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래의 기록은 7월 26일 ~ 7월 27일 새벽까지 기록이다. 서울경찰청장이 지난 주에 바뀐 이후 경찰의 진압 강도가 강해졌다.
그냥 닥치고 잡아다. 다음 주 7월 30일부터 백골단이 현장에 투입될텐데 진압 강도는 더욱 세질 것이다. 이날 종로경찰서장은
"해산작전"이 아니라 "검거 작전"을 하겠다고 방송으로 경고했었다. 7월 27일 새벽 연행자도 수십명에 달한다. 신임 경찰청장은
취임식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으로 신문에 보도되었는데, 어제 현장은 과연 신임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다.
▲민간과 경찰이 함께 하는 치안공동체 구축 ▲시민을 섬기는 고품격 치안서비스 제공
물
론 경찰대학장으로 전보 조치된 한진희 전 서울경찰청장 역시 마찬가지고. 한진희 전 서울경찰청장이 잘린 마당에 그 밑에서 일하다가
승진 취임한 김석기 신임 서울청장이 한진희 보다 온건하게 나올 가능성은 결코 없다. 다음 주에 백골단이 투입되면서 보다 강도
높은 시위 진압이 아니라 "닥치고 검거" 위주의 테러 위주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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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58분, 조계사에 있던 나는 종로1가로 향했다. 종로1가쪽에서 충돌이 났다는 상황 정보를 받아서였다. 천천히 걸어가는 길에
홀로 삼보1배를 하고 계시는 스님을 마주쳤다. 경찰은 이 무렵 안국동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 이미 닭장차를 세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종로1가에 도착해보니, 도로를 사이에 두고 경찰과 시위대가 양측에서 서로 마주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이 사진은 20시 03분에 촬영한 것으로 종로1가 르메이에르 빌딩쪽에서 대열을 갖춘 기동대다.맞
은 편 청계광장 가는 길에는 이렇게 시위대가 모여 있었다. 시위대 숫자는 대략 2000여명? 많지는 않았다. 청게광장에도 꽤
많은 수의 시민들이 모여 있었으나 경찰은 시청광장 마냥 닭장차로 청계광장을 빙둘러싼 상태였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는지는
모른다. 초기 충돌은 어땠는지 상황을 알지 못하나 내가 도착했을때는 저렇게 남북으로 서서 대치하고 있었다. 전경들은 북쪽에
있으니 친북 세력인가? ........ 죄송 ;;
20
시 09분, 서로 기싸움을 벌이던 중, 시위대는 천천히 종각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경찰은 일단 그들을 가게 내버려두었다.
종각으로 향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청계광장 상황이 궁금해서 발길을 청계광장으로 돌렸다. 그리고 나를 맞이한
것은,
이렇게 청계광장을 빙둘러서 막은 닭장차였다. 닭장차가 들어서지 못하는 구석은 역시 전의경으로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국정보사회진흥원 건물 앞도 마찬가지였고, 시청으로 가는 무교동 길에도 전의경들이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다.
정
보사회진흥원 건물있는 곳이다. 경찰이 저렇게 틈사이를 가득 메꾸고 있었다. 소양감 댐에 구멍이 나도 저렇게 전의경들로 때워봐라.
그런다고 막아질까? 주로 중장년층 시민들이 인도를 가로막고 청계광장으로 가는 보행권을 침탈한 것에 대해 항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있던 경찰 지휘관의 대답이 걸작이다. "국가보안법때문에 막았다". 중장년층 시민들이 기가 막혀 격렬히 항의하고, 시민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지휘관은 사진 왼편에서 앉아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을 일으켜 세워 방패로 이곳에
몰려 있던 시민들을 밀어냈다.
20시 18분, 청계광장에서 사방이 막혀 지상으로는 움직일 수 없었던 시민들은 청계천으로 내려가 청계천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청
계천을 따라가는 시민들이다. 이들은 바로ㄷ 다음 다리에서 올라와 종각으로 곧장 향했다. 이 광경을 보며, 다음 집회ㅤㄸㅒㅤ는 경찰이
청계천도 막아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계천 물이야 어차피 펌프로 끌어올리는 것이니 펌프 작동을 중지시키고 양쪽
산책로와 청계천 바닥에 전의경들을 줄줄이 메워놓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차벽에 명박산성 등 기상천외한 방법을
사용해온 경찰이니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종
각에 시위대가 집결한 것은 대략 20시 30분 경이었다. 새로 민주노동당 당대표로 선출된 강기갑 의원과 민노당 사람들이 (강기갑
말고는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저런 펼침막(플래카드)를 들고 종각에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이 나중에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진압이 시작될 무렵엔 모두 없었다. 너희도 정치 쇼냐?
