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법을 배우거라 모든 것을 비판없이 절대적 사실로 받아 들이지 마라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는 상부의 지시를 의심없이 충실히 믿고 따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거라
ㅡㅡㅡ 1947년 4월11일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 루돌프 회스가 교수형 당하기 직전 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유언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오류가 자신도 모르게 확증편향이라는 자신의 잘못된 신념 혹은 믿음에서 생겨나오는지를 알면 놀랄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아는 과학기술의 진보가 꼭 인간의 이익과 인권에 기여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역시나 새로운 희망을 찿는 시발점 중에 하나가 되리라고 봅니다
우선적으로, 인간의 인권 확립의 역사는 수만 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간의 공격성의 진화에 관한 리처드 랭엄 하버드대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강력하고 지배적인 ‘알파 남성(기득권 세력)’에 대해 ‘베타 남성( 피지배 세력)’들은 연합을 이루어 대항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들을 뭉치게 한 구심점이 된 것은 식량이나 짝짓기 상대를 강탈당하는 데 대한 억울함과 같은 감정, 즉 생존을 위협하고 번식 기회를 앗아가는 횡포에 대한 분노였을 것 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의사소통 및 협력의 능력과 더불어 불공정함에 대한 본능적 감각을 진화시켜 왔고 이러한 감각은 당연히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권이란 너도 살고 나도 살기, 즉 공정한 생존의 보장을 위한 일종의 도덕적 합의 체계라는 것으로서 그렇게 보면, 인간이 존엄하다는 신념도 공정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단일 뿐입니다
존엄하므로 공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정하기 위해 존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정이 훼손될 때 인간 존엄의 허구성은 드러나게 됩니다.
‘베타 남성(피지배 세력)’ 연합은 인간 정치 집단의 기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정치란 그 유래부터 공정성의 구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도 정치란 한정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함으로써 이해관계의 충돌과 갈등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시사회의 정치를 움직이는 힘이 진화적 본능에 가까웠다면, 현대사회에서는 무엇이 합리적인 배분인가 하는 공정성에 대한 보다 고도화된 철학이 문화의 영역에서 발전해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 정치를 구현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강력한 체계는 다름 아닌 국가입니다.
국가로서 미국이 현 시대에 차지 하는 중요도의 비중은 높지만 요즘 특히 트럼프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들은 기축통화국과 초일류 국가로서의 의무와 책임감은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은 국가 연구비로 개발된 혁신기술과 전 세계 저임금 노동자들이 생산한 가치의 대부분을 다양한 착취 기법으로 독차지해 천문학적인 부를 쌓아올렸습니다.
더군다나, 규제 완화를 비롯한 트럼프 2기의 더욱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들의 탐욕에 날개를 달아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과거에는 왕조국가나 제국주의같은 권위주의 시대에는 박탈된 제도로의 인간이 존제했다면, 현대에 와서는 오직 경쟁으로만 돌아가는 사회로서 특권 가진 이들의 ‘유리한 위치 선점’ 이 더 쉬워져 민주주의에서 ‘자유 경쟁’이라는 탈을 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서 낙오자는 패배의식·자괴감에 빠지고마는 착취적 제도하에서의 착취되어진 인간이 양산 되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이세상에는 글로벌한 착취로 천문학적 자산 움켜쥔 일론 머스크와 빅테크 CEO들…트럼프 재집권과 함께 ‘악마적 불평등’ 가속화 불 보듯 합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전제군주, 부패한 독재자, 공산당 등은 경쟁이 아니라 자격을 통해서 그들의 기득권을 증가시키고 자신들의 이익을 확장하기 때문입니다. . 이와 같이 권력을 통해 남의 재물이나 권리, 기회 따위를 빼앗는 행위는 ‘박탈적 제도’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경제체제의 스펙트럼에서 왼쪽 끝에 공산주의가 위치한다면 오른쪽 끝에 있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라고 할수 있습니다. 독재적 공산주의가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이 박탈을 통해서라면, 신자유주의가 공정성을 훼손하는 시작은 바로 착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착취의 불공정은 계급(class), 신분(status), 지위(rank) 따위가 아니라 경제학적 지형에서 차지하는 위치(position)의 차이에서 비롯되어 과거 마르크스 시대에 이야기되었던 자본가, 노동자, 지주라는 계급의 구분은 사라지고 오늘날 고소득 개인 사업자는 웬만한 자본가들보다 훨씬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합니다.
계급이 사라지고 오직 경쟁으로만 돌아가는 신자유주의 사회는 표면상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사실 규제가 없는 자유 경쟁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공정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경쟁에 임한 이들의 위치가 시작점부터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권적인 불로소득을 얻음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지요.
각종 금융기법과 주식 놀음, 조세 회피와 탈세 등을 이용해 회사의 경영진이 가로채는 이득, 상속받은 재산으로 부동산을 사들여 공공의 지역 개발로부터 얻는 이익과 같은 것들이 그 예입니다. 특히 이들은 공동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가치를 빨아먹는다는 점에서 사회 경제의 기생충과 같습니다.
유명 운동선수, 연예인, 작가, 전문가들의 승자 독식으로 동일 분야에 있는 다른 이들의 정당한 소득이 깎이고 기회마저 상실될 때 이러한 것도 넓은 의미의 지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직접 노동으로 만들어낸 순가치 이외에 이름값이나 입지로 인해 발생한 잉여가치는 불로소득에 가깝습니다.
