리가 난거지,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 일어난 거잖아요. 특히 조선, 동아는 더 그럴 텐데, 그러니까 허니문 기간이란 게 없잖아요. 바로 맞받아치는 식으로 시종일관 물어뜯고 있는데, 언론정책과 관련해서는 초기에 미숙한 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노무현씨 입장에서도. 이창동 장관이 예전에 했던 발언, 내용적으로는 개방이라고 하는데 일선 기자들에게는 폐쇄로 비췄던 것도 있었어요. 얼핏 들은 얘긴데, 미국 클린턴 대통령도 초기에 홍보수석인가를 여자 대변인을 앉혔는데, 6개월만에 경질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언론 정책은 대국민 홍보정책인데, 좀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이고, 신중하게 했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졸속으로 처리된 측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 - 노무현 정부가 언론개혁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조금 전에 미숙한 부분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최 = 아니. 언론개혁에 대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직접적으로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는 안되죠. 그러나 언론개혁을 위한 전제조건, 그러니까 수차에 걸쳐서 여기저기서 다른 사람들도 많이 얘기한 것 같은데, 자전거일보, 비데신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문 판매시장이 엉망이잖아요. 그런 것을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곳에서 직접 나서서 철저하게 단속을 해야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줘야죠. 그 다음에 신문공동판매제 이런 거는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 아무리 훌륭한 기사와 칼럼, 논설을 쓰더라도 현재의 70% 이상 되는 조중동의 시장점유율을 깬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거든요. 언론개혁을 위해서 정부가 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해서도 안되고. 다만 신문들끼리 공정경쟁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기사의 질로써 승부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충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 같은 경우는 공동판매제가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자전거를 끼워 팔고, 비데를 끼워 팔고, 김치냉장고를 끼워 파는 건 그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행정력을 발동해야죠.

지 -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안팎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에 시달렸는데 특히 내부의 압력과 저항을 많이 받았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저항입니까?

최 = 초기에 그랬죠. 쉽게 얘기하면 이거예요. 연예오락프로를 하는 PD들은 방송이 신문과 달리 오로지 기사와 칼럼, 사설만 있는 게 아니니까, 말하자면 신문은 방송으로 치자면 보도부문에 한정이 되어 있는 것이고, 연예오락을 담당하는 엔터테인먼트 프로를 맡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미디어 비평을 하게 되면 신문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는 우려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기자들로부터도 적지 않게 반발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로서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마디로 미디어 비평의 취지에 대해서 무지해서 그런 얘기들이 나온 거라고 보는데, 미디어 비평이 회사 안보를 위해서, 방송을 신문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만든 프로가 아니거든요. 상호 비평을 통해서 서로 견제하자는 거거든요. 언론이 제4부라고 하는데, 언론을 비판할 세력이 사회적으로 없잖아요. 그럼 언론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언론밖에 없다는 거죠. 그리고 방송에 대한 비판은 70년대부터 있어 왔는데, 방송이 신문 비판을 못할 이유는 없다는 거죠. 다만 처음 만들다보니까 제작상의 어려움은 있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그것과는 별도로 원론적으로 방송에서 미디어 비평, 매체비평을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어쨌든 부분적으로 그런 반발들이 있었지만, 그전부터 노동조합하고 사장하고 합의가 되어서 1999년에 시도했다가 2000년으로 넘어가서 흐지부지 됐는데, 김중배 사장이 오면서 결실을 맺은 거죠.

지 - <미디어 비평>을 그만두고 다큐멘터리국으로 가신 건 자의입니까? 아니면? 교체될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좌천이라는 시각도 있는 것 같고요.

최 = 좌천이라고까지는 너무한 표현 같고, 사실 제가 원한 건 아니었죠. 제가 원하지 않은 것은 그 시기에 옮기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지, 제가 마르고 닳도록 <미디어 비평>을 해야된다는 취지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에 <드골 그리고 똘레랑스>를 만들면서 잘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흡이 긴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보통 기자들이 방송을 하면 1분 20초 짜리를 리포트하면서 나중에 데스크로 올라가는 게 일반적인데, 50분 짜리 호흡이 긴 방송물(다큐멘터리물)을 만든다는 건 경험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고, 보다 깊이 있는 접근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도 잘 온 것 같아요. 어쨌든 새로운 분야를 맡게 되었고, 이게 상당히 재미가 있어요. 한마디 더 하자면 제가 미디어 비평을 한국 땅에서 최초로 방송에 도입하고, 매체비평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미디어 비평> 초대 팀장을 맡으면서 그야말로 고군분투를 했습니다. 회사 내외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이겨내면서 사실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했거든요. 이게 2년여가 지나고 정연주 사장이 KBS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얼마 전 <미디어 포커스>가 생겼죠. 그쪽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인데, 두 프로를 가만히 보니까 서로 자기들 나름대로 열심히 만드는 모습이 보여요. 제가 <미디어 비평> 팀장을 하면서 KBS에서도 제대로 된 매체비평을 만들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지고 있는 짐도 절반 나눠지고 할텐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지금 실현된 거에요. 쌍두마차가 되가지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걸 보면서 흐뭇해요. 대견스럽기도 하고. 이제는 그 대세를 누구도 막기 힘들죠. 2년 4개월 전만 해도 이게 대세가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는데, 지금 대세가 되는 걸 보면 '참 세상이 많이 변했다. 좋아지고 있구나.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아주 개인적으로 감개무량합니다.

