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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1월 6일 화요일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온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군중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일으키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0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빵을 많게 하신 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로 나타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4-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34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35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36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37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알아보고서,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
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
40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41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42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43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44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마르 6,34)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가르쳐 주셨을까요? 재물과 권력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방법을 알려 주셨을까요?
날이 저물자 제자들은 군중을 돌려보내 저마다 먹을 것을 구하게 하자고 예수님께 건의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6,37) 하시며,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6,38)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가르치신 것은 분명 하느님 나라의 진리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핵심은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함께 들었을 제자들은 그 사랑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빵이 몇 개 있느냐?” 하고 물으시면서 “가서 보아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가지고 있는 빵의 개수를 확인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받은 것을 돌아보라는 말씀이 아니었을까요? 곧 우리가 주님께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는지 생각하고, 그것을 이웃과 나누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나눌 때 부족함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진 것이 많은지 적은지가 아니라 나누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도 주님께 받은 은총이 얼마나 큰지 먼저 생각하고,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이철구 요셉 신부)
예수님께서 친히 차리신 밥상!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예수님의 공생활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인품, 능력에 매료된 수많은 군중이 식음조차 잊은 채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십니다. 빵을 많게 하신 기적입니다.
그런데 기적의 장소는 예루살렘이나 카파르나움이 아니었습니다. ‘외딴곳’이었습니다. 한적한 장소, 즉 광야를 떠오르게 합니다. 시야가 확 트인 광활한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장정만 5천 명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설교 장소에는 여인들이 곱절은 많습니다. 거기다 따라온 아이들까지, 줄잡아 2만 명 남짓 되는 엄청난 규모의 군중입니다.
그 광경이 마치 출애굽 여정의 모세와 백성들의 모습과 유사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제2의 모세로 등장하셔서 광야에 모인 군중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빵을 나눠주십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마도 새로운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는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백성들은 그 은혜로운 자리에서 하느님 나라를 온몸으로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제외되지 않고 배불리 먹었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동반하시고, 양육하시니,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나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빵을 많게 하는 기적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일련의 행위들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그분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십니다. 이 동작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계신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아버지와 내적인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암시입니다.
유다인들은 매 식사 전에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는데, 가장들은 기도를 드릴 때, 시선이 손에 들려 있는 빵으로 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분은 감사 기도를 마치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신 후,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셨습니다.
그 한적한 광야에서 예수님께서는 굶주린 군중의 필요성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십니다. 함께 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십니다. 제대로 된 식탁도 없고, 서빙도 없는 초라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거룩한 식사, 하느님 백성과 메시아가 함께 하는 놀라운 식사였습니다.