종각역에 모인 시위대의 모습.
조
계사 방면 모습이다. 예전에는 안국역 사거리에서 동십자각 사거리로 넘어가는 언덕배기에 차벽을 설치하고 접근을 막던 경찰이 신임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7월 24일 업무를 개시한 후 아예 조계사를 넘어 저곳까지 넘어와 닭장차가 아니라 전의경들로 가로막고
섰다. 한진희 전 청장이 전격 경질된 후 첫번째 촛불집회라 김석기 신임 청장이 보다 강경하게 전진 배치를 명령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덕분에 조계사로 들어가려던 일반 신도들도 매우 불편을 겪지 않을 수 없었고, 조계사에 있던 농성단과 안티이명박 카페
회원들도 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조계사를 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이었다. 실제로 7월 27일 새벽, 경찰은 조계사
정문을 2개 중대를 동원하여 아무도 못들어가게 막기도 했다. 덕분에 새벽 예불을 드리러 오던 불자들의 불편은 대단했다.
조계사 쪽으로 행진하던 시위대 몇 명.
21시 24분, 동대문 방면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깃발들이 앞에 일렬로 섰고, 약 20m 후방에 시위대가 스크럼을 짜고 섰다. 2명이 전체를 지휘했으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종
로1가쪽에 아까 20시경의 경찰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병력이 물대포와 함께 배치되었다. 종로경찰서장이 나와 해산 경고 방송을
하는데, "검거 작전을 하겠다"고 말해 놀랐다. "해산"이 아니라 "검거"였다. 그리고 이쪽에는 시위대도 별로 없었는데,
종로경찰서장은 3회 방송을 했다고 애기했다. 20시 20분 경 진압때는 경고 방송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23시 10분경에 진압
들어올 시에는 방송이 없었다. 저걸로 갈음했다는 얘기인가.
그들의 코앞에서 민중가요를 틀던 일단의 시위대. 등에 스피커를 메고 노트북으로 음악을 틀었다. 지난 19일에도 나타났던 그 친구들이다.
녹색 조끼를 입은 인권감시단. 하지만 그들이 있건 없건 경찰의 폭력은 계속된다.
종로1가에서 상황을 취재하는 취재진 일부. 오른쪽 격자 무늬 옷(판초우의로 추정)을 입은 머리 긴 사람은 그냥 일반 시민.
종로1가에서 대기하고 있는 예비군들. 이날 예비군 5명 정도가 연행되었다. 지난 6월 1일 효자동에서 닭장차 위에서 물대포를 단신으로 막았던 차중사도 이날 연행되었다.
21시 54분, 종각에서 동대문으로 행진을 개시한 시위대. 이들의 목적은 선전이고 홍보다.
그
뒤를 따라오는 시위대. 그런데 제발 마스크 좀 쓰자. 마스크를 쓰고도 턱 밑에 걸쳐놓기만 하는 건 또 뭐란 말이냐. 일일이
삭제하는 것도 시간많이 걸린다 -0-;;;; (특히 이런 사진은....) 선창에 따라 "이명박은 물러나라", "어청수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박수와 함께 박자를 맞추어 외쳤다. 주변 시민들 중에도 박수 치는 사람들이 많이 목격되었다.
동대문 방향으로 행진하던 중 발견한 촛불자동차연합 소속 차량. 종로 2가 탑골공원 근처에서 나는 다시 종각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동대문으로 향했던 시위대가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종각에 잔류한 시위대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10시 20분 즈음에
"종각에서 진압이 시작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래도 수천명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22시 23분, 일단 한 판하고 나서인지 저렇게 대치 상태였다. 전과 달리 상당히 이른 시각에 시위대가 그래도 꽤 있는데 밀고 들어왔다. 확실히 서울경찰청장이 바뀌고 나서 경찰의 진압도 달라지는 것 같다.
