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75차 文化遺産踏査; 조선왕실 아기씨의 탄생-국립고궁박물관 (5-5)
(10) 진주선[眞珠扇[(왼쪽부터 시계반대방향) – 진주선 수본[眞珠扇 繡本] - 보잠발기[寶簪件記]
=진주선[眞珠扇] (*繡: 수 놓을 수)
王室婚禮 때 사용한 부채로, 둥근 나무판에 비단을 붙이고 龍文樣을 繡놓았다.
金屬으로 테두리와 손잡이, 장식판을 만들었으며, 장식판에 眞珠, 珠玉 등을 장식했으나
보석 등은 유실되었다.
=진주선 수본[眞珠扇 繡本] (*扇: 부채 선)
眞珠扇에 繡를 놓기 위한 本으로 기름먹인 종이에 매화 가지와 대나무 잎을 먹으로
그렸다. ‘경술신조 진주선’이라는 墨書가 있어 庚戌年에 있었던 혼례용 부채를 위해
자작된 繡本임을 알 수 있다.
=보잠발기[寶簪件記] -1866년 (*簪: 비녀 잠)
高宗과 明成皇后의 혼례 때 만든 비녀 目錄으로, 표지에 ‘보잠발기’라고 적었으며,
머리모양에 따라 사용되는 비녀를 구분해서 적었다. 국가의 가장 큰 儀禮를 행할 때 입는
大禮服에 맞는 큰 머리[大首]에 사용된 비녀로 ‘도금대봉잠’, 도금대뇽잠’ 등을
기록하였다. (*잠은 ‘아래 아’로 기록)
(11) 시복[矢箙] (*矢: 화살 시 *箙: 전동 복)
*矢箙: 화살을 넣는 통. 가죽이나 대나무 따위로 만들며 뚜껑이 있다.
(12) 국조속오례의 서례[國朝續五禮儀 序禮]
成宗 때 편찬한 <國朝五禮儀>가 오랜 기간 경과하는 동안 禮의 尺度가 달라지고 시대에
맞지 않게 되자 英祖 20년(1744) 당시 禮曹判書 李宗城 등에게 명하여 신하들이 새로운
禮論과 儀式方法 등을 개정하고 추가하여 편찬하였다.
책의 구성은 제1권에 近庵 尹汲이 쓴 御製序와 序例 ∙考異 및 吉禮를 기록하고, 제2권과
3권에는 嘉禮, 4권에는 賓禮와 軍禮, 5권에는 凶禮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맨 끝에는 이 책을 편찬하는 데 참여한 인물들의 명단을 기술하였다. (*汲: 길을 급 *賓: 손 빈)
(13) 가마의 종류
王과 王室의 가마는 朱漆을 하고 王의 권위와 훌륭한 정치를 상징하는 다양한 무늬로
장식하였다. 가마는 移動 거리, 타는 사람의 身分 혹은 싣는 器物에 따라 형태와 이름,
가마를 메는 人員數 등이 달라졌다. (*漆: 옻 칠)
(14) 연[輦] (*輦: 가마 연)
조선시대에 大妃, 王, 王妃, 王世子, 王世子嬪이 行次할 때 타던 정식 가마이다.
지붕, 몸체, 가마채로 구성되었으며, 각각 분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朱漆한 몸체에는
金泥로 龍, 白澤, 麒麟 등의 文樣을 그려 장식했으며, 四面에 珠簾을 드리우고 검은 휘장을
달아 열고 닫을 수 있게 하였다. (*泥: 진흙 니 *簾: 발 렴)
(15) 가교[駕轎] (*駕: 멍에 가 *轎: 가마 교)
조선시대에 王, 王世子 혹은 王室의 어른이 長距離 行次 때 타던 가마이다.