저는 요즘 주방에서 일을 하면서, 밥 한 끼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정성과 사랑이 잔뜩 들어간 한 끼 식사는 사람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킵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 한 상에 쌓인 피로와 상처, 외로움과 슬픔이 말끔히 치유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군중을 위해 친히 밥상을 차리셨습니다. 그 식탁에서는 그 누구도 제외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풍성하고 풍요롭습니다. 비록 소박한 식사지만, 하느님의 사랑이 듬뿍 담긴 은총의 식사입니다. 오늘 우리의 식사는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우리는 지금 놀라운 기술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자율 주행 자동차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운전자가 핸들을 잡지 않아도 자동차가 스스로 차선을 읽고, 장애물을 피하고, 목적지까지 달려갑니다. 라이다(LiDAR)와 다양한 센서, 카메라, 그리고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인공지능이 함께 움직이며 판단합니다. 멀리서 보면 자동차가 ‘스스로’ 판단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해진 경계 안에서만 움직입니다. 프로그램이 허용하는 범위, 알고리즘이 계산하는 범위, 미리 학습된 데이터의 범위 안에서만 주행합니다. 그래서 자율 주행 자동차의 ‘자율’은 사실 완전한 자유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이보다 훨씬 더 큰 선물, 곧 자유의지, 그것도 하느님의 뜻마저 거스를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인간은 자유 때문에 실수도 하고, 죄도 짓고, 때때로 자신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자유를 거두어 가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자유가 있어야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간이 자율 주행 자동차처럼 ‘정해진 틀 안에서만’ 움직였다면 우리의 선행, 우리의 기도, 우리의 사랑은 모두 ‘설계된 기능’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영혼을 가진 존재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자유는 우리를 위험하게도 했지만, 동시에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연을 바라보며 스스로 질문했습니다. “이 돌을 이렇게 깎으면 더 잘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강을 가로질러 갈 다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과 상상력에서 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불을 발견하고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생존 본능이 아니라, 자유와 상상력이 만든 첫 번째 혁명이었습니다. 수레바퀴의 발명은 인간의 이동과 물류 문명을 열었습니다. 인류는 자유로운 사고로 도시를 만들고, 농업을 고안하고, 항해술을 개발하고, 의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모든 문명의 발전은 ‘명령이나 프로그램’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모두 인간의 생각, 창의성, 실패와 도전이 합쳐져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자유의지는 문화를 만들었었습니다. 문명 위에 문화가 생겼습니다. 문화란 인간이 자유롭게 공유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모여 언어를 만들고, 공동체의 규범을 만들고, 축제를 만들고, 신앙이 생겨났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유다인들의 풍습, 로마의 법 제도, 그리스의 사상 등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습니다.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형성한 문화는 인류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의 근간에는 자유로운 인간의 사유가 있습니다. 자유의지는 예술과 문학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가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는 영역은 예술과 문학입니다.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는 자유로움 속에서 다비드상과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만들었습니다. 베토벤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열어 교향곡 9번 ‘합창’을 남겼습니다. 한국의 김소월 시인은 ‘진달래꽃’에서 인간의 슬픔과 사랑을 자유롭게 표현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유와 죄, 구원에 대한 인간 내면의 갈등을 ‘죄와 벌’이라는 문학 작품으로 펼쳐 보였습니다. 어떤 인공지능도 인간의 슬픔, 회한, 사랑, 신앙의 깊이를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예술과 문학은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에서 나온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를 허락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교우들의 삶에서도 이러한 자유는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달라스에서 새로운 삶을 선택한 이민의 역사가 있습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갈등을 대화로 풀어내는 결정이 있습니다. 위기 앞에서 믿음을 선택하는 용기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자유로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우리 본당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성가대를 선택하는 자유, 주일학교 교사가 되기 위한 결단, 아무도 보지 않아도 성당 주변을 정리하는 자발적 사랑, 공동체 행사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모든 선택이 모여 주님의 향기를 담은 문화가 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크지 않아도, 자유롭게 선택한 사랑은 하느님 앞에서 아름답습니다. 자유의지는 예술과 문학을 만들었습니다. 예술은 기계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영혼이 자유롭게 흘러나온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들어도, 그 안에 기도, 눈물, 사랑, 희망은 담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공현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공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신 사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을 강제로 끌어오지 않으셨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바라볼 것인지, 그 별을 따라갈 것인지, 긴 여행을 감수할 것인지 모두 자유롭게 선택했습니다. 하느님은 비추시고, 인간은 선택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율 주행 자동차처럼 정해진 경로만 따라가는 존재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걸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시지만, 그 자유가 언제나 빛을 향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으로 하느님께서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고, 그 외아들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초대하셨습니다.
<마음>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마르코 6,38)
나누려고 하니
나눌 것이 보이네요
나누려고 하지 않으니
나눌 것이 보이지 않네요
나누려고 하니
나눌 것이 생기네요
나누려고 하지 않으니
나눌 것이 없어지네요
나누려고 하니
나눌 것이 있네요
나누려고 하지 않으니
나눌 것이 없네요
나누려고 하니
나눌 수 있네요
나누려고 하지 않으니
나눌 수 없네요
오늘의 성인
성 가스파르(Gaspar),
성 멜키오르(Melchior),
성 발타사르(Balthasar)
신분 : 동방박사
활동연도 : +1세기
같은이름 : 가스발, 가스팔
예수 아기를 예배하기 위하여 동방에서 온 현인 세 사람에 관한 기록이 마태오 2장 1-2절에 언급되어 있다. 그들은 헤로데로부터 아기 나실 곳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고, 유다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하고 별을 따라 가서 아기를 찾아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꿈에 헤로데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고대의 전승에 의하면 이들은 현인(Magi)들로서 성 발타사르(Balthasar), 성 가스파르 그리고 성 멜키오르(Melchior)라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그들이 바빌로니아(Babylonia)나 아라비아(Arabia)에서 온 점성가들로 믿고 있다.
