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가혹한 제재에도 경제적으로 잘 버텼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경제가 무너졌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서방 경제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재빠른 통화정책적 대응을 서방의 경제제재를 무력화한 주요 요인으로 꼽고 있다. 더 좁히면, 엘비라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의 뛰어난 능력, 혹은 역할이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서방 진영이 달러화 국제결제 체제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의 결제망에서 러시아 금융권을 배제하는 등 초강수를 두자, 기준금리를 단번에 9.5%에서 20%로 올리는 파격적인 금리 인상 조치로 맞섰고, 푸틴 대통령이 비우호적인 국가들을 상대로 러시아산 가스 판매 대금을 루블화로만 받기로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러시아 금융·외환 시장은 안정을 되찾았고, 통화위기→금융위기→경제위기로 이어지는 고리가 첫 단계부터 끊어졌다.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사진출처:중앙은행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2023년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28명을 선정하면서 '파괴자(disrupters) 부분' 1위로 나비울리나 총재를 올린 것도, 그녀의 이같은 역할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던) 2014년부터 러시아를 벼랑끝으로 몰아붙인 서방의 각종 제재 조치로부터 러시아 경제를 구해냈다는 이유로, 그녀는 지난 2018년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 러시아 경제 회복의 일등공신으로, 또 '푸틴의 숨은 병기'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금리 조정 발표가 나오면, 언론과 대면 혹은 온라인 백브리핑 회견을 가지는 나비울리나 총재는 지난 25일 현지 온라인 매체 rbc와 단독 공식 인터뷰를 가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사실상 첫 언론 등장이다.
rbc는 거의 2년 만에 가진 첫 인터뷰에서 나비울리나 총재가 가장 고통스러운 서방의 제재 조치와 그 대응을 비롯해, 금리 조정, 환율 관리, 모기지 대출 등 통화정책 전반에 대해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고 전했다.
그녀는 이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실질적으로 2014년부터 (서방의) 제재 속에서 살아왔다"며 "러시아 중앙은행은 (중국)위안화와 금 보유 비중 확대 등의 방법을 통해 서방 제재의 위험성에 항상 대비해 왔고,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나비울리나 총재의 인터뷰가 실린 rbc 웹페이지/캡처
전쟁 중인 러시아 금융정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짐작하게 하는 그녀의 기자회견 내용을 분야별로 소개한다. 우선, 서방의 제재에 맞대응한 러시아의 통화정책, 금리 조정 분야다. 질문과 답변을 요약하고, '구글 번역'도 참조했음을 알린다.
◇ 금리등 서방 제재에 대응한 통화정책 분야
Q(인터뷰 영상을 보면 질문자는 두명의 여성):
서방 제재의 타격을 가장 먼저 받은 곳은 금융권이다. 대형 은행들은 준비금 동결과 외화 규제, SWIFT 배제 등 제재를 받고 있다. 예상치 못한 것과 가장 어려웠던 일은?
A(나비울리나 총재):
러시아는 2014년부터 서방의 제재 속에서 살아왔다. 제재 강화의 위험성을 늘 염두에 두고, 다수의 금융기관과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대비해왔다. 대형 은행들이 제재를 받았을 때, 이미 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014년부터 SWIFT와의 연결 배제 위협이 제기돼 국가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었다. 또 외화 보유고를 다양화하고, 위안화와 금의 비중을 늘렸다. 질문한 사례외에도 더 많은 제재 조치가 있었지만, 우리는 전반적으로 재정적 안정성을 유지했다.
문제는 국제 결제 분야인데,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렵다. 직접 제재 대상은 아니었지만, 수백만 명의 개인 자산이 차단되고 동결된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중앙은행이 정부와 함께 여러 방면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다.
서방의 외화보유고 동결은, (외화보유고의) 기본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중앙은행에 매우 부정적인 신호를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Q: 금융 부문을 중심으로 제재 압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보나?
A: 서방의 제재는 예측이 전혀 불가능하다. 제재 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갖고, 매년 '통화 정책의 주요 방향'에서 이를 제시한다. 또 모든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거시경제적 안정성과 금융 안정성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은행에 대한 간섭을 줄인 게 대표적이다. 은행들도 제재 뿐만아니라 자금 문제 등 다양한 외부 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다시 (자본) 완충 장치를 늘려야 한다고 믿는다. 위험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rbc측과 인터뷰하는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사진출처:rbc 영상 캡처
Q: 미 정치전문 '폴리티코'는 러시아가 제재에 적응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당신을 '올해의 파괴자'로 선정했다. 이에 동의하나? 우리가 모든 것을 극복했다고 여기는지, 아니면 앞으로 새로운 충격이 닥칠 수도 있다고 보는지.
A: 폴리티코 질문에는 답변하기 어렵다. 중앙은행은 고(高)인플레이션에 의한 소득 하락과 금융 안정성, 개인과 기업의 예금 보호 등을 겨냥한 정책, 나아가 경제 구조조정의 재원 확보를 위한 정책을 추진했고,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경제 분야의 구조 조정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매우 빠르게 적응하는 우리 경제, 비즈니스 시장의 특성 덕분이다.
우리가 2022년을 잘 넘겼고, 이제는 '무릎 깊이의 바닷물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고픈 유혹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제재 압력의 강화에 대비해야 한다. 국제 결제를 포함해 금융 부문에서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 새로운 (국제) 결제망이 구축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그 심각성이 약간 감소되긴 했다.