가마채를 말 안장에 연결하여 두 마리의 말이 앞뒤에서 끌고 가는 형태로 正祖가
華城行次 時에 사용했던 駕轎가 이와 유사한 형태였다. 주칠을 한 몸체는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 다양한 吉祥文을 새기고, 窓은 겹창으로 지붕에서부터 검은 비단휘장을 내려 창문을
가렸다. (*祥: 상서 상)
(16) 儀仗旗의 構造
(17) 황룡기[黃龍旗]
조선시대 國王의 儀仗에 사용된 五方旗 중 하나로, 黃色의 龍을 그려
중앙을 상징하였다.
조선 前期에는 중앙에서 가장 앞에, 後期에는 둑[纛]과 交龍旗 다음에
배치하였다. (*纛: 기 둑)
*둑(纛): 雅樂에서 쓰인 儀物.
(18) 정축기[丁丑旗]
王이 行次할 때 사용된 儀仗旗로 符籍紋을 그린 六丁旗 중 하나이다.
<國朝五禮儀序例>에 따르면 흑색 바탕에 神의 형상을 그리고 아래쪽에
소의 머리를 그렸다. (*籍: 문서 적 *紋: 무늬 문)
*六丁旗: 조선시대 儀仗旗로 大駕, 御葬 등에 사용한 丁亥旗, 丁巳旗,
丁丑旗, 丁未旗, 丁卯旗, 丁酉旗 등 四角旗이다.
(19) 청룡기[靑龍旗]
조선시대 國王이 사용한 五方旗의 하나로 靑色의 龍을 그려 동쪽을
상징하였다. 行列에서 紅門大旗 뒤 왼쪽 두 번째 列에 배치되었다.
*五方: 東方(靑龍), 西方(白虎), 南方(朱雀), 北方(玄武), 中央(黃熊)
(20) 삼각기[三角旗]
王이 행차할 때 사용한 儀仗旗로 흰색 바탕에 祥瑞로운 동물로 여기는 三角獸를 그렸다.
삼각수는 머리에 세 개의 뿔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행렬에서 白澤旗 뒤에 배치하였다.
*白澤旗: 고려와 조선 시대에 사용되던 儀仗旗의 하나.
白澤은 상상 속의 동물로, 聖君의 治世에 나타나며, 만물의 實情에 정통하고 사람의
말을 한다는 신기한 동물이다. 백색 바탕에 白澤과 雲氣와 靑・赤・黃・白 등 4색의
火焰脚을 그렸다. (*焰: 불꽃 염 *脚: 다리 각)
(21) 기린기[麒麟旗]
王世子, 王世弟, 王世孫의 儀仗에 사용된 깃발로 想像의 동물인 푸른 麒麟을 그렸다.
기린은 龍의 머리에 뿔이 있고 몸은 비늘로 덮였으며 발굽이 있는 짐승으로 표현된다.
聖君이 태어날 때 그 前兆로 나타난다고 여겼다.
(22) 화성행행도 병풍 (華城行幸圖 屛風) -보물 제1430호-
<화성행행도 병풍>은 正祖가 父親 思悼世子의 回甲을 맞아, 正祖 19년(1795)
閏 2월 9일부터 8일간에 걸쳐 母親 惠慶宮 洪氏를 모시고 思悼世子의 墓所가 있는 華城의
顯隆園을 行幸했을 때 거행한 주요 행사를 그린 8첩 병풍이다.
(*顯: 나타날 현 *隆: 높을 륭)
(23) (1폭) 화성성묘전배도(華城聖廟展拜圖) (오른쪽)
- (2폭) 낙남헌방방도(洛南軒放榜圖) (*榜: 방 붙일 방)
(24) (3폭)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 (4폭) 낙남헌양로도(洛南軒養老圖)
(25) (5폭)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 - (6폭) 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射圖)
(26) (7폭)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 - (8폭) 한강주교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
(27) 王의 葬禮式 國葬
(28) 철종예릉 산릉도감의궤[哲宗睿陵 山陵都監儀軌](왼쪽) – 명릉도[明陵圖]
=철종예릉 산릉도감의궤[哲宗睿陵 山陵都監儀軌] -보물 제1901-3호 -1864년
哲宗의 무덤인 睿陵 터를 물색하고 造成하는 과정을 기록한 儀軌이다.
