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연휴에는 어디를 다녀 올까?
무더위에 열대야까지 극성을 부리니 어디 시원한 곳은 없을까 하고 생각한 데가
백석(1365)-중왕(1381)-가리왕산(1560)라인입니다.
가리왕산 직전의 마항치(1080) 빼고는 전부 1200미터를 넘는 부드러우면서 장대한 능선이지요.
거길 걷는다는 상상만으로도 속이 다 후련해지는 능선입니다.
8.15 광복절 아침 7시 동서울에서 대화경유 정선행 버스를 탑니다.
막바지 휴가를 놓칠세라 몰려온 인파로 동서울은 터미널은 이른 아침부터 북새통입니다.
한적한 대화터미널. 근처의 마트에서 필요한 물품준비를 하고는 택시로 던지골을 향합니다.
택시비 8000원.식량 2박3일분에 막걸리 5개 소주 대짜하나 물고기잡을 도구까지.
능선산행에 왠 천렵도구는? 하시겠지만 속셈이 있었지요.결국 요긴하게 써먹었지만.
혹시 비올지 몰라 텐트위에 치고 옆에는 밥먹을 자리까지 확보되도록 넉넉한 크기의 비닐까지 더해
배낭에 넣으니 무게가 30kg는 족히 넘을듯, 짊어지기도 버겁습니다.
던지골 차단기를 넘어 출발합니다.(10.50)
뚜렸한 산길따라 30분 가량 오르다 등로가 계곡을 벗어나길래 밥해먹을
물2리터를 추가로 보충하여 가파른 백석산 오름길을 한발 한발 수행하듯 오릅니다.
예전에 설악이나 지리에 개인운영 산장이 있던 시절 품삯받고 짐져 나르던 짐꾼들 모습을 연상하면서.
백석산 서능의 1050봉에서 밥하고 김치찌개도 끓여 제법 근사한 점심을 먹습니다.
산행중 식사는 행동식 없이 전부 취사를 원칙으로 합니다.
배낭 무게는 좀 나가더라도 밥먹는 시간 만큼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요.
거기서 한시간여 힘들게 올라서면 너른 헬기장의 백석산 정상(13.30)입니다.
전에는 던지골에서 오르면 영암사란 작은 암자를 거쳐 백석산으로 통했는데 그길은 찾을 수 없고
능선길이 바로 백석산에 닿습니다.
이제부터는 멀리 가리왕산을 바라보며 남진입니다.지도상 마랑치 지점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영암사 가는 옛길은 흔적이 없습니다.
전해 들은 바로는 몇년전 주지스님이 영암사를 버리고 아래로 새절지어 내려 갔다더니
사람 왕래가 없어 길도 사라진 건지 아니면 내 눈에 안뜨이는 건지.
지난 겨울에도 그길을 못찾아 고생한 적이 있어 이참에는 꼭 확인하리라 별렀는데 허탕입니다.
대체로 완만한 경사의 능선에 적당한 강도의 바람이 불어 주니 피서산행 한번 제대로 합니다.
1351봉에서 우회전 할 것을 무심코 직진하여 300미터쯤 가다 주능선이 왼쪽 저편에 보이길래 되돌아 옵니다.
15년전에도 거기서 잘못들어 1325봉 쪽으로 한참을 알바했건만 오늘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
설렁설렁 걷다보니 야영자리를 확보할 시간이 거진 되어갑니다.
지도로 판단하건데 1351봉 500미터 지나친 지점에서 좌로 내려 서면 임도에서 물을 만날듯 합니다.
적당한곳에서 사면을 치고 내려섭니다.
과연 예상대로 작은 물줄기가 흐르는 곳인데(17.40) 눈금 달린 물탱크와 전기시설까지 된
작은 건물이 있습니다.무슨 목적인지 잘은 모르지만 원격으로 그곳의 수량을 체크하는 시설물같습니다.
물있겠다 임도 넓겠다 시원한 바람 불어 주니 시내는 지금 열대야로 찜통일텐데
이 무슨 횡재수에 호강인가 싶습니다.
가져온 큰골뱅이 삶아 막걸리 마시다 밤이 깊를 즈음엔 삶은 닭에 소주 마시며
쏟아 부은 듯 반짝이는 별구경에 취하니 넋을 잃을 지경입니다.
오늘은 막걸리 2병에 소주 1/3만 마시고 끝내기로 합니다. 11시쯤 취침에 듭니다.
1200미터 고지의 밤공기가 그렇게 상쾌하고 시원할 수 없고 모기도 없습니다.
임도위 벌목지의 야생화
야생화
임도에 이런 샘도 있고
16일 아침. 느즈막이 일어나 남은 닭고기와 죽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10시에 출발합니다.
이길따라 6-7km가면 임도 삼거리에서 다시 능선을 만날 것이니 구태여 힘들게 능선으로 복귀할
필요는 없습니다.임도 위쪽으로 연이어 벌목지대가 나타나는데 야생화가 지천입니다.
아마 곰배령이나 다른 어디 보다도 야생화 개체수가 많지 싶습니다.
임도삼거리에서 능선으로 복귀하여 20분 진행하면 1174봉인데 여기서 점심 먹기로 합니다.
능선과 만나는 임도삼거리
1174봉
중왕산 전위봉인 1378봉
중왕산(지도에는 주왕산 1381m로 표기)
중왕산에서 북쪽으로 백석산 방향
남으로 가리왕산
다시 밥하고 찌개 끓이고 막걸리도 한통 비우며 느긋이 배를 채워야 바로 앞에 버티고 선
중왕산(1381)를 오르기 수월하겠지요.
