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사말조차도 달라졌다. “언제 밥 한번 먹자”가 요즘 흔한 인사말이다. 정한 날짜 없이 밥 한번 먹자고… 이런 속에서도 용케 하루하루를 버티는데 이즈음 ‘미나리’영화가 미국전역에서 상을 휩쓰는 가 본데 우리는 감염자 숫자로 하루를 보낸다.
한 관계자는 “사무실 밖으로 갯벌이 보이는데 내 엄마도, 할머니도 저 갯벌에서 조개를 캐며 살았구나. 할머니는 물론 젊은 며느리인 제 어머니까지도 살아 온 순간들이 뇌리를 스친다.”고
참말로 가난할 때 우리들 형편이요, 지난 시대에 겪은 내 나라의 형편이었다. 몸으로 때우고 몸으로 부딪기며 산 그때처럼 영화를 그리려고 했지만 그때의 사정만큼은 다 표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빠는 덩치 큰 트럭를 몰고 엄마는 딸과 아들을 태우고 뒤를 따른다. 한가로운 풍경을 지나 한 초지에 지어 놓은 창고 같은 펜션에 차를 세운다. 그들의 집이요 보금자리이다. 그후 아빠는 현지인과 같이 농장을 일궈 농사를 짓고 엄마는 병아리감별사로 일자릴 찾았다.
이들 남매들을 돌보고자 한국에서 외할머니가 미국으로 온다. 가방을 풀자 고춧가루, 멸치, 한약 봉지를 딸 앞에 내 놓는다. 남매는 그런 외할머니가 마땅찮다. 그래도 정이 들자 외할머니와 마룻바닥에서 자기도 하고, 품에 안기기도 하지만 외할머니가 준 한약만은 개수통에 몰래 쏟아 버린다. 어릴 적 우리들 모습이요 내 모습이 아닌가 싶다. 이런 장면들이 인간의 감성을 자극한 모양이다
하루가 지루하자 가져온 화투로 화투판을 펼치고 때로는 패 짓기로 그날의 길흉도 점쳐 보기도 한다, 밤을 깨물어 외손자에게 건네자 아이는 기겁을 하고 달아난다. 우리 할머니들의 손자사랑이다.
세월은 흘러 외할머니는 반수불수로 걸음조차 더듬거리고, 어느 날 가족들이 외출한 후 혼자서 쓰레기를 태우다 바람이 불어 불이 번져 사위가 경영하던 창고며 그 안에 든 물품까지 몽땅 잿더미가 된다.
주일 날,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데 외할머니 앞으로 현금바구니가 오자 바구니에 든 헌금을 보고는 지폐 한 장을 슬쩍하고는 주의를 살핀다. 빛 좋은 어느 날, 아들과 아빠는 미나리 밭에서 미나리를 밴다. 미나리처럼 끈질 게 이어가는 삶이 영화의 감동으로 전이되어 인간의 섬세한 심성까지 꼬드기지만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보다 미국에서 히트 친 미나리로 옛날을 반추하며 오늘 하루도 아주 무사히 보낼 것 같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불로거사님
읽어주어 고맙습니다
저도 <미나리>라는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즐감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