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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10시44분 발, 동대구행 무궁화에 올랐다. 서울 사는 둘째 여동생 숙이의 휴가에 맞춰 형제들의 만남을 갖기로 한 것이다. 7월28일 부터 31일 까지 쉬었다. 이틀 일 하고 하루 쉬는 특성상 이틀을 쉬게되면 연일 4일의 연휴가 된다. 29일, 일요일, 금산회 지리산 계곡 물놀이를 갔었고 다음 날은 몸의 피로가 풀리지 않아 하루를 더 제꼈다. 물론 긴 삼복더위에 연일 섭씨 34~5도를 기록하는 상황이 몸의 움직임을 바닥으로 가라앉히는 역할도 한몫 했을 것이다. 8월01일, 더위는 여전하고 열대夜는 잠을 설치게 한다. 선풍기는 밤새 돌아가도 더위를 품은 바람은 짜증을 유발 시킨다. 오늘도 제껴? 허지만 주머니 사정이 녹녹치 않으니 벌어야한다. 이 나이에? 마음을 다 잡고 햋볕 쏟아지는 거리를 나선다. 에어콘을 빵빵하게 틀고. 일에 대한 애착도, 돈에 대한 관념도 부족한 나로서는 그냥 하루를 때워 나가는 수준이다. 그리고 오늘, 8월02일, 12시30분에 태진이와 약속한 동대구역을 가고 있다. 행선지는 삼척이라했다. 태진이 차로 갈 모양이다. 2박3일, 밑에동생 무진이가 이틀 묵을 곳을 준비 했다고 한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 이제 나이도 제법 먹었기에 앞으로 얼마나 더 볼 수 있을지. 해서 여의치 않는 입장에서 마음을 낸 것이다. 나도 경비 전부를 부담하고 싶으나 그것은 무리일 것 같고 현금 30만원과 필요한, 그때그때 카드로 결재를 해야 겠다는 마음이지만 뜻대로 될지.
동대구 역에서 때맞추어 나온 태진이 차를 타고 봉덕동 큰 여동생 명희 집으로가서 태우고 곧장 삼척행, 오후1시다. 한창 여름 휴가철이라 평일이지만 차가 많이 밀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포항까지는 무난하게 달렸고 포항을 지나 동해안 길을 들어서자 차들의 행열이 느릿 해 지기 시작했다. 2시간여를 달려 화진 휴게소, 갈비탕으로 셋이서 점심을 해결하고 띄엄띄엄 열리는 찻길을 달려 망양휴게소에서 커피와 음료수로 숨을 고르고 약속장소인 삼척 고속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던 무진이와 서울서 달려온 명숙이를 만나 걸어서 5분 거리에 무진이가 잠시 빌려 사용하고 있는 상가 아파트에 짐을 푼다. 우리 형제들이 넓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의 아파트다.
동생의 후배가 살다가 이사를 가고 남은 계약기간 동안 집이있는 춘천을 왔다갔다 하면서 더운 여름을 피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지인들이 많은 이곳의 조용한 곳이 필요 했던 것 같다. 동생은 삼척과의 인연이 꽤 깊다고 했다. 선생으로서 첫 부임지 였고 군대를 제대하고 바로 첫 복직의 학교가 바로 삼척이였고 교감이 되어 처음 발령받은 곳도 여기 였다고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후 차로 50분 정도 걸리는 초곡 해변에 조성되어 있는 횟집마을로 갔다. 손님이 많은 곳이라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고 했다. 좁은 공간에 손님으로 꽉 차있었다. 이미 어둠으로 바다쪽 풍경은 캄캄하다. 좁은 공간에 시끄러운 소음은 여느 작은 횟집과 다를바 없다. 매운탕과 밥을 곁들여 저녁을 완수한다. 이름난 집이라 했는데... 돌아오는 길, 초행의 깜깜한 길을 내가 운전했다. 남동생 둘은 술꾼이다. 이튿날은 내가 작년에 와 보았던 대금굴이다. 여름철은 한 달 전에 예약이 가능 하다는 곳을 동생의 인맥으로 예약을 해 두었다고 한다. 첫날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금굴 가는 길, 굴이 가까워지자 차들은 그냥 주차 상태다. 올 봄, 광양 매화 축제를 가다가 돌아온 추억을 불러온다. 도로에서 반사되는 햋빛은 눈을 찌른다. 첫 번째 보이는 간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약1키로 가까운 거리를 걷기로 한다. 여동생 돌이 워낙 약해서 걱정이지만 예약시간이 촉박한지라 방법이 없다. 건강은 작은 여동생이 더 좋지 않다. 나는 작은 여동생과 같이 가기로 하고 셋을 먼저 보냈다. 나는 동생의 발걸음에 맞추어 부지런히 걸었지만 예약된 시간은 지났고 다행히 셋은 타고 갔다고 했다. 30분 간격으로 떠나는 동굴행 미니 열차는 예약 인원으로
