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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선지자는
선지자들 가운데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인자야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인자야라는 말씀은 개역한글에 94번 나오는데
그 가운대 93번이 에스겔서요, 1번이 다니엘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인자야라는 말씀을 한 번 하였는데
에스겔에게는 93번이나 하였습니다.
다른 선지서에는 없는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란 말씀은
에스겔서의 특종이요, 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다정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한 때 에스겔 선지자에게 인분을 보리떡처럼 만들어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에스겔은 순종대신 항변하면서
"아하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고 진중하게 어필하였습니다.
참으로 에스겔 선지자는 진실무망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예수님께서 만난 간사가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나다나엘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의 강력한 자기 어필에 한발 물러서서
"보라 쇠똥으로 인분을 대신하기를 허락하노니 너는 그것으로 떡을 구울지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에스겔 선지자에게 인분을 먹으라 쇠똥을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 백성이 근심 중에 떡을 달아 먹고 두려워 떨며 물을 되어 마시다가
떡과 물이 부족하여 피차에 두려워 하여 떨며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는 말씀의 표징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두루마리책을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 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3:1-3)
두루마리를 먹은 성서의 저자는
구약의 에스겔 선지자와 신약의 사도 요한입니다.
☞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계10:8)
에스겔 선지자가 먹은 두리마 책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안팎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먹은 두루마리 책은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에스겔서와 요한 계시록은 묵시로 가득한 계시의 말씀이며
천하만민에게 전파되어야 할 구원의 말씀입니다.
책을 먹게 하는 묵시적 현상으로
배에 가득한 말씀을 입밖으로 전해야 할 사명의식을 고취하였습니다.
☞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듣든지 아니 듣든지 패역한 백성에게 말씀을 전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할 자가 아니라
말씀을 듣고 돌을 던질 자들에게 생명의 말슴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겔2:5-7)
에스겔서의 디테일한 사역의 사명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겔3:20-21)
☞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만일 의인이 그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요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겔18:23-27)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는 사역의 변은
듣고 깨우치면 생명의 은혜요, 듣고 깨우치지 않아도 영혼을 보존하는 복음 전파의 면류관입니다.
이미 종말론적인 이스라엘 백성은
예레미야의 말씀처럼 모세와 사무엘이 온다고 해도 구원할 수 없고
에스겔서의 말씀처럼 노아와 욥과 다니엘이 온다고 해도 구원할 없는 지경에 놓였습니다.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렘15: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아니하겠느냐 (겔14:20-21)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 사항중에 구원받는 길은 없으며
예레미야는 사지선단 가운데 죽이는 칼, 짖는 개,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 땅의 짐승이요
에스겔의 사지선단은 칼과 기근과 짐승과 전염병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눈의 눈물이 시내를 이루고 창자가 끊어지고 간이 땅에 쏟아지는 고통을 느끼면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의 1차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서 소명을 받고 포로된 백성들에게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많은 고난을 받았고
그 고난이 너무나 극심하여 태어난 날을 저주하였습니다.
☞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다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니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렘20:14-18)
생일을 저주한 또 한 사람은
고난과 환난의 대장정을 겪은 욥입니다.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열어 저주하니라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 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욥3:1-12)
하나님이 말씀과 복음을 전하면서 코피나 코의 단내 정도가 아니라
생일을 저주하는 자리에까지 가야 십자가 죽음의 맛을 알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을 예루살렘 멸망의 표징이 되었으며
아내의 죽음에도 눈물을 흘리지 말라던 하나님은 끝내 예루살렘을 멸망시켰습니다.
패역하여 남은 것은 심판 뿐이지만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고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하고
무엇때문에 왜 심판을 받는 지 알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사역 멘토링은 교육학과 심리학과 경영학을 접목하여
감동적인 설교와 사역을 통하여 소위 성장을 통한 사역의 보람을 꽃피게 하였습니다.
미가 선지자의 말씀대로 포도주와 독주를 빚은 말씀은
거짓 선지자의 허망하게 행하는 거짓말이라고 하였습니다.
☞ 사람이 만일 허망하게 행하며 거짓말로 이르기를
내가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네게 예언하리라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이 백성의 선지자가 되리로다.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왕상13:18)
☞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정로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사30:10 -11)
☞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6:13-14)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렘14:14)
☞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 있을진저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겔13:3-4)
☞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미3:11)
☞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16:17-18)
☞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3-5)
이렇게 사역에는 듣든지 아니 듣든지 오직 진리의 복음을 성실하게 전하는 진실한 주의 종이 있고
탐욕을 위해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다른 복음, 다른 교훈을 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