睿陵 조성 당시에 설치했던 構造物 및 丁字閣, 碑閣, 齋室 등 王陵 건축물의 圖說을
상세하게 그렸다. 睿陵은 오늘날의 高陽市 德陽區 元堂洞 高陽 西三陵(사적 200호)에
있으며 1878년 哲仁王后(1837~1878)가 昇遐한 후 雙墳으로 조성되었다.
(*睿: 슬기 예 *遐: 멀 하)
=명릉도[明陵圖] -1757년 이후
肅宗(재위 1674~1720)과 仁顯王后 閔氏(1667~1701), 仁元王后 金氏(1687~ 1757)의
陵인 明陵을 그린 山陵圖이다.
마지막으로 승하한 仁元王后의 陵이 그려져 있어 1757년 이후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29) 철종국장도감의궤[哲宗國葬都監儀軌](왼쪽) – 철종빈전혼전도감의궤[哲宗殯殿魂殿都監儀軌]
=철종국장도감의궤[哲宗國葬都監儀軌] -보물 제1901-3호 -1863녀
高宗 즉위년(1863) 12월 8일 昌德宮 大造殿에서 昇遐한 哲宗(재위 1849~1863)의
國葬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國葬都監儀軌이다.
國葬의 진행 과정과 각 관청 간의 連繫와 재정의 출납, 인력의 동원과 사용한 祭器 및
儀仗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기록하였다. 의궤는 총 4책으로 구성되었으며,
채색 圖說과 班次圖를 실었다. (*遐: 멀 하 *繫: 멀 계)
=철종빈전혼전도감의궤[哲宗殯殿魂殿都監儀軌] -보물 제1901-3호 -1863년
昌德宮 大造殿에서 승하한 哲宗의 國葬을 거행하기 위하여 설치한 殯殿魂殿都監에서
준비하고 거행한 사실들을 기록한 의궤이다.
빈전혼전도감은 初終부터 初喪의 제반 절차와 祭祀를 주관하는 한편, 관을 모시기 위한
殯殿을 마련하고 發靷 이후 神主를 모시고 祭禮를 올리는 魂殿을 준비하는 일 등을
주관하였다. (*殯: 빈소 빈 *靷: 가슴걸이 인)
*初終: 사람이 병이 위독하여 숨을 거두기 직전부터 죽은 뒤 訃告를 내기까지의 절차.
(*訃: 부고 부)
*初喪: 사람이 죽어서 장사 지낼 때까지의 일.
(30) 종묘[宗廟]
(31) 종묘개수도감의궤[宗廟改修都監儀軌](왼쪽) – 종묘의궤[宗廟儀軌]
=종묘개수도감의궤[宗廟改修都監儀軌] -1726년
英祖 2년(1726) 宗廟 正殿을 改修하여 4칸을 增築한 과정을 기록한 儀軌이다.
改修都監을 설치하여 전체공사를 총괄하고 의궤를 편찬하였다. 改修의 논의과정에서부터
구체적인 진행과정까지 방대한 정보를 담았다.
=종묘의궤[宗廟儀軌] -1706년 -複製
宗廟(사적 125호)와 祭禮에 관한 내용을 종합한 책이다.
<國朝五禮儀>, <國朝續五禮儀> 등 儀禮書와 <朝鮮王朝實錄>, <承政院日記>, 謄錄 등
기록물에서 宗廟와 관련된 부분을 採錄해 편찬하였다.
① 正殿 -국보 제227호-
宗廟의 중심건물로 朝鮮을 建國한 太祖를 비롯하여 歷代 王 중에서 功德이 크다고
평가된 19명의 王과 그의 王妃의 神位 총 49위를 모신 곳.
