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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요케 되는 길
성경본문 잠언 10: 22
2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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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예수님을 믿는 목적은 구원받기 위해서입니다. 죄와 허물로 영원히 멸망할 우리, 그냥 두면 지옥 불에서 영원히 고통당할 우리입니다. 여름 더위만 해도 힘 드는데 그 뜨거운 불구덩이 지옥에 들어가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만 믿으면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천국 시민으로 살고 이 세상을 떠나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목적은 영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다가 감옥에 가도, 죽어도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4-15)
영생을 얻는 것은 시간이 필요 없습니다. 믿는 그 순간에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영생을 얻었고, 영생을 얻었고.”
완료형입니다. 영생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구원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다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천국에 들어가 사는 것은 기다려야 하지만 구원은 이미 완료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만 받고 맙니까?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우리가 복을 받아 귀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인격이 예수님을 닮아 귀하게 되어 우리의 삶도 보배롭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인격이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처럼 자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욕해도 나는 그를 욕하지 않고 누가 나를 비난해도 나는 그를 비난하지 않고 그를 위해 기도해주며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경영하는 어느 세탁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단골손님이 와서는 맡기지도 않은 옷을 맡겼다며 그 옷을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그 옷을 맡은 적이 없다고 하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분명히 내가 옷을 맡겼으니 책임지고 빨리 찾아내시오.”라고 했습니다.
“아닙니다. 분명히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라며 아무리 사정 이야기를 해도 손님은 옷을 맡긴 것이 분명하다며 아주 심한 욕을 했습니다. 그래도 주인은 끝까지 공손하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 그 손님이 자기 집을 정리하다 보니 그 옷이 자기 집에 있습니다. 그 손님이 세탁소에 와서 세탁소 주인에게 “미안합니다. 그 옷이 우리 집에 있었습니다. 당신들이 믿는 예수를 나도 믿겠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인격이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나쁜 사람이 귀한 사람이 되고, 나쁜 아내가 좋은 아내로 됩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물질의 부요도 누려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복을 주시므로 가난하게 하시고’가 아닙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마귀가 복을 주어도 부유하게 됩니다. 마귀가 도와주어도 도둑질을 해서 부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것 때문에 망합니다.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게 되고, 감옥에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부(富)라야 근심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다. 새도 보금자리가 있고 여우도 굴이 있는데 나는 집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너희도 집 없이 살아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부요케 되기를 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이사야 53장 5절, 6절에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로 부요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할렐루야!
창세기 12장 1절에서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람아,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3장 2절에는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으니 부요케 된 것입니다. 또 창세기 24장 35절을 보면, 아브라함의 종이 라반에게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라고 말합니다. 할렐루야!
창세기 2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니 이삭이 거부가 됩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세기 26:2-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세기 26:11-12)
여기 ‘이삭’의 이름 대신에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 이렇게 말해 보세요.
“○○○가 그 땅에서 일하여 백배나 얻어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다.”
사람을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복과 저주를 주시는 하나님은 다른 분이 아니십니다. 한 분이십니다.
이사야 45장 22절에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구원도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함도 하나님께서, 복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으면 복도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사는 목적은 미국에 가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미국에 가는 비행기를 탔으면 미국까지 가는 열 몇 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주는 것도 다 누려야 합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면 밥과 음료수도 주고, 춥다고 하면 담요도 주고, 아프다고 하면 상비약도 주는데, 그런 것들이 다 공짜입니다.
제가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처가에 갔더니 처가에서 새마을 특실 차표를 사주었습니다. 그것을 탔더니, 와! 의자를 뒤로 젖힐 수도 있고, 참 좋았습니다. 조금 있으니 여승무원이 와서 “커피 드시겠습니까? 홍차 드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옆에는 과자도 있었습니다. 커피도 마시고 싶고 과자도 먹고 싶었지만 돈을 쓰지 않으려고 먹지 않겠다고 했더니 아내도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커피나 홍차를 받아 마시고 과자도 받아먹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돈은 나중에 승무원이 받으러 오나?’ 하며 관심 있게 보았지만 끌까지 돈을 받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새마을 특실 손님에게는 차나 과자가 서비스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원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잠언 8장 18절, 21절에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가난은 복이 아닙니다. 가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하시는 방법은 되고 과정은 됩니다. 가난의 터널을 지나면 사람이 강해지니 가난이 훈련 코스는 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부유함입니다. 배고프게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고 배부르게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집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쌀도 다 떨어졌고 돈은 하나도 없는데 손자는 배가 고프다며 울었습니다. 먹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냉장고 문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했습니다. 그러다 곰팡이 핀 빵 두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먹을 수 없는, 곰팡이 핀 빵을 데워서 손자에게 주었더니 손자가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것도 없어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재정부장에게 가불을 해 달라고 부탁해 볼까요?’라고 기도하는데 “네 심방 가방을 열어 보아라. 거기에 돈 20만 원이 있을 것이다.’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때 제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이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쌀도 있었고 먹을 것도 많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또 감사하고 신기한 일은 꿈에서 들은 대로 심방 가방을 열어 보았더니 거기에 20만 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전에 넣어두었던 것이지만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 꿈 때문에 그 돈을 찾았습니다.
