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에 대한 존중
임병식
오래전 영암 구림마을을 찾았다가 이색적인 시비를 보았다. 삼당시인 최경창 선생의 후손이 사는 집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의 손에.’
기생 홍랑의 시비였다.
최경창과 홍랑의 사랑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홍랑이 선생의 시문을 갈무리하고 시묘살이까지 했다는 내력을 생각하면 시비를 세운 뜻을 알 만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홍랑의 묘가 최경창 선생의 무덤 아래에 있으며, 후손들이 그를 ‘홍랑할머니’라 부르며 제사를 지낸다는 사실이었다.
반상의 구별이 엄격하던 시대에 한 사람의 헌신을 이토록 귀하게 여겼다는 사실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정사제 선생은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으나, 어머니의 병환으로 고향에 내려와 있었다. 임진왜란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1594년 5월, 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선봉에 서서 남원으로 향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선비는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노비를 대동하고 애마에 올라 전투에 나섰으나, 불행히도 왜군의 조총에 맞아 쓰러졌다.
곁에 있던 노비 보리쇠가 통곡했다. 애마도 주인의 죽음을 아는 듯 서글피 울었다. 보리쇠는 그 자리에 시신을 묻고 옷가지와 신발을 수습했다.
노비와 말이 집에 돌아오자 집안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후손들은 가묘를 마련하고, 훗날 그 아래에 보리쇠와 말의 무덤도 조성했다.
주인을 향한 헌신을 잊지 않고 예우한 것이다.
세월이 오래 흘렀어도 두 이야기는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홍랑과 보리쇠, 그리고 이름 없는 말까지. 그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기린 사람들의 마음이 고맙다.
사람은 떠나도 그가 남긴 헌신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마음이 있는 한, 지난날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조용히 말을 건넨다.
(2026)
첫댓글 홍랑과 보리쇠의 이야기를 통해 신분과 종을 넘어선 헌신, 그리고 그 헌신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마음의 가치를 전합니다. 두 일화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마지막에 ‘기억하고 예우하는 마음’이라는 주제로 수렴한 점이 좋습니다. 특히 이름 없는 말까지 기억의 대상으로 삼아 글의 따뜻함과 여운을 더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마음이 잘 배어 있습니다. 과거의 미담을 단순히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귀하게 여겨야 하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두 문중에서 기생과 노비, 애마의 헌신에 대하여 기리고 있는 것은 많은 감동을 줍니다.
이런 일화들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중에도 장마중에 햇빛나듯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둠어 주지 않는가 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는 홍랑과 보리쇠의 헌신, 그리고 그 충절을 잊지 않고 예우한 후손들의 마음을 깊은 시선으로 담아내신 귀한 수필 잘 읽었습니다. 헌신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삶의 고귀한 가치를 일깨워 주시는 선생님의 묵직하고 그윽한 성찰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늑한 가울볕 같은 울림을 줍니다. 언제나 온기 어린 문학적 사유로 세상을 밝혀주심에 감사드리며, 깊어가는 결실의 계절에 늘 강건하시고 주님의 참된 평안이 충만하시길 소망합니다.
두사람의 이야기는 많은 감동을 안겨줍니다.
더구나 후손이 자기 조상을 섬긴 기생과 머슴, 그리고 말까지 예우하여
그분들의 산소아래 무덤을 지어주었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흐뭇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