② 永寧殿 -보물 제821호
조선 太祖의 先代 4祖와 宗廟 正殿(太廟)에 奉安되지 않은 조선 역대 王과 그 妃의
神位를 모신 곳.
*永寧殿: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 하라는 뜻.
③ 典祀廳; 宗廟祭禮에 올릴 제사음식을 장만하고 祭物, 祭器 등 제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을 보관하던 곳.
④ 香大廳; 祭祀 전날 王이 친히 내린 香, 神明에게 告하는 祝文, 神에게 올리는 祭物인
幣帛 등을 보관하며 祭享에 나갈 獻官들이 대기하던 곳.
(*幣: 화폐 폐 *帛: 비단 백)
⑤ 齋宮: 王과 世子가 沐浴齋戒하고 衣服을 整齊하며 祭祀를 준비하던 곳.
(32) 종묘친제규제도설 병풍[宗廟親祭規制圖說 屛] -1866~1868년
상단에 종묘의 주요 건물과 이곳에서 거행되는 주요 行事, 祭禮를 위한 상차림 등을 그리고,
하단에 절차, 규정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8폭 병풍이다.
제1폭 종묘전도(宗廟全圖); 正殿 및 부속건물
제2폭 영녕전 전도(永寧殿 全圖); 永寧殿 및 부속건물
제3폭 오향친제친행성기성생의도(五享親祭親行省器省牲儀圖): 國王이 친히 행하는
五享에 앞서 몸소 祭器와 犧牲을 검사하는 儀式
*五享: 春享, 夏享, 秋享, 冬享, 臘享의 다섯 가지 제사. (*臘: 섣달 납)
*臘享: 臘日에 한 해 동안 이룬 농사와 그 밖의 일들을 여러 神에게 告하는 제사.
臘日은 冬至 후 셋째 未日로 정하여 宗廟와 社稷에서 대제大祭를 지냈다.
*犧牲: 天地神明 등에 祭祀 지낼 때 祭物로 바치는 산 짐승으로 주로 소, 양, 돼지 등이다.
제4폭 속절삭망의도(俗節朔望儀圖)’, ‘천신의도(薦新儀圖): 每月 朔望과 五俗日에 올리는 祭
禮와 제철 産物을 바치는 薦新儀.
*朔望: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을 아울러 이르는 말.
*薦新: 철 따라 새로 난 과실이나 농산물을 먼저 神位에 올리는 일.
제5폭 전알의도(展謁儀圖): 봄과 가을에 國王이 직접 宗廟 正殿과 永寧殿의 各室을 살피는
의식. (*謁: 뵐 알)
제6폭 오향친제설찬도(五享親祭設饌圖): 五享 親祭 때 正殿 각 神室의 상차림인 <說瓚圖>,
神室 앞 尊所床에 배설되는 祭器를 그린 <尊所祭器>, 犧牲을 잡고 조리는데 쓰이는
기구를 그린 <典祀廳器用>을 세 부분을 구획하여 각각 그렸다.
(*瓚: 옥잔 찬 *尊: 술 그릇 준)
제7폭 오향친제반차도(五享親祭班次圖): 국왕이 親臨하는 五享親祭 때 祭官, 樂工,
文∙武班 官僚 및 宗親의 배치를 그린 반차도.