프린스턴대학의 정치학자 웬디 브라운 교수는 신자유주의를 정치의 죽음으로 묘사했다. 즉 신자유주의 국가는 공정의 구현이라는 정치적 임무를 포기하고 모든 국민을 자유 경쟁으로 내몬다. 마르크스, 아제모을루와 로빈슨 등이 말했던 착취와는 다른, ‘자연적인’ 혹은 ‘생물학적인’ 착취가 사회 전체에 만연한다. 그것은 유전자가 부추기는 경쟁심과 함께 은밀하고 교묘하게 작동한다. 착취라고 하면 채찍질당하는 노예나 억압받는 노동자의 모습만 떠올리는 이들에게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착취라는 말은 생경하기만 하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착취는 합법적으로 벌어진다. 이 ‘정당한’ 경쟁의 승자가 교만을 누리는 동안 낙오자들은 패배의식과 자괴감에 빠지고 혁명의 불씨는 위장된 공정성 속에 소멸한다. ㅡ최정균 교수
현실세계로 돌아와서 미국을 보면, 미국의 트럼프는 러스트벨트의 가난하고 못배운 백인들이 그의 강력한 지지층이 되어 어렵게 보였던 대통령에 다시 취임 하였습니다
저는 물론 그의 임기를 이번에는 다 마치기가 쉽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미국의 노동자를 위해서라고 그의 정책을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의 이익과 명예욕에 충실한 결과입니다
정치인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공공선택이론 학파의 창시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뷰캐넌의 주장에 동감합니다
결국 종이조가리와 잉크로 숫자를 써넣고 화폐라고 주장하는 기축통화국의 지위는 BRICs 국가들의 달러 회피로 시작되어 미국은 왕따국가로 가겠지요
미국민들은 다시금 더 커진 물가 불안과 실업율 증가로 몸서리를 칠겁니다
일화로 트럼프가 공무원을 줄이라니까 핵무기 통제관리 요원들까지 무작정 줄여서 그들에게 다시 복귀하라고 난리가 났었다고 합니다
트럼프는 그의 전직인 코메디언으로 다시 가야 하리라 봅니다
왜 미국의 제조업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은 실업자로 전락하였을까요
반면에 규모도 작고 경제적으로 후진국이었던 스웨덴은 선진국이 되었을 까요
미국은 황금기인 1950~1970년대를 지나고서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 증가에 사활을 걸었으나 노동자를 비용으로 인식해 노동자의 임금과 재교육 투자에 무지했고 반면에 스웨덴같은 특히 1920년대 농업 위주의 규모도 작고 후진국이었던 인구의 절반이 농업이었던 스웨덴은 사회민주노동자당(SAP)을 중심으로 노동대중 과 중산층을 통합하여 노동자를 비용으로 보지않고 새로운 신지식과 과학기술을 받아들이면서 노동자를 해고대신에 우선적으로 노동자들의 재교육및 상호 소통을 통한 합리적 의사로 그들의 일자리를 개선 및 확충시켜서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미국에서 유일한 4차례 대선에 성공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세금 정책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그는 미국의 세계 초강대국가를 만드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습니다
특히나 세금의 누진제를 통하여 전국민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국가의 보물같은 존제입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사람입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 대통령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뉴딜 정책을 통해 대공황을 극복하고 사회복지를 확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세금을 대폭 인상하여 정부 지출을 늘렸습니다.
루스벨트 정부의 세금 인상 조치
1. 소득세 최고 세율
1932년: 25% (후버 대통령 시기)
1936년: 79%
1941년: 81%
1944년: 94%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최고 세율 기록)
→ **연간 소득 20만 달러(오늘날 약 330만 달러 이상)**를 버는 고소득층에게 적용됨.
2. 법인세 인상
1935년: 법인세를 인상하고, 초고소득 기업에 대한 소득세 누진 과세 강화
1940년대: 전쟁 자금 마련을 위해 법인세율 추가 인상
3. 부유층 및 상속세 강화
1935년: "부자 과세법(Wealth Tax Act)" 도입
고액 자산가들에게 상속세와 증여세 대폭 인상
루스벨트 대통령은 부유층과 기업을 대상으로 한 높은 세금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특히 1944년에는 소득세 최고 세율을 94%까지 올렸으며,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이러한 세금 정책은 경제 회복과 전쟁 비용 마련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제가 이런 글을 올린적이 있습니다
진주에 계신 김장하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돈은 똥과 같다
돈은 한군데 모아두면 똥과 같이 냄새가 나지만 고루고루 나누어 주면 거름이 된다"
ps) 하도 답답하고 화가나서 오랫만에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았습니다
내용이 좋아서 추천을 합니다
"라파치니의 정원". 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조명이 예술의 경지로 느껴젔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내용은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라파치니 박사가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마녀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내를 복수하고자
딸과 함께 독초를 배양하여. 결국 복수 한다는 내용인데 비극적 결말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정가보다 싸게 19,800원에 보았습니다 배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뒷줄에서 봐서 조금 힘들었습니다
첫댓글 루스벨트 대통령의 소득세 인상의 의도는 미국시민의 복지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며 그가 말하길 연소득 20만 달러. 이상 버는 돈은 그사람이 노력해 번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이 도와주어서 수입이 된 것이니 주변의 가난한 주인들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고 주장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