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의 자아가 상을 벗는 방법에 관하여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는 자아는 세 가지 형태로 인간에게 존재한다. 이것은 인간의 의식이 세 가지이기 때문에 그런데, 즉 세 가지 의식에 따라서 자아가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세 형태 모두 동일한 자아이다-. 세 가지 인간의 의식은 깨어있는 의식, 꿈꾸는 의식, 잠자는 의식이다. 깨어있는 의식 상태에서의 자아는 상속에 들어가 있다. 꿈꾸는 의식 상태에서 자아는 우리가 꿈을 꾸는 상태와 같지만, 꿈과 다른 것은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감성이다. 잠자는 의식 상태에서는 무의식으로 인간이 깨어있는 의식상태에서는 절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비약하면 문제는 이곳의 자아가 본래의 자아라는 것이다. 즉 깨어있는 의식상태에서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무의식에 내재한 본래의 자아를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깨어있는 의식 상태에서 자아는 상속에 내재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우리가 만나는 자아는 상속에 들어간 자아이다. 이런 상속에 들어간 자아 상태에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상속의 자아를 현실에서 그대로 믿을 경우 본질을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담으로 가스라이팅에 대한 생각이다. 사람들이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이유가 자아가 상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내가 나의 자아(정신)를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한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경우를 가만히 살펴보면, 내가 상처를 많이 받을수록 그 사람이 나의 자아(마음)에 많이 들어와 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나의 자아(마음)에 들어와 있지 않다면, 예컨대 모르는 사람이 죽었다면 나는 전혀 슬프지 않는 것이다. 이때 그 사람이 나의 마음에 들어오도록 한 존재가 바로 나이다. 나의 마음에 들어오도록 허락한 존재가 바로 나인 것이다. 물론 나의 자아가 상속에 있기 때문에 내가 허락한 사실을 내가 모른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이것이 정신의 속성이다. 정신은 어떤 경우에도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나의 정신에 들어오지 못한다. 여기에서 정신은 자아와 같은 의미이다.
그리하여서 가스라이팅, 나아가 사기도 내가 허락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사기도 그런 것(?)을 내가 원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다른 잣대를 대야 한다. 더불어 사회적으로 정신을 인정하지 않으니, 자신의 정신이 침해당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스라이팅이 횡행할 것이다. 따라서 결론은 상속에서 자아가 분명하지 않으므로, 그 상태에서 내가 받아들이고 문제는 그런 나를 나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스라이팅, 사기도 모두 나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여기에서 개인은 스스로 자신의 정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자신의 삶을 살아 가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받아들이면 그로부터 가스라이팅은 시작된다. 그리고 점점 더 그 사람에게 끌려다니게 되는 것이다. 이 상태를 말하면 자아가 정신을 못차린다고 보아야 한다. 이때 본래의 자아가 정신을 차리면 빠져나올 수가 있다. 본래의 자아가 정신을 차릴려면 본래의 자아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자신의 (본래) 자아를 믿는 일이고 자긍심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믿어야 하는데 이 마음이 선한 마음, 길가에 난 풀 한포기도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본래의 자아에게 전달되면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난다. 이 믿음이 정신세계의 환경이고 속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마음은 물질세계의 사랑과는 조금 다르다. 물질세계에서는 이런 사랑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 가스라이팅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물질세계에서 이런 사랑을 가지면 도움은 된다. 이런 관점에서 선한 마음, 길가에 난 풀 한포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를 지켜준다고 말할 수가 있다. 이것이 꿈꾸는 의식 상태의 자아를 통해서 본래의 자아에게 연결하는 방법이다. 꿈꾸는 의식 상태의 자아인 감성이 본래의 자아에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질세계에서 이런 사랑은 아이가 태어나서 3세까지 주위를 온전히 모방하기 때문에 부모님으로 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으면 가능하다. 또한 이 시기에 부모님으로 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도록 인간이 형성되어 있기도 한 것이다. 아이가 크면 이런 사랑을 줘도 아이가 받아들이지 않고, 또 그런 사랑을 주기도 어렵기 때문에 3세 까지 받는 부모의 사랑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인간 무의식의 바탕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빨리 벗어나는 방법이다. 상처를 받아들인 그 상태로 마음을 돌려서, 내가 그 사람을 받아들인 순간으로 가야 한다. 가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을 잘 관찰하면 갈 수가 있다. 이 때 그 사람을 받아들인 마음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상처에서 벗어나 없었던 일로 되는 것이다. 이 일이 가능한 이유는 현실의 일이 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상속에서 일어난 일은 지나고 나면 마치 꿈같아서, 버려 버리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버리는 일이 꿈에서 깨는 일이다. 이러한 정신 작용을 본래의 자아가 하므로 본래의 자아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속에서 살므로 내가 언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지 알지 못해서 상처를 받거나 가스라이팅, 사기를 당한다. 그러지 않을려면, 첫째, 선한 정신의 속성을 받아들여서 믿어야 한다. 그러면 본래의 자아가 어려움에서 반드시 구해준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의 궁극적인 의미이다. 자신의 본래의 자아가 우주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주님이고, 이는 우주의 에너지를 내가 쓴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상속에서 살지만, 자신의 본래의 자아에 연결하는 마음을 언제나 내야 한다. 그렇게 연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위의 방법이다. 또 자신의 마음에 집중해서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내 마음을 관찰해서 어디에 마음을 뺐겼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상속의 자아를 통해서 본래의 자아를 파악하는 일이다. 상속의 자아에서 꿈꾸는 의식의 자아인 감성을 통해서 본래의 자아에 연결해서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본래의 자아가 나의 자아이므로 본래의 자아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또 상속이지만 만약 본래의 자아가 받아들이면 현실에서 이루어지므로 늘 조심해야 한다.
다음은 상속의 자아가 상을 벗는 방법으로, 슈타이너가 주장한 방법이다. 밤에 자기 전에 '내 안에 신이 있다'고 명상하고, 아침에는 '신 안에 내가 있다'고 명상하는 것이다. 밤에는 본래의 자아(우주)에 내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이 내 안에 있고, 아침에 자아는 나의 육체 바깥에 있으므로 신 안에 내가 있는 것이다. 잘 때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면 우주에 연결된 자신을 관찰할 수가 있다. 낮에 어떤 질문을 하면 자신을 둘러싼 주위에서 답을 주는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이는 자신을 둘러 싼 주위의 신이 답을 주는 것이다. 결국 본래의 자아를 우리가 만나는 방법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의 삶에서, 상속에서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눈을 뜨는 순간 상속 자아를 만나므로 어쩔 수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므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항상 의문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상속의 자아와 본래의 자아는 당연히 다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의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왜 그럴까'라고 생각하면 본래의 자아가 전면에 나선다. 본래의 자아가 전면에 나서면 어떤 일도 잘하는 불가능이 없게 된다.
여담으로 임영웅 가수의 노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임영웅 가수의 가슴(챠크라)이 움직이기 떼문이다. 인간 몸의 챠크라 중에서 가슴의 챠크라가 가장 중요한데, 가슴의 챠크라의 나머지 챠크라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가슴의 챠크라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서 그 사물의 정신(정서)을 파악하게 해준다. 파악해야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정신기관도 발달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은 한다. 결론은 임영웅 가수의 정신기관이 발달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곧 정신이기 때문에 정신기관이 발달하지 않으면 어렵다. 그러므로 정신기관이 발달하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하는 노력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물질세계에서 살아가지만 물질의 근원이 정신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반드시 정신을 알아야 한다. 정신을 알려면 자신의 정신기관이 발달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