먹을 것도 돈도 없었던 그 일이 꿈이어서 제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만일 손자에게 곰팡이 핀 빵도 줄 수 없는 형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도 그런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구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흙탕물을 마시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가난은 힘듭니다. 가난은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요를 주십니다.
그러면 부요하게 되는 복을 누리는 길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는 할 일이 없습니다.
왜입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부요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자기 스스로 기어서 나왔거나 걸어서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엄마가 나를 낳아준 것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나를 낳아 주었어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해야 합니다. 먹을 것은 엄마가 주어도 먹는 것은 내가 해야 하고, 등록금은 부모님이 대주어도 공부는 내가 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끝까지 해주지 못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만 부요케 되는 복을 누리려면 내가 부요케 되는 길을 가야 합니다. 부의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지만 그 복을 받아먹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부요케 되는 길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가장 중요한 길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
이사야 58장 13절, 14절에 ‘주일을 즐거운 날이라, 거룩한 날이라, 존귀한 날이라 하면서 발을 금하여 아무 데나 가지 않고 주일을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잘 지키면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명예를 높여주고, 부자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야곱이 아무것도 없이 지팡이 하나만 들고 갔지만 20년간 머슴살이를 마치고 나올 때는 거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전쟁 때나 핍박을 받는 역사의 밤에는 그렇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20년간 예수님을 바르게 믿었다면 부자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J장로님은 장로님임에도 불구하고 주일 오후마다 낚시하러 갔습니다. 부인 권사님이 “여보, 주일은 하루 종일 거룩하게 지켜야 돼요. 예배만 드리고 노는 것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에요. 주일에는 낚시하러 가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장로님이 “주일은 안식하는 날이야. 그러니 안식해야지. 내게는 낚시하는 것이 안식이야.”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장로님이 아주 큰 물고기를 잡아 와서는 “여보, 오늘은 대어를 잡았으니 통째로 익혀 먹읍시다.”라고 했습니다. 권사님이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기름을 부었는데 기름이 모자랐습니다. 주일 오후지만 식용유를 사러 집 앞에 있는 가게로 뛰어갔습니다. 그 사이에 잠을 자던 아들이 부글부글 끓는 식용유 소리에 깨어서 기어 나와 방문을 밀었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떨어진 곳이 하필이면 가마솥이었습니다. 권사님이 돌아왔을 때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때 장로님이 “내가 장로가 되어서 주일 오후마다 낚시나 다니고……. 교인들의 귀감이 되어야 할 장로인 내가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며 가슴을 쳤습니다. 그 후부터 장로님이 목숨을 걸고 주일을 지켰습니다. 그 후에 낳은 자식들이 잘 되었을 뿐 아니라 장로님의 일도 잘 되어서 지금 지으려면 천억 정도 들 그런 교회를 그 장로님이 혼자 다 지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지, 그 장로님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조문객들로 교통이 마비되었습니다.
주일을 남다르게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점찍어 축복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부요케 되는 길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캘빈이 말했습니다.
“오늘의 교회 문제는 십일조에 대해서 바로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십일조를 바로 가르치지 못해서 교인들의 생활이 어렵다.”
언젠가 제가 TV를 보는데 얼굴에서 빛이 나고 잘 생긴 한 가톨릭 신부님이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를 돌아보면 개신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부유하고 잘 사는데, 가톨릭이 들어간 나라는 가난하고 어렵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개신교 신자들은 십일조를 열심히 하는데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십일조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입니다.”
그 신부님이 바로 깨달은 것입니다. 밑 빠진 독에는 아무리 물을 부어도 물이 다 빠져나가듯이, 십일조를 온전히 하지 않으면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결국 다 빠져 나가게 됩니다.
말라기 3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Return to me, and I will return to you.)”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이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께 돌아갑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는 것이다. 십일조도 하지 않으면서 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십일조를 해야 내 품에 있는 것이고 나를 믿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모든 수입의 십일조입니다. 선물을 받으면 그것을 계산해서 십일조를 해야 됩니다. 도서비를 받아도 그것의 십일조를 해야 됩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Open the heaven's gate)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말라기 3:10-12) 할렐루야!