지 - 최근 KBS도 정연주 사장 취임 이후 보수언론들을 비판하는 개혁성향의 프로그램들을 속속 제작하고 있는데요.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판의 대상은 KBS가 아니라 정연주 사장인데 정작 KBS 보도나 프로그램에서 '정연주 색깔'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최 = 제가 그런 말을 했나요?

지 - 방송 관련 토론회에서 하셨는데요.

최 =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맞는 말이죠. 그렇지 않아도 <미디어 비평> 100회 기념해서 얼마 전에 토론회가 있었고, 그걸 책자로 만들어내는데 글을 하나 써달라고 해서 쓰고 있는데, 조중동이 하는 짓을 보면 가증스러워요. 어디서 그게 잘 드러나냐 하면 정연주 사장과 그 아들들에 대한 보도 태도입니다. 그 양반이 아들 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관건은 왜 병역을 면제받았나 이거거든요. 정연주 사장 자신은 서울대학교에서 ROTC 2년 차에 허리디스크가 생겨 가지고 면제 판정을 받았다고 해요. 의심스러우면 병무청 뒤져보면 알 수 있는 거겠죠. 내가 가증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은 아들들에 대한 겁니다. 나이 서른들이 다 된 모양이던데, 떠날 때 애들이 몇 살이었냐 하면 10살이 막 넘었거나 안됐을 거예요. 80년이니까. 그런데 걔들이 가고 싶어서 갔겠어요. 정연주 사장이 미국에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잖아. 그 양반 쓴 책에 보면 잘 나와 있는데, 동아투위 사건으로 지명수배자였거든, 80년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나서 지명수배를 당하고 그 와중에 도망 다니면서 자기 아버지를 목욕탕에서 보거나 이런 식이었다고요. 집에서 못 만나니까 아는 사람 통해서 접선하듯이 목욕탕 같은데서나 잠시 만나는 식이었는데, 조중동 이 놈들이 도대체 그 시기에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서 한 게 뭐 있어요. 독재자 찬양이나 했지

조중동 중의 하나인 동아일보는 정연주씨로 하여금 도망 다니다가 미국으로 가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 직접적인 가해자입니다. 그런 자들이... 참 말이 안나오지. 무슨 낯짝으로 그렇게 얘기할 수 있나, 자기들이 짤라놓고. 지명수배로 도망 다니던 사람인데, 망명 가듯이 미국으로 살길을 찾아서 간 사람에게. 더구나 그 사람은 차치하고라도 아들들은 그때 당시 아직 어린아이들이었을 텐데,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자기들이 가고 싶어서 갔나, 가고 난 뒤에 이제 나이 서른 다 됐을 텐데, 이제 와서 어떻게 하라고. 그때 미국에 도망가듯이 했을 때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 어린애들한테 해준 게 뭐 있어요? 그러면서 이제 와서 병역의무를 안했다고, 군대 안갔다고 조질 수 있나, 더군다나 그때 신문들은 한 게 뭔데, 후안무치도 그런 후안무치가 없는 거지. 더구나 또 하나는 언론사 사주들 또는 사주 일가들의 병역면제 비율이 제일 높아요. 단위집단으로 봤을 때 고위관료나 국회의원들이 일반인들보다 2.5배인가 그래요. 그게 <미디어 오늘>에서도 한번 나왔어요. 그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4배인가 그래요. 아마 조중동에서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방상훈 면제지, 홍석현 면제지, 김병관 등등 알아보면 거기 면제자 많을 거예요. 자기네 사주일가는 다 면제받았는데, 왜 정연주 아들들만 군대 안갔다 왔다고 뭐라 그러느냐 말이에요.

지 - 그러다 보니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방송법 개정'을 통해 MBC, KBS 등의 방송사에 대한 견제 내지는 개입을 시도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 = KBS2·MBC 민영화, 예산결산을 사전에 한다거나 수신료를 없애고 광고로 돌리는 얘기까지 나오는 거 말이죠?