다음 열차 마저도 탈수 없다고 한다. 열차 정원은 40명, 예약시간을 놓치면 그것으로 땡인 것이다. 나는서울서 어렵게 내려온 동생만은 구경 시켜주고 싶었다. 안내 데스크의 아가씨에게 조심스레 부탁 해 봤지만 막무가네다. 단호하게 거절당한 것이다. 슬며시 성질이 났다. 굴 입구에서 밀리는 차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고 허약한 동생이 무리한 걸음으로 간신히 도착했는데 2~3분 차이에 못 들어 간다는 것이 억울 했다. 완강한 직원을 붙들고 일단 책임자에게 물어보고 다시 가타부타를 얘기하라고 다그쳤다. 좀 심하게 들이댄 탓인지 사무실을 왔다갔다 하더니 한 시간 후의 열차에 취소된 자리가 있다고 했다. 한 시간 후면 먼저 간 동생들은 내려와서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동생 숙이를 구경시켜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 있으니 안내 아가씨가 와서 다행히 30분 후의 다음 열차에 자리가 났다고 했다. 탑승도 가장 늦게 해야했고 자리도 같이 하지 못했다. 약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동굴 구경을 하고 나와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생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햋볕은 여전히 뜨거웠다. 슬슬 배가 고파오니 동생이 삼척에 근무 할때의 단골 집을 찾는데 오랜 세월은 길을 헤메게 했고 이미 벌써 폐업한 단골집 이웃 가게에서 쇠고기구이로 배를 채운다. 내가 하려는 계산을 동생이 가로채 계산 한다. 제법 많은 금액이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내에 있는 집과 가까운 거리의 죽서루를 찾다가 길이 헷갈려 그냥 집으로 왔다. 샤워를 하고 어두워지는 거리를 혼자 나온다. 여행은 거리 구경이 제맛이다. 못 찾은 죽서루도 궁금했고 이리저리 물어 가까운 죽서루를 찾았다. 이미 문은 닫혔고 부근은 공사로 인해서 어수선 하기만 했다. 피로 회복제를 사가려고 약국을 찾는데 동생 무진이와 마주쳤다. 분명 죽서루에 갔을 것이라 예상하고 나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알약과 마실 것을 사들고 동생과 두런두런 얘기하면서 걷는 길이 정다웠다.
평소 좋지않았던 어께부위에 심한 통증이 왔다. 이렇게 까지는 심하지 않았는데 누우면 꼼짝하기가 무서웠다. 머리를 살짝만 움직여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다. 숙이가 서울서 가져온 동그란 작은 파스를 붙여도 통증은 여전했다.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본다. 여기까지 오면서 팔을 심하게 사용한 적이 있는지, 허나 전혀 그런일은 없었다. 아! 이틀째 아침, 그러니까 오늘 아침, 늘 6시쯤에 일어나는 습성대로 일어나 산책을 나갔었다. 동생들은 늦은 술자리로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었고 집 밖을 나오니 삼척시가 공들여 조성해 놓은 장미 공원이 있었다. 공원 옆으로는 오십천이 흐르고 이른 아침의 선선한 공기속에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인지 힘을 잃고 있는 수십만 송이의 장미꽃 밭을 대충 둘러보는데도 약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집 바로 앞에 작은 쉼터가 공원처럼 아담스레 앉아 있었고 놓여있는 벤치 등받이를 이용하여 팔을 뒤로 돌려 팔 운동을 했던 기억이 났다. 아마도 그 때문인것 같았다. 매일같이 운동하던 습관이 발동했던 것이다.
