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가원은 12번의 정답을 ③번으로 발표했습니다. 이 중에서 문제되는 것은 ㄴ 선지입니다. 다시 써 보겠습니다.
ㄴ. 이(理)는 작용이 없으며 만물에 두루 갖추어져 있는가?
갑(이황), 을(이이) 둘 중 한 사람만 긍정하면 정답이 되는데, 이황이 ‘이(理)의 작용[理之用]’을 얘기했다는 건, 비록 교육과정은 벗어나는 것이었지만 이미 기출로 다루어진 적이 있어서 기출문제를 공부한 학생들은 다들 알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황은 부정의 대답을 할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선지가 답이 되려면 이이(율곡)가 긍정의 대답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곧 이이는 ‘이(理)의 작용[理之用]’을 얘기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이 역시 ‘이(理)의 작용[理之用]’을 얘기합니다. 증거를 제시합니다.
理有體用 固也 一本之理 理之體也 萬殊之理 理之用也 理何以有萬殊乎 氣之不齊(리에도 체용이 있다. 근본적인(전체적인) 理는 리의 본체[體], 만물에 깃들어 있는 리는 리의 작용[用]이다. 리가 어떻게 만물에 갈라져 들어갔는가? 기가 다르기 때문이다.)(“栗谷全書”, 券12, ‘答安應休’)
따라서 네 개의 선지 중, 이황과 이이 중 한 사람이라도 긍정할 질문은 ㄷ밖에 없으므로, 이 문제의 정답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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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실 이황의 리 체용론을 출제하는 것도 교육과정 이탈입니다만, 이황의 ‘리발(理發)’을 교육과정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응용하는 차원에서 이황의 ‘리의 작용[用]’을 출제하는 것은 어느 정도 용납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이가 ‘리(理)의 체용’에 대해 언급했는지 어땠는지 하는 것은 여전히 교육과정 이탈입니다. 절대로 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시문에 힌트를 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제시문에 힌트를 줄 수도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출제자는 이이는 리(理)의 작용[用]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 줄 알고 그렇게 선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추측건대, 이황이 ‘리발’을 설명하기 위해 ‘리의 작용[用]’을 얘기했으니, ‘리발’을 부정한 이이는 당연히 ‘리의 작용[用]’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겠지, 하는 단무지한 수준의 사고능력을 가지고 출제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추측건대, 이 선지를 제시한 출제자는 물론이고, 이 선지를 두고 토론을 거듭했을 다른 출제자들, 검토자들 중에 이 선지의 오류 여부를 가려줄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띨띨이들의 집합소입니까?
저는 근 3년간, 우리 윤리교육과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오류 선지들을 지적해 왔습니다. 비록 평가원이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지만, 내가 지적한 선지들은 절대로 다시는 출제하지 않는 것을 볼 때, 내부적으로는 수긍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사후적 처방일 뿐입니다. 발전이 있어야죠.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전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윤리교육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제가 너무 맥이 빠지네요.
그나저나, 위 선지의 오류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또 ‘이상 없음’이라고 발표하실 겁니까? 저건 무슨 해설도 필요 없이, 그냥 이이의 책에 버젓이 나와 있는 문장입니다. 이렇게 유치원생도 알아볼 오류를 여전히 ‘이상 없음’이라고 발표하면서 슬그머니 넘어갈 건가요?
생활과 윤리에도 이미 오류가 발견되었습니다. 3번까지 풀어봤는데 오류가 보이네요. 이의제기 기간 안에 글 올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평가원의 윤리 관계자 분! 정말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윤리와 사상 문제 전체가 학교 내신문제스럽습니다. 기출 선지들을 그대로 재활용하고 있는 것도 너무 심하고요. 윤리 교과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이 학생들에게 퀄리티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요? 너무 답답합니다.
첫댓글 휴~대단하십니다~
이이가 이의 작용을 이야기했군요
저도 이 선지를 보면서 무심코 이이는 이가 발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의 작용을 부정했으리라고 생각했거든요
이이에 있어 발함과 작용이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새롭게 배우게 되네요
그런데 힉스님 이황이나 이이 같은 성리학자들이 기가 형태가 있다고 본 것은 맞나요?
기도 이처럼 형태는 없지만 형태 없는 기가 모여 형태 있는 현상의 사물로 드러나는 것은 혹 아닌지요
?
기는 당연히 형태가 있죠. 기가 모여서 형체를 이룬다고 하는데, 그 형체도 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이건 모든 성리학자들이 다 인정하는 것이죠. '리는 무위 무형, 기는 유위 유형'은 리기에 대한 기본 정의이기 때문에 모든 성리학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힉스 그런데 기에 청탁수박이 있다는 것은 형태가 없다고 보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은 아닐까요?
형태가 있는데도 맑고 탁함이라는 표현이 가능할지 의문이 드네요
@이충 '기의 유형유위'는 모든 성리학자들이 공유하는 기에 대한 정의라고 봅니다. 원자는 육안으로 안 보이지만 형태가 있죠. 청탁수박이 있다는 것 자체가 형태가 없으면 할 수 없는 표현이죠. '리'처럼 무형이라면, 청탁수박도 없는 것이죠.