지 - 그쪽에서는 개혁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최 = 신자유주의죠. 민영화하면 무조건 개혁인가? 개인소유로 돌리면 무조건 개혁이에요?

지 - 한나라당이나 보수언론 쪽에서는 방송이 정권에 대해서 우호적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는데요.

최 = 솔직히 얘기해서 작년, 재작년에 보면 MBC 보도가 결과적으로 정권에 도움을 주었었나요?(웃음) 그런데 그건 올바르게 균형을 잡자는 시각으로 봐야죠. 근데 KBS도 그랬나?

지 - 도움이 되긴 했겠죠. 작년 KBS는 안그랬지만, 보수신문들 입장에서는 정연주 사장이 취임하면서 MBC처럼 보도할까봐 우려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웃음).

최 = 그렇지만 KBS 보도가 작년에 비해서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던데요.

지 - 지레 겁을 내는 건데, '조폭언론'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니까 방송도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인가 봅니다. 그런데 그건 자기들 생각이지, 정연주 사장은 철저하게 자율에 맡긴다고 들었거든요. 노조라든지 직원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해준다는데, 흠집내기 하면서 비판을 사전에 막으려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최 =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국민적 심판이 끝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작년에 대통령 선거에서 무명의 노무현이 당선이 되었잖아요. 대세론의 대상이었고, 당연히 될 줄 알던 이회창씨가 떨어졌잖아요.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노무현 지지도도 안 좋고, 민주당 지지도도 안 좋지만, 한나라당은 그것보다 더하다면서요.

지 - 관심 밖으로 사라진 것 같아요. 욕먹는 배우보다 잊혀진 배우가 더 비극적인 건데.(웃음)

최 = 한나라당의 억지 주장에 불과하잖아요. 지금이 복잡한 시기인 것 같아요. 지역구도는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데, 완전히 지역주의가 배제되면서 인물 중심으로 뽑힐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완강한 지역주의가 그대로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지금 과도기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제 전공분야가 아니라서 확실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지 - <미디어 비평>은 지난해 좋은 프로그램에도 선정이 되고, 나쁜 프로그램에도 동시에 선정이 될 정도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던 프로그램입니다. 조선일보에서는 <미디어 비평>을 편파적인 프로그램이라고 비난해 왔지 않습니까?

최 = 그렇지는 않아요. 좋은 프로그램에 선정된 초기인 재작년 2001년 동안 언론 관련상을 사실상 싹쓸이했습니다. 안종필 자유언론상부터 해서 민주언론상까지 하여튼 언론관련 유관단체에서 주는 상을 거의 쓸다시피 했는데, 작년에는 재작년에 준 프로그램을 또 주긴 힘들었겠죠. 작년에는 나쁜 프로그램 공동 3위에 뽑혔습니다. 그게 방송기자단에서 선정하는 상이었는데, 이들 기자단은 프로그램의 질과 관련된 문제를 공개적으로 등수를 매겨 발표하면서도 선정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 한번 열지 않았어요. 그저 자기들끼리 e-Mail을 통해 2~3일 사이에 모은 집계결과를 모아서 좋은 프로그램과 나쁜 프로그램을 1등, 2등, 3등으로 발표해 버리는 단순무식함을 드러낸 것이죠. 그것도 출입기자 명단에 등재된 37명 가운데 고작 17명만이 응답한 결과인데, <미디어 비평>의 경우 동아일보 기자 2명이 나쁜 프로그램 1위로 몰표를 줬다고 합니다. 동아일보가 그렇게 된 저간의 사정은 제가 오마이뉴스에 썼어요. 그걸 가지고 오마이뉴스, 한겨레, 경향신문에서 조져 가지고 방송기자단이 개망신을 당했죠. '무슨 기준으로 좋은 프로그램, 나쁜 프로그램 뽑냐, 최소한의 논의 절차도 없냐'고 해서 방송기자단이 욕을 많이 먹었죠. 방송을 담당하는 젊은 기자들은 잘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방송기자단의 독선적인 행태는 기자단의 탄생배경과 그 취지에서 크게 어긋나 있습니다. 군사독재 시절, 기자 개인이 정보공개를 기피하는 출입처를 상대로 싸우기 힘들었기 때문에 자구수단으로 나온 것이 바로 기자단인데, 혼자서 하기 힘든 정보 청구를 집단의 힘으로 하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고, 정보공개와 관련된 부당한 요구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기자단을 활용했던 것이죠. 이렇게 생긴 기자단이 요즘은 기득권을 가진 언론들의 보호막으로 전락해 버린 듯해요.

