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골장의 오비 이락
성병조
(잔디야, 고맙다) 파크골프는 골프와는 달리 면적이 그리 넓지 않다. 보통 27홀에 홀 간격은 50-150미터 정도이다. 물론 구장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골프와의 유사성은 분명히 있다. 골프나 테니스에서 전향한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파크가 붙은 이유도 공원처럼 좁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다 보니 항상 붐비는 편이다. 잔디 생육을 위해 3, 4월 휴장 후 문을 열자 파골러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토록 짓밟아도 다시 살아나는 잔디의 생명력에 감동한다. 파릇파릇 자라는 잔디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살아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땅속을 뚫고 씩씩하게 자라는 잔디 덕분에 우리의 라운딩은 거침이 없다. 잔디야, 정말 고맙다.
(복장이 중요하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기본으로 돌아가자‘ 이다. 운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운전면허증을 처음 취득할 때는 모두가 올바른 자세를 가진다.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잡담도 하지 않는다. 지정된 속도를 준수한다.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변한다. 기본의 중요성은 어디서나 예외 없이 강조된다. 기본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복장이 필요하다. 마라토너가 긴 바지를 입거나 양복에 고무신을 신으면 색깔이 바랜다. 파크골프 하면서 눈길 가는 사람 종종 뜨인다. 실력은 다음 문제이고 복장과 매너를 제대로 갖춘 사람이 돋보인다. 바른 몸매에 어울리는 복장, 그러면 나는 어느 쪽인지 돌아 본다.
(천태만상 파골장) 파크골프를 치다 보면 파골러들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항상 돈내기하자는 사람, 밥값 내기하자는 사람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이 가는 방향에 따라 분주해진다. 공이 말끼라도 알아듣듯이 온몸으로 표현을 한다. 공이 홀컵 가까이 가면 다들 ‘제발‘이라는 합창이 나오고 폴짝폴짝 뛰는 사람도 본다. 홀인원에서 조금 벗어나면 아쉬움의 함성이 초원을 뒤덮는다. 이것 말고 또 있다. 오비가 나면 완전 희비 쌍곡선이다. 한편에서는 탄식 소리가 나오지만 한 편에서는 쾌재를 외친다. 마치 상대방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도 되는 것처럼 벌어지는 진풍경은 어디서나 예외가 없다. 그래서 파골장에선 웃음과 애원이 펼쳐지는 행복의 장이다.
(활기찬 새벽 풍경) 대구의 파크골프장은 붐비기로 유명하다. 전국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나이 들면서 이만한 운동 있을까 싶다. 오랜 기간 테니스를 하다 전향하였지만 많은 장점을 지닌다.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으며, 몸에 무리가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골프와 유사하지만 홀 간 간격이 짧아 큰 힘 들지 않는다. 또 파골장에 나가면 서먹함이 없으며, 모두 오랜 지기처럼 반긴다. 혼자 가더라도 손쉽게 부킹(?)이 이루어진다.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낮 운동하다 새벽에 나가보니 더 많은 사람이 라운딩한다. 여름 무더위, 낮 동안 혼잡을 피함으로 짐작되지만 부지런함과 나이 들어 새벽잠이 줄어든 때문인 듯싶다.
(파골장의 안전사고) 이렇게 제목을 올리고 보니 무슨 산재 사고 같다. 파크골프 연륜은 얼마 되지 않지만 칠수록 재미가 있다. 자주 파골장으로 향한다. 나를 인도한 사람은 아내인데 그는 자기 볼 일로 빠지고 혼자 갈 때가 많다. 클럽 회장을 맡고 보니 이곳저곳의 정보에도 귀 기울이게 된다. 재미가 있는 반면에 위험성이 상존한다. 공이 땅으로만 구르지 않고 럭비공처럼 튀는 경우가 있다. 펜스가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올해 들어 주변의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4건이나 된다. 모르는 사람과 부딪히면 고민이 커진다.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불의의 사고가 찾아온다. 재미에 뒤따르는 안전사고, 기본 수칙 잘 지키며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잔디위의 물찬 제비) ‘물찬 제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몸매가 아주 미끈하고 생기가 감돌아 보기 좋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새벽 파크골프장에 나가면서 색다른 광경을 맛보게 된다. 먼저 다수인파에 놀란다. 이렇게 부지런할 수가 있을까? 낮 동안의 무더위가 싫었을까? 나이 들면 잠이 줄어드는 것일까? 무소속이 그리 좋은가? 혼자서 갖가지 상상을 해본다. 또 새벽 라운딩에서만 볼 수 있는 쾌감도 있다. 공이 잔디 위를 힘차게 굴러갈 때 모습이 감동적이다. 이슬 머금은 잔디가 한꺼번에 물기를 털어내는 모습이 미세한 분수 쑈 같다. 물찬 제비, 물 위를 나르는 고기가 이러할까. 궁금하면 이른 새벽 파골장에 나가볼 일이다.