이이가 분명 '이는 무형무위 기는 유형유위'라고 표현하고 있네요^^;;
이황의 사단칠정관련 논변에서는 이런 구절을 못 본 것 같아서요
주자의 ''어류''의 '이기론' 관련 부분도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장자가 형태 없는 기가 모여 형체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 것처럼 주자나 이황, 이이도 이렇게 보는 건 아닌가요?
'形'에 대한 의미 규정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보입니다. 말씀 중 '형태 없는 기'가 모였다는 말은 어디서 보신 건가요? 혹시 장자 지락편에서 아내가 죽자 노래부른 그 우화 얘기인가요?
@한삶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생윤 삶과 죽음 단원 공부하면서 장자에 대해 그렇게 공부한 기억이 나서요
@한삶 강남대 임헌규교수가 번역한 ''이황 기대승 사단칠정을 논하다''를 읽었는데 기를 '기운'으로 번역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삶 평가원게시판에 보니 이보람이라는 분이 이이의 '이지용'의 용을 작용이 아니라 쓰임, 현실태라고 했던데 학계에서 용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하는가요?
@이충 '쓰임'이라는 번역어 자체는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작용이 아니라고' 하면 곤란하죠. 그 분이 말한 대로 이이가 이의 '발용'을 언급한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발용을 언급했다고 해서 그게 우리말(현대한국어)의 '작용'과 다르다고 할 근거는 없는 겁니다. 그분은 자꾸 '작용'이라는 표현이 '독자적 작용'의 의미인 것처럼 전제를 깔려고 시도하고 계신데 저는 그 점이 참 이상해 보입니다.
@이충 지금 주자의 "주자어류 1"의 '이기상' 보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이는 형체가 없다", "이는 형이상, 기는 형이하", "기가 쌓여 형체 있는 물질이 된다" 등의 내용이 보입니다. 이이처럼 명확하게 기가 유형이라는 부분은 보이지 않고, 기가 쌓여[氣之積] 형태 있는 물질이 된다는 내용이 몇 군데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1999년도판(청계출판사)인데 역주하신 허탁, 이요성 선생님도 임헌규 선생님처럼 기를 '기운'으로 번역하고 계시네요. "나무의 기운", "쇠의 기운", "불의 기운", "물의 기운" 등으로요.
@이충 특이한 점은 "이는 형체가 없다"는 부분이 있는데, 또 "성은 도의 형체"라고 한 부분도 있다는 것입니다. 도를 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에 형체가 있다는 것은 이에 형체가 없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한삶 "주자어류 1" '이기상' 보고 있는데 역주자인 허탁, 이요성 선생님도 "도의 체용"을 "도의 본체와 작용"이라고 하여 '용'을 '작용'으로 번역하고 있네요.
@이충 구하기 어려운 번역서일텐데 마침 갖고 계시네요. 체/용에 대해서는 본체와 작용이라는 번역어가 통상적인 것으로 압니다. 개인적으로는 작용보다는 오히려 본체라는 번역어가 좀더 문제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충 '성리일'에서는 부연해서 "도에는 형체가 없고, 다만 성이 도의 형체"라고 했네요^^::
@한삶 진해헌책방에서 구했습니다^^:: 체는 본체보다는 어떤 번역어가 더 정확한가요?
@이충 글쎄요, 저도 마땅한 대안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냥 음역으로 '체(體)'라고만 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본체' 하면 서양철학의 본체 개념과 혼동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요.
@이충 그리고 '發用'은 '드러내다', '運用'은 '작용하다'로 번역하고 있네요. "주자어류 1"과 "2" 공통적으로 이렇게 번역하기로 약속하고 한 것 같습니다.
@이충 '체'는 이 책에서도 본체로 번역하고 있네요^^;;
@이충 이번 9평 생윤 14번의 (가)에 나온 것처럼 장자는 기가 모여 삶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 죽음이 되어 혼돈의 상태로 간다고 했는데 이 때의 기는 모이고 흩어지는 것으로 형체가 없어 보입니다
제가 일전에 찾아본 바로는 장자만이 아니라 고대 동양의 다른 사상들 중에도 삶과 죽음을 기의 모임과 흩어짐으로 이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충 이 부분은 위에서 한삶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형'에 관한 의미규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가 작용을 한다는 것은 이이도 포함해서 모든 성리학자의 공통된 견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작용도 안하는 이라면 그게 왜 이치나 원리가 될 수 있을까요. 스스로 발하지 못하는 것과 어떤 작용을 하느냐는 분리해서 볼 문제 같습니다.
생윤 오류 3번 문제의 3번선지 말씀하시는 건가요?
윤사 12번 보기 ㄴ
관련인 것 같습니다
@이충 아 그게 아니라 힉스님 글에 생윤에서도 오류가 발견되었다고 해서요. 3번까지 보셨다길래 3번까지 본 결과 3번 문제에 문제가 있어보여서요(제가 잘못본걸 수도 있어서 확인차 묻는 거였습니다 ㅎㅎ)
@플라톤 그렇군요 ^^;;
2번 선지를 말하는 겁니다. 큰 것은 아닙니다. 개념에 대한 이해가 안 되어 있는 것이죠. 그것도 곧 올리겠습니다. 간단한 것입니다만. 윤사 12번에 집중하느라...ㅎㅎㅎ
@힉스 제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모르는걸 배울 생각에 기쁘네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