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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집 막내 광림이가 서울에 갔습니다. 1년 계획으로 국제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섬기게 될 것입니다. 막내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시원섭섭하기도 했지만 염려가 되었습니다.
서울 서초동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부모님들의 민원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서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으로 신문이 뜨겁습니다. 교권이 무너진 시대에 교직이 극한직업이라는 것입니다. 서초동의 그 학교는 아니지만 서초동(서울 강남 중의 강남)의 국제학교이니, 얼마나 어려움이 다가올까 염려가 됩니다. 안되면 돌아오라고 했지만 ‘그래도 1년은 버티다가 와야지요’라고 하면서 떠나갔습니다.
씩씩하게 웃으며 떠나갔지만 떠나보면서 마음은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의 극심한 핍박과 박해 가운데 특별히 악하고 속이는 자들이 득실거리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와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제자요 믿음의 아들된 디모데에게 당부합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
‘그러나 너는 ….’ 세상에 아무리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로 뒤범벅이 되어서 말세의 고통의 때라고 할지라도 ‘그러나 너는 …’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너만은 달라야 한다는 당부입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라”
이 구절을 더 분명하게 시제를 강조해서 번역을 하면 이렇습니다.
“너는 이미 배웠고, 이미 확신한 일에 계속 거하십시오”
너는 이미 과거에 배웠고, 또한 과거에 이미 확신한 바를 지금 계속하여 꾸준하게 거기에 머물라는 말씀입니다. 너 만은 ….. 세상이 어떠하든 간에 너는 이미 배운 바를, 그리고 이미 확신한 바를 계속하여 지속할 것을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
그러면 이런 질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디모데가 도대체 배운 것이 무엇이며, 이것을 어떻게 확신했을까요?
여러분, 우리를 한 번 돌아 보십시다. 우리가 지금까지 정말이지 무수하게 배웠습니다. 어릴 적부터 ‘맘마’하면서 말을 배우고, 숟가락 젓가락질을 배우고, 글을 배우고, 배우고, …… 한국 엄마들의 교육에 대한 열성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배우기를 갈망하면서 살았습니까?
저는 고등학교 때에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배웠던 미분적분들, 지금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배웠던 독일어, 히브리어는 겨우 알파벳 정도만 기억되고 있습니다. 교과과정에 의해서 학점을 따고, 진급하기 위해서 배웠던 것입니다. 지금은 전혀 사용되지를 않고 있습니다.
배운 바를 지금도 실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은 실생활에 정말 필수적인, 그리고 생존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말은 정말로 대단한 이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배운, 확신한 바를 지금도 지속적으로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가 배운 것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배운 것은 배운 것으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신을 가지고 실생활에 적용하고 계속 지속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디모데가 확신할 수 있는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누구에게 배웠는가? 또 하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확신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여기에 따라서 인생을 걸고 못걸고가 가려집니다.
19세기에 독일 고전음악을 이끌었던 요한네스 브람스라는 음악가가 있습니다. 그가 대음악가로 시대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슈만이라는 선배 음악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년 브람스가 슈만의 집에 방문해서 자신의 자작곡으로 피아노로 연주했습니다. 이때에 슈만이 2층을 향해 소리를 쳤습니다.
“클라라! 어서 내려와요. 여태 들어본 적이 없는 훌륭한 음악이요.”
이렇게 음악 신인을 대선배 음악가가 알아봐 주고, 관계 속에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선배의 조언에 확신을 가지고 갈고 닦으면서 브람스는 큰 음악가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대가의 가르침은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제가 골프를 시작하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골프를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에 골프를 가르쳐 줄 사람이 6개월 전에 골프를 시작해서 핸디캡 25정도 되는 사람에게서 스윙 기술이나 법규를 가르치게 되면 저는 좀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해도 되는가? 내가 바로 배우고 있는가?’ 하는 의문 속에서 확신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골프 프로에게서, 혹은 세계적인 골프 선수나 코치에게 배우게 되면 ‘그래 맞다. 저렇게 하는 것이 정식이야. 나도 그렇게 해야지’하면서 따라서 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에게 배우느냐?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서 확신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디모데의 경우 어떠합니까? 디모데는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본문을 보면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서 “누구”라는 말에 대해서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울입니다. 믿음의 스승인 사도 바울에게서 배웠습니다. 더 나아가 어릴 적부터 디모데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양육을 받았으니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디모데가 무엇을 배웠습니까?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디모데가 배운 성경입니다. 어릴 때부터 디모데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구약을 배웠습니다.
