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팔백 번째
타의로 신성해지는 운동선수
자본주의 사회란 능력에 따라 일하고 능력에 따라 분배받는 경쟁 사회입니다. 이론적으로 경쟁 자체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굉장히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그런데 경쟁이 치열해지면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습니다. 마치 링 위의 권투선수들 같습니다. 링 위에서 ‘이번엔 내가 맞아줄 테니 실컷 때려 봐.’ 그럴 선수는 없겠지만, 그랬다가는 큰일 납니다. 그 시합에 돈을 건 도박사들이 충혈된 눈으로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더구나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희생을 미덕으로 삼는 스포츠가 있습니다. 야구입니다. 요즘 야구 시즌이 시작되어 틈나는 대로 경기를 봅니다. 희생 플라이를 날리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선수가 다른 선수들과 코치들로부터 환영받는 장면을 심심찮게 봅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세상에서 자신을 죽이고 남을 살렸다고 해서 성인군자들도 아닌데 환영을 받습니다. 원래 희생이라는 영어 ‘Sacrifice’는 신성하다는 의미의 ‘Sacer’와 ‘실행하다’라는 뜻의 ‘Facio’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신성한 목적을 위해 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희생 플라이는 신성한 행위인 겁니다. 야구에서 희생이라는 개념을 공식적으로 도입한 것은 1900년대 초반. 사이 영, 크리스티 매튜슨, 월터 존슨과 같은 강력한 투수들이 지배해 점수가 거의 나지 않던 시기에 MLB는 득점을 늘리기 위해 1908년 희생 플라이(Fly) 규정을 채택했답니다. 희생번트(Bunt)도 있습니다. 이것도 희생 플라이와 함께 타수打數에서 제외되어 타율이나 출루율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기록으로 남깁니다. 희생 결정이 선수의 의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희생은 스스로 할 때 신성한 것이지요. 그래도 희생은 고귀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