경찰의 밀어붙이기에 저항하며 "평화 시위 보장하라"를 외치던 시민들.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동대문으로 향했던 시위대가 돌아오는 것이었다.
22시 28분, 보신각 앞 시민들과 경찰들. 그리고 그로부터 2분뒤, 그들이 돌아왔다.
22시 30분, "으ㅤㅆㅑㅤ 으ㅤㅆㅑㅤ", 그들이 돌아왔다. 종각에 접근하면서 그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깃발들이 제일 앞에 섰고, 뒤에 본대도 뛰어오고 있었다.
선두 대열은 여전히 스크럼을 짠 상태였다. 수십명이 스크럼을 짠 상태로 뛰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 뒤의 대열은 보시다시피 각자 알아서.... ;;;;
22시 38분, 예비군들은 여전히 종로1가쪽을 경계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동대문에서 돌아온 시위대의 규모에 경찰은 일단 병력을 철수시켰다.
깃
발들과 각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가졌고, 23시 30분에 자진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만일 그 전에 경찰이 진압들어오면 명동
방향으로 서서히 후퇴하는 것도 계획에 들어갔다. 그런데 경찰이 그걸 알고 있었다. 7월 26일 23시 즈음에 종각 사거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깃발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을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23시 30분에 깃발을 내리고 자진
해산하기로 결정한 것인데, 경찰이 그걸 알고 있었다. 안티이명박 카페에 한 회원이 쓴 글에 11시 쯤 집에 가려고 청계천을
지나가는데 교통경찰의 무전기에서 11시 30분에 시위대 해산 예정이라는 무전이 나오는 것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불과 30분 뒤에 자진 해산할 것임을 알고 있었으면서 경찰은 무리하게 강제 진압을 감행했다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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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24분, 먼저 움직인 것은 조계사 방면 경찰들이었다. 그들은 천천히 내려왔다. 일부 철부지들이 폭죽을 이들에 쏘아댔지만,
방패로 막으면 그만인 폭죽을 왜 쏘는 지 모르겠다. 위협용이라고 하지만, 고작 그런 걸로는 위협거리가 되지 못하는 데 말이다.
생각이 짧은 사람들은 어디나 있게 마련이지만.
줌을 돌리며 셔터 누르는 나오는 효과란 걸 알았다. 재미들였나보다. 한 컷 시도해본 사진.
23시 32분, 종로 1가 쪽에서도 물대포와 경찰이 몰려왔다. 예비군들이 종로1가 쪽으로 스크럼을 자고 섰다. 하지만, 이날 시위대 대형은 매우 안좋았다.
저
렇게 시위대가 있었다. 양쪽에서 허리를 끊고 들어오기 정말 좋았다. 사거리에서 물러나 종로3가쪽으로 보다 이동해서 양쪽에서 치고
들어오지 못하게 대열을 정비했어야 했는데, 미처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물론 경찰도 그것때문에 다급하게 치고 들어왔을 것이다.
게다가 종로1가쪽에서 온 병력 중 일부가 조계사 길로 이동했고, 이들이 자리를 잡지마자 소화기를 쏘고 방패를 마구 휘두르며
대각선으로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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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36분에 시작되었다. 종로1가에 있다가 조계사로 가는 길로 이동한 병력이 소화기를 쏘며 난입하면서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캠코더와 카메라들이 플래쉬를 터뜨리기 시작했고, 종로1가쪽에서도 소화기를 쏘며 진격하기 시작했다. 왼쪽 사진의 노란 색 옷 입은
여성은 진보신당 칼라TV의 이명선 리포터인데, 이상하게 찍혔네 ;;;;;
경찰이 소화기 직후 대각선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패도 마구 휘둘러 시민들을 패기 시작했다.
이 상황은 몸싸움 중인 상황이고, 이 와중에 한 시민이 넘어졌다. 전경의 저 뻗은 팔은 시민을 가격하려는 것인지, 방패를 지키려고 뻗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손 방향을 봐서는 방패를 잡으려는 것 같다.
넘어진 시민을 끌어가려는 경찰과 이를 저지하려는 시민들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 순간. 첫번째 2장의 사진에서 도로에 쓰러진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남성이 보이고, 경찰이 그를 끌어가려 하자 주변 시민들이 연행을 막기위해 경찰을 밀어내면서 시민을 보신각쪽으로
빼려고 하고 있다.