불어주는 바람은 서늘하지만 한낮의 뙤약볕에 무거운 배낭지고 고도차 250미터를 극복하자니
땀이 줄줄 흐릅니다.중왕산정상은 그늘이 없으니 그대로 통과, 서둘러 마항치로(15.00) 내려 섭니다.
마항치
간판 오른쪽이 가리왕산 오름길
여기서 진행방향은 가리왕산이 아니고 정남향으로 틀어야 합니다.그렇게 내려가면 옛 화전마을이 있던
마항이란 동네입니다.얼마전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프로에 소개된 바 있는 화전터인 마항마을에서
20년간 혼자 살아온 자연인을 만나 보러 갑니다.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니까요.
초입에서 이리저리 둘러봐도 사람이나 짐승 다닌 흔적이 전혀 없는 그야말로 인적없는 사면입니다.
골짜기로 내려 가보지만 족적이나 과자봉지 같은 인간의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는 무인지경입니다.
이런 코스가 조금 고생스럽긴 하지만 마치 내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라도 된 기분이 들어
희열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길이 없으니 잡목과 넝쿨을 헤치며 전진하는 건 그래도 좀 나은 편인 것이
하류로 갈수록 계곡의 규모가 커지면서 폭포나 소를 우회하거나 계곡을 건너는 일이
점점 까다로와 집니다.
그렇게 2시간 30분을 내려가면 비로소 길다운 길이 나오고 한동안 폐목장지대의 키큰 수풀 지나서
집 한채가 나타납니다(17.40).
새로 지은 기와집으로 방송에서 보던 자연인의 옹색한 집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첫번째 나오는 집
50대의 아주머니 한분이 있다 맞아 주는데 자기는 원주민이지만 여기 상주하지는 않고
정선에 살며 가끔씩 남편과 농사지으러 들른답니다.
혼자 사는 도사네 집은 저 아래 10분 거리에 있다고 일려줍니다.
이 산간벽지 까지 차가 들어 오는지 봉고차도 한대 세워져 있습니다.
TV로 상상한 광경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방송 출연자는 차가 못가는 산길을
몇시간 걸어 들어 간다고 했으니까요.
마항도사
700미터쯤 내려가 낡고 작은 집마당에서 도사풍의 중년사내를 만납니다.
TV보고 찾아 왔다니 굉장히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양해를 얻어 그집 마당에 자리를 잡고는 개울가에서 땀에 찌는 몸과 옷도 씻어 내고
가져온 어항도 놓습니다.
방송에 어항으로 물고기 잡는 장면을 보았으니 부식조달용으로 준비하였지요.
피래미 튀김으로 저녁 안주거리가 풍성해집니다.
마항도사와 술잔을 나누며 12시가 되도록 이런저런 이야기 주고 받다 각자 잠자리에 듭니다.
다음날 아침 봉고차가 한대 들어 오더니 도사와는 구면인 심마니 행색의 두사나이가 나타납니다.
요새는 산삼 캐봐야 장뇌삼과 산양삼으로 의심하는 통에 돈이 되질 않는다며
오늘은 뱀잡으러 왔다네요.
심마니1
심마니2
9.30분 그들과 작별을 하고는 대중교통이 닿는 가리왕산 휴양림까지 다시 6km를 걸어내려 갑니다.
이계곡물이 휴양림 거쳐 정선읍 부근에서 조양강으로 흘러드는 용탄천입니다.
일대가 상수원보호구역이고 무슨 희귀식물 유전자 보존지역이라 휴양림에서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에 마항마을 도사네 집부터 장장 6km 거리의 휴양림까지
민가도 피서객도 없습니다.
휴양림 가드레일을 통과하는 순간 저아래 계곡에서 들리는 물놀이객들의 喧騷에
비로소 다시 속세로 돌아 왔음을 실감합니다.
벽파령 갈림길의 입간판
이런 멋진 소가 줄줄이 나타남
첫댓글 삼일동안 속세를 떠난 기가 막히게 재미있게 다녀오셨네요^^
부럽습니다. 저도 비슷하게 따라하려고(같은 코스는 아니지만) 벌써부터 텐트도 장만하고 했는데, 아직 못하고 있습니다.
자연인이란 프로 저도 한번인가 본적이 있는데, 그런분도 다 만나시고........
그림이 그려집니다. 아름다운 그림이.
아침에 보는 골골이 안개에 잠긴 산릉의 모습 또한 장관이 아니던가요?
읽는 저 역시 시원한 피서산행기입니다.
야밤에 나방 떼로 안덤비던가여?
현장사진 몇장의 아쉼은 있지만
충분히 상상되는 멋찐 산행기임다.
사진은 찍어 왔는데 실력부족으로 올리질 못하고 있네요.
고지대라 그런지 나방따위의 날벌레는 없었습니다.
마항도사는 약간의 밭농사와 양봉을 하는데
몇년째 벌들이 죽어 양봉을 못하고 있답니다..
밭농사는 일조량이 부족한 곳이라 겨우 자급자족할 뿐
내다 팔 정도는 못된다며 먹고 살일이 막막하다 걱정입니다.
산속의 자연인도 돈벌이 안되면 생계걱정은 여기나 마찬가지더군요.
2년 전 마항치 가까운 임도에서 야영 중 매미만한 나방들 습격으로 곤욕 치뤘는데
아마도 비가 내리기 직전?이여서 그랬나봅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쪽의 임도상은 한구비 돌때마다 계곡물이 많았으며, 무엇보다
출입을 통제하는 곳으로 사람 보기 어려워 야영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것 같습니다.
마항도사란 분은 도사와는 거리가 먼 순수한 시골사람으로 보여지는 것이
t.v를 거의 안보는 제생각으론 이미지가 단풍님 정도 추정했었는데0..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