3일째,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일찍 일어나 오십천 다리를 지나 집 창문에서 바라 보이던 얕으막한 건너편 산쪽으로 향했다. 잘 다듬어진 둘렛길을 따라 산을 건너니 넓은 공터와 인테리어가 멋진 커다란 건물들이 나타났다. 극장도 있고 청소년 수련관도있다. 길을따라 걸으니 오십천 물길이 나오고 건너편으로 천혜의 바위 절벽위로 죽서루의 모습이 태양의 역광으로 나무들 사이에서 검게 모습을 내 보인다. 제법 넓게 퍼져 흐르는 내(川)를, 가로 질러 놓여진 시멘트징금다리를 건너면 죽서루 가는 길이다. 죽서루 옆에 있는 삼장사 절에 들러 참배하고 이른 시간임에도 마침 문이 열려있는 죽서루에 들어갔다. 주위로 온통 도시화 되어 있는 곳에 옛정취를 간직한 樓(루)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서? 사람이 없다. 이리저리 돌아보며 사진으로 모습을 남긴다.
오늘은 폐쇠 시켰던 삼척, 강릉간 기찻길을 복원하여 관광객을 위하여 운행하고 있는 소형 관광멸차를 타고 강릉이나 그 중간 기착지 정동진이나 또다른 볼거리가 있는 곳이 있으면 내려서 구경하기로 동생이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일단 열차표를 구입하기위해 삼형제가 삼척역으로갔다. 문을 닫았던 조촐한 역사는 다시 문을 열었고 창구 안에는 두명의 남자 직원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미 표는 매진되고 없었다. 유례없는 무더위로 휴가철, 관광지 어디던 몰려드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驛舍)벽에 걸려있는 삼척시의 관광지도를 보면서 계확을 변경한다. 내가 관심을 보이는 천은사를 먼저 가기로 했다.
천은사는 고려후기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집필한 장소다. 언제인가 한 번 와 본 곳이기도 하다. 태진이는 이름난 덕풍계곡을 주장한다. 천은사와 덕풍계곡은 삼척시의 머리와 꼬리 부분이다. 그러나 내 의견도 있고 현재 위치와 천은사가 가까워서 일단 천은사로 결정한다. 집에서 기다리는 여동생 둘을 태우고 삼척에서는 규모가 큰 하나로 마트에서 마실 것과 과일, 조리가 필요없는 김밥을 준비했다. 한 시간 여, 골짝을 달려 천은사 도착, 참배하고 도량을 둘러보고 절 입구 계곡에 쉴 곳을 찾아 보았으나 마땅한 곳이 없다. 골이 제법 깊었으나 가뭄으로 바싹 말라있고 인적도 없다. 태양빛을 막아주는 아늑한 곳도 부족하고 물도 없다. 결론은 반대 방향의 덕풍계곡이다. 이 뙤약볕에 한 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곳이다. 이미 배는 고파오고, 아침은 명희가 대구에서부터 준비해온 전복죽을 먹었었다. 꼬불꼬불 산길을따라 덕풍계곡을 들어서니 여기도 그리 수량이 많지않은 긴 계곡 옆, 좁은 국도에 띄엄띄엄 차들이 서 있다. 얼마를 더 달려 덕풍계곡의 중심부에 도착해 보니 넓은 주차장과 간이펜숀, 텐트가 즐비한 넓은 공간, 유원지로서 꾸며놓은 이곳도 많은 차와 사람들이 북적였지만 작열하는 태양아래 마땅히 쉴곳은 없었다. 물이 고이는 넓은 계곡에 물을 가두어 놓았지만 많지 않은 수량에 아이들과 몇몇의 어른들이 탁해보이는 물에서 놀고 있었다. 