왼
쪽 사진에서 보다 분명하게 보이는 흰색 와이셔츠 차림의 중년 남성. 그리고 오른쪽에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사람은 사복 체포조다.
형사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시민이 팔을 못뻗게 막고 있고, 노란색 우의를 입은 사람이 파란색 티셔츠를 받쳐주고
있다.
23시 38분, 사거리에서 완전히 밀려나, 보신각쪽으로 밀려났다. 필사적으로 시민들이 경찰의 접근을 막으려 애쓰고 있지만, 힘이 모자랐다.
헬
멧을 쓰지 않은 전경 뒤에 보이는 노란색 우의는 50대로 추정되는 노인이었다. 어떤 전경 하나가 노인을 질질 끌고 가다가
내팽개친 후의 모습이다. 이후 이 분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사진 속 전경은 노인이 아스팔트 도로 한복판에 나뒹굴자
달려와서 노인을 도로에 패대기질을 한 녀석을 더 이상 폭행을 못하게 제지했다)
보신각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시민들.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그
틈을 타서 시위대를 채증하는 채증 담당 전경. 몇 명 시민들이 플래쉬와 레이저포인트를 집중 겨냥했고, 얼마 뒤에 사라졌다.
하지만 어디서 누구를 찍었는지는 모른다. 이날 사복 형사들이 몰래 시위대열에서 채증하다가 몇 명 걸렸고, 조선일보 기자는 프레스
완장도 없이 몰래 사진 취재하다가 걸려서 쫓겨났다. 나도 오늘 시민들에게 2번 프락치 오인받아 얼굴 붉히며 싸웠다. 그런데
그때마다 내 얼굴을 아는 분들이 근처에있어서 아니라고 변호하여 주어 큰 불상사는 없었다. 프레스 완장도 없는 나같은 사람들은
경찰과 시민 양쪽에서 두들겨 맞기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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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45분 상황.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가 있는 상태. 촛불다방이 보신각 앞에서 시민들에게 물과 아이스커피를 봉사하고 있었다.
종로경찰서장은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지난 7월 17일에도 뚜렷한 이유없이 촛불다방 차량을 억지로 끌고 가고 촛불다방 주인을
연행했던 경찰이었다. 그때도 종로경찰서 관할인 종로3가였고, 지금 보신각도 종로구 관철동으로 종로경찰서 관할이다. 이 일대 시위
진압 현장 지휘는 종로경찰서장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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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53분, 갑자기 전경들이 촛불다방으로 억지로 방패로 밀어붙이며 들어왔다. 내가 아이스커피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빈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릴려는 찰나, 갑자기 경찰들이 촛불다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다시금 아수라장이 벌어졌고, 경찰에 밀린 시민들과
전경들의 발길질, 방패질에 촛불다방은 박살이 나고 말았다.
아
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다. 철거가 목적이었나? 인도 한 복판, 보신각 철제 울타리에 있던 촛불다방이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였던가. 7월 17일의 강제 연행으로 걸리면 패주마,라고 이를 갈고 있기라도 했던가? 단지 부수는 게 목적이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촛불다방으로 진입한 경찰들과 시민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촛불다방은 완전히 박살이 났다. 맨 마지막 2장은
시민들에게 붙잡힌 전경 하나가 시민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이다. 이후 이 친구는 이미 신문에 난 것처럼 상의와 신발이 벗겨진 채
경찰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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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분에 걸친 소란 끝에 엉망이 되버린 촛불다방의 잔해들. 이 사진 직후 나는 누군가에 의해 목덜미가 당겨져 뒤로 끌려갔다. 내가
걸치고 있던 검은색 조끼 때문에 날 경찰이라고 생각한 어떤 사람이 날 팰려고 끌고 간 것. 기가 막혀 그 사람하고 말싸움을
벌였고, 같이 나를 끌어냈던 사람이 내가 입고 있던 조끼를 알아보고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지만, 하마트면 시민들에게
폭행당할뻔했다. 쩝.