제8폭 친상책보의도(親上冊寶儀圖); 先大王의 尊號 追上 때 王이 친히 冊寶((玉冊과 金寶)를
올리는 儀式
(33) 용찬과 찬반[龍瓚∙瓚盤](왼쪽) – 향로와 향합[香爐∙香盒]
=용찬과 찬반[龍瓚∙瓚盤]
신관례(晨祼禮) 時 울창주를 담아 관지통에 부을 때 사용하는 祭器인 용찬과 용찬을
받치는 찬반이다. 술을 땅에 붓는 의식은 붓는 술의 냄새에 따라 地下의 魄이 신주에
임할 수 있도록 불러오는 역할을 한다. (*晨: 새벽 신 *祼: 강신제 관)
술이나 물을 뜨는 제기인 용작이 있다. 용작 사이에는 울창주(鬱鬯酒)를 담아 사용하는
용찬(龍瓚)과 받침인 찬반(瓚盤)이 있다. (*鬱: 울창할 울 *鬯: 울창주 창)
*晨祼禮: 宗廟 제례와 文廟의 釋奠 등에서 제사 당일 새벽에 主祭者인 왕이나 세자가
이르기 전에 준비를 점검하는 의식.
*울창주(鬱鬯酒): 튤립을 넣어 빚은, 향기 나는 술. 제사의 降神에 쓴다.
=향로와 향합[香爐∙香盒]
향로는 香을 태운 연기로 天上의 魂을 모시는 儀式에 사용하는 祭器이다.
신관례(晨祼禮) 때 初獻官은 향로에 향을 세 번 나누어 사르는데 王이 친히 나서는
제사에서는 王이 初獻官을 맡는다.
(34) 작과 점[爵∙坫] [*爵: 술잔: 작 *坫: 잔대(받침) 점]
爵은 神에게 술을 올릴[獻爵] 때 사용하는 잔으로 참새[雀]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그 이름을
붙였다. 점[坫]은 爵을 받치는 판으로, 祭床에 올릴 때 점 위에 작을 놓는다.
(35) 준소[尊所] (*尊: 술 그릇 준)
神室 밖에는 祭禮 때 사용하는 明水와 술을 담은 항아리를 올린 尊所가 놓였다.
준소에는 5종의 술항아리 8개가 계절별로 종류를 다르게 하여 올라갔다.
봄∙여름제사에는 鷄彛, 鳥彛, 象尊, 犧尊, 山籟를 사용하고, 가을∙겨울제사에는 斝彛, 黃彛,
착준(著尊), 壺尊, 山籟를 사용했는데 각 항아리에 담는 술의 종류도 정해 있었다.
(*彛: 떳떳할 이 *尊: 술 그릇 준 *籟: 세 구멍 퉁소 뢰 *斝: 술잔 가 *著: 붙을 착)
*계이(鷄彛): 그릇 표면에 닭[鷄] 그림을 새긴 祭器.
*조이(鳥彛): 사발 모양으로 생긴 술 담는 그릇으로, 그릇 표면에 새 그림을 새겼다.
*상준(象尊): 코끼리 문양을 새기거나 코끼리 모양으로 만든 제사용 술통.
*희준(犧尊): 소의 그림을 그려 넣은 祭器. (*犧: 희생 희 *尊: 술 그릇 준)
*산뢰(山籟): 산과 구름 모양을 겉에 새긴 놋쇠로 만든 술 항아리.
*가이(斝彛): 이(彛)의 하나. 그릇의 표면에 벼 이삭의 그림을 새겼다.
*황이(黃彛): 사발 모양으로 생긴 술 담는 그릇[彛]으로 표면에 황금으로 눈을 그려 넣었음.
*착준(著尊): 제사 지낼 때 쓰는 술 그릇의 한 가지. 밑에 다리가 달리지 않았다.
*호준(壺尊): 물병 모양의 祭器
(36) 宗廟 祭享을 위한 그릇, 祭器
祭器는 宗廟에서 제사음식을 마련하고 바치는데 사용한 그릇이다. 祭器의 형식은
歷代 禮制를 참고하여 法式을 정해, 祖上을 모시는데 잘못이나 모자람이 없도록 했다.
宗廟 祭床에는 고기를 담는 조(俎)와 생갑(牲匣), 땅과 물의 産物을 담는 변(籩)과 두(豆),
고기를 삶은 국물을 담는 등(㽅)과 형(䤯), 곡식을 담는 보(簠)와 궤(簋) 등이 올라갔다.
