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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an civilization(마야문명)
멕시코 유카탄 반도 라브나에 있는 마야의 아치
온두라스 고대 마야 도시 코판(코판 루이나스)에 있는 올멕 문화의 거대한 두상.(5-9세기 마야 문명 시대). 고대 왕국의 이름은 주크피(Xukpi)이고 고대 도시의 이름은 옥스위티크(Oxwitik)이다.
마야 문명 고전기말인 6~10세기 마야족의 복식:로인클로스(loincloth)와 장식 두건을 걸친 마야족 상류층 남자, 과테말라 네바흐에서 발굴된 다색(多色) 장식 꽃병
과테말라 페텐 주에 있는 티칼의 마야 문명 유적(300∼900), 오른쪽이 재규어 대사원
온두라스 고대 도시 코판(코판 루이나스)의 돌기둥 상세 모습 (5-9세기 마야 문명 시대). 고대 왕국의 이름은 주크피(Xukpi)이고 고대 도시의 이름은 옥스위티크(Oxwitik)이다. 코판의 마야 유적지는 198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벨리즈 후난투니에 있는 650경~890년의 마야 문명 유적지
AD100∼600년 중앙아메리카 과테말라 고지에서 유카탄 반도에 걸쳐 나타난 마야족의 고대 문명
잔존한 마야족은 지금도 중앙아메리카에서 마야어를 사용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도시 문명이나 문자 등의 내용은 잊혀졌다가 20C비로소 학자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대체로 마야 문명 최초의 유적은 기원전 1800년경에 건설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기원전 3114년은 마야 문명이 시작되기보다 천 년 이상 전의 일이다.
그러나 최근에 기원전 26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으므로
기원전 3114년에 실제로 마야 문명이 건설되었을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BC 600년 건설되어 BC 300~ AD 100년 경에 인구 10만까지 번성하였으나
AD 300년 이후로 크게 쇠락해 800년경에 완전히 몰락했다. 최대인구는 10만.
10, 100, 1000 등을 나타내는 별개의 기호가 있었던
중국이나 로마 등과는 달리마야인들은 인도에서 만들어진 아라비아 숫자에서처럼 0과 자릿수를 이용했던 것이다.
유라시아의 대부분의 문명과는 달리 마야문명에서는 20진법을 사용했다는 차이는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숫자체계는 마야문명에서 발명한 것이 아니라
보다 이전의 문명인 올멕 문명에서 이미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마야문명의 쇠퇴 원인은 분명하지 않다.
가장 유력한 설명은 과도한 개발로 인한 토양침식,
즉 환경파괴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출토된 동시대 유물에선 치명적인 영양실조의 흔적이 보였고,
주요 생산품인 옥수수가 자랄 수 없을 정도로 토양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주요 생산품인 옥수수 자체가 지력 소모가 심한 작물이었으므로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또한, 마야 문명 후반기에 북부지역이 과도하게 성장하면서 산림을 벌채하고
건축물에 사용할 재료를 구하기 위해 화전을 해버린 것이 치명타였다.
그만한 인구를 버텨낼 정도로 강인한 생태계가 되질 못했다.
숲이 벌목과 화전으로 사라지자, 주요 초식동물들은 순식간에 멸종하여
사냥으로도 지탱할 수 없었다.결정적으로 멕시코 쪽의 군사 개입이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막무가내식 개발이 어떤 꼴을 불러오는지 아주 적절히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다만 위의 농법에 대한 설명은 유카탄 반도 북부의 도시들에는 비교적 잘 들어맞는 반면
남쪽의 티칼이나 팔렌케 등의 도시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현재 마야인들의 농법은 화전을 기본으로 하고 북부 해안 가까이의 도시들에서는
당시에도 화전을 바탕으로 한 것 같지만, 남쪽의 티칼이나 팔렌케 등에서는 화전이 아닌
세밀하게 짜여진 수로를 이용해서 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수로를 이용해서 물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수로 위에 자라는 수초들을 땅에 뿌려서
비료 겸 뿌리를 보호하는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화전 방식에 비해서
훨씬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마야 문명에서는 물이 권력의 상징인데, 수로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지배층이 지나치게 전쟁에만 골몰했다는 점이다.
마야의 전쟁은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규모가 커지고 파괴적으로 변해서
여러 번성하던 도시들이 전쟁으로 멸망했다.
말기로 가면 마야 문명의 기록에 다른 도시를 파괴했다는 표현이 종종 등장하며,
실제로 여러 도시들의 역사가 끊어졌다.
여기에 과도한 개발 등으로 인한 문제가 계속 심각해지는데도
전쟁과 인신공양에만 열을 올리는 지배층에 대해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도시를 뒤집어 엎었다는 것이다.
농민들의 대규모 반란, 민란에 대한 분명한 근거는 없지만,
도시들이 멸망한 후에도 농민들은 수백년 이상 도시 주변에서 계속 살았다는 연구 결과가
정황 증거로 제시된다.
16세기 스페인인들이 도착했을 때,
마야에도 마지막 숨통을 틀어막는 수준의 피해를 입혔다.
정글 지역에 잔존한 마야의 세력은 계속해서 저항했지만
스페인에 큰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1531년 후기 마야의 중심지였던 치첸 이차가 함락당했을 때
금방 되찾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스페인의 침략은 이미 막을 수 없었다.
다만 말 그대로 궤멸당한 멕시코 지역의 원주민들과는 달리,
마야 지역의 원주민들은 그나마 혈통을 많이 계승한 편이다.
