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기행](7)순천 사삼주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낙안민속마을 인근 낙안 민속양조장(대표 박형모)에서 빚어내는 사삼주(沙蔘酒)는 달콤한 향이 이내 코를 자극하고 마시면 약간 씁쓰레한 게 입안을 개운하게 해준다. 이는 찹쌀과 더덕을 원료로 사용해 숙성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향이 우러나고 더덕의 씁쓰레한 맛이 술에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사삼주 맛의 비밀은 더덕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더덕(뿌리)을 한방에서 사삼이라 부른다. 인삼(人蔘)과 형태와 성분이 엇비슷해 일컫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삼은 인삼의 효능인 강장은 물론, 거담이나 위장을 튼튼히 해주는 약리성분을 갖고 있어 호흡기가 약하거나 위장이나 간이 부실한 사람에게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박씨가 사삼주를 정부로부터 전통 민속주로 지정받아 본격 시판한 것은 1990년이다. 88년부터 낙안민속마을에 걸맞은 전통주를 개발하기 위해 관련 문헌을 뒤진 박씨는 시제품을 만들어 순천대 김용두 교수팀에 의뢰, 충분한 시험과정을 거쳤다.
지봉 이수광이 펴낸 승평(옛 순천지명)지에 낙안사삼주의 맛과 향취에 대한 설명이 있으며 고을 원님들이 즐겨 마셨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기록은 순천의 양반과 풍류객들이 기품있는 사삼주를 가양주로 빚어 마셨음을 설명해 준다.
현재 낙안에서 만들어지는 사삼주는 박씨의 부인 허효현씨(78)의 손끝에서 나온다. 허씨는 낙안과 인접한 보성군 득량면 오복리 양천 허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청정해역 득량만을 끼고 있어 다양한 어패류의 젓을 직접 만들어 밥상에 올리는 ‘발효식품’의 원조 마을이다. 허씨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의 밥상에 토하젓과 멸치·조갯살·대구아가미 등 매일 5종류 이상의 젓갈을 올렸다”고 술회한다.
제대로 된 젓갈맛을 내려면 좋은 재료에 천일염을 적당히 버무려 알맞은 환경과 기온에서 숙성시켜야 하고 이때 적정한 ‘발효’가 맛을 좌우하듯 전통주도 그렇다. 그는 18세때 보성읍에 사는 박씨와 결혼, 박씨 문중에서 가양주로 대를 이어온 사삼주를 접하게 된다. 결혼 직후 서울에서 살던 허씨는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남편의 고향인 보성읍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이곳에서 막걸리를 만드는 주조장을 15년가량 운영하다 70년 낙안읍성내로 이사하여 주조장을 계속했다. 91년 낙안읍성 정비계획에 따라 성밖 50여m 거리로 이주하여 생산시설과 안집을 마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허씨가 ‘발효주’인 사삼주와 인연을 맺은 것은 50년 세월을 헤아린다.
#찹쌀+더덕+청정지하수
순천 사삼주는 땅이 비옥하기로 이름난 낙안 들녘에서 재배한 토종 찹쌀과 질좋은 더덕, 끓이지 않고 그냥 마셔도 배탈이 나지않는 낙안의 청정지하수가 어우러져야 제대로 빚어진다. 1차로 찹쌀 고두밥을 쪄서 누룩과 5대1 비율로 버무려 숙성실에서 사나흘간 익혀낸다. 여기다 2차로 다시 더 많은 양의 고두밥과 누룩·맑은 물을 더해서 혼합, 숙성시키고 술내리기 6일 전에 생 더덕즙을 넣어 3~4일간 섭씨 5도가량의 상온저장을 거치는 등 완제품까지는 20~25일이 소요된다. 이같은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더덕의 효능이 그대로 살아 있는 사삼주가 완성된다.
