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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호세아서 3:1~5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3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제가 매일 운동하는 헬스장에 눈에 잘 띄는 곳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운동하는 분들의 에티켓 딱 알려 드립니다.”였습니다. 여기서 ‘딱’이란 단어를 빨간색으로 강조하여 크게 써놓았습니다. 이는 정확하고 분명하면서 간결하게 알려주겠다는 의도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여러분께 신앙의 핵심이 무엇일까를 생각하여 간결하고 분명하게 ‘딱’ 알려 드릴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를 찾다가 하나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귀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이 신앙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포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뜨거운 사랑에 대하여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전하고 싶었던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내용입니다.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며 은혜는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그럼에도 사랑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호 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먹거리가 무척 부족한 때였습니다. 그때 간혹 학교에 알록달록한 사탕과 떡을 싸서 들고 와서 자랑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친하게 지낸 아이에게 나눠주면서 으스대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영락없이 전날에 제사를 드리고 가져온 것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긴다는 것입니다. 보통 제사가 끝난 다음에 제물을 나눠 먹는데 그때 가장 맛있는 것이 건포도 과자였던 모양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면서는 건포도 과자를 맛볼 수 없었는데 우상을 섬기면서 맛보게 되었다고 회상하면서 옛적의 죄악에 빠진 우상 숭배를 그리워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호세아의 아내였던 고멜이 남편과 세 명의 아이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따라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다른 우상에게 정신을 팔려 세상에 속한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이스라엘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패역한 백성일지라도 사랑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하여 행한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모욕과 망령과 음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랑의 본성이 사랑할 만하여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되어 헝클어지고 도무지 사랑스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을지라도 사랑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랑하는 하나님에 대한 예화는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 중에 내 몫에 해당하는 유산을 미리 달라는 둘째 아들의 요구는 당시의 상황에서 불효 중의 불효를 저지르는 행위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아버지가 살아 있음에도 죽은 자처럼 취급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평생 땀 흘려 수고하여 모은 재산을 타국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을 위하여 새 옷을 준비하고 손에 끼워줄 가락지를 준비하며 늘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그를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고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에 속하여 죄를 지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새 옷을 입히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나라의 기업을 받을 자로 여김을 받는 반지를 끼워주시고 자유인의 상징인 신발을 신기어 주시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사람도 자기의 피가 흐르는 아들을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되었고, 아들의 영이신 성령이 내 안에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흐르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을 어찌 하나님께서 포기하시겠습니까? 절대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어떤 환경에 처하여 있든지 내 안에 담긴 예수의 피는 하나님과 나를 끊을 수 없는 튼튼한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에는 소강상태인 것이 존재합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을 한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남자를 찾아서 가정을 등지고 떠났습니다. 그런 선택을 하면서 고멜은 나름의 꿈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를 지극히 사랑해 주고 보듬어 줄 수 있을 사람을 구하여 행복한 삶을 이루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럴듯한 말로 속삭이면 찾아왔던 남자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마음도 몸도 지치고 곤하였을 때 그녀는 결국 노예로 팔려 나가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노예의 등급 중에 하질(下秩)에 속하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당시 노예 몸값이 은 삼십 세겔이었으나 고멜의 몸값은 은 열다섯 개인 절반으로 미뤄보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고멜을 향하여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보듬어 데려오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호 3: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다’의 ‘카라’는 ‘거래에 의해서 얻다’라는 뜻입니다. 고멜은 호세아의 아내입니다. 그런 그를 대가를 지불하고 사올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호세아는 고멜을 데려오기 위하여 노예의 처지에 놓인 것을 풀기 위하여 굳이 돈을 내고 사온 것입니다.
여기에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노예가 되는 이유는 대체로 3가지입니다. 첫째, 전쟁에 져서 포로가 된 경우입니다. 둘째, 부모가 노예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노예로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셋째, 본인이 방탕해서 빚을 지고 이 빚을 갚을 수가 없어서 노예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멜의 경우는 세 번째입니다. 방탕해서 빚을 지게 되고 빚을 갚을 수 없으니까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고멜이 본래 자기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내 아내니까 데려가겠다고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멜이 빚을 졌기 때문에 당신이 남편이라도 돈을 내고 가져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은 열다섯 개에,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고멜을 삽니다. 호세아는 본래 고멜이 자기 아내이지만 돈을 주고 다시 샀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Redemption)인 것입니다.
