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北 대사 부부,자유조선 차량으로 탈출해" 석달 후 스페인 北대사관 습격… 탈북작전 가능성
잠적한 이탈리아 주재 北대사대리 조성길. 임기 만료를 앞두고 지난해 11월 부인과 함께 공관을 이탈해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조성길(가운데)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앞서 지난해 3월 이탈리아 베네토 주에서 열린 한 문화행사에 참석한 모습/ AP 연합뉴스
미국에 기반을 둔 반북(反北) 단체 ‘자유조선’(옛 천리마민방위)이 2018년 11월 로마에서 잠적한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대사대리의 탈북에도 관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자유조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당한 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일가를 구출해 제3국으로 보낸 조직으로 유명세를 탔다.
/조선일보DB
3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조성길 전 대사대사와 그의 아내가 2018년 11월 로마의 북한대사관을 빠져나온 뒤 자유조선 회원이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탈출했다고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조 전 대사대사 부부의 탈북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나, 자유조선이 관련돼 있다는 주장은 처음 나왔다. 조 전 대사대리 부부는 탈출 이후 한 서방국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정보당국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자극받은 북한은 자유조선 회원들을 노린 암살자들을 파견했다고 한다. 또 북한 당국은 작년 여름 외교관들을 평양에 모아 놓고 정권에 대한 충성 교육을 실시했다고 WSJ는 보도했다.
자유조선의 리더인 에이드리언 홍은 서던캘리포니아에서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부모 슬하에서 자랐으며, 예일대에서 역사를 전공했다고 한다. 정치범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탈북자의 수기에 감명받아 북한자유화운동을 시작했고, 수백명의 탈북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작년 2월 자유조선이 주도한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이 노출된 뒤 강도와 납치 혐의로 받았고, 스페인에 인도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잠적했다.
WSJ는 이날 보도에서 자유조선이 조
전 대사대리와 아내는 탈출시켰지만, 이들 부부의 딸이 북한대사관에 홀로 남겨졌다가 평양으로 북송된 점을 지적했다. 자유조선은 이 때 얻은 ‘교훈’을 다음 프로젝트인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습격 때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탈북을 원하는 북한 외교관의 가족까지 확실히 보호하기 위해 ‘납치극’으로 위장한 탈북을 추진하다가 실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北 "딸이 부모에 버려져 자진귀국", 이탈리아 언론 "딸이 조성길 배신" 정부, 망명설 보도 후 소극적 대응
지난해 11월 잠적한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딸을 두고 강제 북송(北送)설에 이어 자진 귀환설이 제기되는 등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아무런 입장이나 설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조성길의 후임으로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에 부임한 김천 대사대리는 23일 강제 북송설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오스발도 나폴리 이탈리아-북한(조선) 친선의회그룹 위원장에게 "조성길의 딸은 잠적한 조성길 부부에 의해 집에 홀로 남겨졌기 때문에 부모를 증오했고, 조부모에게 돌아가기 위해 평양에 가길 원했다"며 "조성길의 딸은 치료를 받고 있긴 하지만 거기서 잘 지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강제 북송설을 불식시키고 조성길 부부를 부도덕한 부모로 몰아가려고 외교 공세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탈리아 유력지 라레푸블리카는 이날 정보기관 4곳에서 확인한 정보라면서 "조성길의 딸은 북한 세뇌 교육 탓에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발적으로 귀국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라레푸블리카는 "조성길의 딸은 그의 부모가 북한 정권 사상과 어긋나는 내용의 TV를 시청하거나 말을 하면 이들을 힐난하곤 했다"면서 "그는 부모에 대한 험담을 평양에 있는 조부모와 북 대사관 직원들에게 공공연하게 말했다"고 했다. 북한 정부가 작년 9~10월에 조성길에게 귀국 명령을 내린 것도 이 같은 딸의 '고발'로 인한 것일 수 있다고 이 신문은 추정했다. 이에 앞서 태영호 전 주영 북한 대사관 공사는 지난 19일 조 전 대사대리의 딸 '강제 북송설'을 제기했고, 이탈리아 외교부도 20일 "조 전 대사대리가 부인과 탈출하면서 고교생 딸(17)을 데리고 나오지 못했으며 딸은 북한에 압송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하지만 국제사회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논평 하나 내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정부는 조성길 망명 소식이 언론 보도로 처음 알려진 뒤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정원은 당시 "조성길과 (우리 정부 당국이) 연락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조성길에게 한국으로 오지 말라고 우회적 사인을 보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