우리에게 도전은, 경제(회복및 성장)에 필요한 장기적인 자금 확보다. 장기 대출뿐만 아니라 자본시장 자체의 문제다. 자본시장의 발전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제재 혹은 그로 인해 발생한 금융 시장의 신뢰 추락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금융) 혁신과 기술 발전의 속도를 맞추는 게 과제다. 우리의 금융 산업은 상당히 발전돼 있지만,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혁신을 위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일부 솔루션은 외국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자체 개발중인데, IT 전문가와 프로그래머 부족 등이 주는 영향을 점검하고 있다.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도전에 응했고,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금융산업의 발전과 지속 가능성, 또 기술력과 혁신을 통해 개인과 기업 모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편이다.
Q: 중앙은행은 올 여름부터 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더 일찍 시작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A: 인플레이션 압력이 하반기부터 높아지기 시작했다. 물가 상승률(인플레율)이 이제 당초 목표보다 훨씬 높아졌다. 돌이켜보면, 통화 정책이 느슨했고, 금리를 더 일찍 인상했어야 했다.
Q: 예를 들면 언제?
A: 봄에.
Q: 중앙은행은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낮아진, 상당히 안정적인 추세를 보일 때까지 기준금리를 높은 상태로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이 원칙 뒤에 숨은 뜻은, 매개변수는 뭔가? 2~3개월 정도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면, 통화정책 완화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A: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꾸준히 감소하는지, 또 이것이 일회성 요인에 따른 것이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지표를 분석한다. 전반적인 가격 상승 지수는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인플레이션 안정성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 이게 핵심이다. 예를 들면, 변동성이 배제된 가격 상승률과 루블 환율과 무관한 상품 및 서비스의 가격 상승률이다. 나아가 우리는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구성 요소들이 줄어드는 추세가, 그 자체로 지속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
이를 위해서는 2~3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인플레이션 하락을 보여주는 지표들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도 매우 중요하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기대심리가 높고 여전히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는 고인플레이션에 관성처럼 따라다닌다. 그 기대치가 높을수록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은 더 어렵다. (통화정책은) 모든 지표를 고려할 것이다.
질문에 답변하는 나비울리나 총재/rbc 영상 캡처
Q: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등 모든 게 둔화되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는데, 달걀 문제가 터졌다.
A: 이런 게 변수다. 가격 상승률이 높을 때, 끊임없이 무언가가 터져나온다. 지난 2021년 경험에 따르면 처음에 한 가지 유형의 상품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는데, 그 다음에는 다른 상품이, 또 다른 상품이 그랬다. 고인플레이션에는 어떤 유형의 상품을 끌어들이려는 유혹이 늘 존재한다. 거기에는 공통된 이유가 있는데, 우리의 경우, 높은 수요가 공급(능력)을 앞지르는 것이다.
Q: 높은 수요, 기록적인 재정(경기) 부양책, 낮은 실업률 등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는 이 모든 요인이 얼마나 오래 갈까?
A: 오랫동안 지속될 만한 요인들이 있다. 노동시장 상황과 낮은 실업률도 포함된다. 이 것들이 공급 능력, 즉 공급이 얼마나 빨리 수요에 따라갈 수 있는지 결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정적 부양책에 관해서는, 우리도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정책을 펴고 있지만, 내년(2024년)에는 올해보다 적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소비자 수요가 높지만, 통화정책과 기준금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은 시차를 두고 경제에 반영된다. 전체적으로 긴 사이클이다. 기준 금리가 인상되면 예금 및 대출에 대한 시장 금리가 뒤따라 오르고, 이는 예금과 대출, 소비와 저축 여부 등 사람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 후에야 (시장의) 가격에 반영된다. 우리는 이 과정을 3~6분기 정도로 길게 본다.
Q: 과거에는 3~6 분기였는데, 점점 더 길어지고 있지 않나?
A: 과거 그대로다. 우리는 이 기간을 늘리지 않는다. 물론, 일부 결정은 더 빨리, 혹은 더 느리게 채택되고 실행될 수 있고, 다른 요인에 의해 달라지기도 한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와 환율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주요 금리 결정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하고, 또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음을 확인한다. 시차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내린 (금리 인상) 결정이 경제에서 어떤 효과를 내는지 평가할 것이다.
금리인상으로 모기지 대출이 줄고 있다. 모스크바 신축 아파트/텔레그램 캡처
Q: 지난 9월 러시아의 고금리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게 대출 수요를 자극했을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중앙은행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느낌도 드는데.
A: 그런 느낌은 없다. 물가 상승은 계속 되는데, 금리를 매우 느리게 인상한다면 그 결과는 심각할 것이다.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 둔화되지 않고 상승하면, 금리도 계속 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단호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지난 6개월 만에 금리를 7.5%에서 16%로 높인 것이다. 우리는 늘 내년까지 인플레이션 목표치 4%를 달성할 수 있을 만큼, 우리의 통화정책 기조가 긴축적인지 여부를 살핀다.
우리는 대출 수요 부문에서 (금리 인상) 효과를 확인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시장 모기지 대출이 줄고 있다. 물론, (특정 계층에 대해 정책적으로 금리를 낮춰준) 우대 모기지는 다르다. 금리가 오르면, 우대 모기지의 낮은 (고정) 금리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것은 통화 정책상 문제가 될 만큼 큰 규모는 아니다.
다음편(루블화 환율 부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