구속이라고 하는 말은 사람을 감옥에 구속시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속전의 ‘속’과 구원의 ‘구’가 합쳐져서 구속이 된 것입니다. 영어로 Redemption은 ‘re’는 ‘다시’라는 말이고 ‘demption’은 ‘사들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원래 자기 것이었는데도 다시 사들이는 것이 구속인 것입니다. 헬라어로는 ‘엑사고라조’라고 합니다. redemption의 접두사 re는 원래의 상태가 암시된 말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안 좋은 상태를 본래의 더 나은 상태로 고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헬라어로는 ‘엑사고라조’라고 하는데 ‘아고라’는 시장이고, ‘아고라조’는 시장에서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엑사고라조’는 시장에서 산 다음에 시장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흠없고 가치 없는 고멜에 대한 사랑의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전에 순수한 처녀로 맞이하겠다는 것이요. 다시는 떠나게 할 수 없다는 결단이 담겨 있습니다. 이토록 사랑이 넘치는 마음으로 고멜을 데리고 와서 호세아가 고멜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호 3:3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고 말입니다. 다른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가져서는 않된다는 말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네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나도 다른 여자에게 그리 할 것이라는 것과 내가 너와 함께 지내지만 성적인 관계는 맺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사랑의 소강상태를 가지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겪는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사랑이 끊긴 듯한 때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내가 힘들고 곤고한 날에 아무런 말씀도 없고 내게 가까이하지 않는 듯한 소강상태가 있다는 것입니다.
호 3: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라고 하였습니다. 고멜의 절제 기간은 이스라엘의 포로 기간을 상징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해야 하는 암울한 시기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더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도 지도자도 없으면 더욱이 하나님께 제사는 물론 우상에 빠질 여건도 갖추지 못하는 종교적 행사 역시 없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부터 신약 성경의 첫 책인 마태복음이 기록되기까지의 기간은 약 400년에 달합니다. 이 시기를 신학계에서는 선지자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계시)이 그쳤다고 하여 '침묵기(Silent Period)'라고 부르며, 구약과 신약 사이에 끼어 있는 시대라는 뜻으로 '신구약 중간기(Intertestamental Period)'라고도 부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신 것처럼 보이는 이 400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 가장 완벽하게 메시아(구원자)의 오실 길을 준비하신 섭리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의 소강기는 참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하는 기간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고도 갈릴리 바다로 돌아간 제자들이 밤새 수고하였지만 빈 배로 돌아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그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153마리)를 잡게 된 내용과 낙심하고 지친 제자들에게 해변에 숯불을 피워 놓으시고 생선과 떡을 구우며 밤새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제자들을 위해 조반을 차려 기다리시는 모습을 한폭의 그림처럼 그려주고 있습니다.
사랑의 소강기를 거쳐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성도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은 것 같은 소강 상태에서도 내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기다릴 때 나를 찾아서 변함없는 사랑으로 일깨워 주시는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죄에 빠진 인생을 완벽한 회복의 축복으로 전환시켜 주십니다.
호 3: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절망의 암흑기를 지나고 하나님께서 저들을 완벽하게 회복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시련의 기간을 통하여 회개함으로써 이제 거짓된 신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만을 찾을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고, 철저하게 순종하였던 ‘다윗’의 형통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은총’으로 번역된 ‘토브’은 ‘선하심’(goodness)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땅의 소산인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이 아름답고 풍성하게 넘치도록 채우실 것이고, 이것은 곧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은혜의 표현입니다.
사랑은 49%의 사랑과 51%의 기다림이란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기다림은 더 많고 길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움 받기 위하여 자신은 몰랐지만 40년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얻기 위하여 25년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나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뤄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죄인이었음에도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였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나와 함께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하거나 배반하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6:39에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합니다. 마지막 날까지 주님은 주님께 주신 자 가운데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살리는 것이 소망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 살리는 것입니다. 나의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마음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살게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