지 - 최민희 민언론 총장이 "뚝심과 고집이 대단한 사람이다. 사내외의 여러 의견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금껏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은 그 뿐일 것이다"라고 평했는데, 개인적으로 볼 때는 힘든 싸움 아닙니까? 이런 싸움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언젠가 리영희 선생이 감옥에서 나와 강요된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 분노해서 결심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

최 = 처음에 시작은 '내가 무슨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의 해악이 극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제가 실제 <미디어 비평>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텍스트 분석을 하면서 '조중동이라는 신문들이 얼마나 장난질을 많이 치나' 하는 것을 절감하게 됐어요. 그리고 제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던 것이 '내가 올바른 일을 하는데, 일시적으로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관둬서는 안된다'는 신념이 있었던 거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반대나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내외의 격려와 성원, 지지를 많이 받았어요. 2001년도에 언론관련 유관단체에서 상을 싹쓸이했다는 얘기는 그만큼 힘을 보태줬다는 얘기이기도 하죠.

지 - KBS에서 <미디어 포커스>가 나오면서 조중동은 더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친정부적이라는 비판 사설도 쓰고 있는데요.

최 = 그건 <미디어 비평>에도 그랬잖아요. 그 사람들은 제대로 된 비판을 받아본 적이 없는 기득권 세력이니까요.

지 - 방송에서 그것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미디어 포커스> 쪽에서도 '우리도 웬만하면 조중동을 피해가고 싶은데, 그쪽에서 계속 따라오고, 걸리는 것을 어떻게 하냐?'고 하기도 하는데요.

최 = 그런 점이 있어요. 방송하면서 그 놈들이 하도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주장과 비판을 하는 게 귀찮아서라도 '이번만큼은 조선일보 피해가자'고 해도 사사건건 걸리는 게 그거야, 저는 정공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고, 용기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공법으로 꾸준히 밀고 나가면 언젠가 인정을 받는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아까도 얘기했지만, 담론의 대결구조라는 것이 어느 한쪽이 어느 일방을 압도한다거나 제압하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지금 시기가 얼마나 좋아요. 싸우기가. 예전에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지 - 시민단체의 언론개혁에 대해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국민의 힘'류의 안티조선 운동에 은 총칼 안들고 문화혁명을 하겠다는 것이며, 절독방법을 개발해서 안내하겠다는 것은 문화테러나 다름없는 어이없는 발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얘기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민단체 등이 언론개혁을 위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한다고 보십니까?

최 = 이것은 강준만 교수가 누차에 걸쳐서 주장하던 건데, 언론개혁은 모든 개혁의 선차적 조건입니다. 저도 그렇게 많이 얘기했어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쉽지 않은 게 언론만 이 사회로부터 분리된 무인도도 아니고, 여기만 일반인들과 달리 독립투사들만 모인 집단도 아니기 때문에 어렵긴 어려워요. 그러나 어쨌든 일반대중들, 시청자나 독자들을 사태의 진상으로 연결시키는 채널, 창이 바로 언론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일반 국민들과 시민들은 언론을 통해서만 '정부에서 하는 일이 뭐고, 그것이 옳고 그른 건지, 어떤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런 것을 다 알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건 국내외의 모든 문제에 다 해당되죠. 그렇기 때문에 설령 희대의 비리가 저질러지고 있어도 언론이 그걸 덮어버리거나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않으면 묻혀버리고 마는 거예요. 80년 광주항쟁이 일어났을 때 언론들이 저항을 했으면 전두환이 그렇게 쉽게 집권을 할 수 있었겠어요? 언론들이 알아서 긴 측면이 많잖아요. 드골은 나치 부역 언론인을 청산할 때 '언론은 시대의 양심인 만큼 그 양심을 저버린 자들은 가차없이 처단해야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에스쁘리(정신)를 죽이는 행위가 가장 큰 범죄행위'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언론이 그 대표적인 분야인데, 결국 지식인과 언론인들은 대중들을 계몽하고, 대중들에게 정보를 알리고, 사태의 진실과 본질을 알리는 직업입니다. 언론이 똑바로 서있지 않고, 있는 걸 깔아뭉개고, 과장하거나, 축소하거나, 은폐하거나 그러면 나라가 제대로 될 수가 없겠죠.

지 - 앞으로 특별한 계획은 있으십니까?

최 = 특별한 계획이 어디 있어요. 특별한 계획 그런 건 없고.

지 - 그럼 특별하지 않은 계획이라도.(웃음)

최 = 후배들의 기억에 남는 선배가 되고 싶고, 일반인들로부터 그 사람 훌륭한 방송인, 언론인이었다는 소리를 듣도록 노력을 해야겠죠.

지 -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인터뷰는 격월간 아웃사이더 15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 필자는 '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인물과 사상)'의 저자입니다.

[닷그니]

막걸리 타입의 최용익부장님도 사람 참 좋으시고, 인터뷰어 지승호씨도 요즘 인기가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