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인, 배우, 문학 평론가. 본명은 임인식이며 쌍수대인(雙樹臺人), 성아(星兒), 청로(靑爐), 양남수 등 여러 필명을 사용했다. 임화라는 필명은 1927년부터 사용했다.
다다이즘 시인으로 시작해 마르크스주의 문학 운동을 표방한 단체인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의 서기장까지 지냈고 광복 후 월북했다가 남로당 숙청 때 결국 처형당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인물이다.
이름은 문화어로는 '림화'라 표기된다.
2. 생애
서울 동숭동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유년기 그의 가정은 파산 상태에 있었고, 거기에다가 1926년, 그가 19세 되던 해 어머니가 사망함으로써 그 충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거리를 전전하기도 했다. 그 해 연극에 대한 평론을 집필하며 연극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12월 카프에 가입했다.
그런데 그는 무엇보다도 청년 시절 밝고 말끔한 피부에 수려한 외모로 엄청난 미남이었다. 그래서 <유랑> , <혼가>, <지하촌>과 같은 영화에 주연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시 창작과 비평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927년경부터 계급문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 1929년에 시 〈우리 오빠와 화로〉, 〈네거리의 순이〉 등을 발표하여 대표적인 경향파 시인으로 자리잡으며 카프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1935년 5월에 카프가 해산한 후에는 잠시 순수 문학으로 회귀하는 듯했지만, 박헌영과 가까워지면서 남로당 노선을 걷게 된다.
2번 결혼한 이력이 있다. 첫번째는 이귀례와 결혼했다가 이혼하였고, 카프가 해산한 1935년에 마산으로 내려가 요양하던 중에 만난 소설가 지하련과 이듬해 재혼하였다.
그러나 해방 후 1947년 11월 박헌영과 지하련을 따라 월북한 그는 1953년 박헌영을 필두로 한 남로당 계열이 숙청될 때 북한 정권 전복 음모와 간첩 행위 등의 혐의로 기소당했고, 미제의 스파이, 일제에 아첨하거나 결탁한 행위, 반소, 반공 행위 등의 죄목과 함께 평양에서 총살당했다.
일본의 사회파 추리 소설가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 <북의 시인>에서도 임화를 스파이로 보았으나, 이에 반박하는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도 출간되었다. 시체는 묻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방치되었다고 알려졌다. 당시 만주에 피난을 가 있었던 지하련도 다급히 평양으로 내려와서 울고불며 그의 시신을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 뒤로는 남에서나 북에서나 임화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그도 죽음 앞에서는 나약한 한 명의 인간인지라, 막판에 김일성을 찬양하는 시를 몇 편 씀으로써 자신을 죄어 오는 죽음의 마수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지만 결국 사형되었다.
1950년에 6.25 전쟁이 발발하고 다시 서울을 찾은 그는 딸 혜란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고, 후퇴하는 북한군을 따라 자강도까지 쫓겨 가 <너 어느 곳에 있느냐>(1951)라는 시로 자신의 비애를 달래었다. 그 서정성이 빼어나다 평가되는 시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그의 다른 시 <바람이여 전하라>, <흰 눈을 붉게 물들인 나의 피 위에> 들과 더불어 북한군 참전 전사들을 모욕하고 염전사상을 고취시켰다는 이유로 숙청의 도화선이 되었다.
문학사적인 면에서 개화기를 기준으로 한국 문학의 명맥은 완전히 끊겨 껍데기만 남고, 서양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문학이 이식되었다고 하는 이른바 <이식문학론>을 1939~1941년 사이에 제기하였다. 그런데 임화가 월북 문인, 즉 북한 측 인사인 것도 있지만 이 이론은 현대 한국 문학을 근본부터 부정하기 때문에 학계에선 거의 금기시되는 문학론이다. 그래서 임화에게 반박하고자 하는 여러 논문과 저술이 많이 나와 있다. 이식문학론에 대한 비판 주로 탈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언급하는 문학론에서 인용되는 편.
읽어보자
현대사아리랑(상)
현대사아리랑(하)
참고로 대표적인 이식문학론 킬러가 바로 한국의 전통 문학과 현대 문학이 이어져 있다는 이론에 있어 정말 중요한 위치에 있던 천재 시인 정지용이다.
연극 평론이나 배우 경력에도 유추할 수 있듯이 영화 비평가로도 활동해서 영화 이론가로도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 한국 영화사를 배운다면 언급되는 인물로, 유운성이 이식문화론과 연계해 봉준호의 기생충(영화) 평론인 이식과 기생: 봉준호의 <기생충>을 계기로 다시 읽는 임화의 영화론라는 평을 쓰기도 했다. 문학과 달리 영화는 '이식문화론'라고 할 수 있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한국 영화의 정체성 문제를 언급하면 한번쯤 짚고 넘어가게 되는 인물이다. 월북경력으로 해방이후 대한민국 문학계에선 금기시되는 인물이었으나, 2001년 김훈이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할때 수상소감에서 임화를 전면적으로 언급하면서 한국 문학계에서 일시적으로 임화의 이름이 재조명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