여러분의 집이 “복 있다. 아! 저 집은 복 받았다.”라는 집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의 삼조, 십의 오조를 바치라고 하셨다 해도 우리는 그대로 드려야 됩니다. 그런데 십의 삼조, 십의 오조를 바치라 하지 않으시고 십의 일조만 바치라고 하셨으니 얼마나 가볍습니까? 만일 내가 십일조를 10만 원 드린다면 나는 90만 원밖에 쓰지 못하지만 100만 원을 드린다면 900만 원을 쓰게 됩니다. 천만 원을 드리면 구천만 원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잘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기 전에 “십일조를 키워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부자가 되려는 목적이 내가 잘 살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에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는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부자가 되어야 교회도 짓고, 선교도 하고, 이웃도 도울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확실하게 드려야 합니다. 수입 전체의 십일조를 온전하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부요케 되는 길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
따라 합시다.
“땅에서.”
‘천국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가 아닙니다.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십일조를 잘 드려도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그 집에 복을 주지 않으십니다. 십일조를 드려도 부모를 서럽게 하는 집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주일을 잘 지키고 아무리 십일조를 잘 해도 부모를 멸시하는 집에는 복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섬기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부모를 기쁘게, 즐겁게, 행복하게 해 드려야 됩니다. 그것이 부자가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길입니다. 이 말씀은 일점일획도 바뀌지 않습니다. 하늘의 별이 떨어져도, 산이 바다에 빠지고 바닷물이 육지를 뒤덮어도 부모를 공경해야 복을 받는다는 말씀은 바뀌지 않습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일해야 됩니다.
따라 합시다.
“열심히, 부지런히, 성실하게.”
부지런히 일해야 됩니다.
잠언 12장 27절에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부하고 귀한 사람이 되려면 부지런해야 됩니다. 게으른 사람은 어디에서든 환영받지 못합니다. 어느 회사에서든 게으른 직원을 보면 ‘괜히 입사시켰구나.’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잠언 10장 4절에도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잠언 21장 5절에도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시편 128편 2절에는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네 손이 수고한 대로.”
수고한 대로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학생은 부지런히 공부해야 됩니다. 부지런해도 다른 것에 부지런하면 안 됩니다. 전에도 한 번 이야기한 기억이 납니다만 제가 여기 신촌에 살 때의 일입니다. 토요일에 잠시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교회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름을 아끼려고 될 수 있으면 걸어다닙니다. 신촌에 사시는 우리 교우들은 교회에 오실 때 차를 타지 말고 걸어오십시오. 그러면 절약도 되고 몸에도 좋습니다. 전화기도 가까운 데 두지 말고 멀리 두는 것이 좋습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달려가서 전화를 받는 것도 건강에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제가 교회로 가면서 보니 제 앞에 양곡중학교의 한 학생이 너무나 열심히 공부하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따라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야! 저놈이 나를 닮았구나.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다니……. 와! 희망이 있는 학생이구나. 앞으로 빛이 나겠구나.’
저는 그 학생이 기특하기도 하고 또 무슨 공부를 저렇게 열심히 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그 옆을 지나치면서 슬쩍 보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만화책이었습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6년 동안 바짝 공부하면 앞길이 달라지는데 그 아까운 시간에 만화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부지런해도, 헛일을 하는데 부지런하면 안 됩니다. 귀한 일에 부지런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인 학생은 부지런히 공부하고, 그리스도인 공무원이나 회사원은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부지런한 공무원과 회사원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인 과학자는 열심히 연구하는 에디슨 같은 과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교사는 부지런히 준비하고 가르쳐서 학생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교사가 되어야 하고, 목회자도 부지런한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어디에서든 크게 되는 것입니다.
흑인으로서 첫 국무장관이 된 파월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의 집이 가난하여 그가 학교에 다닐 때 어느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거기에서 대조적인 두 사람을 보았답니다. 한 사람은 삽에 허리를 기대고 선 채 회사가 일만 시키고 돈은 적게 준다며 불평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 후 파월이 또 그 회사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더니 전에 불평하던 사람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일하며 불평하고 있는데 묵묵히 일하던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왜 보이지 않는지 물으니 지게차 운전을 배워서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몇 년 후 파월이 그 회사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더니 불평하던 사람은 몹쓸 병에 걸려 회사에서 쫓겨났고 지게차를 운전하던 사람은 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파월이 큰 쇼크를 받았답니다.
‘아! 무슨 일을 하든 부지런하면 사장도 될 수 있구나.’
그리고 그 때부터 파월이 열심히 살아서 마침내 미국의 장관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일해야 사는 보람이 있고, 빵 하나를 먹어도 그 가치를 아는 것입니다.
한 부자가 죽게 되었는데 돈이 귀한 줄을 모르는 아들을 보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이놈아, 지금 이 상태로는 네게 재산을 물려줄 수 없다. 네가 스스로 일해서 금돈 하나만 벌어오면 재산을 물려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들은 아들이 이웃집에 가서 금돈을 빌린 다음 놀다가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금돈을 벌어왔어요.”