술을 준비하는 준소(尊所)에는 이(彛), 준(尊), 뢰(籟) 등의 항아리가 계절별로 文樣과
형태를 다르게 하여 올라갔다. 祭器는 낡거나 파손되어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補修하여
사용하거나 땅에 묻었다. (*俎: 도마 조 *牲: 희생 생 *匣: 갑 갑 *籩: 제기 이름 변
*㽅: 질그릇 등 *䤯: 탕기 형 *簠: 제기 이름 보 *簋: 제기 이름 궤
*彛: 떳떳할 이 *尊: 술 그릇 준 *籟: 세 구멍 퉁소 뢰)
(37) 宗廟 祭床
(38) 儀禮를 통한 孝의 實踐
“禮를 記述한 것에 3천 3백가지의 글이 있으나 그 要點은 吉 ∙凶 ∙軍 ∙賓 ∙嘉 다섯 가지에
불과할 뿐이다. …∙ 이 다섯 가지의 禮를 갖춤으로써 사람의 道理가 구체화되는 것이니
天下 國家를 다스리려는 者가 이를 버리면 다른 할 일이 없는 것이다. “
- <國朝五禮儀> 序文 - (*賓: 손 빈 *嘉: 아름다울 가)
(39) 宗廟 神室
(40) 王陵
宮中 音樂
(41) 宮中 音樂
(42) 편종[編鐘](왼쪽) – 방향[方響]
=편종[編鐘]
16개의 작은 鐘을 2단으로 엮어놓았다고 編鐘이라고 하며, 망치로 鐘의 아랫부분
가운데에 둥글게 튀어나온 수[隧]를 쳐서 연주한다.
鐘의 크기는 모두 같으나 두께로 音의 高低를 조절한다. 中國의 祭禮樂을 연주하는
雅樂器 중 하나로 조선시대 王室에서 행한 각종 儀禮에 사용하였다. (*編: 엮을 편 *隧: 길 수)
*高麗 睿宗 11년(1116년) 宋나라로부터 수입하여 宮中祭禮樂에 사용하였으며,
朝鮮 世宗 11년(1429년) 鑄鐘所를 설치하여 국내에서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방향[方響] (*響: 울릴 향)
나무틀[架子]에 고정된 16개의 鐵片을 망치로 처서 연주하는 打樂器이다.
中國의 俗樂을 연주하는 唐樂器 중 하나로 조선시대에는 王室에서 행한 각종 儀禮에
사용하였다. (*架: 시렁 가)
(43) 어[敔](왼쪽) – 특종[特鐘] (*敔: 막을 어)
=어[敔] -복제 (*敔: 막을 어)
엎드린 호랑이를 형상화한 打樂器로 音樂의 끝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호랑이 등줄기에 있는 27개의 톱날[齟齬]을 대나무채[籈]로 긁어 연주한다.
중국의 祭禮樂을 연주하는 雅樂器 중 하나로 조선시대 왕실에서 행한 각종 儀禮에
사용하였다. (*齟: 어긋날 저 *齬: 어긋날 어 *籈: 채 진)
=특종[特鐘]
큰 鐘 하나를 나무틀[架子]에 매단 형태의 악기이다.
망치로 종의 아랫부분 가운데에 둥글게 튀어나온 수[隧]를 쳐서 연주한다.
중국의 祭禮樂을 연주하는 雅樂器 중 하나로 조선시대 왕실에서 행한 社稷, 文廟 등의
祭禮樂에 사용하였다. (*隧: 길 수)
(44) 편경[編磬](왼쪽) – 특경[特磬]
=편경[編磬] (*磬: 경쇠 경)
‘ㄱ’자 모양의 경[磬] 16개를 두 단에 엮어 놓았다고 編磬이라고 한다.
