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연재 ▷ 세이쿄(聖敎) 뉴스]
〈브라질 광포 60주년 - 스승과 함께한 역사〉
2020년 10월 20일
브라질이 일어섰기에 세계광선유포의 길은 열렸다
브라질 격언에 이렇게 있다.
“역경(逆境)이 영웅(英雄)을 만든다.”
브라질 동지 역시 장벽이 가로막을 때마다 사제의 유대를 강하게 하면서 ‘세계광포(世界廣布)의 왕자(王者)’로서 모범의 전진을 계속해 왔다.
이케다 선생님이 브라질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60년 10월 19일. 일본의 약 23배라고 하는 광대한 국토에, 당시는 100세대 정도의 회원이 점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일본에서 이주한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난과 차별 등으로 혹독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 브라질 방문 전, 선생님은 체류하고 있던 미국에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첫 해외지도(海外指導)는 북남미의 3개국 9개 도시를 24일간 도는 강행군. 동행한 벗에게서 브라질행을 제지당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의연하게 대답했다.
“나를 기다리는 동지가 있다…… 간다, 반드시 간다. 만약 쓰러진다면 쓰러져도 괜찮지 않은가!”
회원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친다. 이 깊은 각오를 가지고 입국한 선생님의 격려에 접해 초창기의 벗은 분기해 일어서서, 광포(廣布) 개척(開拓)에 달렸다.
선생님의 두 번째 방문은 1966년 3월. 불과 5년 반 사이에 이 나라 회원이 약 8000세대로 약진했다.
1974년에도 브라질을 방문할 예정이 있었지만 군사정권 하에서 학회에 대한 오해로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입국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전화너머로 현지 리더에게 말했다.
“긴 안목으로 보면 고생한 곳이 신음(呻吟)한 곳이 반드시 강해진다. 그게 불법의 원리다.”
이래, 동지는 “무이트·마이스·다이모쿠!(더 많은 제목을!)”을 슬로건으로 새로운 도전을 개시. 좋은 시민을 목표로 하여 사회공헌에 힘써 왔다.
이듬해인 1975년, 브라질SGI는 브라질리아 연방구의 요청에 따라 문화제를 개최. 그 모습이 신문에 크게 보도되면서 점차 사회의 시각이 바뀐다.
그리고 1984년 2월, 피게이레두 당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18년 만에 세 번째 선생님의 방문이 성사된다.
네 번째 브라질 방문이 된 1993년 2월에는, ‘브라질문학아카데미’의 아타이데 총재와 회견. 선생님은 아시아인 최초로 이 아카데미 ‘재외회원(在外會員)’에 취임했다.
스승과의 잊지 못할 원점을 가슴에 품고 브라질의 벗은 전 국토에 신뢰와 우정의 네트워크를 크게 넓혀 왔다.
그 증거로서 선생님의 지구적 업적에 대해 동국의 최고 훈장 ‘남십자국가훈장 코멘다도르장’을 비롯해 상파울루 시(市) 등 150개 이상의 주(州)·시(市)로부터 명예주민·시민증 등이 수여되고 있다.
또한 삼대(三代) 회장의 이름을 딴 공원·다리·거리 등은 국내에 40개가 넘었고, 상파울루 시내에 있는 ‘브라질 소카학원’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일관교육으로 발전했다. 현재 창가(創價)의 평화·문화·교육·환경에 대한 공헌(貢獻)에 각계에서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다.
선생님은 장편시에 읊었다.
브라질은
우리의 생명이다.
브라질이 일어섰기 때문에
세계광선유포(世界廣宣流布)의
대위업(大偉業)의 길(道)은 열렸다.
스승과 함께 한 60년. 그것은 어떠한 고난의 폭풍우에도 지지 않았던 브라질 창가가족(創價家族)의 자랑스러운 공전보(共戰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한
브라질 ~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