역설적으로 이는 마야인들의 문명은 이미 붕괴 상태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제국을 이루고 있던 아즈텍인들이나 잉카인들과는 달리
마야인들은 금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로 콩키스타도르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것이다.
종말론에 대하여
마야의 역법은
서기 2012년에 끝난다는 설로
지구가 2012년에 멸망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냥 한바퀴 다 돈 것뿐이다.
십간십이지가 한바퀴 돌아서 다시 갑자가 오는 것과 같은 것.
마야에서의 십간십이지에 해당하는 년도는
144,000일, 394.3년이다.
그리고 마야의 역법에 따르면
이 단위조차 한바퀴 순환하려면 서력 4772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20진수인 마야력에서 2012년은 고작 13에 해당하는 절기일 뿐.
참고로 1에 해당하는 절기는 BC 3114년이었다.
마야인들이 가장 큰 단위인 B'ak'tun 이 끝나는 시기마다
큰 행사를 치른 건 사실이지만
지구 멸망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Inca civilization(잉카문명)
남아메리카의 안데스를 중심으로 16세기초까지 잉카족이 이룩한 청동기문화.
직물, 금세공, 거석(巨石) 농업문화가 발달했으며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자연숭배의 다신교를 믿었다.
15세기 초기에서 16세기에 번영했던 잉카 문명은
남아메리카 서부의 안데스 산맥 지역 이전 사람들이 이룩해놓은 것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최초로 대규모 정착이 이루어진 것은,
안데스 산맥에서 관개를 위한 물을 공급하는 시내가 흘러 내려오는 페루 해안을 따라서였다.
해안을 따라 있는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은
잉카 제국이 있기 수세기 전에도
그곳에 고도로 발달한 몇몇 문화가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스티아누아코와 같은 또 다른 대규모 정착 또한 안데스 고원에서 발생했다.
이곳에서 기묘한 형상들이 해발 약 4,000m에 위치한
높은 산악 분지인 볼리비아의 황량한 알티플라노를 바라보고 있다.
티티카카 호수는 티아우아나코 유적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이 호수는 태양과 달의 신성한 섬을 둘러싸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잉카의 이야기는 태양신 인티가
제1황제 만노카팍에게
새로운 집을 찾아 섬을 떠나라고 명령한 기원 1200년경에 태양의 섬에서 시작되었다.
이 명령을 따라
만코카팍과 그의 부족은 쿠스코의 좁은 골짜기로 이주하여 작은 부락을 세웠다.
몇 세대가 지난 후 잉카의 제8황제는
창조신 비라코차가 나타나 그에게 영토를 확장하라고 말한 꿈을 꾸었다.
이후 비라코차 잉카라고 불린 이 14세기의 왕은
쿠스코 근처 골짜기에 있는 주변 땅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잉카의 지배 아래에 있는 영토와 사람이 늘어날수록
쿠스코의 규모도 커졌으며
거대한 돌로 새로운 유적이 세워졌다.
도시는 사크사우아만 요새 신전을 그 머리로 정글살쾡이의 몸처럼 배치되었다.
요새 테라스의 방벽은 거대한 고양이의 송곳니를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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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로 가보고 싶은 곳인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시절 개구리 사냥하듯 원주민을 마구 죽인 양키놈들과 이놈들이 갖고온 바이러스가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일 듯, 왜냐면 이걸 연구하고 숨기고 해도 학살한 것이 원인이란 설이 양키들의 다수설이기 때문에~~
평가보다는
걍 그러하다는 역사 인게죠
감사합니다
ㅡ.ㅡ
형님 큰일.치루시고도
꾸준히 들어 오시네요.
고인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
꼴 가보고 싶은 곳이군여~`올리시너라 수고 하셨어요~``
오랫만입니다 선배님
와,, 대단한 정보입니다.. 그냥 마츄피츄마저도 잉카문명인지 마야문명인지 헷갈리는 정도로 무식했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비나레옹님 안녕하시지요?
아씨....어렵습니다....ㅠㅠ
후배는 머리가 아픕니다...
걍~ 쉬어요.ㅋ
아~~~ 이런 글은 어디서 발취해서 올리는지.....대단
제가 마야의 후손 땅에 살고 있습니다.
파파님 좋은 글 항상~ 감솨하고요, 그냥 제가 양키놈들이 과거 저지른 악행이 생각나서 그냥 ㅎㅎ, 근데 우리는 자꾸 콜럼버스 어쩌구 저쩌구하는데 사실 요놈이 원주민을 몰살시킨 놈이거든요. 글고 신대륙 신대륙하는데 거기에는 이미 인간들이 살고 있었는데 지들이 들어가 몰살시키고 새로운 대륙이라 하는데 이게 말이 되나요??? ㅎㅎ
약수님~~~ㅎ~
건강 하시지요?
사실 세계법 이라는곳도 그렇지요~
강대국의 논리에 맞게,,,ㅋㅋㅋ
세계법이 누가 만든건지,,,미국~^^
ㅋㅋㅋ
대단합니다.
700년의 부귀를 누리었든 마야제국의 흥망과 몰락을 배우면서
영원한 패자도 영원한 승자도 없다는것,,,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리라 생각 됩니다,,,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곳입니다... 잘 읽고갑니다~
마야와 잉카의.만남이 공존하는
중남미......볼만 합니다
정말 좋은 정보 입니다. 덕분에 잘 봤습니다.
요즘 바쁘신가여~^^
ㅎ 예 항상 공기가 부족하여 바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