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대구문학 177.22년 6월호
<씨앗은 멀리 가고 싶다>-정영웅
어린이들이 가는 곳마다 그들이 입은 노란 조끼가 돋보입니다. 열 명 씩 반별로 둥글게 앉으면 한 송이 크고 노란 꽃이 핀 것 같습니다. 이런 꽃이 그들이 모인, 위령탑 광장과 쉼터 여기저기 피었습니다. 학산 기슭 언덕에도 한 송이 피었습니다. 다람쥐반 어린이들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도토리를 한 개씩 나누어 줍니다.
“여러분들은 다람쥐죠. 도토리는 다람쥐네 겨울 양식이랍니다. 땅을 파고 묻어둡시다.”
곷잎이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무던이는 언덕 가장자리, 잔가지가 다보록한 사리나무 옆에 묻고 둘레를 살핍니다. 보는 이가 없습니다. 꼬챙이로 구덩이를 파고 얼른 도토리를 묻습니다. 됐습니다. 무던이 다람쥐의 겨울나기 준비가 끝납니다.
<선생님 설명>
억새 씨앗- 솜털 날개를 달고 있다
민들레 씨앗- 깃털 낙하산을 펴고 있다
단풍나무 씨앗- 프로펠러를 겨드랑이에 끼고 있다
도깨비바늘 싸앗- 붙잡기만 하면 놓치지 않는 갈고리를 갖고 있다
과일 씨앗- 익으면 고운 빛깔과 달콤한 냄새와 맛을 지닌 열매(과일)속에 숨어 있다.
선생님은 억새 씨앗과 단풍나무 싸앗을 한 사람에게 한 개씩 나누어줍니다.
“바람네 날려 봐요. 잡으려 하거나 따라가면 큰일나요. 어디로 가나 보기만 해요.”
하늘 빛이 눈이 부셔 어린이들은 눈을 감습니다. 사라진 억새 씨앗이 눈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끝없이 날아가고 있습니다. 단풍나무 씨앗은 뱅글뱅글 맴을 돌면서 멀어져갑니다. 어린이들이 다니는 유치원과 거기 붙은 학교와 아파트가 프로펠러 너머로 펼쳐집니다. 이윽고 씨앗은 능선 너머로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프로펠러는 어린이들 눈에 남아 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눈앞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습니다.
꽃잎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하나둘 다시 모여듭니다. 슴겨둔 도토리를 찾은 아이들이죠.
“도토리와 간식을 바꿀 거예요.”
같이 간 선생님이 따라다니며 젖은 화장지를 한 장씩 나누어줍니다. 손을 깨끗이 닦을 화장지입니다. 오늘 간식은 운동회 날, ‘방울 깨기’ 할 때 던지는 팥 주머니만 한 도넛입니다. 봉지 속에 두 개씩 들어 있습니다. 도토리랑 간식을 바꿉니다.
“도토리를 안 낸 사람이 있나 보네. 누군지 일어서봐요.”
무던이가 일어섭니다.
“못 찾았나 보구나 어디 뒀는지 잊었구먼.”
무던이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선생님이 무던이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라. 넌 큰일을 한 거야. 무던이가 도토리를 잃은 게 아니라 싹이 트라고 두고 온 셈이지요. 떡갈나무를 심고 온 거랍니다. 이 간식은 떡갈나무를 심은 무던이에게 주는 상이랍니다.”
떡갈나무는 다람쥐에게 도토리라는 양식을 주지요. 다람쥐는 그런 떡갈나무가 고맙지요. 도토리를 여기저기 땅속에 많이많이 묻고, 겨울 동안 배불리 먹고도 남겨서 떡갈나무 새싹이 많이많이 나게 한답니다. 서로 돕는 고마운 친구들이지요.“
어린이들은 눈을 크게 뜹니다 주먹만한 다람쥐가 그리 큰일을 하고, 거기다가 덩치 큰 떨갈나무와 서로 돕는 친구가 된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무던이가 상으로 받은 도넛을 슬기에게 내밉니다. 슬기는 간식을 받기 전에 밝힐 것이 있습니다.
“도토리는 무던이 것이 아니라 슬기 거다. 땅속에 묻은 것도 내다. 슬기다!”
무던이가 맞장구칩니다.
“맞다, 슬기 도토리가 맞다. 떡갈나무를 심은 것도 네가 맞다. 선생님이 모르고 한 말이야. 그래서 주는 상인데 너, 안 받을 거야?”
슬기가 얼른 도넛을 받습니다. 무던이는 내년 봄, 슬기가 심은 떡갈나무 새싹을 보러 오자고 약속합니다. 떡갈나무 새싹이 돋으면 슬기 이름을 넣어서 ‘슬기로운 떡갈나무’라는 이름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느낌: 동생 대하듯 보살피고 너그럽게 대하는 무던이가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