보통 유대인의 가정에서는 어릴 적부터 성경을 가르칩니다. 만 3세가 되면 히브리어 알파벳을 가르치고, 만 4세가 되면 어머니가 성경을 읽어줍니다. 만 5세가 되면 아버지가 대화식 성경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10세가 되기까지 구약 성경을 5번 정도를 읽습니다. 어릴 적부터 철저히 부모님으로부터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런 민족이기에 나라를 잃고 2000년 동안 떠돌아다녀도 민족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가진다면 얼마나 놀라운 민족으로 쓰임 받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어릴 적부터 우리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마땅히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성장해 버리면 자기들의 세계에 빠지고, 부모가 영향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시절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녀의 신앙 교육에 중점을 주어야 합니다. 교회보다 앞서서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디모데는 어릴 적에 외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나아가 그는 사도 바울을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바른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을 따라다니면서부터 주님의 말씀과 그분의 계시에 근거한 사도의 가르침, 즉 우리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신약을 배웠을 것입니다. 이맇게 디모데는 신구약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과거에 살게 했습니다. 현재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나아가 바울은 미래에도 그렇게 살 것을 권면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제자인 디모데에게 성경의 배운 바를 확신을 가지고 살아감에 대한 유익함을 말합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5)
우리가 성경을 구체적으로 배워갈 때에 얻게 되는 유익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1) 하나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신구약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의 주제는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 신약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1400년에 걸쳐 40여명의 저자들, 여러 시대, 여려 부류의 사람(왕 어부 농부 등등)들에 의해서 기록되었지만 오직 한 주제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고 읽고 암송하고 배우므로 유익한 것은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나아가 이 선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선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의 선물을 받고자 어떻게 하시고 있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주님, 한 말씀을 주십시오’라는 가난하며 간절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허기진 우리 영혼에 말씀은 달고 단 말씀으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매일 읽으시고, 묵상하십시오.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 하루 삼끼를 챙기는데, 영혼을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가까이하십니까?
그리고 기회가 되면 말씀 공부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을 내어 참석하고, 믿음의 확신의 자리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성경의 유익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2) 그 다음으로 , 성경의 유익함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므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본질적으로 구원의 안내서가 됩니다.
인간이 구원을 얻는 길(지혜)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자연현상이나 어떤 사실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의 우주 탐험이나 구체적인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가르쳐 주시는 진리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심판을 받아야 할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획은 성경을 통해서 계시되었습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이 되게 하시고, 대속적 죽음을 위해 십자가에 내어놓으셨습니다. 인간이 되신 하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보내심을 통해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몸된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증거되고, 자기 백성의 구원으로 인도하심을 성경을 통해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요 안내서입니다.
여러분, 구원받았습니까? 오늘 밤에 죽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구원을 안내 받으십시오. 성경은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구원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의 생명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뿐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도 구원의 지혜를 줍니다. 삶 속에 맞이하는 위기로부터 건져 주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고백했습니다.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읽고 듣고 행하는 자가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몰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장소를 방문하게 될 때에 도움을 받는 기기가 네비게이션입니다. 정말 똑똑하여서 몇 미터 후에 라운더어밧에서 몇번째 길로 가라고, 오른쪽 왼쪽 하면서 자세하게 가이드해줍니다. 그래서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합니다.
오늘 나그네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인생이 천국 본향에 다다르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매일에 우리 영혼의 가이더, 구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가고, 그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구원의 안내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인 성경을 가까이하는 복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확실한 세대에 확신을 가지기 위해, 말세지말에 악한 자와 속이는 자가 득실거리는 세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자리에 머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 예수 구원, 예수 생명, 예수 능력으로 살아가는 여러분과 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