#씁쓰레한 맛엔 생선회가 제격
사삼주가 갖는 씁쓰레한 뒷맛 때문에 안주로 농어와 도미 등 생선회가 최고로 꼽힌다. 이들 안주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지녀 더덕 특유의 맛을 반감시켜주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요즈음 많이 생산되는 멍게(우렁쉥이)도 궁합이 맞는 안주거리이며 더덕구이와도 잘 어울린다. 사삼주는 약간 차갑게 마셔야 제맛을 느낄 수 있으며 만취해도 다음날 머리가 아프거나 속쓰림 등 숙취가 거의 없다. 생 더덕즙이 갖는 효능이 호흡기의 가래를 삭이고 위장을 튼튼하게 해 뒤탈을 없애준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낙안읍성 민속양조장에서는 서민들의 술인 막걸리도 함께 만들고 있다. 92년 경희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가업을 이어가는 장남 장호씨(41)는 “낙안 사삼주야말로 ‘웰빙시대’에 걸맞은 술”이라고 말한다. 요즈음 젊은층이 소주와 맥주·양주 등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으나 언젠가 이같은 전통주의 진가를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때문에 올들어 자체 흠페이지(www.sasamju@hanmail.net)를 개설, 젊은층 공략에 나서고 있다.
〈순천|글 나영석기자 ysn@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전통주 기행]약이되는 사삼주
전남 순천에는 ‘장가 한번 더 갈래, 사삼주 한잔 더 할래’라고 물으면 장가보다 사삼주 한잔 더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사삼주는 맛과 효능이 뛰어난 전통주이다.
필자는 술도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술을 즐겨 마시며 자랐다. 특히 전통 민속주에 관심이 많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전통 민속주는 사서 먹든, 얻어 마시든 두루 섭렵했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술은 국가사적 제302호인 낙안읍성민속마을의 특산주인 사삼주이다.
낙안 팔진미의 하나인 제석산 더덕과 낙안들녘의 찹쌀, 원님이 마셨다는 읍성내 큰 샘물의 절묘한 조화로 빚어진 사삼주는 낙안의 대표적인 보양주이다. 사삼주의 원료가 되는 더덕은 예부터 생김새는 물론, 약효가 인삼과 비슷해 사삼이라고 불렸다.
더덕은 오래 묵은 것일수록 좋다고 한다. 오래된 더덕 속에 고여 있는 물은 아주 좋은 명약으로 친다. 그 좋은 더덕으로 술을 담그면 약술이 되는 것이다.
사삼주를 오랫동안 마시면 강장의 효과가 크며 특히 허리나 갈비뼈 아래가 결리고 아픈 데(늑간신경통) 아주 효과가 좋다고 한다. 열이 많은 사람이 사삼주를 장복하면 열이 풀리면서 정상을 되찾고 감기환자가 사삼주를 취하도록 마시고 자고 나면 감기가 물러간다고 한다.
사삼주는 14도의 연하고 부드러운 술이어서 애주가는 물론 술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나 여성에게도 잘 어울리는 술이다. 새봄에 낙안읍성민속마을의 고풍스런 분위기에서 지인과 함께 더덕구이를 안주삼아 사삼주에 흠뻑 빠져 보는 풍류를 즐길 수 있다면 멋스런 삶이라 하겠다.
〈임용택/순천시 농업기술센터 농촌관광담당〉
[전통주 기행]“비법은 타이밍”
“술독에서 나는 소리와 냄새만 맡아도 술이 제대로 익어가는지 알 수 있지요.”
거의 한평생을 발효식품과 함께 살아온 순천 낙안 사삼주 기능 보유자 허효현씨(78)는 나이에 비해 정정했다. 어려서부터 발효식품을 접해온 허씨는 시집온 후 시댁에서 매년 가양주로 사용하기 위해 빚는 사삼주에 대해 남다른 흥미를 가졌다고 말했다. 허씨는 대다수 전통주가 그렇듯이 비법은 ‘정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5년을 숙성실에서 귀와 눈을 떼지 않으며 마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늘 정갈스럽게 살아왔다고 한다. “맏아들 장호 위로 딸 5명 등 모두 7남매를 두었지요. 주조장으로 장가를 들어서 그런지 사위들이 모두 ‘말술’입니다.”
사삼주를 빚어내기 전에 명절때 사위들이 모이면 밤새 술을 마셨고 다음날이면 방안에서 악취에 가까운 술내음이 났다. 그러나 사삼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이같은 ‘문제’가 말끔히 사라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상품(上品)의 사삼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지막 생더덕 즙을 혼합하여 더덕의 향취와 효능이 고스란히 술에 배이도록 시간를 조절하는 것이 ‘노하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전통주가 이처럼 좋은 점을 갖고 있는데도 소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가끔은 허탈한 생각이 든다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허씨의 언행에서 한평생을 절제와 온화함으로 우리의 민속전통을 이어온 여인네의 단아한 품격이 읽혀졌다.
〈순천|나영석기자〉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