성 가롤로 (Charles)
활동년도 : 1616-1670년
신분 : 수사
지역 : 세체(Sezze)
같은 이름 : 가롤루스, 까롤로, 까롤루스, 샤를, 찰스, 카롤로, 카롤루스, 칼
카롤루스(Carolus, 또는 가롤로)의 원래 이름은 요한 카롤루스 마르치오니(Joannes Carolus Marchioni)인데, 그는 이탈리아의 세체에서 가난한 부모 슬하에서 태어나 목동이 되었다가 사제가 되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나 그는 읽고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그의 보잘 것 없는 학력 때문에 나지아노에서 수사가 되어 그때부터 부엌, 문지기, 정원 등등 수도원의 허드렛일을 도맡다시피 하였지만, 그의 높은 성덕과 단순성 그리고 애덕은 놀라울 정도여서 주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또한 신비적인 서적도 몇 권 기록했고, 더할 수 없을 정도로 금욕생활을 하였으며, 1656년에 발생한 흑사병 유행 때에는 참으로 영웅적으로 주민들을 도와 그의 위대성이 더욱 돋보였다. 그의 가족명은 원래 멜키오르이나 그는 세그레의 카롤루스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1959년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성 안드레아 베세트 (Andrew Bessette)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몬트리올(Montreal)
활동연도 : 1845-1937년
같은이름 :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캐나다 몬트리올 근교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난 성 안드레아 베세트(Andreas Bessette)는 청년이 될 때까지 뉴잉글랜드(New England)의 이곳저곳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몬트리올로 가서 1870년 성 십자가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67년을 평수사로서 참으로 놀라운 삶을 살았다.
그는 수도원의 문지기, 정원사 그리고 그를 만나러 몬트리올까지 오는 순례자 접견 등으로 수도 생활을 마쳤다.
어릴 때부터 요셉(Josephus) 성인께 대한 신심이 두터웠던 그는 성 요셉 신심 보급에 진력하였고, 몬트리올에 성 요셉 오라토리움(Oratorium)을 세웠다.
그가 운명할 즈음에 이 성당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으로 손꼽혔다.
또한 그곳에서 수많은 치유 기적을 일으켜 "몬트리올의 기적의 사람"으로 불렸다.
그는 1982년 5월 2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10년 10월 1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녀 라파엘라 마리아 포라스 (Raphaela-Mary Porras)
활동년도 : 1850-1925년
신분 :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메리, 미리암
에스파냐 남부 코르도바(Curdoba)의 페드로 아바드(Pedro Abad)에서 태어난 성녀 라파엘라 마리아 포라스(Raphaela-Maria Porras)는 그곳 시장의 딸인데, 불행하게도 4살 때에 부친을 잃었다.
성녀 포라스와 그녀의 자매인 돌로레스(Dolores)는 마리아 레파라트리스 수녀회(the Sisters of Marie Reparatrice)에 입회했으나, 그곳의 주교가 교구를 떠나도록 강요함으로써 성녀 라파엘라와 15명의 다른 자매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꾸몄으며, 첫 서원을 할 즈음에 또다시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므로 할 수 없이 마드리드(Madrid)로 이주하였다.
그래서 그들 자매들은 성심 시녀회(the Handmaids of the Sacred Heart)를 설립하고 어린이 교육과 피정지도를 하였다.
이윽고 1877년에는 성좌의 승인과 더불어 성녀 라파엘라가 총장이 되었고, 수녀회는 에스파냐에서 급속히 성장하였다.
그녀는 1893년에 총장직을 사임하고 32년 동안이나 로마(Roma)의 수도원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그녀는 1977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