아버지가 그 금돈을 내동댕이치며 “누가 모를 줄 아느냐? 이게 네가 번 거냐?”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아, 아버지가 아시는 것을 보니 돈을 빌려준 사람이 아버지에게 고자질했구나.’라고 생각하고 아버지가 모르는, 먼 곳에 가서 금돈을 빌린 다음 또 놀다가 왔습니다.
“아버지, 내가 벌어온 금돈입니다.”
“이것을 네가 벌었다고? 내가 속을 줄 아느냐?”라며 아버지가 금돈을 집어던졌습니다.
‘이상하다. 아버지가 모르는 집에서 빌려왔는데 어떻게 아셨지?’
아들은 할 수 없이 막노동판에 가서 일주일 동안 뼈를 깎는 고생을 하면서 금돈을 벌어 가지고 왔습니다.
“아버지, 이번에는 정말 내가 직접 일해서 벌어왔습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누가 속을 줄 알고? 네가 직접 벌었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라며 금돈을 집어던졌습니다. 아들이 달려 나가 금돈을 딱 집어 들고는 “아버지, 이 금돈을 왜 집어던집니까? 내가 이것을 벌려고 얼마나 뼈 빠지게 일했는지 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때서야 아버지가 웃으며 “알았다. 알았다.”라고 하며 재산을 다 아들에게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잭 히테크는 복권이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3,150억을 받았지만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쉽게 벌면 막 쓰게 되니 그렇게 알거지가 된 것입니다. 땀 흘려 일한 사람이 돈 귀한 줄을 알고 귀하게 쓰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부요케 되는 길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이보다 더 중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주일을 잘 지키고, 십일조를 잘 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되는 것을 알아도 이것을 그대로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가 충만할 때 쉽게 됩니다.
따라 합시다.
“오직 성령으로. 오직 성령으로.”
성령 충만을 받으면 교회에 나오자마자 주일을 지키게 되고, 교회에 나오자마자 십일조를 하게 되고, 교회에 나오자마자 부모님을 공경하게 되고, 교회에 나오자마자 새벽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저절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 마음에 자신감을 갖게 해주십니다. 할렐루야!
링컨에게 한 분이 물었답니다.
“당신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변호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었습니까?”
그때 링컨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내가 마음에 그렇게 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작정한 날 벌써 반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마음으로 품으면 반은 이루어진 것이다.”
‘에이, 이때까지 가난하게 살았는데 어떻게 부자가 되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나를 부자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주시는구나. 나도 부자가 되어야겠다. 하나님, 저도 부자가 되겠습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벌써 반은 부자가 된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나는 부자가 되겠다.”
여러분 중 어떤 분은 ‘목사님, 저는 벌써 부자가 되었는데요.’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는 부자가 아니라 누구나 다 아는 큰 부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는 큰 부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따라 합시다.
“큰 부자가 되자. 큰 부자가 되자.”
그러려면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면 나는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되게 하시면 나는 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윌 찰드는 26세까지 껄렁패였습니다. 하루는 교회에 가서 기웃거리고 있는데 목사님이 “한 알의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을 명하여 바다에 던지게 할 수 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어도 할 수 있다.”라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 설교를 듣는 순간 그는 힘이 솟아났습니다. 그는 바로 겨자씨를 구해서 주머니에 넣고 늘 그것을 만지며 다녔습니다. 그리고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할 수 있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는 결국 재벌이 되었는데 재벌이 되고도 늘 겨자씨를 갖고 다닌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되기 위해서는 그런 마음을 품어야 됩니다. 그런데 마음을 품는 것도 성령의 도움으로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주일을 지키게 하십니다. 십일조를 드리게 하십니다. 공경하게 하십니다. 부지런히 일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지혜를 주십니다.
장사를 잘 하기로 유명한 유대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상술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이익보다 상대방의 이익을 챙겨라.
그래야 계속 거래할 수 있다.
둘째, 절대 밖에서 상대방을 만나지 말고 네 사무실에서 만나라.
그래야 거래를 잘 하게 된다.
셋째, 절대 감정에 흔들리지 말고 냉정하게 합리적으로 계약하라.
넷째, 계약할 때는 반드시 맑은 정신으로 하라.
상대방에게만 술을 먹이고 본인은 절대로 마시지 말고 마시는 체만 하라.’
이 상술대로 장사를 해도 잘 되는데 하물며 성령의 지혜로, 하나님의 지혜로 하는 것이겠습니까?
성령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로 하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따라 합시다.
“나는 된다. 크게 된다. 부유하게 된다. 성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우리 교회는 십만 제단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오십만 제단도 이룰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이것이 중합니다.
이 마음을 우리가 마음으로 품어야 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믿음을 가지면 실상이 오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 같아도 어느 날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해서 다 부요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