날
이 바뀌어 7월 27일 00시 02분. 보신각 앞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약 40여분에 걸친 몸싸움 와중에 예비군 5명이
연행되었다고 들었다. 이날 새벽 4시 경까지 전체 연행자는 42명. 예비군 연행자 중에는 차중사도 있다. 이날 보신각 주변에서
예비군을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체 왜 예비군을 욕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 날 예비군은 동료 5명이 연행되는 바람에
몹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안하는 것도 아니며 매일 사람이 없더라도 시위 현장 곳곳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00
시 20분 경 (사진은 00시 23분 촬영). 경찰이 종로2가 골목, 보신각 옆 골목으로 기동대를 밀어넣었다. 밀어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이들은 5분도 안되어 뒤로 물러났다. 이들이 물러나자 시민들 일부는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음주운전자가 사람들을
들이받은 현장이다.
소식을 듣고 내가 현장으로 갔을때는 시민들이 부상자가 흘린 혈흔을 보전하기 위해 도로에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일부 무신경한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ㅤㅂㅏㅀ고 지나가기도 해서 사람들 눈쌀을 찌푸리기도 했다. 현장
보존을 위한 조치를 경찰은 제대로 취하지 않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CSI 시리즈를 봤고, 그래서 현장 보존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데 말이다.
현
장 사진 4장. 피잣구과 고인 피, 그리고 급브레이크 자국이 선명하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라커로 타이어 자국을 표시한 것이다.
교통 경찰 1명이 와서 라카로 혈흔 주변을 표시하는데 잘 나오지 않아 제대로 표시가 안되어 시민들의 야유를 받았다. 시민들은
현장 보존을 위해 사고 현장 주변에서 스크럼을 짜고 제대로 된 처리를 요구했다. 그러나 경찰은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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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03분, 시위진압을 위해 몰려왔다가 뜻밖의 돌발 상황에 멈칫하고 있던 전경들이 다시 시민들을 인도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밀려난 시민들이 서 있던 장소가 앞서 사진을 찍은 혈흔과 타이어자국이 있던 자리였다. 경찰은 사건 현장을 마구 짓ㅤㅂㅏㅀ으면서
시민들을 인도로 밀어붙였다. 게다가 그곳에는 도로와 인도를 가르는 철제 울타리가 있던 곳이었다. 계속 밀어도 올라갈 곳도 없다.
담을 넘어야 하는데, 경찰은 아랑곳없이 방패로 마구 밀어붙였다. 자칫 울타리에 걸려 인도쪽으로 거꾸러지거나 하면 어떻할려고
그렇게 밀어붙이는가. 시민들이 "올라갈 틈은 줘야 할 거 아니냐, 여기 울타리가 있다" 등 항의를 해도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나도 울타리와 전경 사이에 갇혀 있다가 인도에 있던 시민의 도움으로 울타리를 겨우 넘었다(짐이 많아서...;;;)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경찰들. 이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뒤에는 울타리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전경과 시민들.
저렇게 난간이 있다. 난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그냥 방패를 앞세워 밀어붙이기만 했다.
사
고현장을 휴대폰으로 촬영했던 한 독일인. 관광객은 아닌 것 같다. 왼쪽 남자는 이 독일인의 친구. 안티이명박카페에서 인터넷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데, 시험방송 중이다. 사진찍을 당시에는 아마 독일에서 이런 경우 어떻게 처리하는 지에 대해서 인터뷰하고
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
후 약 1시간 동안, 탑골 공원 사거리 주변에서는 경찰이 아무나 연행하느라 정신없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진짜 취객들도 몇
명 있었다고 한다. 탑골공원 주변은 피맛골, 인사동을 비롯해 유흥가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에 연행된 사람도 있었다. 42명
연행자 중에서 이때 아마 제일 많이 연행자가 발생한 것 같다. 이 사진은 멀리서 플래쉬를 터뜨릴 수 없는 상황(유리창이 있어서
플래쉬를 터뜨릴 경우, 빛이 난반사되는 지 도저히 무슨 사진인지 알아볼 수 없는 사진이 나왔다)에서 겨우 건진 것. 탑골공원
건너편 금강제화가 있는 쪽이며 연행자가 1명 나온 후다. (04시 12분) 시민들이 연행에 항의하자, 이후 다시 경찰은 기동대를
몇 겹으로 횡단보도를 막았다. (횡단보도를 대체 왜 막냐고)
첫댓글 ㅉㅉㅉㅉㅉ
26일날 강서구 깃발 들고 있던 사람입니다 . 일찍들어와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