남동생 둘이 쉴 장소를 물색해 보다가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다시오던 곳으로 되돌아가면서 쉴곳을 찾아 보기로한다. 계곡을 따라 올라 오면서도 쉬어야 할곳에 대한 분분한 의견으로 엇갈렸다. 사실 마땅한 장소는 없었다. 그늘도 부족했고 물도 많지 않으니 괜찮은 곳은 이미 선점되어 자리가 없고 이제는 배가 고프니 사온 김밥이 변하기 전에 어디서든 먹어야 했다. 마침 길 옆에 만들어 놓은 정자가 보였고 꽤 넓은 주차장과 다리 및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있었다. 여기도 좋은 자리는 피서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정자에 먼저 와 있던 피서객 부부의 양해를 얻어 자리를 깔고 짐을 풀었다. 피서객 부부는 잠시 후 불편한지 짐을 챙겨 갔다. 태진이는 물가로 내려가자며 다리 밑으로 내려갔고 신문지 위에 김밥과 과일과 음료수로 잔치? 상을 차린다. 정자 바로 옆 흐르는 물에 과일을 씻어내고 김밥을 안주삼아 동생은 술잔을 비운다. 명희가 물가로 내려간 막내 태진이에게 김밥과 소주 반병을 들고 내려간다. 물가 다리 밑은 바람이 많이 불어 그런대로 시원하다고 했다. 정자위는 바람이 별로 불지않아 시야는 트여 있어도 시원 하지는 않았다. 고작 졸졸 흐르는 작은 도랑에 발을 담글 수 있음이 전부였다. 그나마 신문지를 깔고 누울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역시 나이는 움직이는 것을 싫어한다. 태진이는 차에서 잠시 눈을 붙여 피로를 다스리고 동생 무진이는 술병에 미련을 가지고 자리를 떴다.
돌아오는 길, 원덕에 들러 수산 시장을 둘러보고 작은 아이스박스를 사서 커다란 우럭 한 마리를 산다. 다시 삼척시내로 들어와 마트와 시장에서 저녁 먹거리를 사서 집으로 왔다. 우럭은 회와 매운탕으로 준비하고 명희가 대구에서 준비해 온 대구의 명물 막창을 구웠다. 처음엔 꺼림칙 했으나 권유로 막상 먹어보니 선입견을 깨는 괜찮은 맛이었다. 태진과 무진이의 술자리는 길어지고 나는 저녁이되면 더 심해지는 목과 어께간의 통증에 그냥 가만이 누워 있어야 했다. 낮에 사둔 파스를 붙였지만 움직일때의 통증에는 막무가내다.
처음 태진이 전화 올때는 2박3일이였으나 1박이 자연스레 더 추가된 셈이다.
내일은 일찍 출발한다면서 술자리는 길어지고 있다.
떠나는 날, 숙이가 준비한 아침을 간단히 차려먹고 함께 집을 나선다. 혼자 남는 동생이 마음에 걸린다. 춘천이 집인데 왜 삼척에 내려와서 지내는지 모르겠다. 그는 마지막 양양여고 교장으로 퇴직했는데 벌써 6~7년은 된것같다. 무엇이던 해야하는 성격인지라 그냥 무의미하게 무작정 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있으니 뜻대로 되지는 쉽지않으리라.
고속터미널에서 숙이의 서울행표를 끊어주고 대구로 향한다. 허전한 마음이 뒤따른다. 영천 휴게소에들러 김밥과 우동을 시켜 명희와 둘이서 갈라 막는다. 태진이는 늦은 술자리와 형들 비위를 맞춘다고 피곤한지 차에서 쉰다고 했다. 커피3잔을 시켜 한잔씩 하고 출발한다. 봉덕동 명희집에 데려다주고 나는 동대구에내렸다. 구포가는 새마을호가 바로 있어 표를 끊어 뛰어 내려갔지만 잠시 승차지점(플랫폼)을 헷갈려 간신히 탈 수 있었다. 잠시 내 정신 상태를의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