망치로 편경의 아랫부분을 쳐서 소리를 내며, 磬의 크기는 모두 같고 두께로 音의 高低를
조절한다. 중국의 祭禮樂을 연주하는 雅樂器 중 하나로 조선시대 王室에서 행한 각종
儀禮에 사용하였다.
=특경[特磬]
돌로 만든 ‘ㄱ’자 모양의 경[磬] 하나를 나무틀[架子]에 매단 樂器로, 망치로 磬의
아랫부분을 쳐서 소리를 낸다.
중국의 祭禮樂을 연주하는 雅樂器 중 하나로 조선시대 王室에서 행한 社稷, 文廟 등의
祭禮樂에 사용하였다.
(45) 진고[晉鼓] (*鼓: 북 고)
國樂器 중에서 가장 큰 북으로 나무막대 끝에 천을 감아 만든 채로 서서 친다.
중국의 祭禮樂을 연주하는 雅樂器 중 하나로 조선시대에는 祭禮 때 사용하였다.
(46) 장구[장고(杖鼓)](왼쪽) – 절고[節鼓]
=장구[장고(杖鼓)] (*杖: 지팡이 장)
허리가 잘록한 나무 울림통 양쪽에 가죽을 대서 고정한 형태로 왼쪽은 손으로 치고,
오른쪽은 대나무로 만든 얇은 채로 친다. 조선시대 王室에서 행한 각종 儀禮에 사용하였다.
=절고[節鼓]
받침대[方臺] 위에 북을 비스듬히 올려놓은 형태의 打樂器이다.
중국의 祭禮樂을 연주하는 雅樂器 중 하나로 조선시대에는 世宗 때 이후 文獻 記錄에
처음 등장하였다. 주로 宗廟와 文廟 祭禮에 사용하였다.
(47) 나각[螺角] – 태평소[太平簫]
=나각[螺角] (*螺: 소라 나)
소라에 구멍[吹口]을 내서 만든 樂器이다.
한 가지 音을 낼 수 있는데 音 높이는 소라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朝鮮 後期에는
王의 行次 때 음악을 연주하던 樂隊인 內吹에 편성되었다. (*吹: 불 취)
=태평소[太平簫] (*簫: 퉁소 소)
세로로 부는 管樂器로 音이 강하고 높은 것이 특색이다.
高麗時代에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나 구체적인 流入 徑路는 전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宗廟祭禮樂 중 정대업[定大業] 연주에 사용하였으며,
정재[呈才] 선유락[船遊樂] 伴奏音樂에 사용되기도 했다.
*定大業: 현행 宗廟祭禮의 亞獻禮와 終獻禮에서 연주하는 樂舞의 하나.
(48) 철제대금과 철제금은입사대금[鐵製大笒∙鐵製金銀入絲大笒] (*笒: 첨대 금)
가로로 부는 管樂器로 일반적으로 대나무로 만들었으나 鐵로 만든 것으로 보아 演奏用이
아닌 儀禮用으로 보인다. 두 大笒 모두 표면에 실제 樂器와 같이 대나무 마디를 표현하였다.
金銀入絲大笒은 金과 銀으로 唐草, 鶴 문양을 入絲했다.
(49) 운라[雲鑼] (*鑼: 징 라)
놋쇠로 調律해서 각기 다른 높이의 소리를 내는 작은 징[鉦] 10개를
나무틀[架子]에 매달고 나무망치로 쳐서 소리를 내는 打樂器로 매우
맑고 영롱한 음색을 지녀 경쾌한 音曲에 알맞다.
행진할 때에는 자루를 손에 들고, 고정된 장소에서는 받침대에 세워놓고
연주하였다.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樂器이나 정확한 流入 時期는 알 수 없다.
朝鮮 前期의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고, 純祖 28년(1828)과 1829년의
<進饌儀軌>에서 보인다.