(다 좋을 순 없다?) 길하면 흉할 때가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이런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살 때가 많다. 낮에 하던 파크골프를 새벽으로 돌리고 나니 생각지 못한 일이 나타난다. 도로가 조용하고, 새벽의 맑은 공기, 여름 무더위를 피하는 점은 좋다. 하지만 몇 차례 새벽 라운딩을 나가 보니 조간신문이 뒷전이 되어버린다. 신문 두 개를 읽는데도 꽤 시간이 소요된다. 5시에 나갔다가 9시에 돌아와 샤워하고 밥 먹으면 10시, 이때부터 신문을 읽으니 신선도가 떨어지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지금까지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생긴 셈이다. 오랜 습관을 변경하려니 새로운 불편이 고개를 드는 거다. 세상사 다 좋을 순 없는가 보다.
(즐거움 주는 오비이락) 오비이락(烏飛梨落)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마침 다른 일과 공교롭게 때가 같아 관계가 있는 것처럼 의심을 받거나 난처한 위치에 서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런 오비가 있는 반면에 골프나 파크골프에서도 오비(Out of Bounds)가 있다. 공이 경계선을 벗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파골러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하지만 별다른 맛이 오비 속에 있다면 믿어질까. 무엇일까? 오비이락? 즉 오비는 두 가지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굳이 표현하자면 <OB二樂>이다. 오비 내는 본인은 속상해도 동료 선수와 바라보는 다수에게 즐거움을 주니 二樂이라 함이 옳지 않은가.
(좀 느긋하면 어떨까?) 새벽 5시 파크골프장은 어시장보다 더 활기가 넘친다. 6, 70대 연령에서 이런 모습 상상이나 하였으랴. 씩씩하게 파골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집에 있으면 잠자리에서 뒤척일지도 모른다. 파골이 건강을 증진 시켜 주기도 하지만 라운딩 중 동료들과 대화하고 웃는 즐거움이 크다. 그러나 작은 아쉬움이 있다. 빨리 치고 싶은 경쟁 욕구를 조금 줄여보면 어떨까. 어느 코스가 덜 밀리는지 양 곳을 쏘다니며 부산을 떤다거나, 앞 팀이 조금 느리다고 불평하기보다 이해해 주면 어떨까 싶다. 사람이 많다 보면 내 마음 같지 않은 게 세상 이치 아닌가. 파골장은 관용과 인내를 배우는 수도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파크골프 2등 하다) 경륜이 짧으면서 큰 결실 기대는 무리이다. 파크골프에 입문하고 이런저런 대회에 참가하는 기회가 생긴다. 실력이야 변변찮지만 내가 쓴 감투 덕분에 나서야 할 경우도 있다. 오랜 경륜을 가진 참가자들에 비한다면 애숭이에 불과하다. 아무리 열심히 연습한다지만 짬밥의 위력을 뛰어넘기는 힘 드는 법이다. 어제는 수성구협회장배 및 시 협회에 나갈 선수 선발전이 있었다. 46개 클럽에서 나온 선수들이 무려 180여 명에 이른다. 남녀선수가 2개 구장을 구분 사용한다. 상위 성적보다는 평소 타수를 줄이는 게 목표다. 보기 드문 기록이 나왔다. 27홀을 도는 동안 오비가 전무하다. 어찌 큰 욕심 부리랴. 네 명 중 이등에 감동한다.
첫댓글 솔직 담백하게 써내려 간 글귀들ᆢ
고개를끄덕이며 맞어ㆍ그래 를
되뇌입니다ㆍ
파골입문 1년차지만 농띵이라 자주기진않지만 모든분들의 부지런함과 파골의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성병조님ㅡ핫팅!
하나비 님,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파크골프장 올챙이의 생존 투쟁기로
한번 웃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