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석 오조(一石 五鳥)
-김경숙
살다보면 우연히 어떤 계기가 만들어진다.
지난 해 가을 무렵부터 연말까지 나에게 재미있는 일이 들어왔다. 재래시장을 돌아보고 소비자의 입장에서 그 후기를 쓰는 거였다. 시장이라면 서로 다 비슷하거니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사양길에 접어들어 간판만 시장이지 전혀 장사가 되지 않는 곳이 있는 반면 재개발된 아케이드 시장 몇 군데는 백화점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재래시장은 소시민 생활의 바로미터가 되고 아직은 웅성거림이 남아있어서 좋았다.
어릴 때 오일장에 따라가 본 추억을 떠올리며 시장구경을 하고, 장바닥을 몇 바퀴 돌아보며 정겨운 사람들을 구경하니 차츰 재미가 쏠쏠했다. 무엇보다도 찬바람을 맞으면서 상큼하게 걷기운동을 겸하는 것이 좋았다. 허리춤에 찬 만보계의 숫자가 커질수록 더 뿌듯했다.
그런데 시장을 돌다가 목이 메어오는 광경도 많이 접했다. 시장 경기가 안 좋아서 고생하고 있는 상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난 뒤부터다. 지금까지의 내 생활을 돌이켜보니 반성할 게 참으로 많아서 그들을 보기가 민망해지기도 했다.
언제부터였던가. 대형마트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하자 재래시장엔 발길을 뚝 끊고 만 것이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운동장만큼 큰 매장에 가서 쇼핑카트기에 물건을 마구 올려 카드로 결제하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재기를 하면서 그게 알뜰한 생활인줄 착각했다. 때로는 미끼 상품에 현혹되어 별 필요도 없는 것을 더 사오고, 나중엔 방치했다가 버리는 게 많아지고 그러는 사이에 곳곳의 재래시장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던 것이다.
재래시장이란 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곳인데 사람들이 줄지어 대형할인점으로 가버리고 그나마 멀리 가기 힘든 노년층이나 자가용차가 없는 이들이 남아서 재래시장의 명맥을 겨우 이어오고 있었음을 몰랐던 거다. 따져보면 별 관심조차도 없었고 완전히 외면했던 셈이다.
수십 군데의 재래시장을 돌고나니 나의 의식이 자연스레 바뀌어졌다. 새벽부터 최선을 다하며 살아봐도 장사가 안 되어 눈물겨운 일뿐이라는 상인들의 난감한 사연들이 나의 마음에 자리 잡았고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문제점을 자꾸만 알리기 시작했다. 저마다 살고 있는 동네의 가까운 재래시장을 자주 애용하라고 부탁했다.
욕심을 버리고, 걷기운동을 하며, 사람 내음을 맡을 수 있는 곳으로는 재래시장이 최고라고 소개하며 권했다. 될 수 있으면 걸어가고 장바구니 사용도 잘 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누구나 목표 의식을 가지면 생각대로 다 되게 마련이다. 사람이 가장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사람과의 소통이 필요하고 그러면서 남의 삶도 돌아보게 된다.
옛날엔 빨래터, 방앗간, 시장, 이런 곳에서 인정을 나누며 살았지만 요즘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도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점점 삭막해지고 외로움 때문에 병이 생겨 환자가 늘어나는 것 같다. 어떨 때는 원시적으로 사는 것이 어쩌면 가장 현명하다고 여겨지고 조금 불편한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되는 것을 실감할 때도 많다.
재래시장, 그곳엔 인정이 있고, 어쩌면 빠름보다 더 빠른 느림이 있고, 정겨움이 있다. 딱 필요한 양을 사면서도 얼마든지 마음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집에서 가까운 와룡시장으로 가봐야겠다. 가다가 유치원 옆을 지날 때 꼬맹이들이 키우는 토끼들이 얼마나 자랐나 보기도 하고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가다보면 금세 시장 앞에 다다른다.
큰길 좌판에서 반갑게 맞이하는 채소장수 할머니께 파릇한 봄나물도 사고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 사와야겠다. 이렇게 시장 한 바퀴 돌고나면 씀씀이도 줄이고 물건도 신선한 것으로 사고 냉장고의 전력도 아낄 수 있다. 게다가 걷기운동, 소통의 기쁨까지 충족시키니 참으로 수지맞는 일이다.
(대구문학 2009 봄호)
첫댓글 사람이 사람을 외면하고 사는 세상이 되다보니 시장이 중요한 기능을 잃었습니다. 마트처럼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끼리의 영악한 계산만 남았을 뿐이지요. 제가 사는 김천도 재래시장을 살리려고 시장입구에 입간판을 세우고 상품권을 발행하고 갖 가지 방법을 써 보지만 불편한 것을 감내하지 않으려는 주부들 때문에 그 효과는 아주 미미하답니다. 평화시장과 감호시장, 황금시장, 중앙시장이 있는 아랫장터가 죽어버렸어요. 역설적이지만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데...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제가 시골 들어간 후 1년 만에 딸이 결혼을 했는데 얼굴도 모르는 40여 호의 마을 사람들 모두가 부조를 했어요. 깜짝 놀랐답니다.
저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대형마트 안 가고 시장에만 가게 되었어요. 저와의 약속을 지켜가고 있는데 불편함이 없더군요. 그리고 시골 사람들의 인심 이전에 쌤이 잘 하시니까 그분들이 차츰 팬이 되어가고 있을걸요. "젊은 사람이 선생님다워" 이러시면서 ㅎ~
아이구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아직 사람들 사이에 정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