踏査를 마치고
(01) 國立古宮博物館과 景福宮 사이로 北岳山(白岳山)이 내려다보고 있다.
(02) 光化門 양쪽에 있는 獬豸像 (*獬: 해태 해 *豸: 해태 치)
해태(懈豸)는 想像의 동물로 사자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정수리에 뿔이 하나 있다.
光化門 앞에는 두 마리의 해태상이 놓여 있다. 漢陽의 祖山 冠岳山은 돌이 많은 火山으로,
漢陽의 火災를 막기 위해 물을 상징하는 해태상을 세웠다고 한다.
(03) 光化門, 뒤로 仁王山과 北岳山이 보인다.
光化門은 太祖 4년(1395) 9월에 창건되어 三峰 鄭道傳이 四正門으로 命名하고 午門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世宗 7년(1425) 集賢殿 學士들이 光化門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光化門 앞에는 闕外各司인 吏曹·戶曹·禮曹·兵曹·刑曹·工曹 六曹의 官衙들이 늘어서 있어
이 거리를 ‘六曹거리’라고 불렀다.
壬辰倭亂 때 燒失되어 高宗 1년(1864) 興宣大院君의 景福宮 再建으로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韓日倂合 후 朝鮮總督府가 1927년에 解體하여 景福宮 東門 建春門 북쪽에 移轉했으며,
6∙25전쟁 때 폭격으로 燒失되었다.
1968년 鐵筋콘크리트 構造로 復元하면서 도로확장으로 뒤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2006년 12월부터 光化門 복원 및 이전 공사가 시작되어 2010년 8월 전통적인 옛 모습으로
復元되었다.
(04) 議政府席上作/의정부에서 짓다. -醉琴軒 朴彭年(1417~1456)
廟堂深處 動哀絲(묘당심처 동애사)/묘당 깊은 곳에 슬픈 가락 울려 퍼지니
萬事如今 摠不知(만사여금 총부지)/모든 일을 이제는 도무지 알 수 없네.
柳綠東風 吹細細(유록동풍 취세세)/버드나무 푸르니 동풍은 감미롭게 불고
花明春日 正遲遲(화명춘일 정지지)/꽃이 활짝 피니 봄날은 더디기만 하여라.
先王大業 抽金櫃(선왕대업 추금궤)/선왕의 대업을 금궤에서 찾아보고
聖主鴻恩 倒玉扈(성주홍은 도옥호)/성군의 은혜로 옥 술잔을 기울이네.
不樂何爲 長不樂(불락하위 장불락)/즐기지 않으랴, 어찌 즐기지 않으랴
賡歌醉飽 太平詩(갱가취포 태평시)/실컷 취하여 태평 시를 노래해야지.
(*醉: 취할 취 *琴: 거문고 금 *彭: 성씨 팽 *摠: 다 총 *遲: 더딜 지 *抽: 뽑을 추
*櫃: 궤 궤 *鴻: 기러기 홍 *扈: 따를 호 *賡: 이을 갱 *飽: 배부를 포)
(05) 사복시 터[司僕寺 址 (*司: 맡을 사 *僕: 종 복 *寺: 관청 시)
司僕寺는 궁중에서 사용하는 수레와 말, 궁궐 안의 마굿간, 지방에 있는 牧場의 관리를
담당하였다.
궁궐 안에 있는 사복시는 內司僕寺, 궁궐 밖에 있는 사복시는 外司僕寺라고 불렀다.
내사복시는 景福宮 迎秋門 안쪽과 昌慶宮 弘文館 남쪽에 있었으며, 외사복시는 鍾路區
壽松洞 현재의 鍾路消防署와 鍾路區廳 인근에 있었는데, 鄭道傳의 집터였다고 한다.
內司僕寺는 高宗 31년(1894) 甲午改革 때 폐지되고, 外司僕寺는 1895년 太僕司로
개칭하였다가 1907년에 폐지되었다.
- 끝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