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희용 (6) 아내의 뜨거운 기도, 내 안 식었던 심령에 불씨 지펴
김아영2026. 5. 18. 03:06
아내 강권으로 함께 간 기도원
오랜 가난과 비극에 굳은 심령
날 위해 기도하는 아내 모습에
얼음장 같던 마음, 서서히 균열
박희용 선교사가 2019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남가주사랑의교회 특별 새벽기도회에서 기도하는 모습.
28살, 가난한 한국 청년이 맞닥뜨린 미국 이민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했다. 서툰 영어는 사방을 벽처럼 가로막았고 차가운 개인주의 문화는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모두가 제 살길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지독한 소외감이 밀려왔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전거로 6시간을 달린 뒤 또 걸어서 교회에 갈 만큼 열심을 다했다. 개척교회 전도사님의 인도로 두세 달에 한 번씩 기도원에 올라가 3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구할수록 내 영혼은 걷잡을 수 없이 메말라 갔다. 현실이 너무 버겁다 보니 기도는 형식적인 껍데기만 남았고 말씀은 머리로만 맴도는 지식이 됐다. 하나님은 늘 멀리 계신 것 같았다.
누구보다 내 영적 고갈을 먼저 알아챈 사람은 아내 유성희 선교사였다. 아내는 영적인 흐름을 분별하는 데 있어 남다른 예리함과 거룩한 영성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날 아내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번 금요일에 기도원 갑시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몇 번이나 미뤘지만 아내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마지못해 억지로 아내의 뒤를 따라나섰다.
1995년 12월 개척교회 성도 30여명과 함께 산상 철야 집회에 참여했다. 저녁 8시 집회가 시작되자 뜨거운 찬양과 말씀이 선포됐고 성도들은 하나둘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기도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영적인 흐름에 도무지 동참할 수 없었다. 찬양은 귀에 닿기도 전에 튕겨 나갔고 기도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오랜 세월 가난과 비극에 치여 굳어버린 심령은 완전히 고장 난 채 작동하지 않았다. 5분도 앉아 있기 힘들어 밖으로 나가 찬 공기를 쐬다 들어오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문득 홀로 무릎을 꿇고 있는 아내가 보였다. 아내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나를 위해 울고 또 울며 간절히 부르짖고 있었다. 새벽 1시가 넘어가자 지친 성도들이 하나둘 쓰러져 잠들었고 기도 소리도 잦아들었다. 그러나 아내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하나님과 씨름하던 야곱처럼, 아내는 주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진 채 밤새 기도를 이어갔다.
그 절박한 모습이 얼음장 같던 내 마음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왜 저렇게까지 나를 위해 우는 걸까.’ 새벽녘 아내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예배드려야 해요.” 솔직히 짜증이 치밀었지만 거역할 수 없는 영적 권위에 이끌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나를 붙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날 밤은 내가 기도를 시작한 밤이 아니었다. 무지렁이같이 보잘것없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아내의 기도를 통해 나를 철저하게 꺾고 강권적으로 붙잡으신 밤이었다. 내 힘으로 버텨온 줄 알았던 이민 생활의 고단함이 아내의 눈물 어린 제단 위에서 비로소 녹아내렸다. 나의 완악함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훨씬 더 컸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그날 밤 흘린 눈물은 메말랐던 청년의 영혼에 단비가 됐고 마침내 내 삶의 진정한 예배가 회복되는 기적의 시작점이 됐다. 그토록 차갑게 식어버렸던 심령에 복음의 불씨를 다시 지피신 하나님은 이제 나를 넘어 말라위의 메마른 영혼들을 깨우는 통로로 삼으실 준비를 하고 계셨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